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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최근연재일 :
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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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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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DUMMY





1. 플랑드르 전선을 평정한 프랑스







1.jpg

[ 플랑드르 및 네덜란드 진출에 성공한 프랑스. ]





퐁트누아 전투를 통해 플랑드르로 들어갈 입구였던 투르네 일대를 장악한 프랑스 군.




모리스 백작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매우 과감한 진격을 시도하여, 오스트리아령 플랑드르 지역을 넘어서,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지역까지 석권하게 됩니다.




이제 프랑스 북쪽 전선에서는 더 이상 프랑스 군을 막을 전력이 전무해진 상태.




더군다나 국본 군의 주력은 영국 군이었는데,




프랑스의 사보타주였던 재커바이트 혁명 때문에 퐁트누아 전투 이후의 병력 충원을 사실상 포기하고 내전 수습에 돌입합니다.




이제 영국은 포기, 네덜란드는 프랑스에게 점령되면서, 국본 군은 사실상 거의 해체된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이 됩니다.




다만 영국이 육군에선 고전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바다에서는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며 항구를 약탈 및 포격하며 계속 괴롭히곤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한 마디 더 하자면, 퐁트누아 전투에서 아일랜드 연대가 프랑스 소속에 있었죠?




근데 아일랜드는 영국 세력인데, 왜 아일랜드 연대가 영국과 철천치 원수이자 적, 프랑스 편에 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리머릭 조약 때문 입니다.



* 리머릭 조약


- 1691년 아일랜드와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이 맺은 협정 조약.

- 영국에 충성하지 않는 세력은 국외 추방한다는 내용.




저때 추방된 아일랜드인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 아일랜드 연대.




그 연대가 프랑스 소속에 들어가서 퐁트누아 전투에서 등장한 것입니다.




이 부대는 유명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지금도 아일랜드-벨기에 우체국의 기념 우표 발행 때,




250년 기념으로 아일랜드 연대 우표가 발행된 적도 있으며,




먼 훗날 아일랜드 연대가 돌고 돌아서, 미국에 정착하고, 그들은 곧 남북 전쟁에 참가합니다.







3.jpg

[ 뉴욕 제 69 보병 연대 ]





남북 전쟁에서 미국에 그 유명하다는 뉴욕 69 보병 연대의 전신이 아일랜드 연대였죠,




그리고 뉴욕 69 보병 연대의 모토는 『 퐁트누아를 기억하라 Remember fontenoy 』




지난 편에 잠깐 지나치고 넘겼는데,




퐁트누아 전투에서 아일랜드 연대가 없었다면, 프랑스 군은 정말 큰일 날 뻔 했던 일이었습니다.




어째든 프랑스는 본인이 원했던 플랑드르를 먹으면서 당초 계획이 다소 엇갈리긴 했지만 목적 달성엔 성공합니다.






2. 끝나지 않는 앙금,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4.jpg



얘기가 돌고 돌았지만,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스타트는 프리드리히 2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였는데,




어느 순간 연재가 되고 나니, 프랑스와 영국도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 매김 됐습니다.




프랑스가 퐁트누아 전투에서 큰 승리를 보고 있을 때, 시선을 다시 과거로 넘어가, 프로이센에서 보겠습니다.




1744년 프로이센이 다시 보헤미아를 침공하는데,




이때가 바로 19편에 프리드리히 2세가 보헤미아 프라하를 쳤다가 작센이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퇴로가 끊겨 고난 길을 당했던 일이죠.




제가 지난 편에 퇴로 막힌 얘기를 많이 생략해서 조금 더 언급드리자면,




프리드리히 2세가 보헤미아로 입성 할 때, 2가지 실수를 저지릅니다.




첫번째로 처들어 갈 때, 오스트리아 군이 프로이센 군의 후미를 차단하는 것을 알았기에 쫒아가려고 했지만 놓칩니다.




왜 놓쳤냐면, 오스트리아 대표 기병은 경기병의 후사르입니다.




후사르가 유명한 이유를 전 편에서 설명했지만, 유목 기병 특성상 워낙 험한 곳도 마다하지 않고 습성이 있지만,




보통 기병은 그런 능력을 못 갖춰서 프로이센이 정찰에 실패합니다.


(프로이센도 후사르가 있긴 하지만 아주 적었습니다.)




