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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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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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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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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DUMMY



1. 점점 다가오는 프랑스







1.JPG



1757년 3월.




프랑스 군대가 본격적으로 이동이 시작됩니다.




프랑스 군이 순차적으로 병력을 계속 진출시키다가, 나중에 결정적인 대규모 병력을 파견합니다.




무려 10만 명의 병력이 집결해서 하노버 쪽으로 이동합니다.




프랑스 대군이 이동하는 시기. 영국에 있던 하노버 파견 부대는 아직 복귀를 안 한 상태.




그러자 하노버는 발 등에 불이 붙었으니 국내 있는 장병 뿐만 아니라 외국인 용병들까지 박박 긁어 모아




하노버는 약 37,000 명까지 모으게 됩니다.




거기다가 프로이센 지원군 10,000 까지 포함하니.




도합 약 47,000 명 정도 되겠네요.




이게 참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항상 프로이센 쪽은 2배 병력의 열세로 매번 싸우는 것 같네요.




하노버/프로이센 연합군에 대해 설명 드리면.







2.jpg

[ 윌리엄 오거스터스 ]





연합군의 사령관으로 영국의 조지 2세 아들.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이 임명됩니다.





이때 조지 2세가 아들에게....





" 절대로 공세로 나서지마라! "




" 하노버만 지키면 되니, 방어에만 전념하라! "





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조지 2세의 당부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죠.





연합군 입장에선 하노버를 잃으면 만사 땡.





그냥 지키는 외에는 별 다른 방도가 없었으니까요.





1757년 4월. 프랑스 군이 라인강을 건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하노버 정찰대가 지켜봅니다.







3.jpg



하노버 정찰대가 보낸 보고서에서는...




" 지금 프랑스 군은 10만 명이다. "



" 주둔지 캠프 치고 강을 건너려면 한 달은 걸릴 것이다. "




근데 이런 예상을 깨고, 프랑스 군은 보름 만에 도강을 시작합니다.




하노버 정찰대의 후속 보고서를 본 컴벌랜드 공작의 윌리엄은...




" 진짜라고? 그럴리가 없는데!? "



" 어쩔 수 없다... 이제 전투는 피할 수 없겠군. "




라며 하노버에서도 전투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1757년 5월 1일.







4.jpg



【 오스트리아 】 ==== 2차 베르사유 조약 체결 ==== 【 프랑스 】




다시 한번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간의 2차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됩니다.




2차 베르사유 조약이 뭐냐면,




『 프랑스는 10만 명의 병력 동원 하고, 오스트리아가 2,250만 루브(약 3억 4천만 달러) 제공 』









2. 하노버를 노리는 프랑스의 속내








1.JPG



이제 한창 프랑스가 하노버를 노리러 진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는 하노버에 10만의 병력을 보낼 정도로 목숨을 걸었던 걸까요?




유럽 7년 전쟁의 국가들끼리 다 저마다 원하는 이익과 속내가 있었고,




프랑스도 자신들만의 꿍꿍이가 있었습니다.




『 하노버를 차지하면 영국이 가지고 있는 식민지와 교환할 수 있겠지? 』




이렇게 프랑스가 지금 북아메리카 식민지 전쟁에서 열세에 놓여, 하노버를 차지하여 그 흐름을 주도하겠다는 뜻이었죠.




하지만 훗날에 군사 학자들은 이런 프랑스 행동에 비판을 합니다.




" 차라리 그 돈으로 함대나 만들지... "




사실 지금 우리는 결과를 다 아니까




" 영국 해군이 강하다"



" 프랑스는 바다에선 상대가 안된다. "






6.jpg



라고 하지만, 사실 프랑스도 함대 재건하며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했습니다.




결코 영국과 비교해서 무시 받을 정도로 해군력이 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할 때 부터, 바다에 쓸 돈을 육지에서 쏟아 붓고 있었죠.




