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지난 편에서 오스트리아 - 프랑스 - 러시아 - 스웨덴이라는 유럽 강국에게 전쟁 선포를 당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4국의 공세에 맞서 오히려 방어보다 공격에 나서, 오스트리아의 가장 중요한 지역, 프라하로 기습 침공을 단행.
프라하 전투가 개전되고, 전투에서 프로이센의 피해가 있었지만, 기어코 전투에 승리하면서 프라하는 바람 앞에 등불의 위험한 상황에 빠집니다.
과연 오스트리아는 이런 난국을 어떻게 헤쳐갈지.
프로이센은 이번에도 어떤 놀라운 모습을 보여 줄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프라하 공성전
지난 프라하 전투에서 브라운 백작의 오스트리아 군은 궤멸 및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카를 공작의 휘하 기병 연대가 희생을 무릎쓰고 퇴로를 지켜준 덕분에 무사히 프라하로 들어갑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프로이센은 프라하를 향해 아주 거침없이 공성전을 하게 되죠.
근데 의외로 프라하는 아주 굳건해서, 프로이센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버텨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판단을 내립니다.
" 여기서 계속 공성전을 해? 이건 안돼! "
결국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라하에 대한 공성전을 포기하고 맙니다.
왜 공성전을 포기했냐면 지금 프로이센은 한치 시간도 아깝습니다.
시시각각 反 프로이센 동맹군은 계속 오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도 다운 백작이 이끄는 추가 병력이 오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공성전으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프리드리히 대왕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미 프라하 도시 내부에는 카를 공작이 이끈 40,000의 병력 + 시민 약 70,000 명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연전을 하면 안에서 자연히 굶겨 죽여서 항복하게 만드는 방법이죠.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 판단을 통해 프라하 주변을 에워싸고 기다립니다.
그렇게 공성전이 아닌 포위전으로 한 달 동안 프로이센이 기다립니다!
한 달?! 몇 주도 아니고 한 달 동안 포위전을 하다니.....
그리고 그 사이에 스파이들이 꾸준히 프라하 내부 상황 소식을 보냅니다.
이때 스파이 보고를 듣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충격을 받습니다.
" 프라하에는 아직 2달 치 식량이 더 남았습니다. "
세상에... 군대 4만 명 + 시민 7만 명이 3달 치 식량이 있다니;;
대체 이때 프라하가 얼마나 발전했길래 저만한 식량이 있는 건지...
이런 기록들을 볼 때 마다 간접적으로 유럽의 기술이 얼마나 증진됐는지 세삼 느껴집니다.
또한 프리드리히 대왕이 결정적으로 실망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 시민들이 아직 말을 잡아 먹지 않고 있습니다. 】
즉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말을 잡아 먹지 않을 만큼 식량 사정이 괜찮다는 의미죠.
이러자 프리드리히 대왕도 기존에 자신의 생각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별 수 없다. 프라하를 함락시켜라! "
프라하를 향해 중포들을 쫙 깔아 놓고 무차별 포격을 시작합니다.
근데 이게 전쟁에 늘 하는 실수인 것 같습니다.
적 군이 시가지 포격 해서 위협을 가하면....
과연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항복 할까요?
오히려 더 안합니다.
반대로 더욱 분노에 타오르고 적에 대한 적대감이 미친 듯이 상승합니다.
아무튼 프로이센이 마구 포격을 가했더니 이러면 프라하에서 식량 창고가 불타거나, 무기고가 박살나야 하는데...
반대로 프로이센 포탄이 먼저 바닥 나버립니다.
그리고 바로 이 타이밍에....
다운 백작이 이끈 오스트리아 지원군이 도착합니다!!
지금 시기를 봤을 때, 프라하 전투 이후 약 1달 걸려 도착하며 꽤 늦게 도착했네요.
왜 이리 늦었냐면, 다운 백작도 40,000 명의 병력으로 적지 않는 수를 이끌고 오느라 늦었고,
더군다나 프라하로 가는 도중에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도망쳤던 16,000 명 병력이 합류합니다.
