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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최근연재일 :
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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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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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DUMMY



지난 편에 유럽 7년 전쟁에서의 주요 5개국에 대한 전력을 파악했습니다.



이번에는 당시 전쟁에서 쓰였던 무기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군복




18세기 무렵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유럽 군대 복장을 보시면 자신들 마다 군복을 입습니다.




특히 알록달록한 원색의 군복이 아주 큰 특징이죠.




우선 18세기의 유럽 군인들의 군복 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 보병






1.JPG



7년 전쟁에서 보병들은 셔츠와 조끼를 입고, 원색에 자켓을 착용했습니다.




- 프로이센의 경우에는 짙은 남색.


- 영국은 빨강색.


- 러시아는 녹색.







2.jpg



-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흰색.




이렇게 각 국은 입었습니다.







3.jpg

[ 빨강 동그라미 : 트라이콘 ]


[ 파랑 동그라미 : 마이터 ]






머리는 『 트라이콘 』 이라고 부르는 삼각형의 모자를 썼습니다.




가슴에는 탄약 주머니를 매달 수 있는 띠를 둘렀습니다.




또한 7년 전쟁에는 척탄병이라고 수류탄을 던지는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 마이터 』 라고 부르는 독특한 원뿔 모양의 모자를 썼습니다.




근데 마이터라는 뜻은 교회에 주교가 썼던 모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18세기(유럽 7년 전쟁) ~ 19세기(나폴레옹) 시대 까지 최정예 보병들의 상징으로 의미가 바뀝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대 군대 처럼 국방색 등으로 최대한 눈에 덜 띄는 것과 달리, 이때는 왜 눈에 잘 보이는 색들로 군복을 입었을까요?





1) 병력 숫자가 훨씬 많아 보이도록 착각 유도


- 같은 이유로 트라이콘, 마이터가 크기가 큰 것도 병력이 많아 보이고 상대적으로 키가 커보이는 착시 효과 때문입니다.




2) 병력 징병을 쉽게 하기 위함




사실 2번째 이유가 가장 알파이자 오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시대도 그렇지만 이 때는 징집하기가 더 어려웠던 시대입니다.




일일히 가정 방문해서 사람들을 끌고 오는데는 행정력이나 인력등 현실적으로 힘들었죠.




그래서 군인 모집을 주로 술 집에서 했습니다.




특히 술에 잔뜩 취한 남자들을 반 납치에 가까운 징병을 했는데 이들은 주로 하층민이었기에 그랬죠.




그렇기에 하층민들 눈에는 군인들의 화려한 군복이 마치 귀족이 입는 화려한 옷으로 보이도록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멋진 군복 + 급료라는 달콤한 유혹에 돈을 벌지 못하는 하층민의 남자들이 군에 지원했죠.







2-2. 기병






이번엔 기병 차례 입니다.







4.jpg



흉갑 기병의 퀴러시어는 대부분 국가에서 흰색 제복을 입었습니다.




가슴에는 검은색의 강철 갑옷과 트라이콘 모자, 그리고 긴 장화를 신었습니다.




7년 전쟁 무렵에는 퀴러시어가 유럽의 마지막 남은 기사 모습이었을 겁니다.




기병 종류는 퀴러시어 말고도, 영국 내전부터 활약했던 용기병(드래곤)이 있습니다.




용기병은 보병 복장과 비슷합니다.




다만 승마용 가죽 장화를 신은 것 만은 다른 점이었죠.







5.JPG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때때로 용기병에게 곰털 모자를 씌우곤 했습니다.




심지어 말을 타는 척탄병도 있었지만, 복장은 보병 척탄병과 동일했죠.




유럽 7년 전쟁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졌던 기병은 아무래도 후사르 일 겁니다.







6.JPG



후사르는 갑옷을 입지 않고, 그들의 상징이었던 『 검은색 곰털 모자 』 를 착용했습니다.




지금까지 곰털 모자가 지속적으로 나와서, 저 모자에 대한 유래를 한번 찾아봤는데 꽤 흥미롭습니다.




원래 이 모자는 몽골족의 후손이던 마자르족, 타타르인, 코사크족의 전통 복장입니다.




그들 민족은 몽골식 기마 전술, 샴쉬르 검을 사용 했는데, 이것이 유럽에 전파되면서 복장도 함께 따라온 것이죠.




동방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전해진 곰털 모자는 후사르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들의 공통 특징이라는 점입니다.




여담으로 후사르라는 단어는 영어가 아닌 헝가리어 라고 하네요.







7.JPG



여기서 하나 더.