이게... 지금 프랑스 사람들 입장에서는 식민지가 아니라, 유럽 본토에 전부 투자하는 바람에




루이 15세가 프랑스 사람들 한테 그렇게 욕을 먹는 것이죠.




아무튼 다시 서유럽 하노버 전선으로 돌아가서.




[ 영국의 해외 식민지를 뱉어내려는 ] 프랑스 VS 프로이센 [ 영국 재정 지원 + 프랑스의 동유럽 전선 지원 막기 위함 ]




각자의 목적에 따라 서유럽 전투가 시작됩니다.








3. 하스텐벡 전투 1막 : 아마추어들의 싸움







7.JPG



네덜란드와 하노버 중간 위치에 있는 브렉웨데.





이곳에서 프로이센/하노버 연합군(이하 연합군) 이 프랑스 군과 전투 준비를 합니다.







8.jpg

[ 수비즈 공작의 샤를 드 로앙 ]





당시 프랑스 지휘관은 수비즈 공이었습니다.




수비즈 공은 먼저 별동 부대를 보내어 연합군의 보급로를 차단합니다.




연합군 입장에선 예상치도 못했던 공격이었는지, 브렉웨데에서 철수 결정을 내립니다!




연합군이 하노버로 퇴각하는데, 프랑스 군이 먼저 앞질러 막아버립니다!




상당히 의외입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준 프랑스 군인데, 상당한 선전을 보여주네요.







9.JPG

[ 하스텐벡 전투 배치도 ]





아무튼 연합군을 바라보는 하스텐벡 언덕에서 프랑스 군은 포대를 설치합니다.






§ == 프랑스 병력 == §



- 보병 : 50,000 명


- 기병 : 10,000 명


- 대포 : 68 문



:: 총 병력 : 60,000 명 ::



§================§






§ == 연합군 병력 == §



- 보병 : 30,000 명(+추가 병력 포함)


- 기병 : 5,000 명(+추가 병력 포함)


- 대포 : 28 문



- 총 병력 : 34,500 명



§================§







10.jpg



7월 26일 오전 3시 부터 프랑스 군이 진격합니다.




이때 전장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워낙 전투가 새벽 3시부터 시작되서 아침까지 이어졌는데...




우선 양측 군대는 실전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전투 도중에 서로간에 피아식별에 구분을 못해서 아군에게 서로 오인 사격하고 난리가 났죠.




피아식별이 왜 안되는지 생각해봤는데 서로 군복이 틀리다고는 하지만 꼭두 새벽이라 잘 안보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쪽에만 일방적인 오인 사격의 실수가 벌어진 것이 아닌, 양쪽 모두 오인 사격의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럼 가장 유리한 쪽은 누굴까요?




당연히 숫자가 많은 쪽이 좀 더 유리하겠죠.







2. 하스텐벡 전투 2막 : 열병기 시대에 최악의 대형








11.JPG



한편 연합군의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이 했던 병력 배치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지금 프랑스는 언덕을 점유하고 있어, 지형적으로 유리합니다.




지난 편에 프라하 전투 및 콜린 전투에서의 프로이센을 보시면




적이 언덕 위로 화망을 구축했으니, 그것을 피해서 측면으로 이동하거나 하며 공략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합군은 당연히 프로이센이 아니기 때문에 측면 이동이 힘들었죠.







12.JPG



결국 윌리엄은 병력 대형을 동그랗게 뭉쳐 배치했습니다.




근데 이러면 중앙에 대포가 맞을 경우 부대 전체가 녹아 없어질 위험이 매우 다분히 컸죠.




그래서 휘하 지휘관이 윌리엄에게 왜 이런 배치를 했는지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답합니다.




" 이렇게 뭉쳐놔야 사방에 오는 적을 격파할 수 있다! "




마치 진을 설명드리면 원형진을 짜서 싸운다는 방식인데...




근데 원형진은 속은 비어있어야 하는데, 이건 속이 가득 찬 원형진이라는게;;;




프랑스 군도 적의 대형을 보고 판단을 합니다.




