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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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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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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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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DUMMY

지난 편에서 1759년 ~ 1761년의 프로이센은 모든 전선이 무너지며,



베를린에 모아놨던 재산까지 약탈 당한 최악의 상황.



러시아가 콜베르크까지 함락하며 이젠 유럽 7년 전쟁은 완전히 프로이센에게 패전이 기울어 졌습니다.



그러나 암담한 프로이센에게 찾아온 한 줄기 기적이 찾아옵니다.



과연 어떤 기적일지. 그리고 프로이센에게 생명의 동앗줄이 되어 줄 것인지.



1762년의 유럽 7년 전쟁이 시작됩니다.






1. 프로이센에 찾아온 마지막 희망

1.jpg

[ 좌 : 엘리자베타 여제 ]


[ 우 : 표트르 3세 ]





1762년 1월 5일. 러시아를 통치하고 있던 엘리자베타 여제.




그녀가 아주 결정적인 시기에 사망하고 만 것이었죠!!




다음 러시아 황제(차르)로 표토르 3세가 등극합니다.




표토르 3세는 엘리자베타 여제의 조카로... 쉽게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프리드리히 대왕 덕후였습니다.




후대 러시아 사람들 중에 가장 싫어하는 러시아 황제를 꼽으면, 그 중에 표트르 3세입니다.




왜냐하면 유럽 7년 전쟁 이후로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에서 얼마나 독일과 치열하게 싸웠습니까.




그리고 독일에게 이겼다곤 하지만, 여러 피해 같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상처 뿐인 승리 밖에 없었죠.




거의 러시아가 엄청나게 많은 희생을 감수해서 독일을 이겼으니, 국민들 입장에선 이기긴 했는데 영 찜찜한게 한 두개가 아니죠.




그러니까 러시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 지금의 독일을 만든 것이 프로이센! 저 프로이센이 독일이 되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



" 근데 그런 독일을 만든 것은 표트르 3세다!!! "




이런 러시아 사람들 생각 처럼.

2.JPG

지금 전황은 러시아가 항구도 얻고, 동프로이센도 점령하며 엄청나게 많은 전과와 승리를 따냈습니다.




그런데, 일국의 황제라는 사람이 이 모든 이익을 갖다 버리고, 단지 프리드리히 대왕을 흠모해서 다 버린다?!




머리속으로 생각해도 절대로 이해 할 수 도 없고, 생각도 못하는 일입니다.




이런 말도 안돼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표트르 3세는 이 모든 전과를 다 버리고....




심지어 유럽 7년 전쟁에서 빠진다고, 탈퇴 선언까지 합니다!!




여기까지 해도 믿기지가 않는데... 더 결정적인 선언을 합니다.




『 더 이상 프로이센을 압박하면, 러시아는 프로이센 편에서 참전하겠다! 』




이게 어떤 상황이냐면,




표트르 3세가 즉위 하자마자,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대사를 소환합니다.




그리고 바로 위의 대사로 통보하니, 당연히 두 대사가 격렬히 항의하겠죠?




그러자 표트르 3세는 대사들에게 【 동맹 파기서 】 뿌립니다!




『 나는 더 이상 너희들의 동맹이 아니다. 돌아가라. 』




그리고 포메라니아로 들어갔던 스웨덴.




스웨덴 대사도 같이 소환해서....




" 지금으로부터 1주일 시간을 주겠다. 당장 프로이센에서 떠나라. "




프로이센의 주요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웨덴에게 모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든 러시아.

3.jpg

모든 대사들에게 퇴짜를 놓은 표트르 3세는 다음 날에 곧바로 프로이센과 전격적으로 동맹을 맺습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죠?




제가 모든 책과 인터넷 등 기록을 찾아봤지만 이렇게 충격적이고 반전의 행보에 믿기지가 않습니다.




물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유럽 7년 전쟁으로 바뀔 때.




왕위 계승 전쟁에서는 프로이센 편이 프랑스였고, 적이었던 영국이 유럽 7년에서는 뒤바뀐 사례가 있긴 했지만.




