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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2.12.15 05:44
최근연재일 :
2014.05.02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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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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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5)

DUMMY

* * *


휘무제(輝武帝)가 우랄산맥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이래, 휘 제국과 유로피아는 3백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전면전을 펼치지 않았다. 두 제국 모두 이미 너무나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영토확장은 별 의미가 없었다. 집안단속에만 전념해도 모자랄 판국에 국경 너머로 눈을 돌릴 여력이 있을 리 없었다.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내부의 불만을 해소하고 결속을 다지고자 일부러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은 인류사를 통틀어 위정자가 가장 오랫동안 즐겨 사용한 사기극 중 하나다. 현생 인류가 건설한 제국인 이상 휘 제국과 유로피아도 다를 게 없었다. 때로는 백성의 신망이 높은 중신을 제거하기 위해, 때로는 무능한 군 지휘관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고로 많은 장병이 희생되었을 때, 그 책임을 적에게 돌리기 위해 전쟁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서로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적당히 받아주는 척하는 암묵적 합의가 두 제국 사이에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밀사가 미리 오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따라서 두 제국 사이의 충돌은 소규모 국지전 이상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우랄산맥을 등진 오렌부르크 성 정면에 펼쳐진 광활한 평야가 사실상 유일한 전장이자 무대였다.

스키피오가 유로피아 동쪽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시즈란 성 주둔군 사령관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사상자도 별로 없었다. 그가 쌓아 올리는 해골탑만이 지난 3백 년간의 유일한 변화였다. 스키피오가 너무 열심히 싸우는 바람에 유로피아 제국 내에서도 은근히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오랜 공생관계가 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로피아 중신들은 혹시라도 황제가 동쪽 끝 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의미한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이었다. 그것은 황제의 친정(親政)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부패한 중신들에게 황제의 친정이란 죽음과 동의어였다.

내부에서는 벌써 은밀히 스키피오를 제거할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 계획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3년 전, 당시 22세에 불과한 젊은 장수 카잔 세프첸코가 마그니토 수비대장으로 부임해 힘이 다시 균형을 이루자 스키피오를 제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스키피오는 만날 때마다 자기 목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무시무시한 검의 주인이 생명의 은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스키피오에게 카잔은 생명의 은인, 그 이상이었다. 한 사람의 장수로서, 무사로서, 스키피오라는 이름을 역사에 더욱 화려하게 새겨주기 위해 강림한 천사와도 같았다.

마그니토 요새를 떠난 3만 8천 중 3만은 겉만 번지르르한 오합지졸이었지만, 사실은 스키피오가 이끄는 5만이라는 숫자가 훨씬 더 위태로웠다. 스키피오는 머리 아프게 병법을 따지는 성격이 아니어서 기동력과 파괴력을 극대화한 직속 창기병대 1만 이상을 지휘하는 법이 없었다. 아르강과 파블로가 예측한 대로 나머지 4만은 전력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그 4만은 단순히 오합지졸 정도가 아니었다. 죄수, 주변 유목민, 심지어 시즈란 성의 일반 백성들까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총동원되었다. 이들은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비교적 높은 언덕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앞으로 스키피오의 창기병대가 손에 든 창만큼이나 날카로운 추형진을 펼쳤다. 이따금 북소리에 맞춰 일제히 함성과 함께 창을 높이 들어올려 진 전체가 기세 좋게 들썩이면, 멀리서 보기에는 영락없이 사나운 멧돼지가 달려들기 직전 한바탕 푸레질하는 것처럼 보여 간담이 서늘했다.


"자네 말대로 했네. 이제 어쩌면 좋겠나?"


니키타 이바노비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르강은 대답 없이 적진을 유심히 살폈다. 예상대로 유로피아 군 중에서 4만은 전력으로 간주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전혀 군대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적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 ‘일단 그 꼬마 녀석을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아르강이 쓴웃음만 짓자 니키타가 재차 물었다.


"여기 이대로 숨어 있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적이 무려 5만이야, 5만. 선봉대만 해도 사기가 충천한 것이 단숨에 오렌부르크 성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태세지 않나. 이럴 때 세프첸코는 도대체 어딜 간 건가?"


