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1. 폭풍의 18세기
이제 시대는 18세기 유럽으로 접어들었습니다.
17세기에 벌어진 유럽 30년 전쟁과 영국 내전 등등.
그 시간 동안에 유럽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전쟁으로 황폐화가 되었습니다.
독일은 30년 전쟁으로 그때 당시만 보면 거의 회생불가에 가까울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죠.
이런 상황속에서 과연 유럽 국가가 30년 전쟁급으로 다시 전쟁 수행이 가능할 지 가늠이 안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픽션을 능가한다는 얘기 처럼.... 사람과 재정. 모두 피폐해질 정도로 궁핍함을 몰아갔음에도 불구하고....
30년 전쟁보다 훨씬 규모가 커진 거대한 전쟁의 서막. 유럽 7년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역사적 흐름만 보면 7년 전쟁은 30년 전쟁과 이어져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해서 접했고, 자료 조사 중에 많은 분들과의 토론에서도 그런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시선으로 보자면 17세기 전쟁과 18세기 전쟁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17세기 전쟁은 『 총과 대포의 등장 』 하게 되면서 『 전술적 변화 』를 이룩했고, 군인도 새로 개편되면서,
그 결과 유럽 30년 전쟁과 잉글랜드 내전을 보시다시피, 『 많은 재정이 필요한 전쟁 』 되었습니다.
[ 18세기의 대표적인 군대, 전열 보병 ]
18세기 전쟁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군대와 전술을 토대로, 『 국가 단위로 군대 편성 』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국가 중앙 정부가 직접 『 조직, 재원, 보급 』 담당하게 된, 즉 국가 행정망이 더 확대되고 커져갔다는 얘기죠.
그럼 17세기는 안그랬냐면, 살짝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중앙 정부가 그렇게 하려고 " 노력 " 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방 정부 혹은 지방 영주가 그 몫을 담당도 했던지라 완전히 국가가 완벽한 통제로 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30년 전쟁을 보다시피 승리를 해야하는데, 군대 지휘관들이 본인 이익에 따라 전쟁 수행을 소극적으로 하냐, 적극적으로 하냐등 상당히 중구난방적이었죠.
하지만 18세기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이제 국가가 직접 군대를 키우고, 직접 지휘하여 멀리 보내면서, 아주 큰 스케일의 전쟁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그 예시로 인도 제국 식민지에서 차출한 인도 병사들을 북미로 파견까지 가능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점점 더 스케일은 확장되면서, 스케일의 끝장판. 20세기의 세계 대전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30년 전쟁에선 모집한 병사들 중에 머스킷을 가지고 있디면 머스킷 병이 되고 그랬죠.
하지만 18세기 부터는 국가에서 상비군을 조직해서, 국가가 무기를 지급해주며, 이때부터 통일된 유니폼(군복)이 지급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군대의 모습과 비슷한 것을 보아 국가 시스템적이 상당히 발전됐다는 것을 미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2. 18세기는 절대 왕정의 시대?
제가 군대 얘기를 쭉 했지만,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18세기는 절대 왕정의 시대!
그리고 절대 왕정의 2가지 특징.
관료제와 상비군.
이와 대비되는 것이 귀족제와 봉건.
제가 학교에서도 이렇게 배웠던 것 같은데, 이게 왜 중요한지 살펴보면....
관료제와 상비군 등장 → 국가 권력과 군대 능력 커진다라는 것이죠.
여기서 한가지 드리고 싶은 말은, 절대 왕정을 말할 때,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때 절대 왕정 = 현재 국가 개념(중앙 정부 통치)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개념이 정의되고 만들어지기 까지는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절대왕정하면 대표적으로 프랑스라고 생각하시고,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배웠죠.
특히 태양왕 루이 14세의 어록, 《 짐이 곧 국가다. 》
이걸 가지고 프랑스 = 절대왕정 이라고 하시지만, 실제론 안 그랬습니다.
단지 『 18세기에서 부터 절대 왕정이 시작되는 과정 』 이었죠.
그냥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 왕정으로 왕의 한마디로 다 이루어지는 모습은 아니였다는 것아니라, 절대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3. 절대 왕정으로 가는 길
이렇게 절대로 가는 길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말하게 될 유럽 7년 전쟁을 두고 이야기해보자면,
《 프랑스 타입 》 , 《 프로이센 타입 》 로 대표적으로 2개로 나뉘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타입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입니다.
