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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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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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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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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DUMMY



1. 프랑스의 무모한 계획







1.jpg



지난 편에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동맹을 격파하기 위한 거대한 전략을 세웁니다.




하지만 실상 속내는 오스트리아령 플랑드르를 먹기 위한 시선 분산용이었죠.




플랑드르는 해안가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프랑스 군이 해안길로 따라가면 영국 해군에게 공격을 받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재커바이트 반란을 유도하며 영국이 최대한 유럽 본토 개입을 저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 내부에서도 이런 계획에 비판을 하는데,




"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영국 해군이 안 올 것인가? "




" 지금 해외 식민지 전쟁하느라, 프랑스 항구 대부분은 무방비 상태다. "




" 차라리 찰스 에드워드를 스코틀랜드르 보낼 돈으로 배를 만드는게 낫다. "




" 그러면서, 프랑스 군이 이탈리아로 파견보내면, 알자스 로렌 방면의 오스트리아 군도 같이 갈 것인데, "




" 이렇게 되면 그곳 국경은 텅 비어있는 상황에서 저건 어떻게 할 것인가? "




" 마지막으로 사방에서 전쟁을 벌이면, 과연 플랑드르를 먹었다고 과연 우리에게 남는 장사인가? "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2.jpg



그런데 아무튼 루이 15세가 직접 친정한다고 하니, 프랑스 국내에서 인기가 급상승 되는데, 노래도 부르고 난리가 났다고 하네요.




루이 15세가 직접 친정한다는 것에, 어떤 혹자는 " 이제 정권을 잡은 루이 15세가 본인의 지지 기반을 닦기 위해서 " 라고 하는 의견도 있더군요.




루이15세가 저런 목적이 있다 하긴 해도...




최소 병력 구성만 90,000 명을 잡았고, 사방에서 전선을 펼치는 것은 내거는 판 돈이 너무 컸죠.




그리고 프랑스가 계획한 뜻때로 수월하게 진행 됐더라면... 전쟁은 유럽 7년 전쟁까지 안 갈 수 있었을 겁니다.




예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원대한 계획은 시작부터 삐걱거린 것이죠.







2. 실패한 프랑스와 위기에 빠진 프로이센







3.JPG



오스트리아가 당연히 프랑스 국내에 스파이를 심었을 것이고, 이 계획을 알게 됩니다.




총 사령관이었던 로트링겐 공작의 카를 알렉산더가 기습적으로 라인강을 건너, 필립스부르크를 함락시킵니다.




필립스부르크를 함락되면, 프랑스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알자스 로렌 지방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지금 자기 앞마당 멀티를 내주는 격이 되고 만 것이죠.




이렇게 되자, 프랑스는 플랑드르로 가던 군대를 알자스 로렌 지방으로 되돌립니다.




또한 이탈리아 방면에서도 프랑스에게 안 좋게 돌아갑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프랑스 계획이 성공시킬려면, 스페인 군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페인 군은 오스트리아 군에게 격파 당해서 지리멸렬된 상태였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프랑스는 " 내가 공격할 때, 같이 도와줘! " 라고 대사를 보냈는데, 스페인 군은 거절합니다.




그럼 왜 프랑스가 스페인의 도움이 절실했는가?







4.JPG



프랑스가 지나가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 알프스 산맥 남쪽인데, 이곳은 정말 전쟁하기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가 전쟁을 치룰려고 했던 지역도 이탈리아라기 보다는 알프스에서의 싸움이었고,




이탈리아에 상주하는 스페인 군이 내부에서 협조를 받아 수월하게 전쟁을 하려고 했던 것이죠.




이탈리아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면 포기하면 참 좋겠지만....




이미 군사를 일으켜서 칼자루를 뽑았는데, 다시 넣기에는 한참 때를 놓쳤기에....




프랑스 단독으로 알프스 산맥 방면을 공격했다가, 요새 공략에 실패합니다.




프랑스 기록에 의하면, 아주 영웅적인 전투라고 하는데.... 나쁘게 말하면 요새를 못 넘고 엄청나게 많이 죽은 공성전을 치루면서,




이탈리아 방면 계획은 소득은 없고, 병사들만 무지하게 죽은 손실로 실패하게 됩니다.