이건 전쟁이 끝나고 서로간의 이해가 뒤바꿔서 생긴 과정에다가,




더군다나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것이 아니니 더욱 충격입니다.




제가 남에 황제라서 이런 말이 실례가 되지만..




어떻게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국가적 이익을 보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 즉흥적으로 국가 대소사를 바꿨는지;;




심지어 표트르 3세는 황실 근위대를 러시아 군대가 아니라, 프로이센 군대를 불러서 걔들을 근위대로 삼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이런게 단순히 공상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참 충격적입니다.




저 말고도 수 많은 인터넷 자료들과 서적들을 보면 표트르 3세에 대한 행동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비판이 많습니다.




러시아쪽 사이트를 찾아보면 우호적인 글은 거의 볼 수 가 없습니다.










2. 표트르 3세의 인물 고찰






제가 유럽 7년 전쟁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고 많이 고민도 했지만...




막판에 이런 고민을 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 표트르 3세는 본인의 감정에 치우쳐서 이런 결정을 했을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당시 기록에서도 이해할 수가 없고, 지금 기록에서도 이해 할 수가 없는 표트르 3세.




하지만 정말 본인의 팬 심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진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 저 같은 사람이 부정하거나 표트르 3세를 변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표트르 3세의 출신은 독일계입니다.




엘리자베타 여제의 출신도 독일계로서, 러시아 황제 대부분은 순수 러시아 혈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타 여제의 여동생의 아들(조카)이 표토르 3세입니다.




여동생의 남편은 독일 사람입니다.




심지어 표트르 3세의 출신은 독일인데, 자라났던 곳은 스웨덴이었습니다.

4.jpg

[ 좌 : 카를 프리드리히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


[ 우 : 독일 홀슈타인 영지 ]






왜 스웨덴이였나면, 표트르 3세의 아버지가 홀슈타인(독일)-고토르프 공작이었던 것이죠.




어떤 기록에 의하면 표트르 3세는 원래 스웨덴 왕위 계승자로 키워졌다고 합니다.




근데 예전에 언급했지만, 스웨덴의 왕비가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동생이었죠.




족보를 다 들쑤시면 너무 복잡한데;;;




아무튼 제가 표트르 3세의 다른 면모를 봤을 때....




표트르 3세의 대한 평이 개인적인 성향에 치중된 것이 많습니다.




이 사람의 성장 과정을 차근 차근 살펴 보면,




표트르 대제 이후로 러시아의 큰 과제는 서구화(근대화/서방화) 입니다.




그럼 러시아가 생각하기에...




" 서구화의 모델을 누구로 잡을 것인가? "




아직 개발이 안된 후진국 경우에는 특히나 모델이 명확히 있어야 목표 지향적으로 제대로 갈 수 있죠.




그런 와중에 표트르 3세는 개인적으론, 프리드리히 대왕을 흠모하는 동시에, 프로이센 모델도 좋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더 멋있어 보였을 수 도 있죠.




저 같이 유럽과 머나먼 동양 사람이 봐도.... 너무 멋있습니다.

5.JPG

저 작은 나라에서 작은 병력 가지고, 수 십 배의 덩치가 큰 나라 3개와 그외에 여러 국가들을 방어만 하는게 아니라




두드려 패며 이렇게 까지 열심히 잘 싸웠죠.




그럼 표트르 3세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 우리가 프로이센 같은 나라가 될려면, 프로이센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러시아도 강해진다! "




이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일국의 황제로서도 당연한 생각입니다.




뭐 이런 생각을 했다지만.... 어째든 현실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공감하기 힘든 판단과 행동을 보여줬고...




결국 표트르 3세는 재위 6개월 만에 본인 아내, 예카테리나 2세에게 폐위 당합니다... ㅎㅎ;;




러시아 왕위 계승이 참 오묘하네요.




정식적으로 왕위 계승한 표트르 3세는 엘리자베타의 조카니까 계승 한 건데.




근데 왕위 혈통에 전혀 관계가 없는 부인이 한다는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데...