두번째로 퇴로가 막혀서 부랴부랴 도망치자, 아주 끈끈하던 프로이센 군기가 와해되서, 병사들이 집단 탈영을 해버립니다.




그렇게 프로이센의 기습적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브레슬라우 협정을 파기.




1745년 6월, 카를 알렉산더가 오스트리아-작센 동맹군을 모두 포함해서,




약 58,000 ~ 60,000 명의 최대 군세를 이끌고 슐레지엔으로 진군합니다.








3. 슐레지엔 리턴 매치,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개전




프로이센의 병력이 큰 손실을 입은 다급한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2세는 번개 같이 머리를 굴려 난관을 해쳐나갈려고 합니다.




그의 특기중에 하나는 적이 어디로 올지 예상하는데, 거의 적중했습니다.







5.png

[ 슐레지엔 중부의 스트리가우 ]





그는 오스트리아 군이 리에젠제브리즈 산을 넘어, 슐레지엔 진입을 예상하여, 병력을 미리 매복시켜 놓자....




아니나 다를까, 프리드리히 2세가 예상한 길로 오스트리아 군이 슐레지엔으로 넘어 옵니다.




그리하여 스트리가우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의 호엔프리트베르크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4.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전초전





오스트리아 군이 압도적인 숫자로 강적 프로이센을 밀어 붙칠려고 하고,




프리드리히 2세는 적의 경로를 완벽하게 파악, 미리 진을 쳐서 여기까진 완벽해 보이는 작전으로 보입니다.






6.JPG



하지만 매복으로 은폐도 한계가 있는 법, 이제 한바탕 전투를 위해서는 이동이 불가피했기에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래도 프라하에서 퇴각 할 때에 탈영병 손실과 사기가 많이 꺾였지만, 많이 회복된 상태였으며,




프라하 퇴각에서 가장 문제점이었던 후사르가 부족했던 것을, 단숨에 많은 후사르를 양성 및 고용하여 꽤 많은 숫자를 보유합니다.




거기다가 오스트리아의 후사르 정찰 운용법을 배워, 오스트리아 군을 넘어오는 산길을 모두 파악까지 합니다.




몰비츠 전투부터 쭉 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많은 실수를 했지만, 다신 그 실수를 답습하지 않았으며 바로 만회하는 모습이 대단한 것 같네요.




아무튼 이제 호엔프리트베르크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과연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 군과 작센 군, 둘 중에 누굴 먼저 공격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작센 군을 치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왜냐하면 작센 군은 지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그렇게 두드러지는 활약도 없었고,




또 이 편, 저 편에 붙는 갈대 같아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차라리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면 자연스럽게 프로이센 편에 붙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원인은 같은데 결과가 다소 달랐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작센 군은 언제든지 편을 갈아타기에, 먼저 박살내 놓고.




남은 병력으로 오스트리아를 밀어버리겠다는 계획을 합니다.







5.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1막 : 대반전의 작센





§ == 오스트리아 병력(+작센) == §


- 약 58,000 ~ 60,000 명


- 대포 122 문


§================§




§ == 프로이센 병력 == §



- 약 58,000 명


- 대포 192 문



§================§







7.jpg

[ 프로이센의 공격 ]





프로이센 군은 스트리가우 강을 건너, 먼저 작센 군을 기습하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




원래 군대가 이동하면 숙영지를 정리하고 가는데,




아직 숙영하고 있는 것 처럼 위장해 놓기 위해, 정리도 안하고 몰래 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스트리가우 강의 다리가 너무 작았던 것이죠.




그래서 전체 부대가 도강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요되면서 기습 효과를 상실해버립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제 전투 준비를 해서 싸우면 제 아무리 강적 프로이센이라 해도 쉽게 밀릴 공산이 아니겠죠?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도 언제나 빗겨나가네요.




작센 군이 아주 개박살이 나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작센 군은 스무스하게 이 전투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8.png



작센 군이 정말 어처구니 없게 당하고 있을 무렵, 프로이센과 수 없이 부딪쳤던 오스트리아는 달랐습니다!




이 무렵에 오스트리아 군은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죠.







5-1.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1막 : 환장의 카를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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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리아 테레지아의 시동생, 카를 알렉산더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해야 할 게 있습니다.




카를 알렉산더가 전에 얘기했지만 산을 넘고, 부대 행군하는 것은 참 잘하는 양반이십니다.




