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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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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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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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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DUMMY




1. 프로이센의 사관 학교 설립 의의

1.jpg



전 편에 융커의 자식을 거의 납치하여 사관 학교에 꽂아 넣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빌헬름 1세.




지금 우리가 보는 사관 학교는 군대와 전술 등등 각종 고차원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만 이때는 이제는 아니였습니다.




프로이센의 초창기 사관 학교는 기껏 해봐야 초등, 중등 교육으로 가르치는데 지금 온 얘들이 따져봐야 거의 고학년 초등학생 ~ 중학생의 청소년 얘들로 구성이 된 것도 있으며,




그리고 군인이 너무 똑똑하면 말을 안 듣는다는 인식이 있어서 높은 교육을 주입은 안시켰다고 하는 후문이 있다네요.




그럼 단순히 교육만 시킬려고 사관 학교를 세웠느냐? 그것은 단지 부수적일 뿐입니다.






2.jpg



사관 학교를 세운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 동질감 』 부여 시켰던 것입니다.




"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프로이센의 장교다. " 이렇게 하면서 말이죠.




또한 지금 얘들이 납치든 어루고 달래서 왔든, 거의 납치 비스무리하게 했든 간에...




부모님들은 자식이 군대에 있으면 항상 애끓는 것이 부모 마음이죠.




이러다가 자식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군복 입고 뭔가 군기가 있어 보이는 모습에 뭔가 묘한 감동을 받게 되죠.




이럴때 다시 2차 미끼를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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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가 된 융커 자식을 행정 관리로 채용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프로이센은 행정 제도를 완전히 바꿉니다.




재무를 담당하는 재무부를 대신해서 최고 병참국이라고, 듣기만 하면 군대 보급 담당하는...




군대스러운 기관이 처리합니다.




나중에 최고 병참국은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재무 뿐만 아니라 행정, 지방 통제, 세금 수납등.




굵직한 큰 기관이 하는 역할을 병참국이 모두 담당하게 됩니다.




이것 말고도 작전 사령부도 군대 일만 하는게 아니라 각종 국가 사업과 행정 처리 업무도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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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영화를 보시면 간혹 군대에서 12~13살 정도의 어린 나이임에도 벌써 소위 계급장의 장교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배경이 지금 프로이센의 사관 학교 설립의 배경으로 인해서 나온 것이죠.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되면 순환이 되면서, 어린 장교들이 사관 학교에서 " 배움 " 도 있지만,




무엇보다 군대 = 집단 이기 때문에 " 집단 의식 " 을 가장 빨리 깨우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합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장교단이 그렇게 유명했던 이유도 바로 2세기 전부터 뿌리 내린 사관 학교의 배경을 알고 보시면, 후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쉽게 엿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프로이센의 장교 부심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서,




1차 세계 대전때도 보면 독일 장교들이 본인들을 『 독일 장교 』 라고 부르지 않고, 『 프로이센 장교는 마리야~ 』 라고 불렀다네요.







14.png



그리고 전 편에 언급했던 영국은 프로이센의 " 사관 학교 운영 " , " 국가의 사명감 " , " 동질감 " 등등 벤치마킹 했고, 덕분에 영국도 군사력이 증강되었죠.




물론 밑에 있는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죠. 제가 프로이센 장교를 좋게 좋게 말하긴 했지만, 이들을 나쁘게 말하면 군인 패거리들(?) 이 성립되죠.




항상 어느 면에선 좋고, 나쁨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이런 장교들이 프로이센에 깔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장교들이 행정 관료까지 들어오게 되면서,




프로이센의 변화에 대한 유럽은 이렇게 평가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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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프로이센을 병영 국가로 만들었다. 』




처음에는 그럴 의도는 아니였을 수 도 있고, 맞을 수 도 있지만...




이게 점점 나쁘게 흘러가서 군국주의로 되긴 하지만, 아무튼 그건 나중에 일이죠.




지금 프로이센에게 중요한 것은 빌헬름 1세가 원하던 " 강한 군대 " 를 만드는데는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2. 다음 세대를 위한 빌헬름 1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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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에 빌헬름 1세가 키운 군대로 스웨덴이 점령한 남은 포메라니아까지 점령했으니...




그렇게 보면 이제 프로이센은 쭉쭉 뻗어나가는 길만 남은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근데 놀랍게도 강한 군대로 불과도 같은 통치를 했던 빌헬름 1세는 『 화평 정책 』 실시합니다.




아무래도 빌헬름 1세가 보기에는 지금 본인의 국가로서는 딱 포메라니아까지만 나가는 것이 한계라고 느꼈던 모양으로, 1740년에 사망할 때 까지 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대신 그 시간 동안에 빌헬름 1세는 국가 내실을 아주 튼실하게 다져서, 그걸 아들에게 물려줍니다.




