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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최근연재일 :
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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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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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DUMMY



1. 몰비츠 전투 비하인드 이야기






1.jpg



뒤늦게 도착한 프로이센 군. 그러나 우연찮게 빠른 이동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탈영병을 포로로 잡습니다.




포로가 되면 아군 기밀 정보 유출을 안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죠.




그러나 30년 전쟁과 영국 내전을 봤지만 이쪽 동네는 옛부터 전해오는 암묵적인 룰에 의하면, 포로는 심문하는 내용에 충실히 답변한다는 뭐 그런게 있었죠.




프리드리히 2세는 포로를 심문하면서, 오스트리아 군의 위치와 병력 포진을 짐작하게 됩니다.




이 짐작은 지금으로 따지면 뭐 사진도 없고, 포로가 아는 정보도 뒤죽박죽에다가 확실치 않는 얘기가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전투를 해본 결과, 프리드리히 2세의 예상과 거의 일치했다고 합니다.







2. 몰비츠 전투 1막(1) : 프로이센 군의 상황







2.png

[ 몰비츠 전투의 전황도 ]





1741년 4월 10일에 몰비츠 전투가 벌어집니다.




§ == 프로이센 병력 == §


- 21,600 명


- 대포 58 문



§================§





§ == 오스트리아 병력 == §



- 19,000 ~ 20,000 명


- 대포 19 문



§================§






3.jpg



전투가 벌어진 당일의 날씨는 눈발이 날리고, 안개가 껴 있었습니다.




프로이센 군대는 그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군대를 향해 접근합니다.




하지만 악천후의 날씨로 시야가 가려진 덕분에 프로이센 군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오스트리아 군 측에선 미리 감지하지 못합니다.





결국 바로 오스트리아 군 코 앞 까지 당도한 프로이센 군.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당시 종군 기록사들에 대략적인 말에 의거하면 2천 보. 아마 1km 정도라고 생각이 드네요.




대략 1km 정도라곤 하지만 그래도 꽤 먼 거리라서 모를 수 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해보면 20,000 명의 사람들에게서 나는 소리등을 모두 고려해보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고,




이게 가려졌다는 것을 보면 당시 날씨가 정말로 혹독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보면 프로이센 군이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프로이센 장군들도 " 이때를 이용해서 기습 돌격을 하지 않을까? "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4.jpg



프리드리히 2세는 잠잠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이 의문에 정답은 미국의 군사 학자, 데니스 쇼월터가 이런 말을 합니다.




『 아직까지는 위대한(The Great) 가 아닌 프리드리히 2세였다. 』




보통 우리는 프리드리히 대왕(The Great) 이라고 하는데,




아직 그 정도의 급은 프리드리히 2세가 되지 못했던 것이죠.




지금 속된 말로 프리드리히 2세는 훈련은 빡세게 했지만 실전 전투는 이제 처음입니다.




슐레지엔도 점령했다곤 하지만, 전투 다운 전투도 없었고 말이죠.




자! 그러면, 드디어 훈련 빡세게 받은 군대가 실전에서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생각하기에는 훈련했던 것 대로 훈련해서 돌격!.... 이라고 할 것 같은데....




실전 훈련을 안 해 본 군대는 『 교과서대로 행동 』 한다는 것입니다.






5.jpg



지금 몰비츠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바로 치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교과서대로 포진부터 합니다.




즉 먼저 이동하느라 대열이 흐트려지고 하니까, 전열 정비부터 했다는 소리죠.




지금 프리드리히 2세는 정말 연습 많이 했으니, 연습대로 대형부터 착착 짭니다.




이게 들키는 걸 떠나서, 코 앞에 적 군이 있으니 시간 낭비 뿐더러, 지휘관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처참히 까발리는 최악의 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군 앞에는 강도 있었기에, 이것도 건너야 했는데도 말이죠.




프리드리히 2세의 또 하나의 실수는 포진한 다음, 건너야 하는 강의 거리도 잘못 계산합니다.




우익 부대에 대한 거리 계산 착오로 인해서, 참전 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게 결론적으로 지금은 사방이 탁트이고 평평한 연방장이 아닌 곳이며, 심지어 몇 천도 아니고 2만의 군대가 있는데...




" 배운대로 포메이션 실시! " 라고 전투 현장에서 하니까




사람도 틀려.... 지형도 틀리고, 사방에 강, 눈, 진흙, 돌 등등 장애물들도 사방 천지이니 이걸 대형대로 맞추느라 무려 1시간을 낭비합니다.




오스트리아 군 입장에선 " 쟤들 무슨 쇼하니? " 하는 것 처럼 군사 퍼레이드 한 꼴이었습니다.







