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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최근연재일 :
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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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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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DUMMY



1. 다운 백작의 비상한 전략.






지난 편의 조른도르프 전투에서 승리하며, 다시 한번 프로이센을 지킨 프리드리히 대왕.




하지만 결국 프로이센에게는 상처 뿐인 승리였으며, 주변국은 이번 전투로 확실히 소모전의 위력을 느낍니다.







1.JPG



조른도르프 전투가 끝나고, 프로이센 군은 작센 쪽으로 철수.




작센으로 철수한 프로이센은 병력과 숙련된 병사들이 많이 잃었기에 보충 및 훈련이 필요했고,




지원하러 갔던 다운 백작은 러시아 군의 패주 소식에 멈칫 합니다.




그는 바우치엔 근처에 머물며, 향후 미래에 대한 전략을 생각합니다.




" 분명 작센에 있는 프로이센 군은 슐레지엔과 연결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



" 우리 군은 슐레지엔과의 연결 고리를 끊으면 된다! "




이런 전략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정말 상대방의 머리를 아파오게 만드는 탁월한 지략가입니다.




다운 백작은 슐레지엔과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 움직이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오스트리아 군에 행동에 대해 보고를 받습니다.




" 지금 우리 군이 만신창이라서 쉬어야 한다... "



"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슐레지엔과의 사이가 끊겨진다. "



" 이러면 프로이센은 고립되어 적에게 격파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 "



『 그런 고로. 차라리 내가 먼저 역습을 해야겠다! 』




결국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렇게 힘든 전투를 치루고서도, 또 다시 전투 결정을 하는데...




이때 다운 백작의 전략이 정말로 대단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운 백작의 원래 계획은 러시아 군과 합류하여 베를린 공격을 구상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제가 당시 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혹여 다운 백작의 일기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안 읽어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속마음을 이랬을 겁니다...




" 쟤네들이랑 정면 승부는 못이겨;; "




또한 다운의 원래 계획대로 러시아 군과 합류해서 연합 작전을 펼친다고 쳐도.




이래도 결국 정면 승부이기 때문에 피해가 많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합류 하기 전에, 이미 프로이센 군이 러시아 군과 교전하여 싸우게 됐으니...




차라리 러시아 군을 장기판에 미끼로 써서 최대한 프로이센 군을 옥죄는 미끼로 쓰는 구상으로 우회합니다.




이때 다운의 전략이 18세기 이후에 까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지금 판도를 보면, 동쪽에서 러시아 군이 압박하면?







2.JPG

[ 다운 백작이 취할 수 있는 2가지 전략. ]





다운 백작에게는 2가지 전략이 가능해집니다.




1. 작센으로 침공하여 슐레지엔과의 연결 고리를 끊기.



2. 베를린으로 침공.




이와 반대로 프로이센 군의 주력 군대는 하나 밖에 없으니, 한 놈에게 가면 다른 한 놈이 치고 들어오는 형세.




프로이센에게는 앞 날이 막막한 상황이었죠.




그리고 다운 백작은 이러한 전략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오스트리아의 목표는 【 슐레지엔 】.




다운 백작은 슐레지엔을 끊임 없이 괴롭히며 프로이센의 아픈 부위를 계속 콕콕 찌릅니다.




결국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을 사수하기 위해 거의 하루에 20마일(약 32km)을 강행군 합니다!




이렇게 군대를 혹사하니 당연히 병력 숫자가 제대로 남을 턱이 없었죠.




프리드리히 대왕의 주력군 병력이 약 30,000 명 밖에 안 남았고,




솔찍히 이때 쯤 되니, 병사들도 모두가 지칠 때로 지친 상황입니다.




이때 프로이센 병사들의 개인 기록을 살펴보면, 아주 소박(?) 했습니다.




" 제발 쉬면서, 편히 밥을 먹어보자! "




전투에서 살아남는다 이런 것이 아니라 쉬고 먹는 것을 간절히 바랬을 정도니...




얼마나 혹사 당했는지는 생각해보면, 잘 싸우기도 하고 멋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프로이센 군대에는 가고 싶지가 않네요.




아무튼 결국 8월 25일에 조른도르프 전투가 치룬 뒤에 얼마 되지 않아서,







3.JPG

[ 호크키르히 전투 위치 ]





10월 14일에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의 호크키르히 전투가 시작됩니다.









