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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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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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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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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DUMMY




1. 퐁트누아 전투 전초전 : 모리스 백작의 준비성






1.JPG



지난 편에서 모리스 백작이 몽스로 가는 척하며, 투르네를 점령하자, 국본 군이 부랴부랴 달려옵니다.




그 사이에 퐁트누아 언덕에서 국본 군을 기다리기 위해 진을 친 프랑스 군.




언덕 위의 프랑스 군대와 언덕 아래의 국본 군이 드디어 플랑드르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 == 프랑스 병력 == §


- 48,000 명


- 대포 110 문



§================§




§ == 국본 군 병력 == §



- 50,000 명


- 대포 101 문



§================§




으로 지금까지 벌어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전투 중에 양측 최대 병력과 최대 대포들이 격돌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벌이는 각 군대가 유럽에서 손에 꼽는 최대, 최강의 세력이 붙기 때문에 이만한 교전 비용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2.jpg



- 좌 : 모리스 백작


- 우 : 윌리엄, 컴벌랜드 공작






프랑스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은 알다시피 모리스 백작.




국본 군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영국 조지 2세의 아들,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이었습니다.




당시 국본 군은 프랑스 군대에 대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프랑스 보병은 보면 다 약해~ " 라며 아주 깔보는 시선이 있어서,




윌리엄 공작은 " 저 콧대 높은 프랑스 놈들 자존심을 아주 짓밟아 버려야겠다! " 라며 자신감이 자못 당당했습니다.




여기서 프랑스 군대를 아작 낸다면 플랑드르를 사수할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길목을 완벽히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본 군의 생각과 달리 숫적으로도 비슷하고, 질적으로도 딱히 프랑스 군이 약세다 & 국본 군이 약세다라고 할 수 없이 서로 숫자와 질이 나름 비슷했습니다.






3.jpg



결국 서로 양측 수준이 비슷하다면, 결국 승부처는 『 지형 선점 』 이 좋은 쪽이 유리할 수 밖에 없겠죠.




프랑스 군 입장에선 병력도 엇비슷하고, 무엇보다 언덕 위에서 100여대 대포를 깔아놓고 진을 쳤으니,




이걸 보고 " 이렇게 했는데도 덤비겠어? " 라고 해서, 자신이 완벽히 이곳 전장을 장악했기에 그냥 물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리스 백작이 실제로 프랑스 군대를 사열시켜 놓고 줄 맞춰서 가보라 했더니, 애들이 줄도 못 맞추는 것을 보고 자기 군대 실정을 모두 파악해서,






4.JPG



국본 군이 어디로 올 지 전부 예상해서, 십자(+) 포화로 얻어 맞도록 화력망을 철저히 구축합니다.




더군다나 퐁트누아 옆에 숲(레보이 데 바디)이 있었는데, 언덕과 숲 사이에 국본 군이 올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자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적에게 【 어쩔 수 없이 올 수 밖에, 싸울 수 밖에 없는 자리 】 를 만들어 놓았으니...




모리스 백작은 이렇게 철저히 준비해놨으니 못 올 줄 알았죠.




그런데도 국본 군은 옵니다.







2. 퐁트누아 전투 1막 : 근성의 국본 군






6.JPG



퐁트누아 전투에서 선두 부대, 영국 군 10,000 여명 등장합니다.




그럼 국본 군이 모리스 백작의 의도를 몰랐냐하면, 그건 아닙니다.




이미 모리스 백작의 의도를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국본 군이 도전을 한 것이었죠.




데팅겐 전투에서 처럼 다 진 전투를 무승부로 끝났으니, 이번에도 기회가 찾아오리라 믿었고,




이번 퐁트누아 전투에서도 메종 드 루아가 있으니 이런 생각도 했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전투가 시작되니, 프랑스의 강력한 포화 진지에 국본 군이 엄청나게 갈려나갑니다.







7.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돌격하여 프랑스 군 코 앞까지 도착합니다.




이렇게 되면 양측 군대가 이제 서로 백병전으로 싸울 만큼의 거리에 도달했다는 것이죠.




프랑스 군 입장에선 이렇게 강력한 화력망을 구축했음에도 처들어오고, 심지어 그걸 버텨내서 오는 국본 군을 보자 움찔하는 것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2. 퐁트누아 2막 : 국본 군의 기회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마 이 얘길 알고 계시다면, 역사 좀 좋아하시는 분들과 자리에 있거나, 친구들 술자리에서 두고두고 써먹을 흥미로운 사건일겁니다.




바로 이때 튀어나 온 것이 『 기사도 정신 』 이 발휘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기사들끼리 뭐 폼은 나는데, 현실성은 바닥을 치는 이 정신이 14세기도 아니고, 무려 18세기도 등장합니다.