당시 프로이센의 후사르는 조금 독특하게 해골 문양의 검은 곰털 모자 & 검은색 제복 입었습니다.







8.JPG



[ 빨강 동그라미 : 나치 독일의 기갑 부대 군복 해골 문양 ]


[ 파랑 동그라미 : SSS의 군복 해골 문양 ]






이 전통은 나중에 나치 독일의 기갑 부대의 복장으로 이어지는데




2차 세계 대전의 독일 기갑 부대원들은 목 칼라에 해골 모양이 있는 검은색 제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악명 높기로 소문난 SSS 역시 해골 모양을 모자에 부착했죠.




이상으로 유럽 7년 전쟁의 참전국에 대한 복장 얘기가 끝났습니다.




사실 무기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는데 딱히 엄청난 큰 변화 보단 주로 전술 개혁이 상대적으로 7년 전쟁에서 큰 주목이 있어서




무기 설명은 딱히 안해도 될 듯 보여 그냥 복장만 얘기하고 끝내겠습니다.




또한 복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도 딱히 획기적이거나 창의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해당 군복의 역사는 현대에 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의의에서 짚고 넘어갔습니다.




물론 이때 당시 나라들은 군복들도 다 비슷한게 많으며 부대마다 색도 다르는등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오늘 처럼 모든 군대가 하나로 통일된 제복이 된 것은 나폴레옹 시대가 되서야 국가별로 지정 색을 만들어 군복을 완전 통일시켰습니다.




자. 이제 이렇게 화려한 군복을 입은 유럽의 전쟁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여다 보겠습니다.








2.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지난 편에 오스트리아 군대 개혁 얘기를 했습니다.




전 유럽이 군대 개혁을 하는데, 그 중에 가장 먼저 움직였던 나라가 오스트리아 입니다.




그럼 왜 오스트리아 가장 먼저 군대 개혁을 시작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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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 돈 " 이 있었기 때문이죠.




군대 개혁은 결국 돈이 있어야 되겠죠.




마리아가 지난 편에서 통탄했던 것 중에 하나가 " 우린 돈이 없어서 졌다. " 라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군대 목표를 총 16만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왕위 계승 전쟁 시기에는 돈이 없으니까 16만을 모을 수 없었죠.







10.jpg



그래서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나고 나서, 마리아는 군대 개혁을 시작 전에 먼저 재정 개혁부터 실시합니다.




몇번이나 오스트리아 개혁 얘기를 하면서 마리아를 계속 칭찬하게 되는데...




원래 사람이라는게 아무리 성군이라 불리는 사람이라도 하나에 특화되거나 특출나게 업적을 세우지만




반대로 너무 한쪽에 치우쳐서 흠이 되는 부분이 많은데




마리아는 정말 멀티테스킹으로 군대 재정 사회 민족 등등....




전방위적으로 다 할 줄 알고, 깊게 생각하는 것을 보며 참 타고난 사람입니다.




아무튼 마리아는 재정과 군대를 개혁하려고 하는데...




이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시간이 많이 필요 하겠죠.




그리고 오스트리아에게 남은 시간은 8년 밖에 없는데.....




그런데 고작 8년 만에 무섭게 변화를 이룩합니다.




남들은 반세기 해도 못 할 일들을 말이죠....




근데 개혁에 드는 비용이 정말 보통이 아닌지 기록에 의하면 그녀의 장신구 등을 저당 잡아서 돈을 꿨다는 설이있는데...




그래도 여왕의 장신구를 저당 잡았다는게 아무리 돈이 없어도 말이 안되는 부분이라...




이건 그녀가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쇼, 살신성인을 보여준 게 아닐련지... 뇌피셜을 써봅니다.




아무튼 보통 짧은 시간에 재정을 복구한다고 하면, 【 절약, 검소 】 를 하는게 일반적입니다.




거기다가 18세기는 부정부패, 중간에 새는 돈이 정말로 많았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이런 부패를 어떻게든 잡으면 재정이 다시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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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나 마리아는 이런 생각조차 달랐습니다!




" 우리는 거대한 전쟁을 준비하는거야! 이 정도는 어림도 없어! "




더욱이 지금 오스트리아는 상공업의 중심지였던 슐레지엔을 빼앗겼기에 경제적 타격이 아주 컸습니다.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가 재정 개혁을 해야 하는데,




왕위 계승 전쟁에서 그놈에 슐레지엔에 목숨을 건 이유가 【 슐레지엔이 없으면 재정 개혁 불가 】 할 정도로 정말 세금 세수에 큰 영향력을 줬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없는 지역이니 손 놓고 있을 순 없죠.