2. 호크키르히 전투 1막 : 소심한 다운 백작?






§ == 오스트리아 병력 == §



- 보병 : 50,000 명


- 기병 : 28,000 명


- 대포 : 340문



:: 총 병력 : 78,000 명 ::



§================§






§ == 프로이센 병력 == §



- 보병 : 20,000 명


- 기병 : 10,000 명


- 대포 : 200 문



:: 총 병력 : 약 30,000 명 ::



§================§







병력 비교를 보시면 오스트리아 군이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진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보여줍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다운 백작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합니다.




" 그는 지나치게 신중하니, 기습 작전은 하지 않을 것이다. "




라고 판단하여, 곧바로 병력들을 밀어 붙쳐 호크키르히 마을로 진격합니다.







4.JPG

[ S자 형태로 길게 배치한 프로이센 군. ]





이때 지도를 보시면, 마을 모양이 좀 독특합니다.




마치 뱀이 S 형태로 휘어진 마을 입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마을에 따라 길게 군을 배치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이러한 병력 배치에 프로이센 장교들은 불안했습니다.




" 이렇게 길게 병력을 늘리면, 어느 한쪽에 기습 당하면 큰일납니다! "




라고 만류하며 건의 합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 다운은 기습 안함! " 이라고 일관된 주장을 펼쳐 결국 길게 대형을 늘려 배치합니다.




물론 프리드리히 대왕도 단순히 " 성격이 저러니, 신경 쓰지마~ " 라고 해서 태평하게 있던 것은 아니고,




마을 지형 자체가 방어에 유리한 지역이었습니다.







5.JPG

[  위쪽 라인은 언덕 때문에 좁고. ]


[ 아래 라인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






사방에 언덕이 많았고, 마을로 진입하려면 언덕과 언덕 사이에 좁은 입구로 들어오는데 이러면, 병목 현상이 발생.




그러니 아무리 대군이라도 좁은 길로 병력을 밀어 넣으면 적에게 불리한 형세란 것이죠.




또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생각대로 다운 백작도 기습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휘하 장군이었던 라우돈 장군이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 지금 우린 공격을 해야 합니다! "



" 왜? 어차피 장기전으로 가면 유리한데 왜 굳이? "




이러면서 다운과 라우돈이 설전을 벌이는데...




이때 시기가 곧 마리아 테레지아의 생일 다가 올 때 였습니다.




그래서 라우돈 장군이 이 점을 들먹이며 꼬득입니다.




" 여왕의 생일 선물로 승전보를 가져다 줍시다! "




근데 기록을 볼 때마다 웃기는게, 대체 마리아 테레지아는 어떤 마성의 매력이 있길래,




오스트리아 장군들이 여왕을 위해 뭔가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호르키르히 전투에서 어떤 혹자는 이런 평을 내립니다.




《 왕의 생일 축하를 위해 전투를 벌인 것은 최초일 것이다. 》




어째든 다운도 이러한 점 때문에 결국 수락하게 되는데...




제가 여태까지 살펴본 다운 백작은 여왕을 위해 뭔가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것에 넘어가서 수락한 것은 좀 의아 합니다.




여기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첨언드리면....




다운 백작이 너무 소극적으로 행동하니, 부하들이 별 어거지를 다 쓴 것 같습니다.







6.jpg

[ 프란츠 모리츠 폰 레이시. ]


[ 로보지츠 전투에서 큰 활약했던 장군. ]





당시의 다운 백작 휘하 장군들을 살펴보면, 라우돈 장군 외에도 수석 참모로 【 레이시 】 장군이 있었습니다.




레이시 장군은 지난 로보지츠 전투에서 그렌져 부대로 큰 활약을 했던 전적이 있는 장군이죠.




그는 다운 백작 휘하 장군 중에, 강경파에 속했습니다.




레이시 장군은 적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을 통해 전쟁을 몸으로 습득한 장군이었습니다.




" 우리도 프로이센 식으로 싸웁시다! "




하며 자기 주장을 마구 밀어 붙칩니다.




그렇게 부하 장군들이 " 공격! 공격!! " 하자고 주장했지만...




" 공격은 절대 안돼!! "




라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자 레이시 장군이 다른 의견을 제시합니다.