그의 전체적인 국가 방향 전략은 상당히 대단하다고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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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키운 알토란 같은 군대와 장교를 가지고 외부로 뻗어나가, 통일을 통일하려고 해봤자...




지난 17세기의 반세기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주변국들의 개입과 견제가 있어 왔으니 이걸 예상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을 통일하려고 한다면?




최소한 프로이센이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혹은 프랑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둘이 합쳐서 공격해 들어 올 수 있으니...




『 최강국들과 동시에 싸워도 견줄 수 있는 군사력 』 이 필요하다는 것을 빌헬름 1세는 알았던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군대 뿐만 아니라, 전쟁을 수행 할 수 있는 재정도 필요합니다.




이걸 다 고려해서 생각해보면, 프랑스 인구는 220만의 프로이센보다 약 10배,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도 몇배는 되기 때문에 군대와 재정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겠죠.




그렇다고 같은 독일의 쪼개진 국가들이 각자 이익에 따라 프랑스 편, 영국 편, 오스트리아 편으로 다 나뉘어져서 프로이센 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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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빌헬름 1세의 최후의 궁극적 사명은 하나로 결집됩니다.




" 내가 죽기 전까지, 유럽 절반과 싸울 수 있는 군대와 재정을 비축하는 것이다! "




빌헬름 1세는 죽기 전까지 프로이센 10만 군대 양성을 목표로 했고, 약 8만의 군대까지 양성하며 거의 목표에 근접했죠.




재정에 대해서도 프로이센이 몇 배 이상은 쭉쭉 키웠는데, 근데 이건 살짝 과장이 들어 갔던 것이, 프로이센은 일반 재정이 전부 군사 재정으로 투입됩니다.




국가 재정이 병참국에서 관리하니 프로이센 재정 액수에 헷갈리는 요소가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도로 만든다고 재정을 쓰는데, 이게 말이 도로인데 사실 군대 이동하라고 만든 길을 닦아 만드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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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업을 군사에 전부 때려박긴 하지만, 재정 20%는 무조건 꼬박꼬박 저축했다고 합니다.




당시 18세기을 다 뒤져보다도 이런 왕은 정말 보기 힘든 왕입니다.




국가 재정 80%를 군대에 몰빵하는 군인왕에다가, 남은 20%는 혹시나 모를 전쟁과 후대에게 프로이센 번영을 위해 저축하는 저축왕까지... 국가로서 빌헬름 1세는 정말 최고의 군주가 아닐 까 싶습니다.








3. 빌헬름 1세의 경제 개혁





마침 경제 부분이 나와서, 빌헬름 1세가 시행했던 경제 개혁에 대해서도 얘기 해보겠습니다.




빌헬름 1세는 경제 개혁을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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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프로이센 + 동 프로이센의 인구 이주.




이쪽 지역은 할아버지때 부터 시작한 개간 사업이 진행 중이었고, 이곳을 키워 보기 위한 일환입니다.




그렇다고 단지 사람만 보내서는 소용히 없습니다.




그 지역의 번영을 위해, 네덜란드 공학자를 고용해서 수로를 파는등 지역 발전 사업을 도모합니다.




이때도 보면 역시나 프로이센이란 국가가 개입해서 일을 진행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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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대의 우리는 국가가 뭔 일에 개입한다고 하면, 자유와 억압 뭐하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저 시대때는 오히려 적극적인 국가 개입이 필요할 때입니다.




아마 프로이센 처럼 국가가 저렇게 모든 것을 다 진행해서, 평민들 삶이나 거주등 모든 것들을 개입하는 것은 아마 어떻게 보면 전 세계 다 뒤져봐도 저런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지어 프로이센은 세금으로 외국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수로 파고, 마을 건설하고, 딴 곳에 사는 사람들을 강제든 아니든 집단 이주 시키는 모습들.




이런 장면은 거의 1800년대 중반쯤에 가야 볼 수 있는 것으로, 굉장히 빠른 시스템을 도입한 셈이죠.




그리고 이 시스템은 프로이센이 모범을 보였고, 그 결과가 상당히 좋았기에 점차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4.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프로이센이 미친듯이 국가 건설로 내실을 다지고 있을 때, 외국에선 대형 사고가 터집니다.




바로 프랑스가 위그노(개신교)를 다시 탄압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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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위그노를 탄압하자, 무려 프랑스 인구 1/4이 도망가서, 타국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근데 제가 30년 전쟁때 말했지만, 개신교들은 당시 상공업자들. 특히 부르주아가 많다고 얘기 했었죠.




그렇게 보고 위그노 탄압을 바라보면, 프랑스 기술자들이 대거 외국으로 유출된 어마어마한 대형 사건입니다.




