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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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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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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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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DUMMY



지난 편에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넘봤다가 물러난 상황.



로스바흐 전투 이후로 재정비를 하고 있었던 프랑스와 하노버를 재건한 영국.



지난 편의 1758년 기간에 유럽 동부 전선을 얘기했다면, 이번엔 유럽 서부 전선의 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노버의 새로운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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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년 6월 23일에 프랑스 군과 영국 & 하노버 군이 다시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영국군(+하노버) 지휘관이 지난 편에 하노버 얘기하면서 살짝 언급됐던 브라운슈바이크.




이곳의 공작 페르디난트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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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페르디난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소문을 통해 살펴보면,




《 만약 프리드리히 대왕의 수제자가 있었다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페르디난트. 》




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런 기록은 본인 혹은 본인 집안이 했던 말이 아니라,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증언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계속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미리 언급하자면.




서부 유럽 전선의 지휘는 거의 페르디난트가 맡습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의 수제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니까, 당연히 대부분 전투에서 승리를 합니다.




아무튼 길게 언급하지도 않았지만, 딱 봐도 대단히 유능한 지휘관이었고.




또한 아무리 영국이 지원을 한다고는 하지만, 하노버는 일개 지방일 뿐.




프랑스와는 차마 비교조차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공국이죠.




국내에 아무리 병사들을 쥐어짜내도 2~3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앞도적으로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적은 하노버군이 승리를 했다는 것만 봐도.




어떻게 보면 프리드리히 대왕과 많이 겹쳐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크레펠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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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 군이 얼마나 잘 싸웠는지는 1758년 6월 23일에 벌어진 크레펠트 전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유인시켜 프랑스의 좌익을 노리는 척 했다가, 우회 기동을 통해 공격합니다.




크레펠트 전투에서도 보면 계속 프랑스 군이 하는 실수가 전혀 고쳐지지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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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바흐 전투와 거의 흡사하게 흘러갑니다.




프랑스 군이 한번 " 와아아아! " 하면서 밀어붙쳐서 하노버 군으로 갔더니 얘들이 없던 겁니다.




" 엥? 뭐야 어디갔지? "




하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틈에, 하노버 군이 뒤에서 친 것이죠.




그래서 크레펠트 전투에서 프랑스는 깔끔히 패배합니다.




유럽 7년 전쟁을 쭉 보면, 프랑스 군은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집니다.




참... 프랑스 군이 덩치에 비해 군대 훈련이 제대로 안되어 있다고 매번 생각이 듭니다.




군대는 결국 조직력과 훈련으로 완성을 시키는 것인데, 프랑스는 돈으로 병력만 뽑으니까 이런 일이 계속 반복 되는 일도 있고.




또한 장교들의 장악력.




장교 ㅡ 병사들의 커뮤니케이션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프랑스 군은 앞 사람이 가니까, 그냥 우루루 따라는 가는데...




이러다가 갑자기 적이 옆에서 튀어나와서 치면....




" 뭐야? 이거 반칙 아니야?! "




하면서 그냥 훅훅 깨져버리죠.








3. 프랑스의 실패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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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 군은 적은 병력으로 프랑스 군을 격파합니다.




이러면 하노버 군이 반격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하노버도 프로이센 군이랑 거의 흡사하게 흘러갑니다.




프랑스로 진격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하노버도 병력이 턱 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프로이센도 동맹국이니까 병력을 안 보내 줄 순 없었지만...




제 코가 석자인 프로이센도 많이 보내주질 않습니다.




해봐야 5천... 7천... 이렇게 찔끔 찔끔 보내니까 하노버도 방어만 하지, 공격을 못합니다.




그럼 영국은 뭐했을까요?




우선 영국은 유럽 7년 전쟁 모든 이야기에서 항상 누누히 말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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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최종 목적은 【 식민지 전쟁 】 입니다.




하노버가 반격해서 프랑스를 밀고 가고... 이런 그림을 영국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프로이센에게 재정 지원으로 *67만 파운드를 지원해줍니다.



*67만 파운드 : 현재 가치 약 10억 원.




사실 67만 파운드도 안 줄려다가 프로이센이 잘 싸우니까 그때서야 주머니에 꽂아준 것이었죠.