" 그렇다면 기습은 어떻습니까? "




" 기습?! 공격 보다 더 말도 안돼! "




이렇게 설전이 오고 가다가, 결국 여왕의 생일을 명분까지 쓰게 되니, 다운 백작도 결국 항복한 것이죠.









3. 호르키르히 전투 2막 : 오스트리아의 작전








7.jpg



부하 장군들의 들끓는 열기에 결국 항복하여 기습을 결정하는 다운 백작.




하지만 다운 백작이 마지 못해 수락은 했지만, 너무나도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부하 장군들에게 조건을 붙습니다.




" 기습 공격을 하겠다. 하지만 내 명령대로 해라. "




정말 철저히 조심하면서 공격이 시작되죠.




오스트리아 군의 기습 공격의 처음은 【 프로이센 우측 】.




우측에는 숲이 있었는데, 레이시 장군에게 명령합니다.




" 매일 그랜져 부대로 히트&런 작전을 개시하라. "




그리하여 그랜져 부대는 매일 밤 마다 화약 터트리고 불 지르며,




잔뜩 시선을 끌게 하며 공격하러 오는 척 하다가, 갑자기 다시 뒤로 빠져서 흩어집니다.




이렇게 몇 일 동안 반복합니다.




두번째 작전은 【 세심한 프로이센 군의 정찰 】




세번째 작전은 그렌져로 공격하는 척하며 전투 할 것처럼 하는데,




원래 공격을 하면은 당연히 숙영지를 걷고 싸움에 임합니다.




하지만 이때 그렌져가 공격하러 오는 와중에도 오스트리아 군은 일부로 텐트를 안 걷고, 캠프파이어를 합니다.




그래서 일부로 사람이 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 기만 작전 】 을 펼칩니다.




이렇게 세가지 작전으로 준비를 하는데...




병력 숫자가 거의 2배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전을 펼치는 것을 보면




진짜 엄청 조심스럽게 했다는 것이 팍팍 느껴지네요;;;




어떤 사람은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 병력이 거의 3배 정도, 거기다가 프로이센 군은 엄청 지쳐있는데 굳이 이렇게 까지 하냐? "




라고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죠.




반대 의견에서는 지금 다운 백작은 선공 + 야간 작전을 펼칩니다.




특히 야간 작전에 대해 더 말씀드리면,




18세기의 야간 전투는 이후 19세기의 나폴레옹 시기 까지도 살펴보면....




야간 전투하는 하는 것이 아니였으며, 야간 기습은 교리에 없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많은 유럽의 장교들은 야간 전투 = 자살 행위 로 인식 할 만큼이었습니다.







8.jpg



특히 나폴레옹 시대의 군사평론가, 클라우제비츠도 제가 대충 의역해서 말씀 드리면,




《 야간 기습은 존재 하지 않는다. 》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습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 계획된 시간, 절제된 공격을 하는 3박자가 이루는게 기습입니다.




근데 밤에 전투를 하면 3가지의 개념이 붕괴되어 완전 난장판이 됩니다.




어두우니 아군이고 적이고 구분이 안되고, 저 목표가 내가 원하는 목표이고, 어디 쯤에서 빠져야 할 지...




모든 것이 모르는 상태가 되니까 애초에 기습이란 개념이 아니라,




『 밤에 싸우는 개판 싸움 』 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이렇게 판단해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흔히 사극이나 소설에서 보면 이런 류의 공격을 자주 합니다.




『 우리는 약하니까 낮에 공격을 못하니, 적이 방심하는 밤에 공격한다. 』




이건 완전히 순 거짓말입니다.




『 밤에 공격이 가능한 군대는 적보다 아주 능숙한 군대만이 가능하다. 』




이게 맞는 것이 아닐까요?




특히 오스트리아 군은 여지것 보았지만, 대낮에도 먼저 처들어 오지 않던 얘들인데...




근데 이런 얘들이 밤에 공격을 펼치니까 다운 백작이 얼마나 신중한 입장이었는지 살펴보면...




과연 소심하다는 개념으로 접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4. 호크키르히 전투 3막 : 방심과 신중함






기습 공격이 개시되는 새벽.




다운 백작은 모든 군대를 5개로 쪼개서, 프로이센 군을 포위합니다.