6.jpg

[ 쿠르트 크리스토프 폰 슈베린 ]





이렇게 되자, 프로이센 군의 부사령관, 슈베린이 한마디 합니다.




" 폐하. 계산을 잘 못 하신 것 같습니다. "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는 슈베린의 조언을 무시합니다.




" 무슨 소리! 내 계산은 여태까지 틀린 적이 없었어! "




그러자 슈베린은 생각합니다.




' 쓰읍.... 지금 내가 여기서 말해 봤자 통하지 않겠군. 나중에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수습을 해야겠어... '




다행히 군대를 개판으로 끌고간 상황이지만, 프리드리히 2세 휘하에는 슈베린같은 훌륭한 장교들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였습니다.






2-1. 몰비츠 전투 1막(2) : 오스트리아 상황





시간을 조금 뒤로 되돌려서, 악천후로 프로이센 접근을 보지 못했던 오스트리아 군.




그러나 다행히 프리드리히 2세의 오판으로 시간이 낭비된 시점.




당시 나이베르크는 잠에 깨서 군복 입으며 나갈 채비를 하다가, 텐트 창문을 바라보니 왠 군대가 대형을 짜는 것을 목격합니다.




나이베르크 장군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딱히 명성이 있지 않는 평범한 장군으로, 집안 대대로 군인이었기에 시간이 지나 짬이 차면서 승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베르크는 프로이센 군대를 보자, 즉시 군대를 편성해서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그 동안 프로이센은 대형을 짜고 있었고 말이죠.




나중에 이 같은 행동에 변명 합니다. 지금 기록으로 봐도 " 엥? 왜이래? " 이라고 하는 것처럼, 당시에도 부끄러운 일이었죠.




《 이때 눈이 내려서..... 총 불발률이 높아서.... 당장 안 싸우는 줄..... 》 이런 식으로 변명했습니다.




아무튼 오스트리아 군이 전투 대형을 갖춰지며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됩니다.







3. 몰비츠 전투 2막 : 위기의 프로이센





1시간 동안 시간을 낭비했던 프로이센 군이 먼저 진군을 시작합니다.




오스티리아 군대는 지난 편에서 설명 했듯이 기병이 강하기로 소문났습니다.




특히 강하다고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제 6 기병 연대는 무려 5,000 명이었습니다.






8.png



제 6 기병 연대가 프로이센 우익 기병대쪽으로 공격을 감행합니다.




여기서 프로이센 우익 기병과 보병을 분리시켜 버리죠.




이렇게 되자 프로이센은 측면이 완전히 뻥 뚫려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무방비 상태였던 보병들을 향해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돌격을 쇄도합니다.




이때 프로이센 군대는 훈련을 빡세게 했기 때문에, 기병이 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도 훈련을 받았죠.




" 어 ! 기병대가 온다! 다들 연습하던 대로 준비해! "




하면서 대처를 하는데.... 프리드리히 2세 뿐만 아니라 프로이센 군대가 첫 실전 경험이다 보니....




아군에게 오인 사격을 해버리고 맙니다.







6.jpg



이렇게 전황이 프로이센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자, 잠깐 물러났던 슈베린이 다시 나섭니다.




" 폐하. 지금 전황의 사정이 좋지 않으시니, 물러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이 말에 프리드리히 2세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 무슨 소리!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다! "




라고 말하며 슈베린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요?




" 알겠다. "




하고 바로 지휘권을 슈베린에게 넘기고 뒤로 빠집니다.




근데 여기서 전황의 사정을 좀 더 얘기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몰비츠 전투에서 프로이센 군에 20,000 명의 병력중에 보병은 17,000 명.




반대로 오스트리아 보병은 11,000 명이었습니다.






9.jpg



그러나 기병은 프로이센 보다 약 3배 가량 많았고, 그 유명한 헝가리 후사르 경기병이었습니다.




헝가리 후사르 기병은 오스만이 유럽 진출로 헝가리 왕국을 침공하는 등.




오스만과 싸웠기 때문에 실전 경험이 많은 노련한 기병대였죠.




그래서 들고 치고 뛰는데는 선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이센 우익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습니다.




자고로 군대라는 것은 측면이 뚫리면 이미 끝이 나버린 상황이죠.




프리드리히 2세도 이 상황을 어떻게든 만회해 보겠다고 이것 저것 지휘하며 하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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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제가 보기에, 이땐 무전기 같은 장거리 통신 기구가 없으니 혼자서 소리 지르고 어쩌고 해도...




당시는 전령으로 통해서 멀리 있는 군대에게 명령을 전달하던 시대.