" 우선 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 삼아 뒤를 쳐 봐야겠다. "




라고 생각하여, 4개 용기병 부대를 보내어 후방 공격을 합니다.




그리고 후위 공격에 연합군이 제대로 당황하며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죠.




이게 상황이 어떻게 진행됐냐면...







13.jpg



우선 첫번째 공격은 잘 막아냈습니다.




근데 2차 공격이 시작되자, 첫번째 공격에서 너무 많은 탄을 소비해 버립니다.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데, 실전 경험을 많이 해 본 부대는 적절히 탄을 사용합니다만.




아쉽게도 연합군은 실전 경험이 없었기에 그냥 무작정 냅다 포를 갈겼던 것이죠.




그러다가 두번째 공격에서는 결국 탄약이 전부 소진됩니다.




그런데 전쟁사에 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덕에서 수비하고 있던 병력이 대포 탄약이 떨어지면 급격히 무너지는 경향이 종종 보입니다.




이게 왜 그런지 살펴보니




사실 17세기 ~ 19세기 시대에. 사실 대포로 전투를 거의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총에 대한 비중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총은 25미터에서 적이 와야 싸우는 것일 뿐이고,




대포로 한창 싸우다가, 포가 떨어지면 그때부터 초근접전이 개시됩니다.




또한 원형진을 하면 사격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14.jpg



이때 시대가 괜히 라인 배틀을 하는 게 아닌 것 처럼




원으로 싸우면 발사되는 총이 얼마나 될까요.




심지어 25미터 앞에서 말이죠.




아무튼 대포 탄약이 떨어지자, 포병들이 가장 먼저 도망치기 시작하자 프랑스 기병대는 다시 한번 공세를 펼칩니다.




남은 연합군 병사들은 그래도 결사적으로 싸우며 저항을 합니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느낀 컴벌랜드 공작의 윌리엄은 퇴각 명령을 내립니다.




근데 저렇게 안에 가득찬 원형진에서 부랴부랴 도망친다고 생각해보면.... 저게 잘 될리가 없죠.




결국 연합군은 패배하고, 조지 2세의 아들이었던 윌리엄마저 포로로 잡혀버리며 전투는 끝나게 됩니다.








3. 하스텐벡 전투 결과






§ == 프랑스 병력 == §



- 전사자 : 1,000 명


- 부상자 : 1,200 명



§================§





§ == 오스트리아 병력 == §



- 전사자 : 311 명


- 부상자 : 900 명



- 실종자 : 200 명



§================§







11.JPG



전투 결과를 보시면 다른 의미로 암담합니다.




프랑스 군이 50,000 명. 연합군은 30,000 명의 대군이 붙었는데도 저런 낮은 수치의 교전 비용이 나왔다는 것은...




양측이 얼마나 잘 못 싸웠는지, 훈련도가 얼마나 형편 없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가 아닐까 싶네요.




심지어 저 교전 비용도 사실 따지고 들면 아군 오인 사격으로 인해서 생긴 사상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한심한 전투가 종종 보였기에 세간에서도 이런 말이 떠돌았다 하는데...




프랑스 군 = 훈련 하나도 안 된 군대.



독일 군 = 지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




라고 불릴 정도로 하니...







2.jpg



특히 컴벌랜드 공작이 배치했던 미스터리한 병력 배치에 대해서도 크게 화자가 됩니다.




프로이센 쪽에서 어떤 얘기가 나오냐면....




" 도대체 컴벌랜드 공작이 이렇게 배치했는데, 밑에선 이런 배치에 대해서 누가 한마디도 얘기를 안했는가? "




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프로이센은 이런 결과를 돌출합니다.




『 진언을 하는 머리를 가진 지휘관과 병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




굉장히 신랄한 비판입니다. 타국이 이렇게 까내릴 정도로 한심하게 봤다는 것은 굉장히 치욕적입니다.




하지만 비록 말은 자극적이지만, 내용 핵심은 정확합니다.