적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숨어 있으라는 아르강의 조언을 니키타가 받아들여, 마그니토 주둔군은 오렌부르크 평야로 내려가지 않고 우랄산맥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스키피오가 아무리 직선적인 성격이라고 해도, 무리하게 공성전을 펼치다가 갑자기 산 위에서 주둔군이 뛰쳐나오는 날에는 전멸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계산할 줄 아는 자였다. 그의 창기병대는 평원을 마음껏 달리며 적병을 쓰러뜨리기에 알맞은 군이지, 결코 공성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 군대 앞에 괜히 3만에 달하는 오합지졸을 먹이로 던져줄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친위대 8천을 이 전투에 투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또한 오렌부르크 성에는 카잔이 이끌고 나간 2천을 빼고도 1만 5천여 병력이 남아 있었다. 성을 지켜내기에 충분한 병력이다.

문제는 멀리 언덕 위 4만 명의 정체였다. 처음 보고를 들었을 때는 단지 허세를 부리기 위해 끌고 온 병력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경계해야 할 전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적이 그걸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다 보니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르강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저 멧돼지 떼의 표적이 될 뿐입니다."


니키타는 적잖이 안심했지만 불안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저놈들 우리가 여기에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겠지?"


아르강이 몰래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무려 3만입니다. 나뭇가지의 흔들림, 날아오르는 새들, 아니 3만이 일제히 내뱉는 날숨 때문에 아예 공기 색깔이 다를 겁니다."


니키타는 깜짝 놀라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럼… 그럼 어쩌나? 저 무식한 놈들이 여기로 곧장 쳐들어올 지도 모르잖아!"


아르강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우린 보병이고 저쪽은 창기병이죠. 평지에서는 창기병대가 유리하지만 이 숲 속에서는 보병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절대로 여기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성을 공격할 수도 없지요. 등 뒤에서 언제 대군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데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습니까?"


아르강은 양측의 병력과 지세, 적장의 성격 등을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그러나 언덕 위의 4만이 전투 병력이 아니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설명을 끝낸 아르강이 한 마디 덧붙였다.


"이만한 대군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싸움을 피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니키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때마침 창기병대가 또 한 번 포효하자 흠칫 놀라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르강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이런 사람에게 대군을 맡기고 돌아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군. 뭐, 별일이야 있겠냐 만은……’


아르강은 이번 도발도 휘 제국과 유로피아의 간신들이 자기들끼리 모종의 거래를 한 결과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황위 계승권 1위인 화란 공주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일 터였다.


휘 제국에서는 태후가 병약하여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지 못하고 단명하자 황제의 총애를 받던 후궁 여목희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녀는 대단한 야심가여서 아직 자식을 보기도 전에 황세자를 독살해버렸다. 병약하기는 문성제도 뒤지지 않아서 황가에는 손이 아주 귀했다. 황손이라고는 화란 공주 한 사람뿐이었다. 여목희는 자기가 아들만 낳으면 화란 공주의 황위 계승권을 간단히 빼앗아 올 거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마침내 여목희가 건강한 황자를 출산했으나 문성제는기댈 데 하나 없는 연약한 딸을 끔찍이 사랑해 황자를 황세자로 책봉하려 들지 않았다. 자기가 이미 성 기능을 거의 잃어버린 뒤에 황자가 태어났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됐다. 그러나 여목희를 추종하는 세력이 너무 강해서 황제조차도 감히 드러내 놓고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여목희는 날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이대로라면 전 황세자를 독살한 보람도 없이 황위를 빼앗길 것 같았다. 휘 제국 300년 역사에는 여제도 셋이나 있었기 때문에 화란 공주의 성별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여목희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만일 문성제가 화란 공주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황자를 황세자로 책봉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성제는 병약한 만큼이나 어리석은 황제였다. 화란 공주가 스스로 몇 번이나 황위에 오를 뜻이 없음을 밝혔음에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화란 공주를 지나치게 아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황자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무혈 역성혁명을 허락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성제는 화란 공주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을 지킬 힘도 없었다. 몇 달 전에는 갑자기 몸져눕더니만 의식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누구나 여목희가 뭔가 손을 썼음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증거는 없었다. 사실을 밝혀내고 황제와 공주를 지켜야 할 이들이 모두 여목희의 손발이 되어 있었다. 황제가 언제 승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1 황위 계승권자인 화란 공주를 마그니토 회합에 대표로 보내는 데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충신 임초서 장군만이 호위를 자처하여 그녀를 지키려고 나섰을 뿐이다.