특히 프로이센의 최전방에는 제임스 키스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있었고, 완전히 포위해 버립니다.




이때 하늘이 다운 백작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인지....




밤에 별 빛이 한 점 없는 정말 칠흙같은 어두운 밤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다운 백작은 호크키르히 마을에서 울리는 종 소리에 맞춰 공격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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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센 우익을 시작으로 전면 공격을 개시하는 오스트리아 군. ]





공격을 하는 우익에는 최정예 부대를 전면 배치.




다운 백작 본인은 중앙과 좌익에 프로이센 군을 붙들어 놓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사전 작업이 완료되자, 이제 오스트리아 군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됩니다.




처음은 우측의 숲에서 교전이 시작됩니다.




숲에서 총 소리가 들리고 함성 소리가 들립니다.




근데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 소리를 듣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 쟤들 또 도발하는 구만 "




그는 단순히 그렌져의 국지적 도발로만 생각하고 안일 했습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의 생각과 달리...




우익 방면의 숲에는 프로이센 군 2개 대대가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렌져 부대의 반복되는 기습에 대한 사전 차단으로 따로 배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프로이센 2개 대대는 순식간에 그렌져 부대에게 궤멸!




본격적으로 칠흙 같은 어두운 숲에서 오스트리아 대군이 순식간에 물 밀 듯이 쏟아집니다!!




이렇게 상황이 순식간에 반전되었지만, 여전히 프리드리히 대왕은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을 무렵...




프로이센 참모들이 나타나,




" 공격 규모가 다릅니다. "



"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




라고 얘기하며 사태 인지가 제대로 안되고 있었을 때.... 최전방에서 보고가 올라 옵니다.




『 오스트리아 군의 전면적인 포위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




그리고 그 순간, 프리드리히 대왕이 머물던 막사까지 총알이 날라옵니다.




기록에 의하면, 《 프리드리히 대왕의 머리 위에 총알이 날라 갔다. 》 라고 언급 되는 것을 보면,




아주 가까이 오스트리아 군이 접근 했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프리드리히 대왕이 한 말이 정말 가관입니다.




『 병사들아 총을 집어라! 맞서 싸워! 누가 내 말 좀 찾아줘! 』




제대로 체면이 구겨진 것이었죠.




근데 변호를 하자면, 말을 찾아 달라는 것은 도망칠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휘를 하려고 찾아 달라고 한 소리이긴 합니다.








5. 호크키르히 전투 4막








9.jpg



30,000 명의 프로이센 군을 향해, 80,000 명의 오스트리아 군이 제대로 기습에 성공합니다.




이렇게 되자 전장은 완전히 오스트리아 군에게 넘어 갔고,




또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아직까지 제대로 상황 파악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익 최전방에 있던 제임스 키스 장군 부대는 거의 궤멸된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호크키르히 전투에서 가장 격렬히 싸웠던 장소가, 호크키르히 마을의 교회입니다.




제임스 키스 장군이 직접 말을 타고 다니며, 프로이센 군의 패전병을 모아서,




방진을 구성하여 돌격 시킵니다.




이렇게 악전고투하며 싸우고 있었는데....







10.jpg

[ 프로이센의 별이 지다. ]




누군가가 쏜 총알에 제임스 키스 장군의 심장을 관통하며 전사하고 맙니다!




그리고 키스 장군이 죽었다는 소식이 프리드리히 대왕이 알게 됩니다.




이때 당시의 일에 대해 프리드리히 대왕이 쓴 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키스 장군이 죽었을 때, 이 전투는 졌다고 생각했다. 』




이때 프리드리히 대왕의 상황을 좀 더 추가로 얘기 드리면...




머리 위로 총알이 날라오면서 적이 먼저 공격했구나! 라고 인지 합니다.




하지만 설마 모든 오스트리아 군이 투입될 정도의 대규모 공격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이 시기에 제임스 키스 장군은 이런 말을 합니다.




" 분명 이곳으로 적의 대규모 병력이 온다! "



" 만약 이쪽으로 오지 않으면, 오스트리아 장군들을 목 매달아야 한다! "




이렇게 말하면서, 키스 장군은 " 이곳이 승부처! " 라고 생각하며,




도망치는 병사들을 모아서, 패잔병으로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한 것이죠.