분명 어떤 이는 이런 배치에 대해서 의구심 혹은 반대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 안돼. 하지마 " 라고 말할 수 없는 군의 구조였다는 것이죠.




프랑스 군대는 여전히 【 귀족 / 신분 】 의해서 움직이는 군대였습니다.




반대로 프로이센의 경우에는 【 *참모 제도 】 가 있죠.



* 프로이센(훗날 독일)의 참모 제도


- 장교들이 상급부대와 협력하며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능력과 권한을 가지게 된 제도.




하지만 프랑스는 그런 조직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가 바로 하스텐벡 전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프랑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유럽 국가들도 똑같았죠.




그걸 비교해 볼 때, 프로이센 군은 정말 앞서 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사방에 포위된 프로이센





다시 하스텐벡 전투 이후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하스텐벡 전투의 패배로 뿔뿔이 흩어진 연합군은 별 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9월 8일에 포로가 된 컴벌랜드 공작의 윌리엄과 프랑스 군은 【 클로스터르제벤 협약 】 을 맺습니다.




협약의 내용은 전쟁 포로를 교환하고, 하노버에서 영국 군과 프로이센 군이 완전 철수한다는 내용으로




하노버는 완전히 프랑스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15.JPG



이제 서쪽은 프랑스. 남쪽은 오스트리아. 동쪽은 러시아. 북쪽은 스웨덴.




정말 사면초가에 빠진 프로이센.




이렇게 되면 영국은 프로이센을 도와서 직접 병력을 파견해서 하노버를 되찾는지 해야 할텐데.




영국 의회에서 서로 갑론을박 설전을 벌입니다.




" 하노버를 구해야 해! "



" 대륙에 간섭 하면 안돼! "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심지어 프로이센에 대한 재정 지원도 사실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영국 입장에선...




" 우린 식민지가 있는데 왜 대륙 일을 간섭해? "




라는 의견이 굉장히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죠.







16.JPG

[ 윌리엄 피트. 제 1대 채텀 백작. 大 피트. ]




하지만 영국의 재상중에 유명한 인물이었던 【 윌리엄 피트 】




윌리엄 피트와 아들이 모두 재상을 해서, 아버지를 大피트, 아들을 小피트 라고 부르는데.




아버지였던 大피트는 요즘 말로 그를 표현하면, 대 세계 전략가였습니다.




『 우린 프리드리히를 지원해야 하고, 유럽 대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




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여론을 압박시킵니다.




이렇게 서로 말이 다른 영국 의회였지만, 공통으로 인정된 부분은 있었습니다.




" 영국군은 보내지 말자... "




그럼 육군을 제외한 영국이 가진 전력은 해군 밖에 없으니, 해군으로 해결해 볼려고 합니다.




프랑스 해안과 항구들을 마구잡이로 때리고 부스며 괴롭히면 프랑스에게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었죠.




그래서 출항을 하려고 하는 찰라!




때마침 폭풍우가 불어 닥칩니다.







17.jpg



영국 의회에선 해군들에게 " 언제 출항 할 수 있냐 " 라고 계속 전령을 보냈는데....




이때 영국 해군도 별로 나가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 날씨를 보아하니... 한 달은 족히 걸리겠습니다. "




한 달은 조금 뻥튀기 일 순 있지만 그래도 전혀 근거 없이 내뱉는 변명은 아닙니다.




함대 보급품을 싣고 나르는데 2주가 걸리기 때문이죠.




아무튼 영국 의회에서 한 달씩을 기다려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현재 대륙 상황을 지켜 보기로 결정하며.




이미 해군으로 공격하기로 의회에서 결정을 내렸기에 다른 방법을 쓰는 것에 결정을 번복하지 않습니다.




지금 어떻게 보면 영국은 완전히 발을 뺀 것으로, 프리드리히 대왕에겐 지금 굉장한 위기가 다가온 것입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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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4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8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0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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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5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5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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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0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7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5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5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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