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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시우(時雨)
작품등록일 :
2012.12.15 05:44
최근연재일 :
2014.05.02 02:28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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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25
추천수 :
522
글자수 :
570,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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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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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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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8쪽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4)

DUMMY

이베르는 깜짝 놀라 아르강의 표정을 살폈다. 쓴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 ‘신경이 철사줄로 엮이지 않고서야.’


이베르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수는 그렇다 치고 지휘관이 누군데?"

"스키피오일 가능성이 큽니다."

"골상학자께서 상아탑을 나오셨군. 그러면 실제 전력은 1만, 또는 한 사람이라는 얘긴데."

"1만인 셈이죠."

"카잔이 없단 말이지."


파블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베르는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율리우스 스키피오라면 유로피아 군에서도 현시욕이 강하고 잔인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전쟁광이었다. 그런 그가 5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다는데, 둘의 대화는 엉뚱하기 그지 없었다. 갑작스런 위기에 둘 다 정신이 나가버린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둘이 농담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할 터였다.

물론 아르강과 파블로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다.

스키피오는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이었다. 그가 가장 불만스럽게 여기는 것은 전쟁에서 세운 공훈이 역사책의 숫자 몇 줄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추상적인 무용담으로만 남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전투에서 아무리 많은 적을 죽여도 다음 전투에서 그보다 성과가 적으면 사람들은 그것만 기억한다. 그게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사망한 적군의 수급을 모아 한 곳에 쌓아놓는 것이었다. 전공을 부풀리기 위해 아군 사망자까지 수급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쌓아 올린 해골 탑은 말 그대로 산을 이루었다. 그가 앞으로 백 년을 더 살면 우랄산맥 서쪽으로 똑같은 산맥이 나란히 달릴 거라는, 아무도 웃지 않을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아르강은 평소 그의 악취미를 빗대어 스키피오를 골상학자라고 불렀다.

카잔 세프첸코가 마그니토 수비대장이 된 다음에는 스키피오의 해골 탑도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다. 카잔의 용병술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스키피오는 아군 사망자의 수급도 그냥 버리지 않으므로 그에게는 패배조차 전공이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그가 비록 잔인한 전쟁광이기는 했지만 무사도를 중시하는 뛰어난 무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스키피오는 어느 전투에선가 한 번 검을 부딪힌 이후로 카잔과 승부를 내는 데 집착했다. 처음에는 적장이라고 나타난 새파란 애송이를 단칼에 베어버리지 못하자 분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싸움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한 수 밀리기 시작했다. 스물 다섯 살의 젊은 장수는 아직도 성장 중이었다.

게으른 벗을 두는 것보다 성실한 적을 두는 편이 낫다고 했던가? 카잔을 적장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인정한 스키피오는 그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훈련을 쉬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면 그가 자랑하는 최정예 창기병 5천을 이끌고 오렌부르크 성을 노크했다. 유로피아 내부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려고 필살기라도 연마했는지, 한동안 뜸했던 스키피오가 바로 지금 취미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아르강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건 오히려 기회가 아닌가?"


파블로가 한숨을 쉬었다.


"대장님께야 물론 위기란 위기는 모조리 기회겠지요."


아르강이 미소 지었다.


"스키피오가 무려 5만을 끌고 왔어. 마그니토 주둔군이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친위대를 포함해서 말이야. 그런데 친위대는 중간에 돌아와야 할 거야. 황제의 칙사가 위험하거든."


파블로가 무릎을 쳤다. 아르강이 말을 이었다.


"카잔에게 사람을 보내게. 조강지처가 예물을 5만이나 싸 들고 찾아왔다고."


파블로의 지시에 따라 수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르강도 백작 부인에게 은밀히 사실을 고한 다음 성을 나섰다. 마그니토 주둔군 사령관 니키타 이바노비치 장군이 이끄는 3만에 친위대 8천을 더한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 출정이었다.