6.jpg

[ 예카테리나 2세. ]





사실 예카테리나 2세도 정말 유명한 사람입니다.




특히 그녀는 러시아 귀족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봤을 때는 표트르 3세가 독일을 모델로 러시아를 근대화 하려고 했지만,




러시아 귀족들의 강한 반발이 생겼고, 결국 예카테리나 2세가 폐위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시나리오로 생각해봅니다.




그리하여 표트르 3세는 폐위되고 열흘 동안 감금 당하다가 죽습니다.




일설에는 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진짜인지 아닌지는 그들만이 알겠죠.




아무튼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근대화에 앞장섰던 대단한 여제입니다.




아마 표트르 3세와의 갈등은 근대화 노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였을 겁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잔뜩 미운털 박힌 표트르 3세에 대해서,




" 그는 사실 근대화 노선이 달라서 저런 행동들을 한거야~ "




라고 말하면, 누가 들어줄까요? 그냥 그 사람을 변호해주려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할게 당연하죠.




아무튼 표트르 3세에 대한 이야기와 제가 했던 얘기들을 종합 했을 때.




승리자의 관점에서 본 기록일 수도 있고,




실제로 표트르 3세. 이 분이 논리적이지 않고 우왕좌왕해서 스스로 욕 먹을 짓도 해서.




하여간 세련된 능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고, 어째든 그의 지향점은 프로이센 모델을 추구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근데 표트르 3세에 대한 저의 의견을 러시아 사람들한테 들려주면,




아마 남의 사람이 뭘 아냐고 하면서 엄청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ㅎㅎ..;;;




글을 쓰다가 추가로 얻은 정보에 의하면,




표트르 3세의 유년기 시절에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이때 프리드리히 대왕이 받아줘서




12살까지 베를린에 살아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아마 이런 부분까지 있어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덕후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아무튼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3. 유럽 7년 전쟁 종결

3.jpg

표트르 3세의 즉위하자 유럽 전황은 순식간에 뒤바꼈습니다.




러시아가 프로이센을 비호하자, 프로이센에 대한 공세가 전면 중지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 입장에선 재정비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을 얻어냈고.




진짜로 러시아가 프로이센에게 지원을 해줍니다.




독일쪽 역사에서는 《 브란덴부르크의 기적 》 이라고 하네요.




아무튼 1762년에 러시아의 지원과 재정비하는 시간을 얻어낸 프로이센.




드디어 기운을 차린 프로이센이 먼저 공세를 취합니다!

7.jpg

그리고 이것이 유럽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 프라베르크가 벌어집니다.




이때 전투 규모를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 == 오스트리아 병력 == §



- 병력 : 31,000 명



§================§






§ == 프로이센 병력 == §



- 병력 : 22,000 명



§================§





마지막 전투라서 아마 양측이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거의 소진되고 그나마 짜내서 싸운 병력이 아닐까 싶은데...




결국 마지막 전투, 프라이베르크 전투는 프로이센이 승리합니다.




하지만 이겼다고 해도, 예전의 강성한 프로이센은 아니였습니다.




또한 유럽 7년 전쟁 말기에는 프로이센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등 모든 나라가 지쳐 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죠.




『 슐레지엔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




바로 여전히 프로이센은 이것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4. 7년 전쟁이 끝난 뒤의 유럽






세상 만사에 전쟁 마지막 특징이 뭐냐면, 각 국에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다는 겁니다.




프랑스는 해외 식민지에서 영국에게 밀려나고 있었고, 결국 이것 때문에 평화 협상을 타진합니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자연스럽게 유럽 7년 전쟁에서 빠집니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때 아닌 커다란 재정 손실로 인해, 더 이상 전쟁 불가 상태에 빠집니다.




이런 각 국의 종합적인 문제가 연이어 터지는데....




사실 역사를 아시는 분이라면 다 아셔서, 여러 사이트의 7년 전쟁에 대한 질문의 답변이나 댓글에 보면.....