- ‘그나저나 카잔이 빨리 와야지, 이거 골치 아프겠어. 저건 아예 드러내 놓고 카잔을 부르고 있잖아. 그 녀석이라면 평소에 저런 도발을 그냥 참아 넘겼을 리 없는데, 카잔이 여기 없다는 걸 골상학자가 눈치라도 채는 날에는 홧김에 수집품이라도 잔뜩 늘리려고 들 텐데 이걸 어쩐다……’


아르강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르강은 권력에 눈이 먼 여목희가 물과 불을 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여목희 주변의 간신들까지도 무시한 처사였다. 휘 제국이 아무리 부패했어도 황위 계승권자를 적의 손에 잃어서는 곤란했다. 원치 않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명분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화란 공주는 역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마침 눈엣가시였던 임초서 장군이 나서줬으니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회합에 참석해 모두에게 얼굴을 보여준 다음에 돌아오는 길에 둘 다 제거해버리면 만사형통이었다. 따라서 스키피오의 이번 출정은 휘 제국은 물론 유로피아로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스키피오에 대한 아르강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스키피오는 벌써 좀이 쑤셔서 참을 수가 없었다. 벼르고 별렀던 출정 직전, 카잔이 오렌부르크 성을 나섰다는 보고를 받긴 했지만 자기가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달려올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금 전까지도 카잔이 저 숲 속에 있을 거라 믿고 기다렸지만, 이렇게까지 꿈쩍도 안 한다는 건 완전히 계산 밖이었다.

스키피오는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낼 작정이었다. 스물다섯 한창 나이인 카잔에 비해 오십을 훌쩍 넘긴 스키피오는 하루가 다르게 근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동쪽의 무사들은 무슨 요술을 부리는지, 나이가 들어 머리가 하얗게 새고도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시간을 끌수록 승산이 없었다. 그동안 뜸했던 것은 필살의 묘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카잔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자신의 승리를 널리 알릴 증인으로 관객을 4만 명이나 모아온 것이다.

그러나 카잔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었다. 평소라면 숲에서 복병이 튀어나오거나 말거나 오렌부르크 성 바로 앞까지 가서 돌이라도 던졌겠지만, 그러다가 난전이 벌어지면 카잔과의 일대일 승부를 펼칠 수 없게 될 것을 염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스키피오가 이를 뿌드득 갈더니 좌우에 명했다.


"밥을 지어라. 병사와 구경꾼들까지 모두 배불리 먹도록 군량을 아끼지 말도록."


스키피오의 부관 안토니오스가 깜짝 놀라며 만류했다.


"그랬다가는 군량이 모두 바닥나고 말 겁니다."


스키피오가 냉소를 지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안토니오스가 어쩔 줄 몰라 망설이고 있자 또 다른 부관 리키오네가 나섰다.


"옛날 전설의 맹장 항우는 솥을 깨고 강을 건넌 다음 배를 모두 불태워 몇 배나 되는 적을 섬멸했다고 하지."


안토니오스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강을 건너기 전에 밥 짓는 솥을 모두 깨뜨린 것은 적을 전멸시켜 솥을 빼앗지 않으면 어차피 굶어 죽을 테니 병사들과 함께 필승의 각오를 다지기 위함일세. 또 강을 건넌 다음에 타고 온 배를 불태워버리면 후퇴할래야 후퇴할 수가 없으니 필사의 각오를 다진 것 아니겠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열 배나 되는 적과 싸워도 승리할 수 있다네."


리키오네의 설명을 들으며 안토니오스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항우의 고사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그가 솥을 깨고 배를 불태웠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다. 아마 그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사를 크게 그르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싸워도 그만, 안 싸워도 그만이지 않은가? 아무리 강한 자극이라고 해도 여러 번 반복되면 일상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하찮은 싸움에 군량을 모두 포기해 버리는 무리수를 둔다면, 정작 필요할 때 손쓸 도리가 없어진다.

안토니오스는 애당초 이번 출정이 여간 못마땅하지 않았다. 간언은 못할망정 달콤한 말로 비위나 맞추며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려고 하는 리키오네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리키오네의 말이 몹시 흡족한 모양이었다. 깨버릴 솥은 있는데 태워버릴 배가 없어 애석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스키피오의 괴팍한 성격을 잘 아는 안토니오스도 그를 거스를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차라리 선수를 치는 게 나았다.