결국 프랑스 원대한 계획이던 플랑드르 공략과 이탈리아 작전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는 와중에,




유일하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만큼은 보헤미아로 입성에 성공합니다.




다른 곳은 다 지켜냈지만, 가장 중요한 오스트리아 본진의 앞마당 멀티라 할 수 있는 보헤미아가 빼앗기며, 위기에 빠진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가 바람 앞에 등불이 되자, 헝가리가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재차 거병을 합니다.







6.jpg



이렇게 오스트리아 + 헝가리 병력이 새롭게 모집하는 동시에, 작센 선제후국을 오스트리아 세력으로 편입하는데도 성공합니다.




이때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능한 외교관이 누구냐 하면, 오스트리아 외교관이 그렇게 유명했다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제 작센 선제후국이 오스트리아 편에 붙어버리자, 슐레지엔 → 보헤미아로 갔던 프리드리히 2세는 퇴로가 막히게 됩니다.




거기다가 프로이센에게 불행이 또 한번 찾아옵니다.







7.jpg



한창 루이 15세가 알자스 로렌지방을 공략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병에 걸리고 맙니다.




그래도 병이 중병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왕이 병에 걸리니, 어쩔 수 없이 갑작스럽게 병력을 철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이것도 설이 좀 분분합니다.




병은 핑계고, 상황을 보니 오히려 계속 했다간 피해만 쌓이고 본인 입지가 위험해질까봐 철수했다는 설도 있긴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되자, 알자스 로렌 지방을 지키고 있던 카를 알렉산더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서 합류하면서,




보헤미아로 갔던 프리드리히 2세는 졸지에, 적의 아가미속에 빠지며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3. 왜 프리드리히 2세는 보헤미아를 먹으려고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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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새로 정리해서, 프리드리히 2세는 지금 말고도, 저번에도 보헤미아로 들어갔다가 퇴로가 막혀 위험했던 경험이 있죠.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먹은 이유가,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오라비아 산맥등으로 훌륭한 방어 요충지가 있기에 먹었는데,




그러나 슐레지엔만 벗어나도, 오히려 험난한 산맥 때문에 보급이 힘들어서 2번 연속이나 보급로가 차단되는 위험을 겪습니다.



(이는 삼국지 촉나라도 같은 문제를 고민했죠.)




그럼 왜 프리드리히 2세는 슐레지엔을 넘어서 보헤미아로 가려고 했을까요?

8.jpg



우선 프로이센은 자기가 먹고 싶다고 생각해서 " 원해서 " 가는 것 보단, 사실 저번 린츠 공략때도 보면 프랑스 압박이 있었고,




지금도 프랑스 계획이 얼추 들어보면 성공이 높아 보였죠.




비록 성공은 둘째치고, 프랑스가 사방에 군대를 보내면, 동시에 오스트리아도 병력이 분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머나먼 서쪽으로 이탈리아, 알자스 로렌, 플랑드르로 거리도 멀기 때문에 본토(오스트리아-보헤미아) 지역을 지키는 병력이 상당히 빠져나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실제로 별로 없었기에 손 쉽게 보헤미아가 함락되었죠.







4. 인기가 올라간 두 명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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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리드리히 2세는 막힌 퇴로를 뚫고, 슐레지엔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때 정말 프로이센 군에게는 고난 길이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군이 보헤미아에서 퇴각할 때 초토화 전술을 써서 가는 길에 먹은 것은 고사하고, 약탈할 곳마저 상실되었죠.




이때 프로이센 군은 정말 처절하고 처절하게 간신히 돌아갔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으로 돌아와서 했던 말이,




" 나는 오스트리아 군에게 전술이 무엇인지 배웠다. " (요약하면 다신 보헤미아 안 갈래 ㅠㅠ)




하면서 오스트리아 군을 칭찬했지만, 진짜는 아주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렇게 보니까 불과 몇 편 전만 하더라도, 프리드리히 2세는 2년 뒤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했는데....




제가 이렇게 말한 것 치고 지금 성과는 너무 형편이 없어서 김이 좀 빠지실 겁니다.




우선 지금 얘기도 그렇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계속 배워나가고 있고, 또한 군대를 키워서 그 자신감에 공세로 나갔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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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프로이센은 따지고 들면 큰 원정을 해 본 적이 없었죠.





이런 큰 원정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급이 끊겨서는 안되는게 제일 원칙인데, 프리드리히 2세는 이것에 조금 망각이라고 할까?