이로써 다운 백작은 도합 약 60,000 명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또한 지휘관 방식도 틀렸는데,
카를 공작은 행군 전문 지휘관이라면, 다운 백작은 『 교육 담당 』 지휘관입니다.
다운 백작이 병사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분이셨는데,
그가 가진 병력 구성을 보면 탈영병, 신병(징집병), 2선 병력등...
까놓고 말해 질이 아주 현저히 떨어졌기에, 이런 급조된 부대를 훈련도 시켜야 했기에 빨리 올 수 도 없었죠.
이런 다운 백작의 훈련이 워낙 대표적인 케이스가 됐는지, 항상 어느 기록에서든 병사 교육이 꼭 나온다고 하네요.
심지어 다운 백작이 지금 이런 부대를 보고...
" 이런 부대로 프로이센이랑 붙으면... 분명히 질 텐데... "
라고 생각해서 사실 진격 속도를 느리게 갔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당장 프라하가 넘어가면 큰일이니까....
" 빨리 가! " 라고 계속 재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운 백작은 신중한 인물인지라 계속 머뭇머뭇 거립니다.
제가 봤을 때, 다운 백작은 【 실패하는 게임은 안 한다. 】 라는 주의 같습니다.
아무튼 마리아 테레지아의 재촉에도 빨리 안 가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에게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 패전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
『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나가라! 』
이렇게 해서 결국 다운 백작은 프라하 동쪽 언덕의 【 콜린 】 으로 가면서....
프라하 전투가 끝난 지, 한 달 뒤.
이로서 다시 한번 대규모 전투가 연이어 펼쳐지게 됩니다.
2-1. 콜린 전투 전초전(1)
앞에는 프라하. 뒤는 오스트리아 지원군.
프리드리히 대왕은 완전히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
또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모든 병력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지원군과 붙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병력을 프라하에서 철수하면, 프라하 안에 있는 병력이 후방 급습해서 위험에 빠질 수 있었죠.
어쩔 수 없이 프리드리히 대왕은 20,000 명의 병력을 프라하에 남겨 두고,
32,000 명의 병력을 이끌고 콜린으로 향합니다.
§ == 프로이센 병력 == §
- 보병 : 19,500 명(+추가 병력 포함)
- 기병 : 15,000 명(+추가 병력 포함)
- 대포 : 98 문
- 총 병력 : 34,500 명
§================§
§ == 오스트리아 병력 == §
- 보병 : 35,000 명 (그랜져 : 10,000 명)
- 기병 : 18,000 명
- 대포 : 154 문
- 총 병력 : 약 53,000 ~ 66,000 명 (+추가 병력 포함)
§================§
이때 병력 구성으로,
[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베페른 공작
(1715년 10월 10일 ~ 1781년 8월 2일) ]
베베른이 20,000 명 + 프리드리히 대왕의 주력군 10,000 명으로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모든 주력군이 다 온 것이 아닌, 프라하에 묶어두고 있다는 것이 지금 프로이센의 문제점이었죠.
이번 콜린 전투를 치루기 전, 프리드리히 대왕과 베베른이 진군을 하는데,
이때 베베른은 지난 로보지츠 전투 & 프라하 전투.
총 2번에 전투에서 확실히 예전의 오스트리아라곤 보기 힘들 정도로 잘 싸웠으니, 이런 조언을 합니다.
" 그 옛날의 오스트리아 군이 아닙니다. "
프리드리히 대왕도 이미 2번 경험했고, 심지어 슈베른마저 전사했으니 오스트리아의 진가를 알 법 한데...
그 총명한 사람이 왜? 대체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오스트리아 군의 엄청난 성장을 믿진 않았습니다.
물론 아예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80%의 성장을 했다면, 3~40% 정도로 낮게 본 거죠.