프랑스에 대단히 귀중하고 우수한 인적 자원 기술자들이 전부 밖으로 도망가자, 프로이센이 가만 볼 일이 없죠.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해서 끌어들입니다.




제가 전 편에 프로이센 인구가 80만 → 220만으로 인구가 증가했다는 얘길 했는데,




단순히 영토(포메라니아)를 확장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위그노등 다양한 이주민 증가로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서/동 프로이센에 정착촌을 세울 때도 이주민들을 받아서 세운 마을이 많았다고 하네요.




세간에 프로이센하면 군복 입고 뭔가 폐쇄적인 이미지가 강할 것 같지만, 의외로 굉장히 개방적인 나라이고, 받아들일 때도 제한적이지 않고 확실히 그 문화를 그대로 수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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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일이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무슨 말까지 하냐면




" 이슬람 인이 온다면, 모스크도 지어주고, 사제들도 데려오겠다. " 라고 하는데... 사실 이건 그냥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만...




그래도 그만큼 확실히 개방하고 수용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지금 현대의 이민 정책을 해도 이렇게 까지 오픈 마인드는 아닌데, 저땐 18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생각했다는 것만 해도 놀랍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지금 독일도 이민 정책에 다른 유럽에 비해 굉장히 개방적이며,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인이 있는 나라가 독일이기도 하죠.




아마 이런게 역사적 경험이 누적되서 생긴 관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프랑스의 위그노를 대폭 받아 들여서, 군대의 2/3이 외국인 용병인데, 그 중에서도 1/4은 위그노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프로이센은 긴 역사에서 볼 때, 프랑스 개입으로 포메라니아를 먹을 2번의 기회를 놓쳤고, 위그노는 프랑스에게 탄압 받았으니,




프로이센과 위그노는 프랑스에 대한 악감정으로 일치단결이 쉬움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5. 폐쇄와 개방이 섞인 기묘한 프로이센








5.jpg



프로이센을 알고, 군대를 보면 정말 웃깁니다.




장교는 융커인데, 융커는 시골 지주 출신이라서 굉장히 배타적인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서로 동료 의식도 강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주민들은 받아들인 데다가, 심지어 전문가가 필요한 일에는 이주민 일부를 장교를 해줄 정도.




어떻게 배타적 + 개방적 = 프로이센 이라는 기상천외한 사회를 만들어낸 미친 짓을 실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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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국가가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단순히 내부 단결만 중요한게 아니라, 다른 민족과 다른 세력도 융화가 필요함을 프로이센이 대표적으로 알려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 개방 " 이라고 하면, 다 개방 해야 할 것 같고,




" 폐쇄 " 하라고 하면, 다 걸어 잠그고 막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이센은 개방과 폐쇄를 묘하게 섞었는데...




평민출신 장교가 들어갈려고 하면, 국가 최고 무공훈장은 탈 정도로, 적도 인정받고, 본인들도 인정은 되야 가능했습니다.




또한 프로이센도 말로는 " 장군은 프로이센이 돼야 해! " 라고 하면서도, 실제론 위그노 출신도 받아들입니다.




대표적으로 빌헬름 1세의 장군 12명이 있는데, 4명이 위그노 출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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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 알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를 보면 굉장히 이룬 것이 많은 왕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제가 그냥 바로 전쟁 본론 이야기를 해도 되지만, 7년 전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의 성장 과정을 알아야 했고, 전쟁때 프로이센이 어떻게 중추적인 역할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것을 모르면 전쟁에 나온 전술과 승리의 배경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1640년부터, 1740년까지. 무려 100년간의 이야기 했음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빌헬름 1세에 대한 얘기를 여기까지만 보면 참~~~ 훌륭한 왕입니다.




그는 아주 탄탄하게 국가를 만들고, 아들에게 물려준 것은 맞습니다.







11.jpg



그런데 제가 지난 빌헬름 1세 얘기 하면서 " 아들 " 에 대해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죠? ㅎㅎ




그리고 지금 연재하는 유럽 7년 전쟁은 빌헬름 1세의 아들이 벌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1740년까지 흘렀고, 유럽 7년 전쟁은 1756년에 벌어집니다.








13.jpg

[ 대충 짤 하나로 설명이 가능한 빌헬름 1세 집안꼴 ]





다음 편에서는 빌헬름 1세의 흑역사, 그의 가정과 아들 『 프리드리히 2세(훗날 프리드리히 대왕) 』 을 얘기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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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3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1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6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7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3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5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3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6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7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1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29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1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3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8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4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28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29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19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7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7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1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2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0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3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3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3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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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4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2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8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48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1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29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7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29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6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4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69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5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4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2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0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3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7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7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2 1 16쪽
»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4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1 0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4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2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6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3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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