근데 일각에서는 키스 장군의 분투 때문에 이번 전투의 희생이 더 컸다는 말도 있다고 하네요.




아무튼 키스 장군은 정말 용감히 싸우셨는데,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후반부(1747년)부터 참전했던 제임스 키스 장군.




프리드리히 대왕이 가장 신임하는 몇 안되는 유능한 인재가 이렇게 떠나게 됩니다.








6. 호르키르히 전투 5막 : 쓰러지는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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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크키르히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는 프로이센 군. ]





호르키르히 마을 교회에서 격렬히 싸우며 프로이센을 밀어 붙치며,




결국 마을에 배치되어 있던 프로이센 포대마저 오스트리아 군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키스 장군은 이 포대를 어떻게든 사수하기 위해 빼고 뺏기는 처절한 전투 와중에, 또 한번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 근래에 자주 등장하신 안할트-데사우의 모리츠 왕자가 3개 연대를 이끌고 도착합니다!




이게 도착했다는 것이 말은 쉬운데, 이때가 어두운 밤이었고, 사방에서 오스트리아 군이 처들어 오니 정신이 없죠.




키스 장군은 애초에 우익에 있었으니 상황 판단이 그나마 쉬웠지만,







12.jpg



모리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 저 곳이 승부처야! 저기로 가야 해! "




라고 스스로 판단해서 찾아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리츠 왕자의 활약으로 3개 연대가 보충되자, 오스트리아 군을 밀어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신중에 신중함을 기했던 다운 백작.




당연히 다운 백작은 이럴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그는 우익에 예비대를 배치해놨고,




간신히 마을에서 몰아낸지 5분도 채 안되서, 우익 보병 예비대가 다시 물 밀 듯이 쏟아집니다!




마을에서 2번째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고, 여기서 모리츠 왕자도 큰 부상을 입게 되고....




더욱 최악인 것은 모리츠 왕자가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우익 방면에 2명의 장군이 없어지자 사실상 전투 불능 상태가 되고 말죠.




또한 이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이 그저 기습으로 프로이센 군을 공격한 것 외에도.







13.jpg

[ 남쪽 고지대에 포대를 준비한 다운 백작. ]


[ 그의 철저한 준비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우익 남쪽에 고지대가 있었습니다.




이곳 고지대에 오스트리아 포병이 배치했는데...




프로이센 군은 당시 휴식을 한다고 전혀 고지대 방면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특히 제가 오스트리아 군사 개혁중에, 포병을 중심적으로 키웠다고 얘기 드렸습니다.




고지대에서 포격이 날라오는데, 아마 여태까지의 전투 중에서 가장 정확한 포격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거리가 가깝기도 했으니 프로이센 병력을 아주 정밀한 포격으로 큰 피해를 줄 수 있었죠.









7. 호크키르히 전투 6막






프로이센 군이 계속 밀려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센 군의 강점, 【 끝까지 싸운다! 】 가 이번에도 발휘됩니다.




도망가는 병사도 있지만, 중간 중간에 싸울 병사들은 계속 싸웁니다.




훌륭한 군대라는게, 군이 무너져도 패잔병들끼리 알아서 모여서 위치를 사수한다든지.




아니면 반격을 여러번 시도 하며 격렬한 저항을 합니다.




하지만 다운 백작도 당연히 이 점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다운 백작은 대포를 전면 배치하여, 계속 버티는 프로이센 군을 향해 끊임 없이 포격하여 깔끔히 와해 시켰죠.




한편 오스트리아 기병대도 후방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프리드리히 대왕을 생포하기 위해 돌격을 하죠!







14.JPG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이 가장 신임하는 몇 안되는 장군.... 자이들리츠!




타이밍을 아는 자이들리츠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달려오는 오스트리아 기병대를 격파시킵니다.




오스트리아 기병대를 무너트리자, 그는 전선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이 만류합니다.




" 나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 "




왜냐하면 자이들리츠까지 나갔다가 죽게 되면, 프리드리히 대왕은 팔 다리가 다 잃은 듯한 낭패를 보게 되는 것었죠.




이걸 보면 프리드리히 대왕이 아주 쫄았나 싶지만...




자고로 사람이라는게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는 법이죠.




