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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최근연재일 :
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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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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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진격의 프랑스

DUMMY



1. 몰비츠 전투 이후의 유럽 정세







1.jpg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몰비츠 전투에서 승리한 프로이센.




그 덕에 프랑스는 오랜 앙숙이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패배한 소식에 흡족해 하며,




1741년 6월 4일, 프랑스 - 프로이센과의 비밀 협정을 맺게 됩니다.




협정에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이 소유를 인정 】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 카를 알베르트(카를 7세) 』 로 추대 】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협정에서 가장 크게 이익을 받은 것과 흥분한 것은 프랑스였습니다.




어차피 슐레지엔이야 프랑스가 먹기도 그렇거니와 프로이센에 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또한 신성 로마 제국 작위까지 프랑스가 뺏어오면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야 말로 몰락이 확정된 것이죠.




이때부터 프랑스와 바이에른(카를 7세) 모든 병력을 끌어 모아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향해 돌격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프랑스가 본인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미래가 흘러가도록 놔두질 않습니다.







2.jpg



이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에게 비밀 협정을 제안한 것이었죠!




프리드리히 2세의 외교 전략을 한마디로 살짝 오버해서 덧붙치자면, 『 이이제이 』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서로 물어 뜯는 사이, 자기는 뒷짐만 지겠다는 것.




국가의 신뢰나 외교적 결례 같은 것을 떠나서, 국가적 이익에서만 보자면 프리드리히 2세의 행동은 잘.... 잘 한다고 말하기가 좀 뭐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는 선택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 입장에선...




" 난 이미 먹을 것을 먹었지~ 거기다가 프랑스 인정까지 받았지~ 그리고 클레임 걸어줄 오스트리아는 위기 상황~ "




이 3개의 상황을 한 눈에 알아보고 최대의 이익의 방향으로 간 것이고, 오스트리아도 당장 코가 석지인 마당이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




프리드리히 2세는 불과 얼마전까지 싸웠던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 내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발을 뺄 테니, 슐레지엔을 인정 "




" 오스트리아 군이 원활히 프랑스 군과 싸울 수 있도록, 군사 통행권을 허용 " 이라는 내용으로 비밀 협정을 제안합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프리드리히 2세입니다.







3.jpg



불과 얼마전까지 저 땅 다시 탈환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던 적에게 순식간에 비밀 협정을 제안하고, 심지어 적군이 그토록 탈환하고자 열망했던 땅에 통행권까지 허용한다?




정말 쉽지 않는 결단과 판단이었을 텐데 말이죠.




이제 비밀 협정을 제안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입장으로 시선을 바꿔보죠.




오스트리아는 사실 제 1차 슐레지엔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개박살이 나버렸으니 내부는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겠죠.




거기다가 프랑스와 바이에른, 그 외에도 이 대세를 타 보겠다고 여러 기타 잡 세력들까지 끌어모아서 빈으로 돌격.




이땐 정말 위기라고 판단했는지, 마리아 테레지아가 빈으로 탈출해서 헝가리로 피신합니다.




수도를 향해 적들이 달려오며, 가문의 멸문이 정말 코 앞까지 다가온 절체절명의 마리아 테레지아.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궁지에 몰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역량을 발휘합니다.




200년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헝가리에 도망쳐, 포조나라는 곳에서 도착하여, 귀족 회의를 소집합니다.




지난 편에 넷째를 임신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들 요제프 2세를 낳았죠.




여기 귀족 회의에 참석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갓난 아기를 안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역사의 길이 남을 명연설을 펼칩니다.







4.jpg

[ 요제프 2세를 안고 연설하는 마리아 테레지아. ]




『 친구들에게 버림 받고, 적들에게 박해를 받고 』



『 가장 가까운 친척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나는 』



『 여러분의 충성과 용기만을 믿고 의연하게 버틸 겁니다. 』



『 여러분에게 왕의 딸과 아들을 맡길 테니, 그들을 구해주길 바랍니다. 』




그녀의 고귀한 자태와 아이를 들고 의연하지만 결단에 찬 감동적인 연설을 듣자, 헝가리 귀족들이 칼을 뽑아 들고, 전부 만세를 외칩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헝가리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발적으로 대규모 경기병대를 구성해서 군대로 지원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항상 전투를 하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데, 근데 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해서 군대를 모집해서 자발적으로 오스트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글만 보고 생각하기에는 " 결국 마리아 외모빨로 상황 모면한거 아냐? " 라고 느꼈고,




저도 솔찍히 처음 접했을 땐... " 그렇게까지 감동 받을 만했나? " 라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이유가 저것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이 이루어지진 않고, 국내, 국제 정세라는 것이 다양한 물 밑 작업 끝에, 강력한 임펙트 한방에 사건이 착착 진행되도록 보입니다.