슐레지엔이 없이 재정 개혁을 하는데.... 이때 등장한 인물, 【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하우그비츠 백작 】 입니다.







2. 하우그비츠 백작의 재정 개혁






12.JPG



이 사람이 재미있는게 슐레지엔 출신으로, 프로이센에 지배를 받아 봤던 인물로 프로이센의 재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로 귀화해서 3가지 개혁을 실시합니다.




1) 프로이센의 효율적 행정 관료제 도입



2) 조세 개혁




당시 유럽 사회는 귀족과 교회는 면세였습니다.




이는 동양의 조선에서 양반이 면세와 동일하죠.




유럽이든 동양이든 똑같이 저 세금 안 내는 녀석들을 어떻게 뜯어 낼지 고민은 전 세계적인 공통 사항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오스트리아는 다른 문제도 겹쳐 있었는데요.




워낙 다양한 나라와 언어가 있는 연합체 라는 것이죠.




이러니까 왕이 " 너 돈 내라! " 라고 못하고, 각 소속된 나라(헝가리,보헤미아등)에 【 귀족 의회 】 가 있습니다.




귀족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연합체의 왕(오스트리아)이 세금을 낼 수 있다는 것이죠.




짧게 요약해서...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에게 " 돈 내놔! " 라고 해도...




헝가리의 귀족 의회에서 " 응 승인 안해~ " 라고 하면 헝가리는 세금을 못 뜯어 낸다는 것이죠.




이런 비효율적인 조세 방법을 【 조세 통일 】 을 하자는 것이죠.




하우그비츠 백작은 복잡한 절차 싹다 없애고 프로이센 처럼 중앙 정부로 통일,




귀족과 교회도 세금을 내도록 개혁하자는 것이 그의 조세 개혁의 중추입니다.




근데 말은 좋지 이걸 현실로 하면 쉽게 못하는 일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왕조가 뒤집어 엎어질 가능성이 있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하우그비츠 백작의 개혁을 적극 반영하여 실행해서 8년도 안되서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 테레지아가 개혁할 때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세금을 뜯어가겠다고 개혁하면 사람들이 안좋아하니까




당연히 적어도 어느정도 방패삼아 모두 공정하게 다 하겠다라고 해야 차별 없어서 어느정도 수긍이라도 하겠죠?







14.jpg



그런데 헝가리만은 예외로 뒀다는 점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마리아가 가장 힘들었던 그 순간에 헝가리만이 유일하게 지지하여 큰 힘이 됐다는 것.




이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항상 그녀가 위험 할 때마다 거병하여 위기를 벗어나게 도와준 1등 공신이란 것.




이런 점들에서 마리아는 헝가리만은 유일하게 특혜를 주었고,




실제로 헝가리 귀족들의 예외 조항을 보자 " 마리아는 진짜 우리 어머니시다!! " 라고 외쳤다는 설이....




그런데 마리아는 단순히 헝가리가 나를 도와줘서 라는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얍삽한 것이,




특혜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냥 뽑아 낼 것을 더 뽑아 내는 것이죠.




헝가리 사람들이 무한 충성을 하는데, 왜 굳이 억지로 뽑아 내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마리아는 사물을 보는 명확힌 진리를 제대로 본 듯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조세 결과로...




- 1740년에 오스트리아의 군사비 : 1,100만 플로린(현재가치 약 3억 3천 5백만 달러)


- 1756년, 군사비 : 2,160만 플로린(현재가치 약 6억 5천 7백만 달러)




약 2배 이상으로 껑충 뛰어 올랐습니다.




프로이센의 경우에는 기껏 해봐야 인구 300만 명인데,




오스트리아는 1,700만 명의 세금을 2배로 더 올랐다는 점에서 이래서 국력의 기본이 인구라는게 세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걸 고작 8년 만에 해내는 마리아 테레지아도...






3.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1세







15.jpg

[ 오른쪽 사진 : 로렌 지방 ]





지금까지 마리아 테레지아 얘기를 중점적으로 얘기 했습니다.




사실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복잡해서 최대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배제했습니다.




어느정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마쳐서, 이번엔 남편 프란츠 1세에 대해 얘기 할까 합니다.




이 분의 이야기를 할려면 다시 왕위 계승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프란츠 1세는 로트링겐 출신으로, 위치는 알자스 - 로렌 지역의 " 로렌 " 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로렌 지방의 프란츠 1세와 결혼 한다고 하자, 프랑스와 영국이 발칵 뒤집혀집니다.