이걸 쉽게 말하면 관료제와 상비군을 만들어가는 방법에 차이,
귀족과 봉건, 귀족 군대를 누르고 국가의 군대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달랐다는 것이죠.
그들이 향해고자 했던 이상은 같았지만 과정도 다르고, 결과도 틀렸습니다.
4. 30년 전쟁 이후의 유럽 상황
절대 왕정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지금 현실 사정은 유럽 30년 전쟁이다 뭐다 하면서 유럽 전 국가는 전란에 휩쌓였습니다.
유럽 전역은 백성, 귀족, 왕, 토지, 도시 등등 사람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모든 것이 피폐해졌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군대를 만든다?
그럴려면 " 국가 안정과 돈이 필요한데, 그럴 여력이 있었을까? "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만...
제가 위에서 유럽 전역이 피폐해졌다 라고 크게 강조하느라 제대로 수습조차 못하고 다시 전쟁이 터진 것 처럼 얘기 한 것 처럼 말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30년 전쟁은 1648년에 종결되었고, 북방 전쟁등도 이미 다 끝났습니다.
이번 유럽 7년의 시대는 1700년대 초반으로 거의 30년 정도의 차이가 있었기에 어느정도 전란의 상흔에 아물 정도는 됐던 시기인 것은 맞습니다.
이때쯤 되면 세계 식민지를 크게 확장하며 재정을 확충하는등 2세대에 걸쳐서 복구하던 흔적이 많이 있었죠.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100% 복구가 되진 못했고, 또한 재정을 어느정도 보유했다 하더라도 국가가 세금만으로 모든 것을 커버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대가 만들어지고, 국가 통제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아직 아기들의 걸음마 수준 정도의 상황을 판단해서 유럽 상황을 인식하시면 될 듯 보입니다.
5. 프랑스 타입의 절대 왕정과 한계
제가 위에서 잠깐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그의 어록에 대해 잠깐 언급했습니다.
30년 전쟁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결국 전쟁의 최고 반사 이익을 받은 국가는 프랑스였고, 훗날 몇 번의 전쟁을 걸쳐 유럽의 최강국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이 프랑스가 가장 강력한 나라로 우뚝 선 이유는, 당대 유럽 국가중에 최대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17세기에는 약 2천만명, 18세기 후반에 프랑스 혁명(1789년)때는 2천 800만명이었습니다.
이때 프랑스 인구는 러시아 보다 많은 숫자였습니다.
다만 이것에 대해 다소 분분한 의견이 있는데, 기록에 누락된 인구. 특히 러시아는 워낙 척박한 지역이 많다보니 제대로 조사가 안된 것을 가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유력한 세력이던 영국(그레이트 브리튼), 그리고 신흥 강국이었던 네덜란드이 프랑스 인구수에 절반밖에 되질 못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30년 전쟁에서 프랑스는 모두가 지친 마지막에 참전했기에 국고와 병력을 온건히 유지되어, 이것이 18세기까지 유지되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런 프랑스의 아주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 짐이 곧 국가다. 』 라는 말의 본질적인 해석은....
《 프랑스 국력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과 절대 왕정에서 가장 앞서간 나라. 》
프랑스가 제일 앞서 절대 왕정의 선두주자였기에, 전에 절대 왕정의 두가지 타입중에,
프로이센 타입도 사실 까놓고 말하면 프랑스 타입을 벤치마킹 + 본인들 입맛으로 마개조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종합적으로 프랑스의 절대왕정 타입을 제대로 알아야, 프로이센 타입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절대 왕정은 시작이지,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 짐은 곧 국가다. " 말은 굉장한 자부심이 담긴 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결정적인 한계도 존재했습니다.
왕은 개인이고, 국가는 전체죠.
근데 프랑스는 그 개념을 헷갈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념을 헷갈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더 서술하자면,
절대 왕정으로 인한 국가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면서 모든 이들이 생각합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가 성장하고 다양한 계층이 등장하면서 조직력이 증가하다보니, 군대가 커졌다는 것을 압니다.
관료들은 " 국가와 행정력을 키워야 한다 " 라고 인정하면서,
나라를 지키든 정복을 하던, 어째거나 군대를 강력하게 키울려면, 군대 조직을 강력하게 만들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도 지난 17세기에서 결론이 났습니다.
또 하나로 17세기 부터 해서 상공업과 부르주아들이 성장하면서 귀족들 뿐만 아니라 같은 계층등에서 모두가 충돌하게 되면서 사회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그럼 이들의 충돌을 해결하고 관리해줄 조직도 같이 커져야겠죠.