전체적 일을 다 수행하려면 부하들이 그때 그때 처리해줘야 하는데,




누누히 얘기하지만, 똑똑한 부하의 덕을 보는 것도 리더의 능력입니다.




이 전투에서 키스 장군이 전사, 모리츠 왕자는 포로.




그리고 제가 언급을 안 했던 인물, 랑겐 대령이 있습니다.




랑겐 대령은 키스 장군이 죽자, 그의 역활을 대신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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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이 죽어도, 결코 붕괴되지 않은 프로이센의 저력. ]





그는 마을 방벽 너머로 오는 오스트리아 부대를 향해 사격하며 버티게 하면서,




전선이 마치 파도 처럼 쓸려나가는 것을 막아 준 큰 활약을 했던 장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탄약은 떨어지고, 랑겐 대령도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죠.




아무튼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프리드리히 대왕이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









8. 호크키르히 전투 7막 : 엇갈리는 다운의 평가






마을에서 시가전을 벌어지고,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




프리드리히 대왕은 최대한 병사들을 끌어 모읍니다,




그리고는 마을 한 구석에서 최대의 방어전을 준비하죠.




프리드리히 대왕이 직접 분투하며 싸웠지만, 역시나 병력의 숫자에 대한 열세는 심각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방어 했지만 차례차례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자...




프리드리히 대왕도 도저히 이 전투의 역전이 불가능함을 판단하여, 철수를 결정합니다.




그는 전군에게 클라임바우첸으로 후퇴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철수 할 때, 후위를 지키는 부대로 자이들리츠를 맡기는데...







16.jpg



이때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의 손을 꼭 붙잡으며,





" 너 밖엔 없다... "




" 걱정하지 마십시오. "





라며 서로 대화를 나눴다고 하네요.





한편 오스트리아 군도 프로이센 군이 전면 철수를 하는 것을 보자 찬스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모든 장군들이 다운 백작에게 " 지금 추격해야 합니다!! " 라고 말합니다.





다운 백작도 그 말을 듣자, " 진짜? 맞아? " 라고 솔깃하는데,





이때 프로이센 후위의 군대를 보자, 물어봅니다.





" 프로이센 후위를 지키는 기병 대장은 누구인가? "




" 자이들리츠 입니다. "





이름을 듣자마자 다운 백작은 " 오늘은 여기까지. " 라며 추격을 포기합니다.





호크키르히 전투 시간을 말씀 드리면,





새벽 5시에 전투가 시작 ~ 오전 10시에 프로이센 군이 후퇴합니다.





근데 생각해 볼 것이, 병력 3배 차이. 심지어 기습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프로이센 군은 무려 5시간을 버텼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을 구간이 제일 오래 싸웠는데, 여기서 단위 부대의 대장들이 얼마나 잘 싸웠는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다운 백작은 이때도 그렇고 훗날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욕을 먹습니다.





" 아니 왜 그걸 추격 안하냐! "




" 여기서 프로이센을 박살 냈으면, 앞으로 오스트리아의 미래는 달라졌다! "





물론 전반적인 전투는 오스트리아가 유리하게 싸워 이겼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을 잘 봐야 합니다.





우선 병력이 3배. 거기다가 프로이센 군은 엄청난 행군과 연이은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특히 야간에 기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았죠.





특히 후퇴할 때도 패잔병임에도 불구하고 질서 있게 후퇴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군 입장에선 【 도망가는 속도 】 라고 얘기 했을 겁니다.





보통 후퇴하는 속도는 진격하는 속도보다 느립니다.





근데 프로이센 군이 패배했지만 질서 있게 후퇴하는 속도가 오스트리아의 진격 속도 보다 월등히 빨랐다는 점입니다!





그냥 무조건 냅다 무서워서 튄 것이 아니란 것이죠.





이러한 배경속에 과연 오스트리아가 라인을 짠 상태에서 프로이센 군보다 빨리 갈 수 있느냐?





이건 불가능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고려 한다면, 다운 백작이 추격을 안 했던 것이 옳은 판단이다. 라고 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9. 호르키르히 전투 결과






§ == 프로이센 병력 == §



- 사상자 : 91,00 명


- 대포 상실 : 101 문



§================§







§ == 오스트리아 병력 == §



- 사상자 : 8,300 명



§================§








17.jpg



전투 결과의 교전 비율을 보면 상당히 의외입니다.