" 그래봤자 요 만큼 밖에 안된다. "
" 어허~ 나도 알아~ 알아~ 걱정마~ "
프리드리히 대왕은 시종일관 오스트리아의 실력을 낮게 보았고, 베베른은 계속 충고했다고 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프라하에 묶어든 병력은 2만에 비해, 카를 공작 병력은 4만으로 2배 숫자.
콜린쪽에도 프로이센이 12,000 명으로 어느쪽이든 프로이센이 절대적 숫적 부족인데도 불구하고
저런 것을 보면 무모한 건지... 아니면 대단한 자신감인지...
하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때도 이 보다도 훨씬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겼으니.....
충분히 그럴 수 도 있었겠죠.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찌보면 결과론적 이야기고, 당시 시대에서 봤을 땐 굉장힌 용기라고 봐야겠죠.
이때 프리드리히 대왕의 큰 고민 있었는데...
『 앞서 말했듯이 점점 다가오는 프랑스와 러시아, 스웨덴 군대가 오는 것. 』
결국 프리드리히 대왕에겐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라하 포위전도 애시당초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사실 로보지츠 + 프라하 전투까지 승리했습니다.
사실 위에 두 전투도 사실 오스트리아에겐 아주 뼈아픈 패전이었고, 이 정도면 평화 협정을 맺을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오스트리아에서 정보가 들어오는데,
이미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황을 보았지만, 결코 그럴 생각이 없죠.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니, 프리드리히 대왕은 초조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아마 프리드리히 대왕이 저렇게 자신 만만해 보이는 건...
어쩌면 자신의 초조함을 애써 감추거나 무마하기 위해서가 아닐지....
2-2. 콜린 전투 전초전(2)
프리드리히 대왕은 우선 베베른에게 다운 백작을 저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며, 18,000 명의 병력을 먼저 보냅니다.
그 뒤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라하를 어떻게 포위 할 지, 배치를 끝낸 다음에 갑니다.
이때 정작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남은 병력이라곤, 아무리 많아도 채 10,000 명 뿐이었죠.
그리고 여기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초조하니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 얘들마저 격파하면, 평화 협정 맺겠지? "
이런 것을 보면....
아무리 프리드리히 대왕 같은 천재라도 뭔가 집착하면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역시 사람은 결국 똑같다고, 이런 상황까지 몰리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 다운 백작을 격멸시키자! 】 라는 목표를 세우고 콜린으로 향합니다.
3. 콜린 전투 1막 : 오스트리아의 방어 전략
이제 시선을 오스트리아로 돌려보죠.
오스트리아 군은 항상 그랬지만 절대로 먼저 공격할 마음이 없습니다.
늘. 언제나. 니가와 전략이죠.
그럼 왜 다운 백작이 니가와 전략을 펼쳤을까요?
다운 백작은 예전에 자기 휘하 지휘관과 함께, 콜린 근처에서 강력한 기동 훈련을 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운의 휘하 지휘관들은 콜린 지형을 아주 빠삭히 알고 있었죠.
[ 콜린 전투 양측 병력 배치도 ]
또한 콜린 지형이 로보지츠와 꽤 비슷한 지형이었다고 하네요.
거기다가 이곳 지형마저 잘 알고 있었으니....
" 내가 준비한 덫에 걸려라~ "
라며 철저한 방어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이미 프로이센의 작전도 이미 다 노출되었습니다.
항상 그랬지만, 『 오다가 갑자기 측면 공격 』
이젠 뭐 더 새로울 것도 없는 전략이었죠.
그래서 다운 백작은 측면 쪽에 공격하기 힘든 지형을 둡니다.
그리고 중앙을 두텁게 배치합니다.
위에 지도를 보시면,
우측(오른쪽, 마을 방향)에는 언덕, 좌측(왼쪽)은 늪지대였기에.
프로이센이 측면 기동을 해도 싸우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죠.
그리고 프로이센은 늘 하던대로 측면 기동을 합니다.
이게 모를 때는 기묘한 전략인데... 알면 뻔한 거죠.