"모두 갑옷을 벗고 창을 내려놓은 다음 소풍 나온 사람처럼 밥을 지어 먹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걸 보면 마그니토 놈들도 약이 올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휘 제국보다 안토니오스를 더 경계하는 리키오네는 동료 부관이 어떤 말을 하건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경쟁자가 옳은 말을 해도 딴죽을 걸고야 마는 그가 이렇게 무모한 제안에 찬성할 리가 없었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군량을 모두 소비하기로 한 이상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적을 섬멸해야 하네. 그러려면 우리 창기병대의 가장 큰 무기인 속도를 최대한으로 살려야 해. 그런데 오히려 적에게 틈을 보여 공격을 유도하자는 말인가? 이런 평원에서는 공격하는 쪽이 기다리는 쪽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렇게 풀어져 있다가 그 어린놈이 단숨에 달려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전열을 가다듬다가 배가 다 꺼지고 말 거야."


묵묵히 듣고 있던 안토니오스가 차분히 대답했다.


"세프첸코는 여기에 없을 걸세. 있다면 그 혈기왕성한 친구가 여태 참고 있었겠나? 세프첸코가 그런 장수던가? 장군께서 그런 장수를 호적수로 인정하셨단 말인가? 저 숲에 마그니토의 대군이 숨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아마 보병일 걸세. 만에 하나 기병이라 해도 걱정 없네. 기병이라면 저 숲에서 빠져나와 대열을 갖추는 데만 반나절은 족히 거릴 걸? 어림잡아도 2만이 넘는 대군일 테니. 보병이라면 그보다 더 많을 테고. 여기서 느긋하게 밥을 지어 먹어도 적이 여기까지 당도하기 전에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네. 그것도 아주 여유 있게 말이야. 싸우기도 전에 한 수 이기고 들어가는 거지. 기왕이면 밥을 지어 먹고 차도 한 잔 마시는 게 좋겠네. 놈들도 체면이 있으니 그쯤 되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겠지만 속으로는 간담이 서늘해 섣불리 덤벼들지는 못할 거야. 어쨌거나 군량을 모두 소비하기로 한 이상 적을 끌어내는 게 급선무 아니겠는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야말로 리키오네의 주특기였다.


"자네 이야기는 모두 불확실한 추측을 근거로 하고 있네. 카잔 세프첸코가 여기 없다는 추측 말일세. 만일 그 어린놈이 어딘가에서 빈틈만 노리고 있다면 어쩔 텐가? 놈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는 꼴밖에 더 되겠는가?"


리키오네와 안토니오스의 언쟁이 계속되자 스키피오가 끼어들어 마침표를 찍었다.


"병사들에게 명하라. 갑옷을 벗고 창을 내려놓은 후 천천히 밥을 지으라고. 그리고 구경꾼들 중에 분명 광대패가 있었다. 불러 와라. 솜씨나 한 번 보자."

"명 받았습니다."


두 부장이 동시에 대답했다.

평소 스키피오는 지나치게 신중한 안토니오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마음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하는 리키오네를 더 총애했다. 안토니오스가 내놓은 책략이 마음에 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눈에 띄게 안색이 변해 있는 리키오네를 보자 마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스키피오는 리키오네를 불러 부드럽게 말했다.


"이왕 솥을 깨기로 했으니 배도 불태워야 할 것 아니겠느냐? 일이 잘 풀리면 너희 둘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안토니오스가 놈을 꾀어낼 책략을 내 놓았고, 너는 벌써 놈을 잡을 계책을 내 놓았으니 공의 경중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리키오네는 뛸 듯이 기뻤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놈을 잡는 것은 장군의 무용이고, 놈을 꾀어내는 것이 저희들 부관의 소임이니 저의 공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스키피오가 껄껄 웃었다.


"그렇지 않다. 내 그 어린 녀석의 수급을 거두려고 벌써 수십 차례나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나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너의 계책을 듣고 비로소 눈이 뜨이고 길이 드러났으니, 놈의 수급을 거둔다면 그건 나의 무(武)와 너의 지(智)가 한 군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 너에게 휘 제국 최고의 맹장 카잔 세프첸코의 수급을 상으로 내릴 것이다."


리키오네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큰 상이라는 게 먹지도 못할 적장의 수급이란 말인가? 카잔이 분명 휘 제국 최고까지는 못돼도 손꼽히는 맹장임에는 틀림없지만, 자기 손으로 벤 것도 아닌데 적장의 수급이 어떤 명예가 될 수 있겠는가? 직접 베었다고 해도 리키오네에게는 스키피오 같은 악취미는 없었다. 토끼에게 쇠고기를 상으로 내리는 격이었다.

