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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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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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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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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DUMMY



1. 슐레지엔 침공의 성공의 주역, 행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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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2세가 모든 유럽이 놀랄 정도로 빠른 군대 동원과 진격을 통해서 슐레지엔을 확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프로이센 군대가 빠르게 진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난 편에서 프로이센의 개혁중에 제식 훈련.




특히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고적수(드러머) 양성을 했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플루트를 비롯해서 음악을 매우 좋아했던 인물이었죠.




그는 자신의 취미에만 음악을 국한 한 것이 아니라, 군사에도 적용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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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들이 전질 할 때 타악기나 피리 등이 있으면 훨씬 경쾌하게 효율적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병 행진가들을 많이 작곡하게 되죠.




흔히 근세~ 근대의 행진곡을 들어보시면, 드럼과 각종 악기들과 함께 군대가 이동하는 장면이 프로이센이 시초였으며,




단순히 음악과 리듬만 중시한 게 아니라, 무엇보다 해당 목표 지점까지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식 훈련을 병행을 한 것이죠.




프로이센의 빠른 보병 기동에 영감을 받아 순식간에 유럽 각 나라마다 독특한 행진곡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금은 군악대등 군악가들이 당연한 시대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저런 개념이 아예 없었기에 저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참 대단합니다.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캐치하고 군대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분야도 접목하는 그의 능력을 보면 참 대단하네요.




하지만 경쾌한 음악가 달리......




전쟁은 지금까지 보지 못할 정도로 잔악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2. 프리드리히 2세의 철저한 계획 VS 마리아 테레지아의 대담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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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 대전의 전격전, 슐리펜 계획 ]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을 침공 할 때, 정말 전격적으로 처들어 갔다고 했죠.




이게 얼마나 빠르게 치고 들어갔냐면, 요즘 말하는 전격전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당시는 보병이든 기병이든 간에 군대는 겨울에 움직이기 매우 힘듭니다.




일단 마차가 쌓인 눈이나, 빙판길 때문에 안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전쟁을 거의 안하는 날씨가 겨울인데,




프리드리히 2세는 무려 12월에 슐레지엔을 침공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에 있는 군대라고 해봐야 수비대 정도 밖에 없었는데




후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 국경 지방을 지키는 병력이 너무 허술한거 아니야? " 라고 할 수 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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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가 되면 대부분 성이 요새화가 잘 되어 있어서, 수비대가 요새에서 농성을 하면 방어가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방어하면서 막고 있으면, 본대가 합류해서 밀어낸다는 개념이었죠.




프리드리히 2세는 그것도 예상하고, 이때에 전쟁과는 드물게 요새들을 지나칩니다.




마치 전격전 하듯이 말이죠.




물론 그냥 지나치면 후방 루트와 보급로가 위협을 받으니까 포위는 하지만 시간을 끌진 않습니다.


(포위 공격을 감행 했다간 피해도 못 뿐더러 시간을 뭉탱이로 잡아 먹히죠.)




그렇게 쭉쭉 진격하여 슐레지엔 주요 지역을 점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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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동그라미 : 브레슬라우 ]





1월 3일. 슐레지엔의 후방 거점이던 브레슬라우(현재 브로츠와프)을 점령.




이때 요새는 버젓이 계속 버티고 있는데도 시민들이 스스로 문을 열어주고, 환영을 받으며 무혈입성을 합니다.




지난 편에 얘기했지만 이쪽 지역이 프로테스탄트(신교)가 강세이다 보니 프로이센으로 붙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했는데 그 말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12월의 매서운 겨울에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6주만에 슐레지엔 지방을 점령.




특히나 최소의 희생과 아주 빠른 진격이라는 본 적도 없는 전쟁을 겪은 것입니다.




처음 유럽은 프리드리히 2세에게 " 아니 문학 소년이 왜 저래?! " 했다가,




나중에는 " 아버지 보다 더 한 독종!! " 으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또한 프리드리히 2세는 슐리지엔 침공만 염두한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침공이란 대전략을 하고 갔습니다.




『 (슐레지엔을 점령해서) 충분한 땅을 점령해서 식량을 조달한다. 』



『 적은 비용으로 보급 문제를 해결한다. 』



『 가장 유리한 지형을 선택해서 싸운다. 』



『 적이 가까이 오기 전에 나의 방어선을 요새화 할 것이다. 』




이렇게 말하고 슐레지엔을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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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를 돕기 위한 산맥 ]




인구도 많고, 각종 물자도 많은 등 좋은 점도 있지만, 또 하나 좋은 점은 오스트리아가 슐레지엔을 탈환할려면 오라비아 산맥을 넘어야 했습니다.




산맥을 넘는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특히나 겨울에는 더더욱....




프리드리히 2세는 산맥과 겨울이라는 날씨와 지형 때문에 적이 당장 처들어 오지 않을테니,




그 시간에 몇 군대 요새를 요새화 시킨 후 방어를 굳히면 감히 공격하지 못 할 것이라 믿었고,




이것이 바로 슐레지엔에 대한 전격적인 침공의 이유였습니다.




비겁하고 간사하다는 수식어를 빼고,




만약 선전포고하고 들어 갔다면 이미 병력이 증원되서 방어를 하면 큰 피해를 봤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슐레지엔 침공이 실패로 돌아갔을 겁니다.




지금 프로이센의 꿈은 정말 큰 꿈을 꾸고 있었기에,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 최소의 희생 』 으로 『 최대의 이익 』 을 얻어야 했기에 모든 면에서 슐레지엔이 국가 성장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 딱 좋은 지형이었죠.