하노버나 프로이센은 굉장히 답답하지만, 영국은 굉장히 머리를 잘 쓴 것입니다.




영국은 프랑스에 대해서 항상 이런 생각을 합니다.




"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 계속 돈을 쓰게 하면 장땡이야. "




특히 모든 유럽 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낭비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게 프랑스죠.




그런데 유럽 대륙에서 병력은 계속 갈리지... 또 그걸 보충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까요.




특히 제가 유럽 7년 전쟁의 1편에서 얘기했지만 프랑스가 보통 부패한 나라가 아니니 말입니다.




이러니까 프랑스는 해외 식민지 전쟁으로 거의 원활한 지원을 못하는 수준입니다.




반대로 영국은 식민지 전쟁 & 하노버 건재. 두 가지 전략을 모두 달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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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프랑스 왕국의 이러한 실태에 훗날의 프랑스 역사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 군대가 약한게 아니라, 투자를 안해서 그런 것이다! 》



《 쓸데없는 남의 나라에서 이득도 없는 전쟁을 하는게 아니라, 해군을 육성해서 식민지에서 싸워야 했다. 》




라고 비판을 많이 합니다.




이러한 말들을 돌이켜 봐서, 만약 프랑스가 유럽 대륙에서 썼던 전쟁 비용에 절반을 해군에 투자했다면?




프랑스가 식민지 전쟁에서 그렇게 힘든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북미 대륙으로 가는 길목마다 영국 해군이 버티고 있습니다.




중간 기척지 지역들이 전부 영국 해군이 장악하고 있으니,




이걸 뺏으려면 당연히 대규모 함대를 꾸려서 가야 겠죠.




그런데 프랑스가 가뜩이나 육군에 죄다 투자하고 있으니 함대 꾸릴 여력이 없는 겁니다.




이래서 프랑스가 병력을 보내줘도 가다가 전부 격퇴 당하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 함대 10대를 출동시키면... 북미 대륙으로 1대가 올까 말까한 장담도 못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프랑스 식민지 군대도 본토가 끊기니까 보급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테고, 자연히 시간이 지날 수록 약체화는 피할 수 없게 되죠.




아마 요즘에는 옛날 제국 주의 국가들이 이런 패배들이 부끄러우니까 대외적으로 잘 표출을 안해서 그렇지.




만약 오느날에 논쟁으로 격화시키면 프랑스는 전략을 잘못 짰다고 진짜 욕을 엄청 들어먹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때 프랑스에 대해 비판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100으로 욕 먹을 것을 70으로 욕 먹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게....




" 영국은 해군이 강하고, 프랑스는 해군이 약하다. "




라는 관념이 있을 겁니다.




유럽과 거의 상관 없는 동양쪽에선 그냥 그러러니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 우리 해군이 약한게 아니거든? 투자를 안해서 약한거임! "



" 우리가 해양으로 진출 했어야 했는데, 바보 같이 땅으로 가서 이렇게 된거임. "




이라고 그들만의 위안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이때 프랑스가 참 많이 갑갑은 한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리드리히 대왕만 좋은 짓 해주고.




유럽 7년 전쟁에서는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홀라당 넘어가고.




그리고 그 기간에 프랑스는 우당탕탕 깨지기만 하고...




제가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기록을 보고 그래도 그냥 갑갑하다고 태평한 소리를 하지...




그 나라 사람이었으면 역사를 중립으로. 객관적으로 본다고 하지만....




속된 말로 " 진짜 뭐 이딴 바보짓을 하냐! " 라고 빡쳤을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4. 멀고도 먼 러시아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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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유럽 전황. ]





현재 유럽 시점을 돌이켜 봤을 때.




1757년에 큰 승리를 장식한 프로이센 군.




하지만 모라비아로 들어 갔다가 큰 소득 없이 퇴각.




서부 유럽에는 크레펠트 전투로 하노버 군이 승리하게 되면서 서부와 동부 전선은 고착화됩니다.




하지만 아직 큰 한방이 남아 있었죠.




북쪽의 동프로이센을 점거하고 있던 러시아 군.




이번에는 러시아 군의 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 군대는 1758년 5월 초부터 이미 진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때 페르모르 백작이 지휘하여, 프로이센으로 진격 예정이였죠.