리키오네는 멍한 얼굴로 스키피오를 바라보았다. 장군은 말을 마치고 마치 큰 은혜라도 베푼 것처럼 감사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리키오네가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황송해 몸 둘 바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기분에 취해 너무 큰 상을 주기로 결정한 성급함을 후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듯도 했다. 리키오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카잔의 수급이 나에게는 곧 썩을 고기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장군께는 그보다 값진 보물이 없을 것이다. 그런 보물을 나에게 하사하신다는 말씀이다. 이 얼마나… 이 얼마나……’


리키오네는 정말로 감격하여 말에서 내려 무릎을 털썩 꿇었다.


"장군의 은혜를 이 몸이 죽어선들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허나 이 미천한 자에게 그건 너무나도 과분합니다. 진정 소관을 아끼신다면 적장을 단칼에 베어 장군의 위명을 드높이시고, 그 증거를 무공탑 꼭대기에 올려 천하만민이 장군의 용맹을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그것만이 소관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입니다."


말을 마친 리키오네의 두 눈이 촉촉히 젖어 있었다.

진실한 사랑보다 호색한의 달콤한 허언이 더욱 마음을 흔들고, 충신의 간언이 간신의 감언을 누르는 일은 드물지만, 그래도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때로는.

안토니오스가 황제를 알현한 듯한 리키오네의 말투에 가만히 혀를 차고 있는데, 감격한 스피키오가 역시 말에서 뛰어내리며 리키오네의 두 손을 잡았다.


"내 그대를 나의 양자로 삼겠다."


리키오네는 물론 안토니오스까지 입을 쩍 벌렸다.


- ‘뭐냐, 이건. 이제 저 친구를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안토니오스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눌러 담고 리키오네의 반응을 살폈다. 난데없이 아버지가 생길 위기를 저 약삭빠른 친구가 어떻게 벗어날지 궁금했다. 그런데 안토니오스가 모르는 게 있었다. 리키오네의 성격은 그의 성장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유로피아는 사람을 철저하게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공동체 사회로서, 집안이나 배경은 원칙적으로 출세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유로피아의 아이는 열 살 때까지만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그 이후에는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 교육기관에서 생활하며 성장한다. 혈연이라는 고리를 인정하지 않는 유로피아에는 이름만 있을 뿐 성(姓)이 없었다. 그러나 리키오네는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시설로 넘겨졌다. 그는 국가 교육기관에서 눈이 맞은 어린 부모의 철없는 불장난으로 태어난 사생아였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유로피아의 철저한 능력주의는 건국 2천 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유명무실해져 있었다. 유력한 부모는 여러모로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녀의 뒤를 봐주었고, 배경이 없는 아이에게는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여간 해서는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가 고위 관직에 있어도 그 아들이 몸만 튼튼하고 머리가 따라주지 않으면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이 원래의 유로피아인데, 이제는 재능 있는 아이들이 힘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대신 바느질이나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아나 다름없는 리키오네가 여기까지 온 것은 단지 그의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나쁜 조건에서 살아남으려고 본능적으로 익힌 권모술수가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그런 그에게 스키피오의 선언은 감격스러울 뿐 아니라 밑질 게 없는 장사였다.

사실 친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인정하지 않는 유로피아에서 양자를 들인다는 것은 달나라의 토지를 매매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행동이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청춘남녀의 맹세와도 같다. 그러나 그러한 맹세조차 없다면 인류는 번식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소한 리키오네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게 분명하다.


"미천한 것이… 이 미천한 것이, 한 마디 사양도 없이 하늘과 같은 아버님의 은혜를 받드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일생의 기쁨을 거두어 가실까 두려워함이옵니다."


더욱 감격한 스키피오와 리키오네는 마주 꿇어앉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안토니오스는 느닷없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마땅히 해야 할 축복의 말을 전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곧 정신을 차린 안토니오스는 자기만 이 웃지 못할 촌극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환이 두려워졌다. 자기도 뭔가 우스꽝스런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는 말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애마를 단칼에 베었다. 새하얀 백마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영문도 모르고 주인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된 말은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을 흘리며 주인을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안한 마음에 안토니오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안토니오스는 눈물을 닦지 않고 깜짝 놀라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


"고대로부터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의 연을 맺을 때는 하얀 말의 피를 받아 나누어 마시는 것이 관례입니다. 마침 저의 애마가 눈처럼 하얀 백마인지라 이렇게 바치니 부디 받아주십시오."