사실 중간에 좀 생략했지만, 리에젠제브리즈 산을 아주 빨리 넘어왔습니다.




근데 이 양반이 그렇게 빨리 와서 적이 예상하는 것보다 빨리 도착해서 허를 찔렀는데....




대체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꼭 쉬는 습관이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작센 군이 공격 받고 있는데도 오스트리아는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때 카를 알렉산더는 " 어 작센 군이 공격 받네? 도와줘야겠군! " 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 어 작센 군이 공격 받네? 그래도 본인들 역할 하겠지 뭐~ " 라고 믿어 버렸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이 양반이 어리석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어떻게 공격해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죠.




예를 들어서, 프리드리히 2세가 이렇게 빨리 치고 들어 올 것이라곤 예상은 못했지만...







10.jpg



그래도 ' 쟤들이 좀 빨리 오네? 음.. 보니까 저쪽 언덕이랑 저기, 저쪽을 점령해서 막으면 밀어내겠군! '




이라고 다 머리속에 다 계산했는데, 그럼 빨리 확 점령해버려야 하는데...




" 저쪽 언덕은 오늘 저녁에 먹고 점령, 저기는 내일... 저쪽은 나중에... "




이런 식으로 당장 해야 할 걸 미루는 아주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총 정리하면, 이틀 걸리는 지역을 하루만에 왔는데, 남은 하루를 쉬고 행동하면 결국 똑같은 이틀을 쓴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카를 알렉산더 공작의 평가가, 당시 기준에서도 다른 것들은 괜찮은데....




『 너무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이며, 방어적이다. 』 라고 합니다.







6.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막 : 프로이센의 용이 나타나다!





프로이센에게 작살이난 작센 군.




이제 남은 전투는 오스트리아 군만 남은 상태.







11.jpg



오스트리아 군은 훈련한 대로 2열 보병으로 쭉 늘어트려서 아주 단단한 진영을 구축합니다.




이때 작센 군이 빠져서, 남은 병력은 40,000 이긴 했지만 결코 적은 수는 아니였죠.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프로이센 군이 오스트리아 군을 격멸시키기 위해 진격합니다.





비록 프로이센 군이 제아무리 훈련이 잘 되있다곤 하지만, 프라하 퇴각때 빠진 탈영병 여파와 더불어,




작센 군과 전투를 치르며 프로이센 군은 지쳐 있었습니다.




두 진영이 서로 대결을 벌이며 라인 배틀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루고 있었지만,




프로이센 군 쪽에서 힘이 점점 부쳐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결국 프로이센 군이 최대 한계치로 간신히 버텨낼 찰라!







12.jpg



프로이센 군 옆에서 Dragon(용)이 나타납니다!




....??




용이요?




역사 이야기에서 갑자기 판타지가 튀쳐 나와서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진짜 용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용은 한마디를 하며 브레스를 뿜습니다.




" 드라카리스! "





.........



.........





ㅎㅎ 잠깐 장난 쳤습니다 죄송합니다.

13.jpg



프로이센 군 보병이 힘겨운 그 순간에, 프리드리히 2세가 꽁꽁 감추어 두었던 제 5 드라군연대(*용기병)이 등장합니다.



*용기병


- 간단히 말을 타는 보병으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약 1,500 명의 용기병이 나타나서, 오스트리아 군 측면을 강력하게 공세를 펼칩니다.







6.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3막 : 프로이센만 가능한 전략







14.jpg



2막에서 보시면 오스트리아 군과 프로이센 군의 라인 배틀로 붙어서, 기병이 등장하는 것 같지만 조금 다릅니다.




아까 1막에서 프로이센이 작센을 먼저 쳤는데, 이게 단순히 작센 군과 라인 배틀로 밀어내서 전장을 이탈시키게 한 후,




오스트리아 군과 맞붙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런 식으로 했다면, 제가 위에 예상했던 것 처럼 먼저 오스트리아를 쳤어야 했죠.




근데 프리드리히 2세는 이상한 작전을 펼칩니다.




단지 작센을 몰아 내는 것이 아니라,




작센을 몰아낸 후, 오스트리아 짰던 대형 옆을 밀어 붙쳤던 것이죠.







15.JPG

[ 작센 군을 몰아 낸 후, 작센 군을 밀어낸 프로이센 군이 " / " 으로 포위 및 밀어 넣는 전략 ]





즉 프로이센은 작센 군과 한바탕 붙고, 다시 대형을 새로 짜서 라인을 만든 후 오스트리아를 밀어붙친 것이죠.