프리드리히 2세 같은 사람이 보급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큰 원정을 안해봐서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에 대한 감이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이런 원정 계획에서 반대했던 것이 프로이센 보급관입니다.




" 지금 프로이센 보급 능력은 슐레지엔만 벗어나도, 국내에 모든 수레와 짐승을 끌고 와도 감당이 안된다. "




라고 말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프리드리히 2세는 도전을 해봤던 것이고, 결국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죠.




그런데 프로이센이 힘들게 돌아가는 과정에서 재미있게도 전투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순히 오스트리아는 외교를 통해 편을 늘려서, 보급을 차단시켜 적을 밀어낸, 말 그대로 싸우지 않고 이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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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자, 또 오스트리아에서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인기가 올라갑니다.




" 저 강적 프로이센을 싸우지도 않고 몰아냈다! "




라며 다시 자존심이 충전하게 됩니다.




반대로 루이 15세는 모든 전선에서 다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병에 걸려 누워있는 초라한 신세.




그러자 프랑스 국민들이 " 왕이시여! 일어나십시오 ㅠㅠ " 하며 왕의 쾌차를 기원하면서,




전쟁에 마구 졌는데도 루이 15세 인기가 올라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물론 루이 15세의 평가는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결코 사랑받지 못하는 왕인데...




이건 나중에 지나고나서 보니 그런 것이고, 아무튼 이때 초창기 시절에는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러자 병에 쓰러졌긴 하지만 루이 15세는, " 역시 난 뭘해도 되는구나!? " 생각을 품게 됩니다.




하긴 전쟁에 지고, 병에 걸렸어도 인기가 오르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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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이, 계몽주의 작가로 유명한 볼테르가...




『 우리의 군신이며, 사랑의 신. 루이 15세 』 이라는 표현을 남겼습니다.




물론 이건 나중에 어어어~~첨난 흑역사로 남게 되죠.




국내 인기와 반대되게, 프랑스 정부는 루이 15세의 무리한 전투로 인해 재정이 비상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재정 문제는 해결을 보지 못하고,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 루이 15세가 남긴 나비효과를 알 수 있습니다.




루이 16세도 즉위하고 재정을 보니 바닥을 넘어서 적자와 빚으로 곤두박질 치느라 해결을 못봤으니까요.




이걸 보면서 다시 느껴지는게,







13.jpg



잉글랜드 내전에서 보면 왕과 의회가 균형이 잡혀 있어, 의회가 재정을 관리하기에 바닥날 위험이 적지만,




프랑스는 왕이 모든 것을 통치하기 때문에 재정 적자와 인기도 오락가락 하기 때문에, 젊은 나이의 왕들은 정신을 못 차리죠.







4-1. 이해가 안되는 프랑스 마인드





여담으로 더 말하자면,




좀 이상한 것이, 유럽 역사를 보면 영국이나 독일쪽 역사를 보면 스토리 진행이 되는데 프랑스는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롤로코스터 타는 것 처럼 역사가 너무 뒤죽바죽으로 진행 했다가 끊겼다가를 반복해서,




프랑스는 참 이해가 잘 안되네요.




예를 들어, 지금 루이 15세 처럼 군신, 사랑의 신이라고 부르는데...




만약에 왕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바람둥이라서, 전쟁 통인데도 애인 몇 명씩 끼고 사는데,







14.jpg



이게 국민들에게 알려지면 인기가 떨어져야 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근데 이상하게 " 크... 역시 우리 왕이셔! " , " 상남자! "




이런 것을 프랑스 마인드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런 황당한게 많아요.




그래서 프랑스 왕 이름을 보면 샤를 , 앙리, 루이가 있는데, 각 이름 마다 뭔가 업적(?)을 달성한 분이 몇몇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공식적으로 집계된 애인이 100명이라든지.. 아무튼 이런 업적이 있으신 분들이 있는데,




여기서 잉글랜드 내전편을 조금 다시 언급해서,




잉글랜드 내전 마지막때, 빅벤의 크롬웰 동상을 언급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빅벤의 영국 동상들의 생각을 가지고, 프랑스 동상쪽으로 바라보면,




원래 동상이란 것이 누굴 기리거나 기념해서 만들기 때문에 잘 보이죠.




