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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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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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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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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DUMMY



1. 프로이센과 영국







1.png



지난 편에 외교 혁명에서 【 오스트리아 - 프랑스 - 러시아 】 를 중점적으로 얘기 해서




【 프로이센 - 영국(+하노버) 】 은 다소 비중이 낮게 말한 것 같아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 편에 영국과 프로이센이 동맹 할 때, 프로이센이 하노버 공국을 지켜주는 대신에 영국이 재정 지원을 해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재정 지원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깟 돈으로 낮게 보실 수 있는데, 프로이센에겐 굉장히 비중이 컸습니다.




프로이센 입장에서 유럽 상황을 바라보면,




제일 문제는 전쟁을 했다 하면 자기보다 덩치가 3배 이상 되는 슈퍼 헤비급 챔피언이랑 싸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고, 실제로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엄청난 강국이죠.







2.jpg



그러기 때문에 프로이센의 목표는 【 항상 남들보다 3배가 되는 군대 】 였습니다.




이동 속도도 3배! 숙영지 걷는 속도도 3배! 총 쏘는 속도도 3배! 등등...




군대의 부분에서는 『 훈련 』 으로 노오오오력을 한다면 극복이 되는 문제인데...




그런데 돈은 땅 파헤친다고 나오진 않았죠.




그렇기에 프로이센이 가장 취약한 재정을 영국이 대신 메워주면서 군사 + 재정을 균형 있게 맞출 있었으므로 프로이센에게 재정 지원은 상당히 큰 도움이 됐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쿵 저러쿵해서 유럽 7년 전쟁의 주요 5개국이 형성됐는데,




이제 전쟁을 한 판 붙어야 하는 두 연합의 국가 국력 수준을 다시 한번 체크해보겠습니다.







2. 각 국의 전력과 프로이센 군사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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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국가의 국력은 인구를 비례하기에, 인구수 부터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 프로이센 : 약 3백만 명.



- 프랑스 : 약 2천 4백만 명.



- 오스트리아 : 약 1천 7백만 명.



- 러시아 : 약 2천 5백만 명.




다음으로 유럽 7년 전쟁의 개전 초기의 전력 상황입니다.







4.jpg



프로이센의 총 병력이 14만 5천 명.




프로이센의 전체 인구에 5%가 군인인 셈이군요. 물론 용병 섞여서 포함한 수치겠죠.




프로이센 얘기 할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스트리아 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 왕위 계승 전쟁에서의 프로이센 군대를 철저히 분석하는데,




헨리 로이드라는 오스트리아 사령관이 있었습니다.




헨리 로이드는 약 40년 동안 프랑스 군, 프로이센 군, 러시아 군에서 장교로 활동한 군인인데,




그가 프로이센 군에 대한 평가를 압축 요약하면...




『 프로이센 군은 기동하는 시설을 갖춘 공장 같았다. 』




위 말을 살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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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3백만 명 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14만의 병력을 충원할 수 있었다는 것은 【 군대 모집 시스템 】 이 정말 중요했고, 프로이센은 이 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진 나라란 것이죠.




프로이센이 어떻게 군대 모집 시스템을 구축했냐면,




1) 전 지역에 신체 건강한 남자는 모두 소집.


2) 각 정규군 연대에 보내어 약 1년간 군사 교육


3) 교육 수료 후에 귀농하여 민간인이 되다가, 필요할 때마다 소집 및 훈련 실시.




이렇게 시스템을 갖췄는데, 민간인에서 사람을 뽑아 쓴다는 것은 결국 전쟁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싸우는 병력 이전에,




2선 부대의 예비대 충원의 개념이 큽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날 경우, 당장 필요한 병력 예비대는 자국민을 징발할 수 밖에 없는데,




만약 징발된 사람들이 전혀 훈련이 안되어 있으면, 군대 전체가 기강이 해이해지는 것을 넘어, 군 자체가 흔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기초 훈련을 시킨 상태에서 징집한 것이죠.




근데 기초 훈련이 1년이라는 것은 한국군 입장에서 봤을 때, 거의 실제 군 복무와 비슷하죠.