제 짐작에 의거하면, 프리드리히 2세는 이걸 안해봤거나 간과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프리드리히 2세는 소대 지휘도 안 해 본 사람이니, 그가 아무리 판단력이 빨라도...




사람을 어떻게 부리며,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과 판단이 아직 여물지 않았던 것이죠.




이러면서 결국 프리드리히 2세는 왕이 되어야 하는데 개인이 되면서, 혼자서 소리 지르고 어쩌고 하니 더 엉망으로 만든 것이죠.




전에 나폴레옹 전투 기록에서도 이런 게 있었습니다.




전령으로 보내던 시대니까, " 너 저기로 가! " 하는데.... 전령을 한 명만 보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가다가 말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부러질 수 도 있고, 적 총이나 포탄에 맞아 죽을 수 도 있고, 생포 당할 수 도 있으니까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현장 지휘관이 그 상황에 맞게 적합한 전령 숫자를 파악해서 보내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저 부대에게 전령을 몇 명 보낼 것인지에 대한 빠른 상황 대처가 필요한데




그렇다고 내 주변에 전령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예를 들면 20명 전령 보냈다가, 돌아온 전령이 2명 밖에 안 오는데, 그 다음 지휘 명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런 부분에서 프리드리히 2세의 경험 부족이 절실히 보여줬다는 것이죠.







11.jpg



아무튼 프리드리히 2세는 슈베린의 조언에 따라 전장에서 이탈합니다.




근데 많은 유럽 역사가들은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 프리드리히 2세가 물러난 것은 전적으로 슈베린이 의도한 것이다. "




" 그는 이 상황을 예견하여, 프리드리히 2세 눈 밖에 나지 않도록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지휘권을 받아 상황 수습을 하도록 한 것이다. "




이런 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프리드리히 2세는 이 상황에서는 헛 된 자존심을 버리고 이탈한 그나마 잘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이탈할 때도 프리드리히 2세의 상황은 위험했습니다.




이탈할 때 대 부대를 데리고 빠질 순 없으니, 소규모 병력과 함께 도망치다 하필이면 후사르에게 발각됩니다.




근데 후사르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지.....




이상하게 후사르들은 전투에 집중을 잘 안하더라고요.




얘들은 기승전...약탈! 이렇게 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전형적으로 유목 기병이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뭐 아무튼 몰비츠 전투가 거의 오스트리아가 이길 뻔 하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후사르들이 사방 팔방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어느 민가에서 있다가 프리드리히 2세와 마주친 것이죠.




프리드리히 2세는 살기 위해서 숨는데, 자기가 앉았던 말 안장등 값진 것들을 전부 밖에 내다버리고 숨 습니다.




그러자 후사르는 비싼 물건에 정신이 팔려서, 그것만 들고 다시 어디론가로 가버린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프로이센 군이 오발 사격도 하는 바람에, 하필이면 왕을 적으로 알아보고 오발 사격을 하느라 총탄이 옆에서 빗발쳤다고도 합니다.




자칫 잘못 했으면 프리드리히 2세가 30년 전쟁의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꼴이 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죠.



'





4. 몰비츠 전투 3막 : 위기 속에 기회, 슈베린의 냉철한 판단.



'


한편 프리드리히 2세의 지휘권을 인계 받은 슈베린.




그리고 한창 밀어붙치던 오스트리아 후사르들이 사라진 이 시점.




바로 이때 전투는 반전의 순간으로 접어듭니다.







12.JPG



오스트리아 기병 사령관 뢰머가 프로이센 군을 신나게 때려 부스고 있었는데, 포탄에 머리를 맞고 치명상을 입습니다.




반대로 프로이센 기병 사령관도 전투 중에 전사하게 되는 난전이 이루어 집니다.




양측 기병 사령관이 사라진 시점.




이렇게 되면 누가 더 불리할까요?




우익이 뻥 뚫리고 박살 직전까지 내몰린 프로이센?




오히려 기병에서 뛰어났던 오스트리가 불리합니다.




거기다가 후사르가 지금도 통제가 안되서 사방 팔방 흩어져서 약탈에 눈이 먼 얘들인데....




당시 프로이센은 장교들이 슈베린에게 ...




" 이 싸움 졌습니다. 차라리 지금 후퇴해서 전력을 보존합시다! " 라는 말을 하면서 패전이 짙어져 있었습니다.







13.jpg



그러나 슈베린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장 상황을 주시하다가 2가지를 파악합니다.




1) 오스트리아 기병이 맹렬히 위협하고 있지만, 가만 보니 체력이 떨어졌다.