근데 프랑스 동상은 동상이 눈에 띄는게 아니라, 그 아래가 눈에 띕니다.







15.jpg



동상 난관이나 밑에, 요즘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는 의미로 자물쇠를 잠궈두잖아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는데, 그럼 자물쇠를 잠구게 한 동상은 사랑과 관련된 인물이겠죠?




그래서 누군가 찾아보면, 업적을 달성하신(애인 100명 등) 분인 겁니다.




한국 입장에서, 저렇게 바람 많이 피우고 애인 100명 끼고 사는 사람에게 자물쇠를 잠궈 영원한 사랑을 기원한다??




참 이런 것에 동양의 생각과 서양의 생각이 다른 것인가... 하고 생각이 드네요.







5. 잊혀진 카를 7세와 비상하는 오스트리아





아무튼 간에 전쟁터에서 병에 걸려 패배했는데도 군신이자 사랑의 신이라고 불리며 인기가 높아지자




루이 15세가 다시 기분이 UP 되서, 점점 사고치기 시작하는데,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 드리겠습니다.







16.png



한편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초반에 등장했다가 잊혀지신, 바이에른 선제후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되신 카를 7세.




지금 카를 7세는 오스트리아에게 자기 본진(바이에른)이 빼앗겼다가, 1744년 10월에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 탈환에 성공합니다.




그러다가 탈환한지 3개월 만에 사망하시고 맙니다.




왜 죽었는지 얘기가 분분한데, 대체적으로 볼 때... 유럽 30년 전쟁처럼 프리드리히 5세처럼 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분이 프랑스 동맹과 함께 보헤미아를 쳐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됐는데, 이후 본진이 뺏기는 바람에 이후에는 처절한 도망자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죠.




그는 전 유럽을 떠돌아 다니는데,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황제가 되었는데 이젠 어딜 가도 도와주긴 커녕, 밥도 얻어 먹기 힘든 신세로 전락합니다.




아무튼 카를 7세가 사망하니, 신성 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뽑아야 하겠죠.







17.jpg



카를 7세의 아들이었던,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가 있는데,




이 분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고생을 하신 분인지라, 황제 자리에 아주 치를 떱니다.




" 저 황제 자리 눈 꼽만큼도 필요 없다. 남들이나 가져가라! "




" 난 그냥 뮌헨에서 조용히 다스리고 살겠다! "




라며 신롬 황제 자리를 거부하며, 오스트리아게 딜을 제안합니다.




" 내 영지만 보존해준다면, 오스트리아와 협력하겠다. "







18.jpg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이던 프란츠 슈테판 대공(프란츠 1세)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지지를 선언.




프란츠 1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게 되면서, 마리아 테레지아의 최고의 날과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은 다시 한번,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협조했던 바이에른은 약속되로 전쟁에서 완전히 이탈하게 되는데...




하지만 위치가 너무 중간이라 과연....??




아무튼 이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남은 선수는...




프랑스 /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3파전으로 좁혀지는 가운데!




프랑스에서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19.jpg



새로운 프랑스 육군 원수가 임명 되는데, 그 사람이 전에 재커바이트 언급할 때 나왔던 삭스의 모리스 백작입니다.







6. 프랑스의 공격







20.JPG



[ 빨간 동그라미 : 몽스 ]


[ 녹색 동그라미 : 투르네 ]





1745년 5월. 모리스 백작은 네덜란드 방면에 대해 다시 공략을 시작합니다.




모리스 백작은 몽스로 진군하는 척 하며, 국본 군(영국+하노버+네덜란드)을 속여서 유인 작전을 펼칩니다.




진짜 프랑스 군대는 투르네로 진군하여 포위하게 됩니다.




이때 투르네 지역은 당시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령 플랑드르를 진출하는데 있어서 입구였기에 매우 전략적 요충지였죠.




이렇게 되자, 몽스로 갔던 국본 군은 화들짝 놀라며, 투르네를 사수하기 위해 서둘러 진격하게 됩니다.




되돌아오는 국본 군에 맞서, 모리스 백작은 투르네의 남동쪽에 『 퐁트누아 언덕 』 에 병력을 포진.




퐁트누아 언덕에서 프랑스 vs 국본 군 맞붙게 되면서 《 퐁트누아 전투 》 가 벌어집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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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6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9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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