한국의 경우에 동원 예비군 제도가 있지만, 기껏해야 약 5 일 정도를 비교하면 정말 어마한 기간입니다.







6.jpg



그리고 바로 이 시스템이 당시 프리드리히 대왕의 전쟁 철학이 깔려 있는데...




『 프로이센 군대는 활기차야 한다! 』




근데 여기서 활기차다는 표현이 좀 뭔가 이상하실 겁니다.




군대가 활기차다는 표현은 다소 어폐가 있기에 당연히 은유 혹은 비유적으로 든 말일텐데...




제가 생각한 활기차다의 여러가지 의미를 생각해 봤을 때..




예를 들어 프로이센이 군영 설치 후에 철수하는 시간이 아까 위에서 말했던 3배의 속도가 바로 활기차다는 의미가 맞지 않을까 싶네요.







7.jpg



왜 프로이센은 훈련 중에서도 굳이 군영 설치, 철수 시간도 빠르게 훈련시킨 이유는




유럽 7년 전쟁의 전쟁터가 대체로 평야에서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자고 있는데 적군이 온다면?




결국 보병 대형 포지션을 배치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해집니다.




그렇기에 남들 보다 3배 이상 군영을 걷으면 적보다 훨씬 빨리 포진할 수 있고, 빨리 이동도 가능해지는 것이죠.




또한 방심 했다가 적이 왔는데 아무런 거점 확보도 못하는 등 적과 부딪쳤는데




싸우다보면 " 아 저 지역을 점령하면 쉽게 저 지역에 있는 적을 물리칠 수 있겠네?! " 라고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그런 생각 속에서 텐트를 빨리 걷고 거점 확보하면 비록 방심은 당했더라도 남보다 빨리 움직여서 적도 예상치 못한 스피드로 역으로 허점을 노리는 일격 필살의 힘도 있단 것이죠.




아무튼 오스트리아는 지난 전쟁에서 이러한 프로이센의 우수한 점을 철저히 벤치마킹하며 설욕을 차근 차근 준비했습니다.







2-1. 프로이센의 기병 양성








8.jpg



제가 프로이센을 대단하게 설명하긴 했는데, 개전 초기에는 당연히 우수하고 정예의 모습을 보인 프로이센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유럽 7년 전쟁이 7년 동안 벌어진 전쟁을 알지만, 당시에는 전쟁이 설마 7년 까지 갈 것이라곤 아무도 몰랐죠.




그리고 프로이센도 계속 전투를 치루다보니 손실이 누적되면서 질적 하락을 피할 수 없게 되며, 1759년 정되면 하락세가 됩니다.




또한 용병의 의존도도 높아져서, 전쟁 말기에는 아주 심한 경우에 병력의 30%가 용병일 정도로 아주 극심한 병력난을 겪습니다.




그런데 용병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 중에 고질적인 문제가 『 탈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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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보병이 취약해지니, 프로이센은 흉갑 기병과 함께 후사르 양성에도 몰두 하는데...




프로이센에겐 슬픈 일이, 후사르들을 전투에 투입 시켜야 하는데, 많은 후사르들이 탈영병 잡는데 동원됐다는 비사가....




그래도 프리드리히 대왕이 오스트리아 후사르에게 많이 당해 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흉갑 기병은 정찰 능력이 낮다. 그들은 기동과 돌격을 하는 기병들이다. "



" 그러나 후사르는 이동하는 도중에 산과 강 등. 말을 타며 지형을 숙지한다. "




그러면서 프로이센은 주요 전투는 지난 로보지츠 전투에서 그렌져 처럼 게릴라 전은 잘 안하는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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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수가 많은 적을 한방에 무너트려야 하는 전투가 많다보니 당연히 지형 정찰에 훨씬 중요하죠.




그래서 지형 정찰에 후사르가 잘하니 키울 수 밖에 없고,




또 아이러니 하게 도망친 탈영병을 잡는데도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으니 잘 잡아서,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2-2. 프로이센의 실패한 학습








11.JPG



유럽 7년 전쟁이 개전한 후, 로보지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의 그랜져에게 아주 크게 당했던 프로이센.