오스트리아 군이 기습하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천명의 피해를 봤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프로이센 군이 기습을 당했지만, 정말 잘 싸웠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아마 이것 때문에 다운 백작이 추격을 포기한 것은 어떻게 보면 납득할 만 한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이게 프로이센이 아니라, 프랑스 군이었다고 생각해보면.......쩝...




아무튼 이 전투에서 패전한 프리드리히 대왕.




그는 이 전투가 끝나고 우울증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에게 계속되는 불행이 찾아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아끼던 여동생, 빌헬미나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병에 걸려,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리츠 왕자는 포로가 됐지만,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석방 됩니다.




하지만 전투의 부상이 암으로 발전해서, 1760년에 죽게 됩니다.







18.jpg

[ 프리드리히 대왕의 별들이 쓰러지다. ]





결국 가장 신임했던 모리츠와 키스. 두 장군을 잃은 것이었죠.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아직 추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다운 백작이 멈짓하며 사태를 관망합니다.




그러자 곧이어 프리드리히 대왕의 동생, 하인리히가 구원 부대를 끌고 옵니다.




이 소식을 듣자, 다운 백작이 말합니다.




" 거 봐. 내 말 맞지? 지금 공격 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고, 본국으로 본인이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 여왕폐하의 생신을 맞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




마리아 테레지아는 씹어 먹어도 아쉬울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제대로 한 방을 날린 셈이니.




짜릿한 생일 선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운 백작이 귀환하자, 빈에는 금의환향을 합니다.




한편 이번 전투에서 전투 수습중에, 오스트리아 군이 키스 장군을 알아보고, 시신을 수습합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줬다고 하네요.







19.jpg



아무튼 이번 호크키르히 전투에 대해 영국 대사, 미첼이 이러한 평을 내립니다.




『 프리드리히 대왕의 뿌리 깊은 오스트리아의 경멸감과 함께 』



『 일련의 상황에 대해 자신의 평가에 반하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했다. 』




어떻게 보면, 동맹국이지만 냉정하고 냉혹한 평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평가와 대조적으로 그의 행동들을 보면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항상 뭔가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게 그의 성향일 수 도 있지만...




제가 프리드리히 대왕을 변호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는 자기 속내를 철저히 감추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리더는 속내를 숨겨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죠.




확실히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런 부분을 잘 했던 게, 지금도 그의 속을 제대로 모릅니다.




사람마다 " 그는 이랬어. 아니야 저랬어. " 라고 의견이 다들 분분합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적이 몇 배나 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겼다고 좋아해서는 안되고, 져도 좌절하면 안됩니다.




물론 속으론 좋아하고, 좌절 할 수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늘 왕의 위엄을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이 시대는 왕이 뭔가 거들먹 거리는게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을 탈 때도 허리 꼿꼿히 세우며 뭔가 위엄찬 모습을 보인다거나.




그리고 제가 위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우울증에 빠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자기 속에서 그런 것이지,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안 보였다고 하네요.




아무튼 호크키르히 전투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패배한 몇 안되는 전투로 기록에 남았습니다.




살짝 여담으로 말씀드리면,




그나마 프리드리히 대왕이 새벽 5시에 깨어 있어서 그나마 피해가 덜 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일찍 일어나니, 장군들, 병사들 모두가 다 기상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부분이 오스트리아 군의 기록에는 없지만...




프로이센 군이 정말로 죽을 고생으로 왔을 것 입니다.




그러니 좀 깊은 잠에 빠져주길 바랬겠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변함 없이 늘 새벽 5시에 기상했고, 프로이센 군도 마찬가지로 새벽 5시부터 활동 했던 것.




모두가 이른 기상을 했기에 그나마 프로이센 군의 피해가 줄였습니다.










호크키르히 전투에서 프로이센 군의 뼈아픈 패배로 그에게 위기가 닥쳐 옵니다.



한편 서유럽 전선에서도 또 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과연 향후의 유럽 7년 전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갈지.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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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7 2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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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7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1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29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1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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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8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4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28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29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19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7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7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1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2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0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3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3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3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4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4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2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8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48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0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29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7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29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6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4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69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5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4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2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0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3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7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7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2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3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1 0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4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2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6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2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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