프리드리히 2세의 철저히 계획된 전쟁에 오스트리아는 허를 찔린 이 상황.




저렇게 허무하게 가장 요충지였던 슐레지엔을 뺏겨서 마리아 테레지아가 전혀 아무런 대비도 안 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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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도 프로이센이 올 것이라고 판단을 했었고, 이미 내부 회의를 통해서 대비 하고자 했습니다만...




【 겨울이 곧 온다. 전쟁은 봄부터 시작 될 것이다. 】




라고 오판..... 뭐 오판이긴 오판인데 워낙 프로이센이 비상식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아무튼 과정이 어찌됐든 간에 잘 못 파악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지도부의 오판으로 인해, 프리드리히 2세는 " 나의 계획대로 되었다. 이제 방어 준비를 시작하자! " 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항중인 요새가 있음에도 말이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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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 : 빌헬름 라인하르크 폰 나이베르크 ]



마리아 테레지아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였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슐레지엔 탈환 의지를 표명.




육군 원수, 나이베르크에게 20,000 명의 군대와 함께 슐레지엔으로 보냅니다.




프리드리히 2세도 마찬가지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도 정말 대단한 배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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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도 나오지만.....




《 우세한 지형을 점거하면 적은 오지 못 한다. 》



《 적을 쉽게 격퇴 할 수 있다. 》




라고 하는 것 처럼, 오랜 전쟁사의 승리하는 기본 철칙이었고,




제가 지난 편에 잠깐 언급하고 크게 강조는 안했지만, 프로이센 군대의 명성은 이미 전 유럽이 다 알고 있었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리드리히 2세가 그렇게 굳게 맹신하고 있던 자신의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이 행동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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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저는 이 기록과 상황을 볼 때, 계획에 너무 맹신한 프리드리히 2세을 보고 " 천재의 자만 "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도움을 주신 모 교수님의 조언, " 글과 기록, 지금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당시에 시선을 봐라 " 라고 하신 덕분에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동.서양 구분하고 전쟁 기록을 보면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임진왜란의 위대한 제독, 이순신 장군님의 한산도 대첩이나 명량 해전.




1차 세계 대전의 갈리폴리 전투. 2차 세계대전의 독소전에 쿠르스크 전투 등.




공격하는 군대가 아무리 강군이며 숫적으로 아주 우월하다 할 지라도 지형만 제대로 끼고 싸우면 충분히 물리친 전례는 무수히 많았던 것 처럼.




지금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했던 결정의 무게. 프리드리히 2세의 믿음은 다 그에 기인해서 보자면 확실히 와닿는 말들입니다.







3. 허를 찔린 프리드리히 2세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을 받고 슐레지엔 탈환을 위해 공격하러 간 나이베르크.




먼저 정찰대를 보내서 프로이센 동향을 파악해 본 결과, 경비가 허술한 것을 눈치 챕니다.







11.png

[ 빨간 동그라미 : 나이쎄 ]





이때 프로이센 군대는 중요 지역들을 점령 후, 아직 함락이 되지 못한 나이쎄등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프로이센의 군대의 위치를 파악한 뒤, 그 뒤를 바짝 쫒아갑니다.




결국 이러면서 과연 누가 ' 나이쎄에 먼저 도착하는가 " 가 관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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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때가 겨울이었고, 나이쎄가 누가 먼저 가냐에 따라 슐레지엔의 행방이 결정되기에 빠르게 행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동상 환자가 급증, 진흙이 얼어 붙어 마차 이동이 불가능 했기에 해체해서 부품 하나씩 짊어지거나 혹은 얼어 붙은 땅을 깨서 다시 평평하게 작업 하는 등. 정말 끔찍한 겨울 행진으로 기록됩니다.




또한 프로이센 군대는 좀 더 상황이 안좋았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철석같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오스트리아 군대가 와서, 오히려 프리드리 2세도 허가 찔린 상황.




완전히 방심했기에 원래 군대는 겨울 숙영때는 밀집하지 않고 여러 지역으로 군대가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지역에 밀집하면 그 지역이 약탈하든 돈으로 사든. 뭘 하든 간에 과잉 인구 때문에 군인들을 먹일 수 가 없었기 때문이죠.




원활한 보급 때문에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마리아 테레지아와 나이베르크가 정말 대담한 판단으로 처들어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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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나이베르크는 오라비아 산맥을 넘어, 대놓고 슐레지엔의 메인도로를 통해 진군.




프로이센 군을 봐도 그냥 스쳐 지나가서 북쪽으로 달라가, 나이쎄로 행진하는 것이었죠.




근데 반대로 말하면, 프로이센이 미리 눈치 챘다면 메인도로에서 측면을 공격해버리면 그대로 당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선택을 했습니다.




결국 허를 찔린 프로이센보다 먼저 나이베르크가 나이쎄에 입성하게 됩니다.




이제 이렇게 되니까 프로이센 군이 본토와 연락이 끊어지며 고립 상태가 직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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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비츠 전투. 1741년 4월 10일. ]





프리드리히 2세에게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전투라고 판단하여, 나이세 인근 지역이었던 『 몰비츠 』 에서 두 나라가 맞붙게 됩니다.








마침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정면 충돌!



과연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오스트리아가 다시 탈환할 것인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첫번째 라운드, 몰비츠 전투가 시작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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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7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6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4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7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8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0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0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4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4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4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5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5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3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0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7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5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5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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