* * *


가란자는 몰래 성 밖으로 빠져나갈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해봤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았고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연회장 테라스에서 살기를 보내온 무사도 신경 쓰였다. 마그니토에 그런 무사가 몇이나 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가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가란자는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숲 속의 두 여인은 단언컨대 평생에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미녀였다. 달란자다 최고의 미소녀라고 해도 그녀들에 비하면 퉁퉁한 망아지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가 가진, 그리고 앞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하찮게만 여겨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뭔가 곤경에 처한 듯한 두 여인을 도와주고 환심을 사겠다는 열망뿐이었다. 나가서 그녀들과 말이라도 한 번 섞어볼 수 있다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이었다. 대륙의 흉성도 아직은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소년과 다름없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파수병들이 분주해지더니 성문이 열렸다. 이어서 요새 도시 안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성벽과 성문 주변 파수병들의 주의도 그쪽으로 쏠렸다. 어떤 방법으로든 무사히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놓쳐선 안 됐다. 그러나 가란자도 그만 그쪽에 주의를 빼앗겨 버려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마그니토 주둔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색 물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말단 병사들까지 군복 아래로 철갑을 입고 있었다. 가란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화려한 군복과 날카로운 병기에 압도당해 자기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과연 최전선 마그니토의 군대다웠다.

그런데 문득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생전 처음 보는 훌륭한 장비로 무장한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란자는 오래지 않아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고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행군하는 병사들의 얼굴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겁에 질려 파르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란자는 용맹한 몽골족 전사들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그리고 이 군대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 ‘저 정도 수에 저 정도 무장이면 수라의 군대도 무찌를 수 있겠거늘, 사기가 바닥을 치는 이유가 뭘까?’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벌써 주둔군의 반이 성문을 빠져나갔다. 행군 속도 하나는 봐줄 만했다. 사실 행군이 아니라 진군이었으므로 결코 빠르다고는 할 수 없는 속도였지만. 단순한 이동이었다면 병사들이 그렇게 겁을 먹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란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러다가 모든 게 한꺼번에 이해되어 버렸다.

행렬 한가운데 대장기를 펄럭이는 마차가 나타났다. 바로 주둔군 사령관 니키타 이바노비치 장군이 탄 마차였다.


- ‘저럴 수가! 저게 일군의 장수가 탄 마차라고?’


가란자로서는 지휘관이 말을 타고 선두에 서지 않고, 마차에 올라 안전한 후방에 있다는 것만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바노비치의 마차는 아까 본 은색의 괴물 전차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누군가 마그니토 주둔군 사령관이 적장에게 시집가는 중이라고 말한다면 가란자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 ‘장수가 저 모양이니 병사들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표정을 짓는 게지. 저 장수는 정말로 이 아까운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겠는걸?’


그는 어느새 지하드의 존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 ‘좋아. 이 병사들 틈에 섞여서 밖으로 나가자.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거야.’


가란자는 슬그머니 행렬 근처로 다가가 기회를 엿봤다. 병사들은 과연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파수병의 눈을 속이는 게 문제였다. 병사들의 화려한 군복과 가란자의 초라한 행색은 차이가 너무 컸다. 마그니토 요새에서 오렌부르크 성으로 진군하는데 따로 군량을 챙겨갈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성을 나가는 인원은 전원 전투병이었다. 끼어들 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멀어져 가는 병사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때 누군가 말을 타고 그의 뒤로 다가왔다.


"뭐 하는 놈이냐?"


가란자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어라? 재미있는 눈을 하고 있구나. 생긴 걸 보니 몽골에서 온 놈이렷다?"