이것은 당시에 잘 쓰이지 않았고, 그리고 이때 군대가 잘 못하던 즉석에서 새로운 대형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지난 편에 테르시오 대형 얘기했지만, 종대( | )가 긴 밀집 대형이었죠.




하지만 이제 총병의 시대라, 종대로 길게 서면 뒷사람이 총을 못 쏘니까, 지금은 횡대(ㅡ)로 길고 얇게 대형이 바뀌었죠.




근데 횡대의 문제는 이걸 옆에서 때려버리면 줄이 단박에 무너지죠.




그래도 이걸 보완한다고 이것 저것 조치를 취하지만,




결국 전열 보병의 최대 약점은 측면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압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잡느냐? 이게 문제죠.







16.jpg



수 백미터나 되는 긴 횡대 보병을 뱀 꼬리 말듯이 순식간에 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기병이 측면을 찌르면, 그걸 대비해서 측면 대형 보병도 배치해서 방어해서, 기병이 오면 그쪽에 총을 쏴서 방어해서 안되게 합니다.




그러자 프리드리히 2세는 모두가 안되는 뱀 꼬리 말기 처럼, 보병을 꺾어서 좌측을 친 후,




적을 사선으로 밀어붙치는 전략을 합니다.





6-1.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3막 : 임무형 전술의 탄생





횡대 대형의 취약점 중에 또 하나는 쇄기 처럼 박는 돌파에 약합니다.




왜냐하면 종심이 얇기 때문에 금방 뚫려 버리죠.




그래서 과거에 기병들은 어떻게든 보병 측면을 노리기만 했습니다.




제가 용 얘기 하면서, 드라카리스 라고 했는데, 드라카리스가 뭐냐면...







17.JPG



용기병을 과감히 활용해 중앙 돌파를 시도합니다.




지금 전황을 얘기 할려면, 적시적소에 등장한 용기병 얘길 꺼내야 합니다.




사실 처음에 용기병 연대도 강을 건너려고 했습니다.




근데 못 건너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던 와중에, 프리드리히 2세가 용기병 연대장에게 얘기합니다.




" 지금 시간이 지체되니, 용기병 너희들가 알아서 도강해서 전투에 합류하라 "




그래서, 모든 용기병 연대원들을 이끌고, 강 수위가 낮은 곳을 발견해서, 도강을 끝낸 후 전장에 참전했더니




정말 때마침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병이 나타난 것이죠.




이게 한마디로 프리드리히 2세는 자기 연대장에게 일종에 재량권을 부여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 행동이 아주 전쟁의 승리를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18.jpg

[ 독일의 유구한 전통, 임무형 전술이 시작되다. ]





이 다음부터 프로이센(독일)의 전통, 『 임무형 전술(자율 권한을 부여하는 전술) 』 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가 말하기는, "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다. " 라고 얘기하지만




보통 횡대 대형의 약점이 측면이라고는 누구나 아니까 저걸 어떻게 노리지 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측면을 깰 지에 대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죠.




또한 횡대 대형은 돌파에 약한데...




실제로 돌파를 하면, 돌파하는 부분에선 빵꾸가 나긴 하지만, 옆에 사람들은 큰 피해가 없어서, 라인 전체를 보자면 타격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돌파만해서 선만 뚫고 지나간 것이라면 기병을 낭비했지만,




기병이 돌파에서 선을 잘라버리니, 적이 동요하는 틈을 타서, 프로이센 보병이 뱀 꼬리 마는 것 처럼 측면을 감싸 공격하니, 동요하는 적이 손 쉽게 박살내 버린 것이죠.







19.jpg



쉽게 말하면 모루와 망치의 전략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은 보병과 기병이 합을 맞춘 모루와 망치 전략을...




프로이센은 보병이 전부 모루와 망치로 이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것이죠.




더 쉽게 요약하면 빗자루와 쓰레받이로 적을 쓸어 담은 느낌이죠.







6-2.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3막 : 프로이센의 기병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 기병이 정말 만만치 않게 피해를 입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기병과 프로이센 기병이 서로 맞붙어서 싸웠는데,




만약 용기병 연대가 뒤늦게 나타나서 측면을 공격하려는데, 다른 오스트리아 기병이 막았다면?