뭐 근데 따지고 들면 2차 세계 대전때도 기사도 정신이 살아 있는 실화도 있어서, 결국 유럽은 잊을만 하면 나오는 것이 기사도 정신이 아닐까 싶네요.




아무튼, 드디어 포화망을 뚫고 서로 붙어 볼 때!







8.jpg

[ 지휘관끼리 모자를 벗고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장면 ]





영국군 제 1 근위보병연대 사령관, 찰스 헤임 경이 모자를 벗고,




" 프랑스 근위연대 신사들이여, 먼저 사격하시오! "




그러자, 프랑스 근위연대 사령관, 가르데 프랑수와즈 가 대답하길,




" 말씀은 고맙지만, 우리는 먼저 사격하지 않겠소! "




이러며 영국군 장교와 프랑스군 장교의 세상 훈훈한(?) 기사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근데 이런 훈훈한 생각이 다 똑같이 생각했을까요?




당연히 아니죠.





주변에선 대포 뻥뻥 쏘며 난리통인데도, 세상 느긋하게 기사도 발휘하는 모습에 장교들 입장에선 " 님 미쳤음?? " 이라고 속 불이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고 있다가,







9.jpg



그 순간에 영국 군이, " 알겠소! 먼저 사격하겠소! " 하며, 정신을 차려서(??) 선제 공격을 취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저때의 전투는 먼저 집중 사격을 하는 쪽이 보병 전투에서 유리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군은 4열로 서 있었는데, 영국 군이 한방에 파파방! 하고 쏘니까, 전열이 무너집니다.




기록에는 『 전열이 쓰러지자, 뒤의 병사들이(3열, 4열) 도망쳤다. 』 라고 되어 있는데...




근데 당시 종군 기록사들이 기록을 한다고 해도, 상황을 100% 다 제대로 전달해주진 못할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기서의 제 뇌피셜을 조금 넣자면,







10.jpg



프랑스 병사들은 " 아니 대체 어쩔려고 먼저 쏘라고 권유하는거야!? " 라고 하며 열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는 와중에 영국군이 먼저 선제 공격을 하니... 원래부터 훈련도가 낮았던 얘들이었는데,




여기서 공격을 받고 앞에 얘들이 훅 나가떨어지니, 후열에 있던 병사들이 동요해서 졌을 겁니다.




또한 당시 총은 명중률이 형편 없었기에 1열을 다 쓰러트리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것을 보니, 프랑스 병사들이 빡쳤다가 적이 먼저 쏘니까...




" 에잇! 드러워서... 너나 전쟁해라! " 라고 하지 않을까 싶네요.








3. 퐁트누아 전투 3막 : 모리스 백작의 히든 카드들





프랑스 지휘관이 되도 안되는 허세를 부리는 바람에, 프랑스 근위 연대 + 아직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스위스 용병이 전장을 이탈해 버립니다.




근위 연대등이 도망치자, 프랑스 대열이 무너지는 틈에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프랑스는 자존심이 있기에, 몇몇 부대는 어떡하든지 막으려고 노오오력은 하는데....







11.jpg



데팅겐 전투에서 사고 쳤던 그라몽이 영국군 사격에 전사합니다.




여기서 그라몽은 프랑스 군 사령관이었는데, 지휘관이 전사하자 남아있는 병사들이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러자 결국 전황이 영국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프랑스 군이 기세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 순식간에 밀려나가 프랑스 군의 마지막 전선까지 위협합니다.




당시 모리스 백작 말고도 루이 15세도 같이 참전했는데, 루이 15세까지 위협해오자 먼저 전장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12.jpg



" 나는 절대 후퇴하지 않겠다! " 라며 루이 15세가 고집을 피웁니다....




아니 고집 부릴게 있고 아니 부릴게 있는데;;;





아무튼 루이 15세가 고집을 피우자, 결국 모리스 백작은 아끼고 아껴뒀던 아일랜드 출신(용병)의 근위 연대가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근위 연대가 나서서 국본 군을 향해 맹공으로 기세를 잡자,




" 너희들 장전하고 있지? OK~ 이제 내가 쏠게! "




프랑스 근위 연대와 함께 도망갔던 스위스 근위 연대가 옆에 착 붙어서 같이 지원 사격을 해줍니다.




아일랜드 근위 연대가 재장전 하는 타이밍에, 스위스 근위 연대가 쏘면서 서로 번갈아가며 대응하자,




여기서 국본 군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모리스 백작이 국본 군의 힘이 누그러진 것을 보자, 그의 히든 카드를 꺼내게 되니...







13.jpg



데팅겐 전투에서 시원하게 말아먹으셨던 프랑스 왕실 근위 연대(메종 드 루아)를 돌격시키게 합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선 이름 값을 톡톡히 치룹니다.