가란자는 그제서야 안대를 다시 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당황해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말 위의 사내와 그 뒤로 지나가고 있는 기마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놀라움이 더욱 커졌다. 행렬 끝의 이 기마병들은 이미 지나쳐 간 병사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공포는 고사하고 전의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여유만만한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대장이 웬 꼬마와 노닥거리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쳐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열은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가란자는 이런 군대가 가장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냐, 네놈이 통성명의 예의를 논하는구나. 좋다. 내가 먼저 소개하지. 나는 마그니토 영주 친위대장 테오도르 아르강이다. 그대의 고명을 들려달라."


마침 옆을 지나던 친위대 몇 명이 낄낄대며 웃었다. 가란자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는 우나라 사신을 수행한 안내인입니다."


아르강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이름을 물었다. ‘안내인’이 이름은 아닐 테지?"


의외였다. 자신의 미천한 신분을 듣고도 이름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눈앞의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까지 일었다.


"가란자라고 합니다."

"가란자. 눈빛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마그니토 주둔군의 위용에 감탄하느라 넋을 놓고 감히 방해가 되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네놈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가란자는 흠칫 놀랐지만 아르강이 절대 자신의 진의를 알아챌 수는 없다 여기고 능청을 부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네놈이 보고 있던 병사들에게 ‘위용’이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하더냐? 바짝 붙어 서서, 마치 양을 치는 목동처럼 측은하게 바라보더니만. 거짓말을 하려거든 상대를 봐 가면서 좀 그럴듯하게 해라, 녀석아."


아르강은 말을 마치며 기분 좋게 웃었다. 가란자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아르강이 돌아서 있던 자기 표정까지 볼 수는 없었다는 데 생각이 미쳐 능청을 떨었다.


"측은하게 바라보다니, 당치 않습니다. 측은하다면 오히려 저 자신이 그렇겠지요. 황량한 몽고고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넓은 세상을 더 많이 구경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처지가 한스러울 뿐입니다."


아르강은 웬 소년이 대군의 행군에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말을 붙였던 참이었다. 과연 평범한 소년은 아니었다. 마그니토 친위대장의 이름을 듣고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 아르강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지나가던 친위대원 하나를 붙잡고 말했다.


"어이, 드미트리. 며칠 전에 득남했다지? 이 녀석에게 말을 주고 돌아가서 아들놈 기저귀나 갈아줘라."


드미트리는 8천에 달하는 부하의 사생활까지 하나하나 챙겨주는 대장의 세심함에 감격하여 목숨을 걸고 옆에서 수행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아르강은 끝내 그를 말에서 내리게 했다. 그는 가란자에게 고삐를 건네고 칼과 창까지 쥐여주며 자기 대신 대장님을 지켜드려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은 다음 자리를 떠났다. 가란자는 창과 고삐를 쥔 채 어안이 벙벙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르강이 그에게 말했다.


"그다지 좋은 경치는 아니지만 그 멋진 눈에 가득 담아 두어라."


가란자는 진심으로 감격하여 엎드려 절을 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아르강이 몇 번이나 그만 일어나라고 말해도 가란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 그렇다면 그 눈을 내게 잠시 빌려다오."


가란자가 비로서 고개를 들었다.


"말씀만 하십시오. 이 눈은 불길한 만큼이나 멀리 본답니다."

"불길하다고? 길흉은 징조가 아니라 결과다. 네가 하기에 따라 오늘 내게 네 눈은 행운이 될 것이다."


아르강은 몽골족의 뛰어난 시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안내인으로 선발된 소년이니 이미 검증도 된 셈이었다. 스스로도 시력을 자부하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어쩌면 뜻밖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분명 가란자의 눈은 아르강에게 행운이 될 터였다.

한편 가란자는 아르강이 자신의 눈을 편견 없이 바라볼 뿐 아니라 그 가치를 인정해주기까지 하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마음속으로 아르강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르강이 다시 채근하자 가란자도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서둘러 말에 올랐다. 둘은 속도를 내 한참 지나쳐 버린 친위대의 선두로 복귀했다. 아르강은 가란자를 자기와 나란히 서게 했지만 가란자는 상하를 구분하여 그보다 말 몸통 반 개만큼 뒤에서 더 나서지 않았다. 아르강과 친위대원들의 눈에 그 모습이 밉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가란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장님. 제가 무엇을 보면 되겠습니까?"