근데 러시아가 4월 말 ~ 5월 초에 눈이 녹는다고 합니다.




이때 눈이 녹으면 강이 범람하게 되면서 군대가 진격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러시아 군이 기다리다가, 날씨가 좋아진 것이 5월 말입니다.




태양이 땅을 굳혀지니, 드디어 러시아 군이 기동을 시작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크게 나빠보이진 않아 보이는 것 같은데...




이쪽 동네 날씨가 정말로 고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날씨가 풀리는게 5월 말이라고 했죠.




근데 5월 말부터 땅이 굳어지니까, 흙먼지와 뙤약볕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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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의 수뇌부가 전략 결정을 못 합니다.



1안 : 포메라니아로 들어간 스웨덴 군과 합류.


2안 : 오스트리아 군과 합류.




2가지 안건을 결정하지 못하고 보류하고 만 것이죠.




제대로된 리더가 있다면 전략을 짜서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러시아 수뇌부는 " 일단 가라. 중간에 다시 알려줄게. " 이런 식으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러시아 궁전에서는 서로 논의하다가 결정을 못내리니 【 투표 】 로 결정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문제는 재정 러시아가 멸망하기 전까지도 이럽니다.




그럼 왜 러시아는 제대로 결정을 못하는 걸까요?




우선 표트르 대제 이후의 러시아 황제는 유럽의 군주를 꿈꿉니다.




그러러면 유럽 정세를 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너무 멀리 있어서, 유럽 국가들은 어디 산 너머에 있는 나라로 멀게 취급합니다.




그러면서도 유럽 군주들은 러시아에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 병력 좀 줘. 돈 좀 줘. 대신 내가 다 할거야 "




러시아 입장에선 병력 주고 돈 주는데, 실권은 쟤들이 다 먹으니까 당연히 싫죠.




" 우리도 거기 가서 한 자리 차지 할 거야! "




유럽 땅을 먹든지. 유럽 안으로 더 들어 간든지.




러시아는 저쪽 동네랑 더 놀고 싶은데... 문제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군대와 본토와의 소통이 끊깁니다.




거기다가 장군들과 병사들은 오다가 지치고...




그리고 러시아 장군들이 무능하다는 소릴 듣는데...




어떻게 보면 좀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러시아 장군들은 자국 땅이 아닌 곳에서는 싸워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러시아 땅이 워낙 커서, 다 싸워보지도 못할 겁니다.




그런데 낮선 지역. 전혀 다른 기후와 민족.




이러니까 당연히 러시아 장군들은 수동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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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제가 당시 러시아의 군주였던 엘리자베타.




그녀는 제가 소개했을 때, 강하고 결단력이 있다고 했었죠.




근데 프로이센으로 공격할 때에는 의외로 소극적인 모습에 의아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엘리자베타에 대해 이런 얘길 합니다.




《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치고, 외국 군대와 잘 싸운 사람은 없다. 》




뭐 이런 요소가 아주 없진 않을텐데...




제가 생각하기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떠드는 것이랑 나가서 싸우는 군대 입장은 완전히 틀릴 겁니다.




궁전에선 유럽 군주라서 허세도 좀 하면서 " 프랑스가 졌어? 얼른 도와줘! " 라고 하는데...




나가서 싸우는 군대는 몇 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가야 합니다.




이러니 본인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 도와줄 여력은 당연히 없을 겁니다.








5. 프로이센에겐 부담스러운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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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센 도나 장군의 선봉대와 페르모르의 러시아 군. ]




1758년 6월 20일에 러시아 군대는 프로이센 국경 지대까지 도착합니다.




하지만 오는 동안에 보급품이 고갈. 그래서 보급품을 보충은 해야 하는데 본국이랑 너무 멀어서 쉽지 않습니다.




결국 러시아 군이 보급을 충당할려면 딱 하나의 방법, 약탈 밖엔 없습니다.




이때에 페르모르 장군은 이런 말을 합니다.




『 지금 러시아 군은 휴식을 취할 때가 됐다. 』




이때의 휴식 = 약탈 이었죠.




러시아 군의 보병, 기병 할 것 없이 모든 러시아 군이 프로이센 외곽 북부를 털기 시작합니다.