- 처음 같은 강렬한 공세가 옅어지고, 전세를 확산시킬 추동력이 하락된 것.




2) 고강도 훈련을 받았던 프로이센 보병이 지금까지도 쓰러지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슈베린도 나이베르크 처럼 큰 전투 없이 대체로 짬먹고 지휘관이 된 케이스였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노장의 능력과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고, " 우린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 " 판단을 내립니다.




슈베린은 장교들이 철수하자는 말에 이렇게 답변합니다.




『 우린 적의 본대를 넘어 퇴각한다. 』




이때부터 상황은 역전됩니다.




근데 가만 상황을 보면 지금 프로이센은 지휘관의 뛰어난 지휘로 상황이 역전됐기 보다는....




병사들이 그간에 엄청난 고강도 훈련으로 인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버티는게 경험과 일상이 되다보니




어쩌다가 강한 체력으로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아이러니하게 상황을 역전시킨 프로이센 보병들의 기적이라 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5. 몰비츠 전투 4막 : 반격의 프로이센







14.jpg



군대를 재정비한 슈베린은 마지막 한방을 날리기 위해 마지막 진격을 시도합니다.




여기서 프로이센의 전매특허가 등장하는데, 그동안 제식 훈련을 참 열심히 받으신 프로이센 보병.




당시 오스트리아 장교 기록을 보면, " 벽이 움직이는 줄 알았다! " 라는 이야기를 남깁니다.




프로이센이 전세 역전을 어떻게 시키나면,




밀로 나오면서 사격, 근데 솔찍히 말하면 이때 총은 거의 명중률이 형편 없었고, 이때도 거의 맞추지 못합니다.




근데 여기서 기록에만 보면 전혀 이해 못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총이 안 맞지만, 군대가.. 그것도 몇 천, 몇 만의 병사들이 총을 파파방! 하고 쏘겠죠.




설령 맞지 않더라도, 소리 때문에 긴장하고, 무서워하고, 스스로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이때 " 우리가 너희보다 쌔! " 라고 보여줄 수 있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사격 속도



2) 퍼포먼스




단순히 총을 한꺼번에 파파팡! 쏘는 것이 아니라, 희한한 것을 연습합니다.







15.jpg

[ 사격 퍼포먼스 ]





예를 들면 한 열의 총병이 왼쪽부터 오른쪽하고, 다시 반대로 하면서 파도타기 처럼 총을 한발씩 차례대로 쏘는 짓.




더 난이도가 높은 것은,




양 끝에서 한 발씩 쏘면서 마지막으로 가운데 총병이 쏘는 것.



우리가 이 기록을 보면 웃길 지도 모르고, 황당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는 사람 입장에선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대는 저렇게 되는 놈이 한명도 없는데 저쪽은 저렇게 가능하도록 " 훈련 " 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죠.




" 상대 적은 엄청난 훈련으로 우리보다 훨씬 강할거야! " 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바로 퍼포먼스라는 것입니다.







16.jpg



지금 인도 중국 접경 지역에서 보면, 뭐 무술 퍼포먼스같은 걸로 기 싸움 한다고 하잖아요.




이걸 보면 우린 엄청 비웃죠. 지금 현대에도 이런 개념이 통할지 안할 지는 전쟁을 안해 봐서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저런 퍼포먼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위압감을 충분히 조성해서 효과를 톡톡히 보았기에 나왔던 일들이라는 것이죠.




퍼포먼스만 얘기했지만, 발사 속도도 중요합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평균 1분에 2발 사격을 할 정도로 훈련도가 낮았습니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1분에 4~5발을 사격합니다.




어떤 교과서에서는 영국군이 제일 빨리 쏜다고 했는데, 거기서도 영국군은 1분에 3발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총 장전이 그렇게 힘든가? 라고 하실 수 있는데







17.JPG



당시 총 장전 동작을 빨리할려면 16가지로 절제된 동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시 총의 명중을 기대할려면 25야드(약 23m)까지는 와야 통용됐습니다.




유튜브 같은 영상에서 머스킷 총 사격 연습을 하면 정 중앙에 맞추는 것이 많이 없습니다.




특히 사격 연습장은 철저히 안전 장비를 한 상태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쏘는데도 명중력이 형편 없는데 말이죠.




근데 전장에 있으면 피와 죽음이라는 공포가 엄습하면서 사람이 떨리게 되겠죠.




그러니 앞에 시야를 봐도 제대로 초점이 안 맞춰지고 몸이 떨려서 마음처럼 맞춰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격 고장도 꽤 빈번합니다




제가 본 유튜브 영상에서 총 10발 중에서 3번 정도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10번 중에 총기 고장이 3번이면 이미 30% 불발의 가능성을 앉고 사격하겠죠.