프랑스 입장에선 자기 앞마당에 있는 알자스-로렌이 오스트리아가 먹으면 위험하죠.




그래서 영국-프랑스 둘의 결혼을 인정하는 대신에, 로트링겐을 포기하라고 딜을 건넵니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 왕위 계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알자스-로렌 지방을 침공한 것이 있습니다.




프랑스 입장에선 땅이 빼앗기는게 아니라, 수복이 되는 것이라 전혀 남에 사람이 와서 지배하는게 아니라




원래 정당한 주인이 귀환한 것이고, 이는 그 지방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들어주니 프랑스는 더욱 위기감이 들어서 지킬려고 노력했죠.







16.JPG

[ 빨강색 : 토스카나 공국 ]





아무튼 프란츠 1세는 로렌 지방을 포기하는 대신에, 피렌체의 토스카나 공국을 받게 됩니다.




프란츠 1세가 로렌을 포기하고 토스카나 공국을 받았다고 결혼을 위해서 엄청난 큰 희생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에겐 전혀 나쁘지 않는 땅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알짜배기 지역중에 하나를 받았으며, 이곳 지역이 돈이 되는 지역이었죠.




프란츠 1세는 딱히 뭐 출중하거나 그런건 없습니다. 특히 군사 지휘는 정말 형편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정치는 그냥 부인에게 다 맡겼습니다.




그래서 여러 유럽 국가 대사들이 프란츠 1세에게 말하길....




" 저 사람은 대단하다. 모든 일들을 부인에게 맡기고, 모든 공을 부인에게 돌린다. "







17.jpg



그리고 부인도 확실히 남편에게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도 주는등 부인도 만만치 않게 남편에게 열성을 다 하시니




서로 상부상조, 그래서 부부 사이에 금술도 좋아서 자식이 열여섯이나 낳았겠죠.




물론 프란츠 1세도 애인을 여러명 두고 있었지만, 마리아는 선만 안 넘으면 약간의 바람은 봐줬다고 하네요.




근데 아이 열여섯을 출산하면서 전쟁도 치뤄, 국가 개혁도 하고...




거기다가 남편 바람도 좀(?) 인정해주고... 마리아도 보통 여인이 아니지만.....




보통 남자 같으면 자기가 뭔가 하고 싶고, 부인이 다 한다고 그림자에 갇혀 지내서 열등감이나 이런게 있을 법한데...




자신의 능력이 안되서 차라리 부인에게 넘겨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런 일에 관심이 없어서 부인에게 다 맡긴건지는 모르지만




남편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리아도 대단하지만 프란츠 1세도 대단하다고 생각 듭니다.




아무튼 군사 능력도 없고 뭔가 딱히 크게 잘하는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잘하는 것이 하나는 있었습니다.




바로 【 꼼꼼한 재정 관리 】 입니다.








4. 프란츠 1세의 재정 능력





프란츠 1세는 이걸 정말로 잘하기로 유럽에서도 소문이 났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세금을 걷을 때, 프란츠 1세는 마치 참기름 짜듯이 쭉쭉 짜였다고 하네요.




이러면 단순히 세금을 잘 뜯었다고 악랄한 사람이라고 신망이 낮아질텐데,




세금을 잘 뜯기만 한 게 아니라, 이를 토대로 금융과 제테크, 상업 분야에 재능을 발휘하여 재정을 더욱 크게 부풀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프란츠 1세가 토스카나 공국을 지배했는데,




원래는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며 도자기 공장도 세우고, 항구도 건설하며 훌륭한 산업 중심지였죠.




근데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치루고 메디치 가문이 박살나면서 이곳 지역이 엉망이 된 곳을 프란츠 1세가 깔끔히 부흥시킵니다.




고작 몇 년만에 토스카나 공국의 수익이 몇 배나 늘었다고 하네요.




거기다가 프란츠 1세는 유럽 각지에 투자도 하고,




돈을 영국 은행, 스위스 은행 등등 다 분산시켜서 엄청난 수익을 벌어, 오스트리아 재정 지원을 해줍니다.




이렇게 서로 맞물려서 아내 마리아에게 큰 도움을 주었죠.




이렇게 보니 안 사람의 프란츠 1세와 바깥 사람의 마리아는 어쩜 저리 잘 만났는지 ㅋㅋㅋ




프란츠 1세가 이건 만 보고 생각하면 유능한 CEO 혹은 투자자로 보이는데...






18.jpg



사실 그냥 통장에 돈이 쌓이는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러니 마리아는 남편을 참 잘 뒀죠.