지금 상황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오스트리아가 소유한 헝가리가 속국이긴 한데... 그렇다고 식민지 개념같은 하위로 구분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 착각하는 것이, 제국 체제 ≠ 식민지 체제가 아닙니다.







5.png



비록 왕이 통치한다고는 하지만, 그들 모두를 통치하는 것은 아니고 연맹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지금 헝가리도 200 년 간 사이가 안 좋다 뭐다해도 같이 붙어서 협력하고 하는 기본 틀은 연맹이란 구성체라는 개념에서 묶여져 있었고,




이런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에게 조공... 조공이라기 보다는 연맹 분담금등을 내서 의무를 다하는데




이것을 착각해서 오스트리아 > 헝가리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헝가리만 딱 집어서 얘기 했지만, 결국 속국 ≠ 식민지 라는 것이 아니라 연맹에 속한 국가란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상하관계나 갑질 이런 걸 전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한 쪽에만 깊히 의존된 방향도 아니였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위의 이러한 오스트리아 체제의 상황을 보고, 헝가리 국내 상황을 다시 살펴보자면.




마리아 테레지아가 헝가리의 여왕으로 인정 + 충성을 맹세받았다는 것은 굉장한 리더십이 그들에게 보여줬다는 것이죠.




제가 자료를 더 못 찾아서 확신을 드리진 못하겠지만, 많은 로비가 있었을 겁니다.







6.jpg



사실 진짜 작업을 치는 사람들은 실무 담당자들이기 때문에, 마리아의 감동 연설 이후, 양국의 실무 담당자들이 서로 많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리라 봅니다.




대충 정황상 파악되는 걸로는 " 우리가 없어지면, 이제 네 차례야 " 라며 순망치한으로 설득시켰지 않았을까 싶네요.








2. 마리아 테레지아의 리더십





한편 거의 다 죽어가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갑자기 헝가리 여왕으로 즉위하며 다시 바짝 떠오르자,




프랑스와 척을 지고 있던 것이 영국이니, 당시에 영국은 오스트리아 편이었습니다.







7.jpg

[ 사라 처칠, 말버러 공작의 부인 ]





영국의 말버러 공작의 부인이었던 사라 처칠(처칠 수상의 조상) 께서, 귀부인 모임 같은 곳에 부인들을 모으며....




" 마리아 테레지아를 도웁시다! " 하며 무려 10만 파운드 모금액이 모입니다.




잉글랜드 내전에서 당시의 50만 파운드 = 약 570 억이었으니, 10만 파운드면 약 100억 정도가 넘는 돈이엤군요.




몇 천만원도 아니고 몇 억도 아니고 귀부인 모임에서 100억을;;;




제가 느끼기에 요즘이나, 저때나 남편 돈은 역시나 부인이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보면 남편이 받은 월급중에, 부인에게 용돈을 받으며 사는 것 처럼 이 기록을 보면 딱 저 상황일겁니다.




이렇게 역사를 보니, 역시 남자는 허세로 살다가 껍질만 남는다는게 느껴지네요.




하지만 남자가 허세를 부릴 수 있게 뒤에서 도와주는 것은 부인의 힘이겠죠 ㅎㅎ




아무튼 이렇게 모인 100억중에 40억은 말보르 공작 부인이 냈다고 합니다.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 100억을 주다면... 마리아 테레지아는 받아야 할까요? 안 받아야 할까요?




오스트리아 상황이 다급하니 받아야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이래서 마리아 테레지아가 대단합니다.







8.jpg



『 나는 국가와 국가간의 거래는 의회를 통해서 정식으로 결제된 것만 받습니다. 』



『 사적인 모금은 받지 않겠다. 』




라고, 거래는 할 지언정, 기부는 받지 않겠다 라며 거절하게 됩니다.


(물론 뒤에선 다 받겠지만 말이죠)




이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그리고 한 수 내다 본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헝가리 귀족들의 마음을 울린 것도, 그녀의 꽉 찬 내공에서 비롯된 힘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네요.









3. 바이에른 방면 전투







9.png



마리아 테레지아 상황에서 다시 프랑스 연합군으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수도 빈을 향하고 있던 프랑스 연합군.




근데 예상치 못한 의외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수도 빈으로 향하던 군대가 갑자기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군대를 돌린 것이었죠.




왜 프라하고 이동했냐느하면 바로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입니다.