메종 드 루아가 장렬하게 돌격해서, 국본 군 진영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여기서 메종 드 루아가 돌격 당시, 데팅겐 전투에서 뼈 아픈 실책이 있었기에 만회하고자 했는데...




" 전원 피스톨을 뽑지 마라! 피스톨은 우리에게 수치다! "



" 이번 전투에선 샤브르(칼)로 승부하라! "




라며 했고, 메종 드 루아의 대활약에 국본 군은 큰 피해를 입으며, 데팅겐 전투의 치욕을 씻어냈네요.







4. 퐁트누아 전투 결과







3.jpg



§ == 프랑스 병력 == §



- 전사 및 부상자 : 7,137 명


- 포로 : 400 명



§================§





§ == 국본 군 병력 == §



- 전사 및 부상자 : 10,000 ~ 12,000 명


- 포로 : 3000 ~ 4,500 명



§================§




퐁트누아 전투의 결과, 투르네 일대는 프랑스가 점령하게 됩니다.








5. 왜 아직도 밀집 대형이 남았는가?







14.jpg



이 전투에서 보시면, 또한 지금까지 여러 전투를 거쳐 왔는데....




가만 보면, 양측에 다 총과 대포를 보유하고 있는데, 전투를 보면 다 똘똘 뭉쳐서 같이 몰려 다녔을까요?




요즘에는 대포 같은 것을 쏘면 산개해서 최대한 병력 손실을 적게 하려고 하죠.




그럼 왜 이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16세기 ~ 30년 전쟁까지,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테르시오 진형이 있었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창병(파이크 병)이 사라지게 됩니다.







15.jpg



전부 총병으로 대체 됐음에도 불구하고, 밀집형 테르시오 대형은 그대로 유지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지난 번에 당시 유럽 총 사격 얘기를 했는데...




플린트락 머스킷을 장전하는데 아주 절제된 12가지 동작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명중률은 10% 미만, 장전 속도는 평균 1분.




그런데다가 서로 중구난방으로 쏘면 더 안 맞으니, 차라리 한 방향으로 일제 사격을 해야 그나마 효과가 있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밀집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퐁트누아 전투에서 속터지는 기사도 장면이 나왔는데,




사실 18세기 전투를 보면 의외로 사격 기회를 적에게 먼저 주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16.jpg



왜냐하면 총의 성능이 뛰어나지 않아서, 차라리 착검해서 돌격하는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 지휘관이 많았습니다.




즉 상대를 쏘게 만들어서 재장전 하는 동안에 돌격시키도록 했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는 총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저 시대는 그만큼 신뢰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총의 성능이죠.




거기다가 백병전도 하려면, 집단으로 했야 했고,




이때 총은 요즘 총 자세같이 " 엎드려 쏴, 앉아 쏴 " 같은 것을 못했습니다.




물론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장전이 요즘같이 탄창도 아니고,




총구에 화약을 넣고 막대기로 쑤셔서 끝까지 넣을려면 엎드리면 잘 안되니까 결국 서서 할 수 밖에 없었죠.







17.jpg



거기다가 머스킷의 평균 길이만 1.5m가 넘는데,




이는 창 역할을 대신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고, 착검하면 2m 이상은 넘었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훈련 안 된 병사들이 산개를 시키면 넓게 퍼지게 되는데, 그러면 도망쳐서 통제가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죠.







6. 포화 속에서도 걷는 병사들





데팅겐 전투와 퐁트누아 전투에서 보시면, 적의 강력한 화력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꿋꿋하게 버텨 갑니다.




저는 특히 데팅겐에서 어떻게 하면 저럴 수 있었지? 라고 할 만큼 식겁했습니다.




보통 당시 전투에서 앞의 병사들이 쓰러지면, 뒤 열의 병사가 앞으로 나와 보충했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죽음의 행진인데....







19.jpg



이게 알고 보면, 대열 안에 장교들이 같이 있는데, 손에는 할버드 창을 들고 감시하다가 안 가면 뒤에서 찔러 죽이거나




혹은 병사들이 스스로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이게 혼자 생각으론 할 수 있어서도, 실제로 행동으로 하기엔 이미 모두가 같이 공통된 훈련으로 뭉쳤기에 그냥 바로 냅다 튀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하고




또한 병사들 개개인이 공격하지 않고 도망치면, 적 군 기병에게 쉬운 먹잇감이 된 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결국 병사들이 " 우리가 무너지지 않으면 상대가 돌격하기 힘들다! " 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오히려 옆에선 죽음으로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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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유럽 7년 전쟁 에필로그(完) 21.07.21 40 1 20쪽
53 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21.07.20 25 2 15쪽
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4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8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4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4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6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5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5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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