심리적 요인, 악천후, 최악의 지형(진흙 등)으로 다 따지면 아마 10% 미만의 명중률이 나올 겁니다.




바로 이때, 훈련이 잘 된 병사가 먼저 정신을 차린 순간이 바로 전세 역전을 시킬 중요한 카드인 것이죠.







6. 몰비츠 전투 : 전투 결과







14.jpg



슈베린의 지휘와 강력한 훈련을 받은 프로이센 군의 진격에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오스트리아 보병이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격멸하게 됩니다.




재미있기도 오스트리아 군이 도망 칠때, 드러머들이 더 빨리 두들겼다고 하네요.




위에 훈련 얘기 나와서 해보자면, 오스트리아 보병 훈련이 얼마나 안됐는지 기록에 찾을 수 있습니다.




전투 결과의 교전 비용을 보면,




프로이센은 약 3,900 명의 사상자를 냅니다. 사실 이건 초반의 실수로 인해서 생긴 불상사였죠.




반면, 오스트리아는 2,500 명의 사상자와 포로 1,500 명이 발생합니다.




이때 포로는 보병이었고, 나머지 기병은 말을 타고 재빨리 도망쳤죠.







9.jpg



보병에만 훈련을 얘기했지만, 오스트리아 기병대도 훈련이 잘 됐다면, 전열을 재정비해서 공격을 해야 했습니다.




경기병대의 중요한 역활은 보병끼리 붙었을 때, 만약 아군 보병이 이긴다면, 적이 등을 돌려 도망친다면




기병대들이 쫒아가서 도망치는 보병대들을 공격해서 병력 손실을 최대한 많이 내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역할입니다.




반대로 아군 보병이 밀릴 것 같으면, 보병들 사이를 뚫고 가서 공격한다면 적 보병대의 진격할 힘을 못내겠죠.





다만 이 전투에서 저런 개념이 통할까 싶은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합니다.




사실 초반에 프로이센 군이 정신을 못차려서 얻어 터졌지만,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싸웠을 때는 오스트리아 기병들도 격퇴시킨 기록이 있어서 100% 확신은 맞다곤 할 수 없지만,




오스트리아 후사르의 각종 실수들을 볼 때 좀 더 체계적이고 공세적으로 나왔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일이긴 하니까요.




아무튼 이러쿵 저러쿵해서 프로이센 군이 결국 몰비츠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근데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유럽 전술가들이 이 전투를 참관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프로이센의 강력한 훈련된 모습과 거의 질 뻔한 전쟁을 이긴 모습에 유럽 참관단들이 정말로 깜짝 놀랐다라고 하더군요,







7. 몰비츠 전투에서의 프리드리히 2세.






4.jpg



몰비츠 전투에서 실수를 저지른 프리드리히 2세.




이것을 보면,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처음부터 완벽히 마스터된 모습은 나올 수 가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2세를 싫어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하면, 아버지가 잘 물러다준 병사들을 데리고 전쟁한 전쟁광이라든지 이런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말 무서운 것은,




자고로 학생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10번 배울 것을 1번만에 배우느냐 아니냐의 차이였죠.




더군다나 똑같이 가르쳤을 때, 얼마나 단계를 점프하느냐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죠,




프리드리히 2세는 몰비츠 전투라는 단 한번의 전투로 완전히 각성하게 됩니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The Great 해진 프리드리히 2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프리드리히 2세의 회고록에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 몰비츠는 나의 학교였다. 』



『 다시는 나의 군대를 두고 도망치지 않겠다! 』




다만 저 말이 " 내가 죽더라도 도망치지 않겠다 " 라는 것이 아니라,




【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 】 라는 뜻이라는 것이죠.




지금도 그렇고, 이후에도 그는 실수를 하지만,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다음 단계씩 점프하면서




180도 달라진 프리드리히 2세의 활약과 함께, 제 1차 슐레지엔 전투는 막을 내립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제 1 라운드는 패전할 뻔 했지만, 슈베린의 훌륭한 판단과 프로이센의 강력한 군대로 몰비츠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한편 슐레지엔 탈환에 실패한 마리아 테레지아.



과연 그녀는 이 정국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그리고 프리드리히 2세는 몰비츠 전투의 실수에서 어떻게 변화됐는지.



유럽 각 국의 전황은 어떻게 흘러갈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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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유럽 7년 전쟁 에필로그(完) 21.07.21 40 1 20쪽
53 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21.07.20 25 2 15쪽
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4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6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9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4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3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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