적진에서 지속적인 병력 충원과 물자 보급이 끊임 없이 조달해야 하는데 보급이 어렵기 때문이었죠.







10.jpg

지금 지도를 보시면, 수도 빈으로 가는 대체적인 루트가 【 슐레지엔 → 보헤미아 → 오스트리아(빈) 】 입니다.

11.jpg



하지만 프랑스 연합군은 【 바이에른 → 작센 → 오스트리아 】 으로 가서 적진을 통과해서 횡단하다 원활히 지원이 안된 것이죠.




그럼 처음부터 보헤미아를 치고 가면 낫지 않을까 싶냐고 생각하겠지만,




우선 프랑스는 프로이센이 자기의 맹방으로 알고 있었기에 보헤미아를 공격해주지 않을까도 했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비밀 협정 통수로 실패.




그렇다고 프랑스 연합군이 보헤미아까지 싹다 점거하고 오스트리아로 간다면 보급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시간이 질질 끌게 되기에 몰비츠 전투의 기세는 이미 누그러질 것이 뻔했죠.




이런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얼마나 영악한지 다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는 슐레지엔에서 빈으로 가기에는 오라비아 산맥등으로 인해서 보급이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연합군은 보급의 문제로, 목표였던 빈에서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가게 됩니다.




당시 보헤미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 대공(프란츠 1세)이 이끄는 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연합군의 공세에 결국 프란츠 1세가 오스트리아로 쫒겨나고, 카를 7세가 보헤미아에 입성합니다.




보헤미아까지 빼앗기며 보급로까지 획득한 프랑스 연합군.




이런 전황을 보자면 오스트리아 불리할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속엔 맹점이 있었습니다.







12.jpg

[ 빨간 줄 : 보헤미아 영지 영역 ]





지도에서 보시면, 슐레지엔 / 오스트리아 / 헝가리로 3 방향에서 보헤미아를 포위해버린 격이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빼앗긴 보헤미아는 어떻게든 다시 탈환하기 위해 지휘관을 선별했는데, 그녀는 사람 보는 눈도 뛰어났습니다.




케벤 휠러라는 지휘관에게 새로운 부대 편성권을 맡깁니다.




케벤 휠러는 바로 병력을 구성해서, 어디로 가냐면....




도나우 강을 건너, 바이에른으로 공격해서 빈집털이를 해버립니다.




카를 7세는 보헤미아에서 황제로 등극했는데, 대신에 본인 영지가 공격당한 셈이었죠.




프랑스 연합군은 지금 보헤미아에서 바로 철수해서 바이에른으로 갑니다.




프랑스 입장에서 바이에른이 빼앗기면 퇴로가 끊기는 것이었고, 카를 7세는 본진 센터이기 때문에 내놓을 수 없었죠.







13.jpg



그렇게 벌어진 바이에른 전투에서 케벤 휠러가 대승을 거둡니다.




이때 바이에른 전투에 큰 활약을 한 군대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충성을 맹세했던 헝가리의 후사르였습니다.







14.jpg



이 기병대가 정찰대로 엄청난 활약을 펼쳐서 바이에른 방면 전투 승리의 큰 주역이 되었죠.




전투 결과, 프랑스 군은 사실상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 버립니다.




프랑스 연합군의 패배의 주요 원인은 상비군의 질적 문제.




당시 상비군에 가장 고질적인 여차하면 튀는 것입니다.




상비군이라고 해봤자, 지난 프로이센 군사 개혁때도 봤지만, 용병 느낌이 물씬 듭니다.




조금만 불리하면 탈영이 급증하는데, 또 이겨서 약탈할 것이 많아져도 탈영이 급증해서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였죠.




어째든 프랑스는 거의 전멸 위기에서 간신히 전쟁에 탈출해서 속된 말로, 그지꼴로 프랑스로 도망칩니다.




프랑스 후퇴 당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 이제껏 본 프랑스 군과는 전혀 다른 꼴로 후퇴했다. " 라고 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상황들이 1741년 11월 ~ 1742년 2월까지의 기간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몰비츠 전투의 패전으로 오스트리아에게 매우 악화되었던 유럽 정세.



프랑스와 작센, 바이에른등 프랑스 연합군이 기세를 몰아 오스트리아를 침공했지만, 오히려 크게 패배하며,



전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지금의 전황을 만들게 된 모든 사건의 배경에는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와 맺은 비밀 협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간에, 비밀 협정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



과연 비밀 협정의 변수가 언제 터질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계속 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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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4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4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8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0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4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4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5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5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0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7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5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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