안토니오스가 자신의 애마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스키피오와 리키오네는 더욱 감격하여 백마의 피를 잔에 담아 나누어 마셨다. 안토니오스는 마치 의례를 주관하는 사제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경사스런 날에 잔치가 없어서야 말이 되는가! 밥을 짓고 이 백마로 국을 끓여 모두 한 대접씩 맛을 보게 하라!"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갑옷을 벗어 던지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광대패가 일부러 부르러 가지도 않았는데 먼저 알고 달려와 흥을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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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4) <3권 끝> +2 14.05.02 508 5 33쪽
7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3) 14.05.02 433 5 16쪽
7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2) +2 14.05.02 448 4 25쪽
7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1) 14.05.02 434 4 20쪽
71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0) 14.05.02 336 5 27쪽
70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9) 14.05.01 453 4 26쪽
69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8) 14.05.01 421 5 35쪽
68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7) 14.05.01 428 4 13쪽
67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6) 14.05.01 405 6 25쪽
66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5) 14.05.01 417 4 13쪽
6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4) 14.05.01 484 8 14쪽
6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3) 14.05.01 464 6 24쪽
6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2) 14.05.01 447 5 13쪽
6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 14.05.01 610 7 20쪽
61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6) +2 14.05.01 506 4 20쪽
60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5) 14.05.01 463 8 24쪽
59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4) 14.05.01 503 5 14쪽
58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3) 14.05.01 372 5 17쪽
57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2) 14.05.01 434 4 15쪽
56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1) 14.05.01 434 7 11쪽
55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7) 14.05.01 343 6 25쪽
54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6) 14.05.01 264 6 19쪽
53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5) 14.05.01 450 7 18쪽
52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4) 14.04.30 363 6 17쪽
51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3) 14.04.30 461 4 18쪽
50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2) 14.04.30 307 6 18쪽
49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1) 14.04.30 665 3 17쪽
48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6) 14.04.30 332 5 19쪽
47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5) 14.04.30 504 5 20쪽
46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4) 14.04.30 436 4 19쪽
45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3) 14.04.30 424 5 15쪽
44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2) 14.04.30 263 7 12쪽
43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1) 14.04.30 472 7 24쪽
42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2) 14.04.30 394 8 14쪽
41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1) 14.04.30 246 6 11쪽
40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5) 14.04.30 422 5 24쪽
39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4) 14.04.30 366 6 14쪽
38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3) 14.04.30 307 6 16쪽
37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2) 14.04.30 320 6 23쪽
36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1) 14.04.30 305 4 21쪽
35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4) 14.04.30 356 6 7쪽
34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3) 14.04.30 341 4 14쪽
33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2) 14.04.30 455 5 21쪽
32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1) 14.04.30 469 7 13쪽
31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2) 14.04.30 432 5 15쪽
30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1) 14.04.30 307 9 21쪽
29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9) 14.04.30 467 7 14쪽
28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8) 14.04.30 341 7 24쪽
27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7) 14.04.30 418 7 12쪽
26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6) 14.04.30 309 6 11쪽
25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5) 14.04.30 407 6 15쪽
24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4) 14.04.30 448 6 11쪽
23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3) 14.04.30 374 5 16쪽
22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2) 14.04.29 402 7 15쪽
21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1) +1 14.04.29 538 7 20쪽
20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4) 14.04.29 570 4 18쪽
19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3) 14.04.29 550 6 22쪽
18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2) 14.04.29 406 9 15쪽
17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1) 14.04.29 535 8 13쪽
16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7) 14.04.29 370 9 16쪽
15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6) 14.04.29 513 7 14쪽
»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5) 14.04.29 346 6 25쪽
13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4) 14.04.29 515 8 18쪽
12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3) 14.04.29 559 9 17쪽
11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2) 14.04.29 569 12 10쪽
10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1) +2 14.04.29 690 12 10쪽
9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9) 14.04.29 495 11 8쪽
8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8) 14.04.29 606 13 9쪽
7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7) 14.04.29 653 13 9쪽
6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6) +2 14.04.29 547 13 8쪽
5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5) 14.04.29 682 11 8쪽
4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4) 14.04.29 598 11 8쪽
3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3) 14.04.29 849 14 10쪽
2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2) 14.04.29 1,246 14 8쪽
1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1) 14.04.29 2,223 2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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