그러니 당연 프로이센이 정면에 안 오는게 뻔하고,
이번에도 측면으로 쫘악~ 움직이는 것을 보니...
" 하하하. 그럴 줄 알았지! "
다운 백작은 이미 포대까지 다 배치 완료 상태 하여 단단히 방비합니다.
4. 콜린 전투 2막 : 프로이센의 야간 기동
프리드리히 대왕도 지형을 가만 보니 보통 내기가 아니였죠.
그리고 자신들의 전략도 이미 동요 없이 능숙히 방어하는 모습을 보자,
긴급히 프라하에 있던 병력에게, 콜린으로 추가 병력을 보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추가 병력들이 무사히 합류합니다.
하지만 병력 숫자 뿐만 아니라 대포 숫자가 오스트리아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콜린 전투가 벌어집니다.
다운 백작의 본대는 좌측의 낮은 언덕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왜 다운 백작의 본대가 이곳에 주둔했냐면,
이곳 지형이 프로이센 군대의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투가 개시되는 6월 17에서, 18일로 넘어가는 한 밤에.
프로이센이 야간에 움직이며 전투가 시작됩니다.
프로이센을 보면 야간 전투를 정말 많이 하는데...
야간 전투가 진짜 결코 쉽지 않는데 매번 야간 전투를 하네요....
근데 사실 프로이센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야간에 움직여야 적들이 포진을 모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이센의 최대 강점, 『 기동! 』
하지만 전 편에도 얘기했지만, 뛰는 기동이 아니죠,
그래서 항상 어두울 때, 최대한 적 가까이 근접시키고,
근접한 상태에서 갑자기 측면을 돌아서 공격하면, 상대방은 우왕좌왕 할 수 밖에 없죠.
심지어 측면 기동이 단순히 보병들의 몸 만 따라오는게 아니라, 대포도 같이 따라와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프로이센은 【 외선 】 , 오스트리아는 【 내선 】 에서 움직입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빨라야 하는데...
솔찍히 사람이 노오오오력을 한다고 해도 결국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어두울 때 기동 → 적에게 최대 근접 하는게 프로이센의 목표입니다.
5. 콜린 전투 3막 : 그랜져 부대의 활약
프리드리히 대왕이 생각하기에,
" 언덕(우측 마을 방향 언덕)으로 올라가면 우리가 불리하다. "
" 옆에 있는 평야 지역으로 오스트리아 군을 유인해서 붙으면 승산이 있다! "
라고 계산을 합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군 우측으로 가고 있는데...
이미 다운 백작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쪽으로 가서 자신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죠.
그는 우측 방면을 아주 두텁게 보강합니다.
이렇게 되자 프로이센의 우측 공세는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이렇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싸울 수 있는 중앙을 돌파하기로 결정하여, 프로이센 중앙 병력과 합류합니다.
또한 앞서 이곳 전장이 로보지츠와 비슷하다고 했죠.
중앙에는 평야가 있었는데, 밀과 옥수수 밭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그랜져입니다.
무려 1만 명의 그랜져가 밭에서 매복하며 프로이센 군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프로이센 보병들이 행진하다가 곳곳에서 히트 앤 런 전술로 급습을 받습니다.
특히 프로이센 군이 연대 단위로 어마하게 긴 줄로 이동하고 있으니,
툭 치고 도망가고, 툭 치고 도망가니까 추격이 불가능하죠.
이 과정에서 프로이센 군이 무수히 많은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프로이센은 유럽 최강의 군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무려 3시간 동안 그랜져의 게릴라 공격을 꿋꿋이 버티고 혈투를 벌여 결국 통과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상황을 봤을 때.
지금까지 프로이센이 얼마나 많은 악조건 속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래도 승세는 오스트리아에게 매우 유리해 보입니다.
과연 프로이센은 이번에도 불리한 전황을 다시 역전할 것인지.
다음 편에서 콜린 전투를 이어 가겠습니다.
-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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