아마 앞으로의 전황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오스트리아 기병대를 붙잡아 놓기 위해 프로이센 기병대가 정말 처절한 전투를 벌여 꽉 붙잡아 준 덕분에




측면 오스트리아 보병 중앙을 용기병이 뚫고 지날 수 있었고,




중앙을 뚫어준 덕분에, 이미 횡대 대형이 돌파에 약하다는 것을 아니까 후열에 2선 예비대도 배치했는데 용기병이 모두 다 뚫어버려서




예비대들도 모두 동요버리고, 프로이센 보병이 측면으로 대형을 바꿔 치니까 앞열 뒷열 모두 밀려나가게 만든 것이죠.




이때 용기병 중에 카라비니어라는 병과의 용기병을 제외하고는 마상 사격을 거의 하지 않고 내려서 쐈는데,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에서는 용기병들이 모두 마상 사격을 하며 돌파했고,




이 후부터는 용기병들도 점차 마상 사격을 하면서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7.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결과





§ == 오스트리아 병력 == §



- 전사 및 부상자 : 8,500 ~ 9,000 명


- 포로 : 5,000 명(4명 장군 포함)



§================§




§ == 프로이센 병력 == §



- 전사 및 부상자 : 4,500 ~ 5,000 명(대부분 기병)



§================§







15.JPG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보여준 아무도 하지 못한 보병이 대형을 스스로 바꿔 과감히 측면 공격을 한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당시 많은 각 국의 전술가들이 관망해서 지켜보며 상당히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글로만 보면 《 ㅡ 》 를 《 / 》 로 만드는게 어려울까? 하겠지만 군대나 학교에서 사람들을 열을 만드는게 어려운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그만큼 이것이 가능하도록, 예전부터 프로이센의 강인한 체력과 강력한 기동 훈련, 마지막으로 기병 돌파력까지.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에서 보여준 프로이센의 새로운 전략 패러다임은




훗날 7년 전쟁에서 완성된 프로이센의 유명한 『 사선 대형 』 에 시초였습니다.




이제부터 그야말로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가 시작되면서,




프리드리히 2세가 대단한 것이, 몰비츠, 프라하등 여러번 실수를 통해 발전을 하는 동시에




배운 것을 실전을 통해 사용하며 또 실수해서 다시 개량해서 배워서 실전에 다시 사용하면서, 결국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8. 전투에서 승리한 프로이센, 외교에서 승리한 오스트리아








20.jpg



비록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에선 승리를 했지만, 외교적 상황에선 오스트리아에게 유리했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부분 영지를 계승한 상태.




더군다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남편 프란츠 1세에게 넘겨줍니다.




그리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 합스부르크 영토 뿐만 아니라 내 남편이 황제가 됐다! "



" 더 이상 나를 거역하지 마라! "




라고 신성 로마 제국의 모든 선제후들을 압박시키고 이것에 성공, 작센 선제후국을 영원한 동맹에 끌어들입니다.




외교 상황이 이렇게 벌어지자,




프리드리히 2세는 전투에선 이겼지만, 국제적으로 모두가 동의를 한 상태이니 마리아 테레지아를 인정합니다만,




문제의 슐레지엔을 영유권이 프로이센 영토로 인정 받지 못했기에 불씨가 남겨진 상황.




마리아 테레지아도 결코 슐레지엔을 포기할 수 없었죠.




결국 언제든지 기회가 안되면 슐레지엔을 넣고 두 나라가 싸울 수 있음에 여지가 남겨지게 됩니다.








이번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설명을 잘 전달 됐을 련지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그림과 말로 조리있게 설명해보고자 했는데, 제 노력이 헛되질 않길 바랍니다.



제가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에서의 프로이센 전략을 자세히 언급 한 것은,



이후 유럽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전매특허 전술로써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이런 기본적 대형을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경되어 많은 변칙적인 전투를 벌여서 프로이센의 사선 대형을 깊게 고찰했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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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유럽 7년 전쟁 에필로그(完) 21.07.21 39 1 20쪽
53 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21.07.20 24 2 15쪽
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3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1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6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7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3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5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3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6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7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1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29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1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3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8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4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28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29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19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7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7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1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2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0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3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3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3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4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4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2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8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48 1 19쪽
»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1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29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7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29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6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4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69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5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4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2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0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3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7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7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2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3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1 0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4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2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6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2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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