과거에는 중앙 정부가 지방 통제와 세금 확보 때문에 참견하려 해도, 계층들이 " 우리가 알아서 할 때니 간섭 NO! " 라고 거부했습니다.
근데 이 계층이 단지 위와 아래만 있거나, 계층이 몇 개 안될 경우에는 상관이 없는데, 그런데 이제 사회는 복잡해지면서 같은 계층, 같은 신분, 같은 직종이라도 다 서로 충돌하다보니
오히려 본인들의 손해가 극심해지니까, 차라리 자신들을 관리해줄 조직(국가)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중앙 정부가 억지로 한 것도 아니고, 다 본인이 그렇게 느꼈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죠.
그런데 프랑스는 여기서 헷갈렸다는 것입니다.
『 왕의 사적 권한 확대인 것인가? 』 아니면 『 국가의 공적 권한 확대인 것인가? 』
그래서 이것에 대한 " 짐이 곧 국가다 " 라는 말 → 국가의 공적 기능만 전부 하지 말고, 내(왕) 권력도 쓸거야~ 라는 것이고,
이 모든 상황을 중의적인 표현으로 쓴 것이 짐이 곧 국가다 라는 것으로 썼을 겁니다.
6. 국가 군대? 귀족 군대?
위의 프랑스 얘길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거에는 봉건 영주가 자기 군대를 보유했기에 지휘관도 본인이었죠.
하지만 국가가 군대를 만들었기에, 지휘관(장교)을 국가가 선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로버트 라는 사람을 중대장 증명서를 주면, 이게 약간 30년 전쟁과 비슷한데....
중대장 로버트가 도시와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중대원들을 모집합니다.
" (증명서를 보이며) 난 이런 사람이다! 내 밑으로 오고 싶으면 와라! "
하면서 말이죠.
근데 가만 보면 이게 국가의 군대라기 보다는 귀족 군대와 비슷해 보이죠.
그러면서도 귀족 군대와 다른 것이, 지휘관이 병사 모집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귀족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들도 장교로 들어옵니다.
이 치열한 장교들간의 경쟁 속에서 왕은 돈을 받으며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왜 돈을 받냐면 지휘관(장교)로 들어갈 때 뇌물..... 뭐 당시엔 뇌물이 아니라 그게 당연한 거지만 아무튼 돈을 주고 임명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관리가 들어 가긴 간 것 같은데, 국가의 공적 관리인 것인지.... 왕의 사적 관리인지 헷갈립니다.
위의 모집 방식을 다시 총 정리해보죠.
1) 봉건 영주는 본인 영지의 기사들과 농민들로 군대를 조직.
2) 우리가 아는 현대적 상비군은 전국의 사람들을 뽑아서 군대를 조직.
3) 이때의 군대를 조직은 국가에 임명받은 장교에게 증명서를 주면, 해당 장교가 지역 상관 없이 돌아다니며 상비군 처럼 뽑는 시스템과 그 권리는 왕이 하사.
으로 정리를 할 수 있을 듯 보입니다.
3)을 보면 진짜 국가 권리인지 왕의 권리인지 애매하네요.
이 때문에 프랑스는 어떻게 되냐면, 귀족들이 하는 재판이 있습니다.
근데 이 귀족 재판 → 해당 지역 영주들이 주도하는데, 이건 봉건제죠.
그래서 왕이 우리나라로 따지면 도지사 같이 행정관을 파견합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 일반적인 생각으론 귀족 재판이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닙니다.
우선 같이 공존을 했다가, 서서히 잠식시켜셔 누르게 한 것이죠.
위에 말했지만 절대 왕정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일사천리로 다 팍팍 쳐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간이 필요했죠.
이때 도지사 같은 고위 관직들은 중대장 처럼 절대 매관매직은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다른 잡다한 것은 매관매직)
조선 같은 경우에는 이걸 엄하게 해서, 이조판서 / 호조판서 / 포도대장 등등. 누가 봐도 국가 공무원(일반 관직)으로 보이는 직군 뿐만 아니라.
수라간 같은 왕실 주방장이나, 왕실 청소부 등 같은 직군을 왕실 관리라 불렀는데, 이들도 철저하게 엄격히 가려 뽑았습니다.
그래서 왕실 관리는 일반 관리와 아주 차이를 두어, 절대로 일반 관리로 이직을 못 시키게 했습니다.