한편 프리드리히 대왕도 이러한 러시아의 보급 사정을 당연히 알고 있었죠.




그래서 도나 장군의 선봉대로 보내며, 곧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끈 본대도 합류할 예정입니다.




당시 프리드리히 대왕은 도나 장군에게 명령을 하달합니다.




" 가다가 러시아 군을 만나면 주저하지 말고 공격해라. "




왜냐하면 지금 러시아 군이 먼 길 와서 지쳤을테니까 말이죠.




문제는 이걸 받아들이는 도나 장군입니다.




도나 장군은 1757년의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에서 러시아 군과 붙어봤습니다.




이때 전투에서 도나 장군이 러시아 군이 지쳤다는 판단하에 섣불리 공격했다가 패배한 경험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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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나 장군은 " 나는 싸우기 싫은데... " 라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싸우기 싫은 도나 장군은 대단히 조심스럽게(신속X) 러시아 군과 접근합니다.




어떻게 보면 도나 장군은 프로이센의 빠른 기동이라는 강점을 포기한 것이었죠.




근데 이런 일들만 봐도 이상하게 유럽의 군대들은 러시아 군과 싸우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나폴레옹도 러시아 군에 대한 대응이 실패해서 결국 패전하고 말았죠.




그냥 생각하기에 따라서, 러시아 군이랑 붙어서 싸우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문제는 러시아 군은 먼저 덤비질 않습니다.




얘들이 유럽으로 오면서 약탈하며 쓸고 내려오다가,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적군이랑 거의 조우할 직전에 방어 태세를 하고 눌러 앉아버립니다.




근데 러시아 군은 공격은 못해도 방어는 기똥차게 잘하며, 병력도 많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선 병력도 많아, 방어는 잘해...




그렇다고 그냥 냅두고 무시하면 또 약탈하면서 평생 눌러 앉을 놈이고...




그냥 밀어내는 수준으로 공격해서 박살내면, 러시아는 너무 멀어서 결국 다시 모여서 대형을 이룹니다.




러시아랑 싸우는 입장에서는 진짜 엄청 부담스러운 것이죠.







6. 피할 수 없는 프로이센 vs 러시아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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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데르강 유역에서 만나는 프로이센과 러시아 군 ]





8월 15일. 러시아 군은 어느덧 슐레지엔 근처의 오데르 강에 도착합니다.




오데르 강만 넘으면 이젠 프로이센 땅을 밟는 것이죠.




러시아 군은 오데르 강의 연안 도시, 쿠스트린에 대한 맹공을 퍼붓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유명한 코사크 기병대가 공격하여 일대 마을들이 전부 박살납니다.




특히 쿠스트린의 경우에는 러시아 군의 포격에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8월 20일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본대를 이끌고 오데르 강 지역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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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가 된 쿠스크린을 돌아보는 프리드리히 대왕. ]





프리드리히 대왕이 오데르 강에 도착해서 목격한 것은 쿠스트린이 초토화 된 것을 봅니다.




급히 쿠스트린으로 진격한 프로이센을 보자, 러시아 군도 잠시 후퇴합니다.




근데 이때 쿠스트린이 프리드리히 대왕에겐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옛날 시절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아버지한테 많이 얻어 맞은 시절이 있었죠.




한때 프리드리히 대왕은 쿠스트린 성에 감금된 적이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성의 창문 밖으로 마을 풍경을 보면서, " 언제 나가지? "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제가 예전에 프리드리히의 청소년기 시절에 대해 쓰면서 여러 자료를 봤는데




전부 이야기에 담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많이 감금됐습니다.




여기서 조금 이야기를 첨언드리자면....




유럽이랑 동양이랑 어찌보면 생각이 겹쳐지는 모습이 있는데.




아버지가 아들한테 벌을 줄 때, 매번 때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유럽은 탑. 동양은 절 등등.




이런 곳에서 자식을 보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 뉘우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나중에 라푼젤 등 동화책에서 보면 공주님이 탑에 갇혀 지내는 묘사들이 종종 있을겁니다.




아마 제가 보기엔 고위층 자식들이 탑에 갇히는 일이 흔했으니 동화에 실려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드네요.