" 사실 프로이센 저때 더 밀었으면 망했는데, 표트르 3세 때문에 살았어~ "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8.jpg

근데 유럽 7년 전쟁은 한 두 나라가 엉킨 것이 아니었고,




역사는 우연적인 사건으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트르 3세의 행동 등은 이미 모두가 탈진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표트르 3세가 폐위되자, 러시아가 다시 참전했는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한 동안 유럽 전쟁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 안에서는 상당한 고민이 많았다는 거죠.




러시아에서 7년 전쟁에 대해 사상자 집계를 최소한으로 잡아도 10 만명입니다.




프로이센의 경우에는 전쟁 끝나고 계산을 해보니, 자국 인구 10%가 사라졌습니다.




특히 젊은 계층 남성들이 증발된 것은 엄청난 큰 타격이죠.




그리고 프로이센 금고도 탈탈 털렸는데, 금고만 털리면 다행이지....




전쟁하느라 빚도 왕창 많이 썼습니다.




이러니 전쟁이 끝나고 빚을 갚아야 하는데, 남아나는 재화가 없어서 갚을 능력이 안됩니다.




오스트리의 경우에도 많이 죽으면 많이 죽었지, 프로이센 보다 조금 죽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희생을 치룹니다.




사실 까놓고 말해 이미 1~2년 전에 전쟁은 끝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끝나는데 『 어떻게 끝내는가? 』 하는 직전에서 프로이센의 역전극이 나온 것이죠.




아마 표트르 3세가 프로이센 편을 들지 않았어도....




제가 생각했을 때, 프로이센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미래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게 제 의견입니다.




다만 오스트리아가 슐레지엔을 되찾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표트르 3세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전쟁을 사실상 끝내놔서, 이렇게 쫑이 났습니다.









5. 유럽 7년 전쟁. 도대체 누굴 위한 전쟁인가?

10.jpg

1763년 2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 후베르투스부르크 』 조약을 체결합니다.




조약의 내용이 뭐냐면...




『 7년 전쟁 발발 전으로 돌아간다. 』




조약 내용을 들어보면 상당히 한숨과 허탈감이 물씬 풍겨옵니다.




도대체 7년 전쟁은 누굴 위한 전쟁이었을까요?




결국 저놈에 슐레지엔 때문에 벌어진 커다란 전쟁.




7년 전쟁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까지 바라봤을 때.




유럽은 재정 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




결국 그 어떤 결실도 없이 마치 30년 전쟁 처럼 세상 허망히 그냥 하늘에 붕 떠버립니다.




게다가 이런 피비릿내 내는 끔찍한 전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뒤에 폴란드-리투아니아 분할을 두고 다시 한번 프로이센 VS 오스트리아가 재격돌합니다.




이때 전쟁에 대해서 속된 말로, 【 감자 전쟁 】 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왜 감자 전쟁이라고 했냐면,




병사들이 감자 먹으면서 서로 눈치만 보며 서로 담소를 나누고 담배 같은거 같이 피우면서,




눈치 싸움 한다고 해서 붙혀졌습니다.




그만큼 병사들은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는 것이죠.

11.JPG

유럽 7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을 영원히 되찾지 못해서 원통하겠지만....




누구 말로는, 왕위 계승 전쟁 + 7년 전쟁에서 쓸 돈을 보헤미아 등으로 다른 곳에 투자해서 개발했다면...




슐레지엔 수준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지 않았을까 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드디어 유럽 7년 전쟁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유럽 역사는 계속 흘러갑니다.



과연 7년 전쟁 이후의 유럽 상황. 그리고 7년 전쟁에서 소비했던 각 국의 전쟁 비용등.



종합적인 상황으로 에필로그 편에서 언급하면서.



이제 유럽 7년 전쟁은 다음편을 마지막으로 마치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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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유럽 7년 전쟁 에필로그(完) 21.07.21 43 1 20쪽
» 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21.07.20 26 2 15쪽
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5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5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3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21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6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9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4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6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6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1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3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30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2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7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5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7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9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9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4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3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6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4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9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6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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