궁중 보안등 여러 중요한 기밀로 인해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런데 프랑스는 그런게 아니라 진짜 중요한 자리를 제외하면 왠만한 것들은 그냥 다 매관매직을 성행했죠.(잉글랜드 내전에도 비슷한 얘길 했었죠.)
프랑스의 매관매직이 얼마나 성행했던지, 왕실 수입에 38%에 달했다고 기록될 정도였죠.
그럼 이 관료들의 세금은 어떻게 줬을까요?
바로 국가에서 걷은 세금으로 지불합니다.
이러다보니 국가 관료들인데 왕이 멋대로 매관매직하는 형태가 과연 이 관료들을 국가 관료인가? 아니면 왕의 관료인가?
그리고 이들에게 주는 월급을 국가에서 내는데, 사람을 뽑은건 왕이 뽑은 것인고....
이러니까 진짜 국가 권리와 왕의 권리가 헷갈릴 수 밖에 없는 구조네요.
이걸 방지하려면, 왕이 자기가 만든 개인 회사의 수익으로 왕실 관료를 뽑고, 월급을 줬다면 헷갈리지 않겠죠.
근데 관직을 팔면서, 세금을 걷어 월급을 주면서 마구잡이로 이것 저것 하다보니,
프랑스는 국가와 왕의 권한이 뒤섞인 형태가 되었습니다.
만약 잉글랜드 내전에서 봤던, 의회가 프랑스에 있었다면... 아니면 다른 견제 세력이 있었다면...
이런 복잡한 지경까진 내몰리지 않았을 수 도 있겠지만, 프랑스 왕실은 이 시기에는 별 다른 견제 세력이 없었던 것이 아주 큰 이유일 것입니다.
단 프랑스 의회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큰 힘은 없었고, 사실 의회와 왕실이 서로 뒤에서 짝짝꿍했던 지라 큰 의미도 없었습니다.
더 재미난 점은 세금도 입찰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국가라 한다면, 세무 공무원은 정말 중요한 조직이죠.
조선 같은 경우에는 반드시 조정에서 제대로 확인되고 공인된 관료가 세금을 걷지, 사적으론 절대로 못하죠.
그래도 향리들이 몰래 횡령한다 이런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걸 대놓고, 그리고 국가 재정을 크게 흔들 만큼 저지르진 않습니다.
근데 프랑스는 세금 걷는 것을 입찰시킵니다.
쉽게 상황을 예시 하자면....
" 세금 걷을 사람~~ 나에게 백만원만 주면 그 지역에 댁이 알아서 세금 걷으세요~ "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어마어마한 악습이 낳을 것이라곤 누구나 뻔히 아는 사실.
그 악습 중에 하나가, 미리 돈을 내고 세금 권리를 얻었으니, 미리 낸 돈과 세금 걷는 액수와 당연히 차이날 수 밖엔 없겠죠.
얼마나 차이가 났나면 일단 기본 2배는 물론이고, 더 악착 같이 쥐어짜면 몇 배. 몇 십 배는 쭉쭉 올라갑니다.
만약 그 지역에 2000만원의 세금을 걷으면,
선 지급한 백만원 + 걷은 세금에 백 만원으로 내고, 나머지 18000 만원은 본인이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과연 프랑스 왕실이 이걸 보고 용납했냐가 더 신기한데, 오히려 이들에게 돈을 받는 왕실은 상관이 없었다더군요.(내 몫만 들어오면 노 상관~)
심지어 원래 받아야할 세금에 2/3이 사라짐에도 말이죠.
그런데 웃긴 건, 그래도 다른 유럽 왕실은 프랑스를 아주 부러워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천만 명의 인구에서 1/3 세금만 거둬도 이미 다른 유럽 왕실 수익을 압살하니까요.
더 간단하게 말하면 프랑스는 국가가 튼튼하고 잘 사니까 이럴 수 있다는 것이죠.
굳이 예시로 들자면, 내 회사가 삼성인데 굳이 사내를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이 쓰는 볼펜이나 화장실 휴지까지 아껴라라고 하면 좀 그렇죠.
아마 프랑스가 바로 이 비유에 대표적인 상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우린 제일 잘나가! " , " 우린 유럽에서 1등이야! " , "내 할당량만 가져오면 다 OK. 적당히들 해먹어~ "
프랑스는 이런 식으로 절대 왕정과 국가를 만들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가진자의 여유네요.
프랑스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부득이하게 프로이센 타입의 절대 왕정을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프로이센의 절대 왕정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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