잠깐 이야기가 샜네요. 다시 쿠스트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쿠스트린이 폐허가 된 참사를 보자 프로이센 군은 분노에 찹니다.




그러면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먼저 선봉으로 보낸 도나 장군과 만납니다.




그는 즉시 도나 장군을 소환시켜 추궁을 합니다.




" 쿠스트린이 폐허가 될 동안에 뭘 했는가? "




왕의 추궁 도나 장군은 제가 보기엔 변명 섞인 답변을 합니다.




" 정찰대를 보내니, 러시아 군의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



" 그래서 섣불리 공격한 것 보다는 대왕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



" 왜 저라고 공격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




프리드리히 대왕은 도나 장군의 답변을 듣자 속에서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러나 일단 부하 장군들이 많이 보고 있어서 일단은 참습니다.




이후에 프로이센 군은 오데르 강을 건너 러시아 군과 대결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근데 이때 프로이센이 강을 무사히 건넜다고 하는데... 이게 그냥 기록을 보는 사람 입장에선 참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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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사크 기병대 ]





러시아 군도 당연히 프로이센 군이 강을 건너서 공격할 것을 알아서, 코사크 기병대가 정찰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만약 프로이센 군이 발견하면 즉시 보고해서 공격할 심상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코사크 기병대가 정찰 중에 프로이센 군을 발견합니다.




프로이센 군이 강에다가 배를 이어 붙치고, 교량을 설치해서 건너는 장면을 봤습니다.




이제 그러면 보고를 해야 겠죠?




" 어 프로이센 군이 오네? 이제 보고를 해야지 "



" 근데 보고하기 전에... 옆에 마을 하나만 털고 가자! "




이래서 보고를 나중에 합니다;;




문제는 금방했다가 하면 모르겠는데,




약탈이라는 것도 의외로 시간을 무진장 잡아 먹고, 심지어 프로이센 기동은 엄청나게 빠르죠.




이렇게 골든 타임을 놓친 코사크 기병이 약탈을 끝내고 러시아 군으로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 지금 프로이센 군이 도하 준비중입니다! "




이 소식을 듣자, 도하를 저지하려고 가봤더니 이미 도하를 끝낸 상황이었죠.










7. 제분소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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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프로이센 기동이 얼마나 빨랐는지 보면 지형을 살펴보면...




Y자로 갈라진 강에 러시아 군이 진지를 먼저 구축하고, 코사크 기병이 강 일대를 정찰 중이었죠.




확실히 프리드리히 대왕이 기동은 제대로 잡아놔서,




" 이렇게 방어한다고? 오케이. 난 더 멀리 가면 그만이야~ "




하면서 저렇게 멀리 돌아서 적 뒤로 가서 러시아 군과 싸우기 위해 갑니다.




이때 보면 프로이센 군대가 급히 이동도 했었고,




날씨도 계속 태양이 내리쬐고 있어서 체력이 많이 무리를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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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러시아 군을 쫒아가는 프로이센 군의 상황을 어느 중위의 기록한 게 있습니다.




《 병사들은 행군중에 빵을 먹으며 서둘러야 했고, 가다가 아무 웅덩에서 갈증을 해소했다. 》




아무튼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8월 24일 오후에 오데르 강 지류의 미에텔에 도착합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드디어 오매불망 찾고 있었던 러시아 군을 포착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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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숲이 정말 많았는데, 프리드리히 대왕은 생각을 합니다.




" 내일(25일)에 우리가 공격하면 되겠군. "




왜냐하면 숲이 울창한 지역이다 보니 러시아 군은 프로이센이 온 지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근처 제분소에서 하루 밤을 머뭅니다.




프로이센 군도 아직은 이곳 지리에 밝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던 2명의 임업관리인(숲 관리인)을 고용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2명의 고용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한 명은 기병을, 한 명은 보병에게 길을 안내하라. "




하지만 관리인들은 " 너무 위험합니다. " 라고 해서 거절합니다.




결국 이들의 마음을 꺾으려면 돈으로 혼내주는 것 밖엔 없었죠.




" 그대들이 원하는 돈이 얼마인가? "




이때 얼마 원했는지 기록은 모르겠는데, 확실한 것은 관리인들이 말했던 비용에 3배를 제시해줍니다.