"넓은 세상을 그 눈에 담으라지 않았느냐?"


아르강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행운을 가져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르강이 미소 지었다.


"공은 다툰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뒤따르던 친위대원들도 낄낄대며 한 마디씩 농을 던졌다.


"그래, 꼬마야. 이번에는 나한테 양보해. 적장의 목은 내가 벨 테니까."

"이봐, 그러지 말고 자네가 양보하라고. 스키피오쯤이야 꼬마한테 맡겨도 충분하잖아?"


등 뒤에서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가란자는 친위대의 무례함에 약이 올랐다. 그는 등 뒤의 친위대원들을 무시하고 아르강에게만 이야기했지만 목소리는 모두에게 들리도록 컸다.


"몽골에서는 사냥을 하기 전에 먼저 사냥감을 찾습니다. 축사 문을 열어놓고 사냥감이 제 발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사냥꾼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날카로운 화살촉을 벗삼아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어야 하지요. 결코 공을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어려 힘이 부족한 만큼 뚜렷한 목표를 갖고 남들보다 갑절을 노력해야지, 저보다 못한 자를 빈정대며 낭비할 시간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가란자는 욱하는 마음에 너무 세게 나갔나 싶어 속으로 뜨끔했다. 그가 친위대와 상하관계로 맺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손님도 아니었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가란자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친위대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환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 녀석 참 물건일세!"

"그래. 우리가 잘못했다. 너는 이미 한 사람 몫의 전사다, 꼬마야."

"꼬마라니! 그게 전사에게 할 소린가?"


친위대원들이 한 사람씩 이름을 대며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가란자도 머쓱해 머리를 긁으며 무례를 사과하고 자신을 소개했다. 껄껄 웃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르강은 통성명이 끝나자 손짓을 해 가란자를 불렀다. 가란자가 말을 몰아 아르강에게 바짝 다가섰다. 아르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쪽 숲 속을 잘 살펴봐라. 누가 들어간 흔적이 있는지."


가란자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숲 속에 숨어 있는 누군가를 찾으시는 겁니까?"


아르강은 가란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뭔가 본 게로구나."


가란자는 입을 열지 못했다. 상대가 아무리 아르강이라고 해도 그 여인들을 양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 순간 이미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가란자도 곧 깨달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아까 열린 성문 틈으로 숲 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숨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두 명이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나는 포기해야겠지만 다른 하나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과연. 그래서 성에서 나오려고 했던 거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화란 공주는 소문대로 천하일색인 모양이군."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아르강이 돌연 큰 소리로 웃었다. 가란자는 그 웃음소리보다 화란 공주라는 이름 때문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견문이 좁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일국의 공주라면 자기와는 신분 차이가 너무 컸다. 그러나 이내 숲 속에 여인이 두 명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머지 한 명은 공주의 시녀일 것이다. 공을 세운다면 상으로 그 여자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아르강이 물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겠느냐?"


"예."


"혼자 가서 찾을 수 있겠느냐?"


가란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입니다."


아르강이 붉은 연기를 내는 막대 하나를 건넸다.


"아무래도 네가 나의 행운이 맞는 것 같구나. 가서 찾는 즉시 이걸 태워라."