프로이센도 그렌져와 비슷한 것으로, 【 프라이코어스(Freikorps) 】를 만듭니다.




근데 프라이코어스 구성이 형편이 없었습니다.




이들 구성 병력은 대부분 포로 및 탈영병 이었기 때문이죠.




딱 봐도 뭔 껀수만 있으면 도망치기 딱 좋은 얘들인데... 걔들을 게릴라로 풀어주니 당연히 도망친 것은 뻔했죠.





매번 전쟁 때 마다, 프라이코어스가 도망치니 프리드리히 대왕이 대노합니다.




" 너희들 그냥 돌격해서 대포 받이 해! "




결국 게릴라 군으로 편성했던 부대는 결국 소모 부대로 전락하고 맙니다.




근데 이렇게 처우가 더 열악해지니 그들은 더더욱 도망에 몰두할 뿐이었죠.




이런 프라이코어스에 대한 프리드리히 대왕 본인이 평가를 내리기를....




『 그들은 약탈과 민폐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




근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본인이 저런 말을 하는건 좀...;;;








3. 영국의 상황






12.png



프로이센 전력 상황을 얘기 했으니, 다른 나라의 상황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개전 초기, 【 약 9만 명 】 이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 약 15만 명 】 으로 증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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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국의 최대 관심사는 『 식민지 전쟁 』 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편성한 영국군은 유럽 본토보단 북아메리카 등의 식민지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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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북아메리카 전선에서는 울창한 숲 속에서 유럽 본토의 밀집 대형으로 투입했더니 말 그대로 사용 불가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는데, 쉽게 말하면 병력 일부들을 뭉쳐서 보내어 각개격파 시키는 방식을 합니다.




이런 전술을 영국이 강력하게 훈련시키고, 유럽 본토에 보냈더니 아주 제대로 먹혀 들어 갑니다.




이렇게 영국군에게 모~~든 것이 유리하면 좋겠지만...







15.png



당시 하노버 군대는 잘 싸우긴 하는데 병력 숫자가 너무 적었습니다.




정말 하노버 내에 병사들을 박박 긇어 모아도 약 30,000 명이 한계였죠.




이렇게 되면, 만약 하노버 군대가 큰 전투에 나갔다가 박살이 나면?




하노버는 군대가 증발하며 그냥 무혈입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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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험이 있으니, 영국은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기 전에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서 하노버를 지키려고 합니다.




근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영국과 동맹을 맺은 결정적인 이유가 프랑스 - 오스트리아의 문제도 있었지만,




러시아가 서유럽에 진출하면 프로이센에겐 정말 골때리는 문제로 다가 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먼저 재빨리 영국에서 손을 건네서 동맹 제의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프로이센은 " 전쟁은 내가 할게. 대신 돈을 줘! " 했고,




영국 입장에서도 머나먼 러시아보단 바로 옆의 군사 강국 프로이센과 손을 잡는게 더 이득이란 판단을 내렸을 겁니다.




그런데 영국은 유럽 7년 전쟁에서 아주 흥미로운 일을 합니다.




바로 민간군사기업을 이용한 것이죠.






17.jpg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장교를 파견하여 동인도 회사에 군대를 양성하도록 시키는데,




동인도 회사등에서 담당하는 식민지로 장교를 파견해서 원주민들을 모집하여 군대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영국은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땅에서 프랑스와 붙으면 당해내기가 힘들었기에




그 동안 알토란 같이 넓힌 식민지에서 병력을 양성한 것이죠.




영국은 우리가 많이 알지만 정말 이런 것을 미친듯이 잘(?) 했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세계사에서 항상 뭔가 트러블이 있으면 역사적으로 영국이 포함되는게 바로 이런 부분이기도 하죠.




아프고 나쁜 역사이지만 반대로 어떻게 보면 18세기에 벌써 민간군사기업의 활용이나 제대로 통신구가 없는 시대에도 전 세계를 상대로 이런 광범위한 활동이 가능했다는 점도




생각해보면 당시 영국이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음 편에는 러시아 상황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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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7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6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4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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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0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0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4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4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5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5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3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0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7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5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5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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