돈으로 혼내주자, 관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 제가 이곳에서 3살 때 부터 뛰어 놀았습니다. 이곳 지리는 다 압니다. "



" 폐하. 저만 믿으십시오. "




어떻게 보면 길을 잘 아는 사람을 고용해서 싸우는 경우가 흔할 것 같은데...




사실 이건 전쟁사에서 봤을 때 많은 위험이 따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가는 길이랑 군대가 가는 길은 전혀 다릅니다.




우선 몇 천, 몇 만이나 되니 이런 대 병력이 갈 수 있는 넓은 길.




거기다가 보급 마차등도 와야하니 일반적은 길은 어림도 없죠.




그래서 전쟁사에서 지역 주민 고용해서 따라가게 하는 방법은 쓰긴 쓰지만 그렇다고 많이 하지도 않습니다.








8. 프리드리히의 건방의 진실





8월 25일. 결전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제분소에서 나오자 말자, 프로이센 장군들에게 이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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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한다 제군들. 우린 이미 전투에서 승리했다! "




이 말을 보고, 또 프리드리히 대왕이 항상 보는 자신감이 나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돌이켜보니 이건 자신감은 아니라고 문득 다시 생각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러시아 군대와 싸울 때 항상 어떤 강박증이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하고 싸우는데...




1차 세계 대전의 타넨베르크 전투에서도 그렇지만, 러시아는 군대를 찔끔 찔끔 보내지 않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대병력을 끌고 오는데, 얘내들을 격멸시킨다는게 정말 부담이죠.




대신 러시아 군은 병력이 워낙 많으니 프로이센 처럼 화려한 기동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 러시아는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걸 뭐라고 하면 비유하면 절묘할 지 모르겠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정말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 한번에 러시아 군을 괴멸 시키는 참사를 만들어야 된다! "



" 이러면 러시아는 전쟁에서 손을 떼게 될 것이다. "




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오스트리아는 몇 번을 깨부서도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바로 병력을 모아서 공격 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프리드리히 대왕은 러시아 군과의 전투 = 사생결단 이라는 마인드로 싸우죠.




하지만 이러한 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장군들에게 " 이겼다. " 라고 말하는데...




이게 바로 리더십입니다.




일반적인 대중매체에서의 리더십의 표현에 대한 연설로는...




" 우린 죽기 살기로 싸워야해! "



" 우린 지옥에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




이런 말을 하는데... 이런 것도 한 두번 해야지, 몇 번 쓰면 씨알도 안먹히죠.




거기다가 특히 왕 같은 가장 높은 사람이 " 죽어도 물러서지마! " 이러면, 정말 싸우다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이걸 듣는 장군 입장에서는 사기가 오를까요 아니면 내려갈까요?




하지만 오히려 프리드리히 대왕의 말 처럼,




" 우린 이미 승리했다. "




이 말이 훨씬 더 듣기 좋고,




그러면서도 " 아, 우린 여기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구나! " 라고 인식도 같이 시킬 수 있는 것이죠.




근데 우린 이겼다라는 소리를 " 프리드리히 또 건방떠네. " 라고 생각하면, 그 장군은 별 때고 물러나야죠.







19.jpg



한편 프로이센 군에는 전 편에 등장했던 제임스 키스 장군이 있었습니다.




키스 장군은 예전에 러시아 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었기에,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말을 합니다.




" 러시아 육군의 실력을 폄하하셔선 큰 일 납니다. "



" 특히 부하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시면 아군이 방심할 것입니다. "




키스 장군의 말에 일부 프로이센 장군들도 동조합니다.




이때 기록에 의하면 《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들으 경멸에 찬 눈빛으로 처다보았다. 》 합니다.










동프로이센 전투 이후, 다시 한번 벌어진 프로이센 vs 러시아.



심지어 이번 전투에선 프리드리히 대왕이 참전한 전투.



이제 프로이센 vs 러시아의 조른도르프 전투가 개막됩니다.



과연 북쪽 전선에서의 승리는 누가 가져갈 것인지.



조른도르프 전투 편에서 끝을 살펴보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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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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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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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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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8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4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4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5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5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0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5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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