아내는 남편이 모아둔 재산을 갖다 끌어 쓰고,




남편은 통장에 돈 빠지면 투자해서 이걸 채우는걸 낛으로 사는 사람....




이 사람이 얼마나 돈 모으는걸 좋아 했냐면, 마리아에게 얘기합니다.




" 재정 지원 해줄게. 근데 이 선은 절대로 안돼! "



" 내 금고에 너무 손대지 마! "




지금 마리아 테레지아는 얼마나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히죠.




" 싫어! 더 필요해! 줘! "




마리아가 막무가내로 돈 달라고 하면...




" 더 이상 안돼!! "




하면서 남편이 그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의 부인에 맞서 싸웠다고 하네요.




이렇게 보고 판단하면, 건전 재정을 추구한게 아니라, 돈을 모으는게 좋아셨던 분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취미도 자기 성향에 맞게 딱 들어 맞습니다.




바로 【 동전 모으기 】 입니다.




좌우지간. 이렇게 유럽 7년 전쟁을 하는데... 정말로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지금 유럽에 가장 유력한 5개 국이 싸우니 규모도 규모고 전장이 너무 넓어지니 들어가는 전쟁 비용이 많아서




전쟁에 참가했던 나라들이 재정에 무리가 와서 한 동안 주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7년 전쟁을 겪고서도 최고로 부유한 나라가 『 오스트리아 』 였습니다.




나라 국고 뿐만 아니라 왕가 개인 재산까지도 유럽내 최고였다고 합니다.







19.png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오스트리아의 화려한 궁전과 궁전 문화들의 배경이 전부 프란츠 1세의 재정이 있기에




우리 머리속에 박힐 정도로 오스트리아의 사치스러운 생활 모습인 셈이죠.




여기서 1가지 더 얘기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한 무한한 칭찬만 계속 했습니다.




장신구 저당 잡아서 국가 개혁에 일조하고, 군대 키우고, 폐단 개혁하는 등등...




그녀는 오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것 처럼 얘기 했습니다.







20.jpg



[ 왼쪽 : 쇤부른 궁전 ]


[ 오른쪽 : 빈 동물원(쇤부른 동물원) ]






지금 오스트리아에 【 쇤부른 궁전 】 이 있습니다.




쇤부른 궁전을 보고 흔히 오스트리아의 베르사유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입니다.




무려 50만 평, 방 144개의 궁전을 왕위 계승 전쟁 중에 건설 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에이 뭐 궁전 하나 쯤 지을 수 있지.. 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평시도 아니고 전쟁 통에 이런 화려함의 끝장판 궁전을 짓는 건, 어떤 지도자라도 하면 안되는 행동이죠.




국가 전력에 큰 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백성들의 평판도 당연히 안 좋아지니까요.




뭐 당시에는 궁전 짓는다고 백성들이 힘들겠지만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관광 필수 코스라고 하네요.




심지어 궁전 말고도 동물원을 만들어서, 전 세계에의 동물들을 수집해서,




전 세계적으로 오래된 동물원이 『 빈 동물원 』 입니다.



(가장 오래된 건지는 모르겠네요)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치 클라스가 얼마나 되는지 이해가 안되실 것 같아서 비교 대상을 찾아봤습니다.




청나라 말기에 나라를 망하게 했던 서태우.




양무운동으로 해군 키운다고 군비 예산을 투자하는데, 그 예산을 빼돌려서







21.jpg

[ 이화원 호수 ]





복구 및 확장을 시킨 것이 【 이화원 】 입니다.




지금도 중국 역사학자들은 이화원에 대해 아주 심통한 반응을 보이죠.




아무튼 이런 사치 때문에 청나라가 망해서 중국 최고의 악녀중에 한명이 서태후 입니다.




근데 이렇게 욕먹은 이화원이 29만평, 궁전 7만 평이라는 점입니다.




쇤부른 궁전이 50만 평이라는 점에 비해서 말이죠.




사치 수준으로 볼 때 마리아가 저질렀던 사치 수준이 서태후보다도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자신이 이런 사치를 부리고도 국가 개혁과 군대를 키울 수 있는 재정까지 보유 했기에




욕을 덜 먹은 것이고, 서태후는 그런 능력이 안되는데도 사치만 한 것이 평가를 가르는 원인.




그만큼 오스트리아가 얼마나 재정이 풍부했는지 생각해보면 고작 18세기에 청나라보다도 훨신 작은 나라임에도




저럴 수 있는 국력이 있다는 것도 참 놀랍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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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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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3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21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6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9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4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6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6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1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3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30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2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7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5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7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9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4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3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6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4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9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6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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