가란자는 힘차게 대답하고 말을 돌려 왔던 길을 전속력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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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3) 14.05.02 433 5 16쪽
7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2) +2 14.05.02 448 4 25쪽
7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1) 14.05.02 434 4 20쪽
71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0) 14.05.02 336 5 27쪽
70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9) 14.05.01 453 4 26쪽
69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8) 14.05.01 421 5 35쪽
68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7) 14.05.01 428 4 13쪽
67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6) 14.05.01 405 6 25쪽
66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5) 14.05.01 417 4 13쪽
65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4) 14.05.01 484 8 14쪽
64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3) 14.05.01 464 6 24쪽
63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2) 14.05.01 447 5 13쪽
62 [3권-괴물의 심연] 2. 괴물의 심연 (1) 14.05.01 610 7 20쪽
61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6) +2 14.05.01 506 4 20쪽
60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5) 14.05.01 463 8 24쪽
59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4) 14.05.01 503 5 14쪽
58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3) 14.05.01 372 5 17쪽
57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2) 14.05.01 434 4 15쪽
56 [3권-괴물의 심연] 1. 심연의 괴물 (1) 14.05.01 434 7 11쪽
55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7) 14.05.01 343 6 25쪽
54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6) 14.05.01 264 6 19쪽
53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5) 14.05.01 450 7 18쪽
52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4) 14.04.30 363 6 17쪽
51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3) 14.04.30 461 4 18쪽
50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2) 14.04.30 307 6 18쪽
49 [2권-희대의 사기극] 5. 희대의 사기극 (1) 14.04.30 665 3 17쪽
48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6) 14.04.30 332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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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2) 14.04.30 263 7 12쪽
43 [2권-희대의 사기극] 4. 환상의 조합 (1) 14.04.30 472 7 24쪽
42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2) 14.04.30 394 8 14쪽
41 [2권-희대의 사기극] 3. 신의 검 (1) 14.04.30 246 6 11쪽
40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5) 14.04.30 422 5 24쪽
39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4) 14.04.30 366 6 14쪽
38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3) 14.04.30 307 6 16쪽
37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2) 14.04.30 320 6 23쪽
36 [2권-희대의 사기극] 2. 노예들 (1) 14.04.30 305 4 21쪽
35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4) 14.04.30 356 6 7쪽
34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3) 14.04.30 341 4 14쪽
33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2) 14.04.30 455 5 21쪽
32 [2권-희대의 사기극] 1. 노예문서 (1) 14.04.30 469 7 13쪽
31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2) 14.04.30 432 5 15쪽
30 [1권-안강의 난] 5. 산 물고기 (1) 14.04.30 307 9 21쪽
29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9) 14.04.30 467 7 14쪽
28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8) 14.04.30 341 7 24쪽
27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7) 14.04.30 418 7 12쪽
26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6) 14.04.30 309 6 11쪽
25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5) 14.04.30 407 6 15쪽
24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4) 14.04.30 448 6 11쪽
23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3) 14.04.30 374 5 16쪽
22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2) 14.04.29 402 7 15쪽
21 [1권-안강의 난] 4. 사신과 귀신 (1) +1 14.04.29 538 7 20쪽
20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4) 14.04.29 570 4 18쪽
19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3) 14.04.29 550 6 22쪽
18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2) 14.04.29 406 9 15쪽
17 [1권-안강의 난] 3. 죽은 물고기 (1) 14.04.29 535 8 13쪽
16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7) 14.04.29 370 9 16쪽
15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6) 14.04.29 513 7 14쪽
14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5) 14.04.29 346 6 25쪽
»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4) 14.04.29 516 8 18쪽
12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3) 14.04.29 559 9 17쪽
11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2) 14.04.29 569 12 10쪽
10 [1권-안강의 난] 2. 대륙의 흉성(凶星) (1) +2 14.04.29 690 12 10쪽
9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9) 14.04.29 495 11 8쪽
8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8) 14.04.29 606 13 9쪽
7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7) 14.04.29 653 13 9쪽
6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6) +2 14.04.29 547 13 8쪽
5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5) 14.04.29 682 11 8쪽
4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4) 14.04.29 598 11 8쪽
3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3) 14.04.29 849 14 10쪽
2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2) 14.04.29 1,246 14 8쪽
1 [1권-안강의 난] 1. 요수 사냥꾼 (1) 14.04.29 2,223 2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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