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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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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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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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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DUMMY



1. 로보지츠 전투의 비하인드 스토리







1.jpg



로보지츠 전투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좀 더 얘기해볼려고 합니다.




지난 편에서 프로이센 군이 로보지츠 마을로 가서 전투를 벌였죠.




그때 로보지츠 마을에는 작센 군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작센 군에게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군은 프로이센 군과 싸우다가 브라운 장군의 판단으로 후퇴를 하는데, 비교적 질서 있게 후퇴합니다.




하지만 작센 군은 프로이센에게 항복하죠.




근데 이때 프리드리히 대왕이 화가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로보지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이 워낙 잘 싸워서 된통 깨지고 도망가려고 했던 체면을 구긴 일이 있는 등.





2.jpg



여러 이유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셨던 것 같습니다.




항복한 작센 군 포로들에게 하는 말이....




" 너희들은 지금부터 프로이센 군에 합류한다. "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충성 맹세에 대한 거대한 의식을 집행 합니다.




당연히 작센 군 입장에선 속이 쓰리는 일이겠고, 어떤 병사가 충셍 맹세를 거부합니다.




보통 이러면 프로이센 스타일로 체벌을 가하거나, 어디 가두는 방법으로 대응했을 법 한데....







3.jpg



프리드리히 대왕이 직접 병사에게 다가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직접 처벌을 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는 항복한 작센 군은 당연히 대단히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겠죠.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이 저질렀던 이 사건은... 훗날 그에게 커다란 실수로 되는 나비효과를 일으킵니다.




과연 항복한 작센 군이 어떻게 복수 할지는 제가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2. 그들은 어제의 그들이 아니다.







4.JPG



아무튼 로보지츠 전투에서 판정승으로 오스트리아 군이 승리...? 라고 할지 아무튼 그래도 나름 괜찮은 교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단순히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승부를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전투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전투를 승리했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전투의 목적 달성 여부를 본다면 프로이센의 승리입니다.






5.jpg



왜냐하면 오스트리아 군이 온 이유가 피르나 요새에 갖혀 있는 작센 선제후 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이었던 아우그스트 3세를 구출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프로이센 군의 저지로 후퇴하여 구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죠.





이러니까 아우구스트 3세도 구원 군이 격파 당한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프로이센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프리드리히 대왕은 개전 초기의 목적 달성을 이번에도 또 달성한 셈이 됐습니다.





이로써 프리드리히 대왕의 계획대로 작센을 차지한 상황.





이렇게만 본다면...





" 뭐야 또 프로이센이 원하는대로 또 흘러가겠네? "





라고 이번에도 프로이센이 압도적으로 전쟁을 휘어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 그들은 어제의 그들이 아니다. 』





로보지츠 전투 다음에 전투에선 결코 프로이센은 쉬운 전투가 벌어지진 않다는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3. 프랑스 - 영국의 식민지 전쟁





제가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나고 유럽 7년 전쟁이 벌어지기 8년 동안 이야기를 굉장히 생략하고 스킵했는데,




이 부분을 제대로 명확히 얘기 하지 않고서는 다음 유럽 7년 전쟁 이야기를 설명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얘기 하려고 합니다.





6.jpg



우선 8년의 시간 동안에, 프랑스의 계몽 작가로 알려진 폴테르가 이런 말을 남깁니다.




《 1748년 부터 1755년 까지 그렇게 찬란한 행복의 시절은 볼 수 없었다. 》



《 모든 나라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 졌다. 》



《 유럽은 갈등을 겪고 나서 재결합한 대가족 같았다. 》




응??




이게 유럽 7년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벌어지던 얘기가 맞나요?




지금 또 치열하게 싸우고 하는데 그 전에 너무나도 화합이 잘 되었다는 것에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정도네요.




우선 폴테르가 1756년 부턴 7년 전쟁이 터졌으니 그 전의 시간이였던 1748 ~ 1755년 사이의 과거의 추억 얘기를 남겼겠죠?




하지만 폴테르는 지금 세상의 흐름을 잘 몰랐기에 저런 얘길 했을 겁니다.(이 부분은 저의 추측)




왜냐하면 이미 1754년 부터 전쟁은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견원지간이라고 한다면, 【 프랑스 - 영국 】 아니겠습니까?







7.png



둘은 이미 식민지 쟁탈을 두고 다시 피터지는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심장부에 대한 패권을 놓고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북아메리카 정착민 숫자는 영국이 많았지만, 군사력은 프랑스가 강력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식민지 쟁탈에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전선이 영국에게 불리하니, 영국 의회가 회의를 개최합니다.




영국 의회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전쟁을 【 국지전 vs 전면전 】 으로 전장을 축소 혹은 확산으로 바라 볼 지 결정하고 있었죠.




당시 영국 의원들의 의견은 서로 분분했는데, 반대로 영국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전쟁을 찬성했습니다.




" 우린 적극적으로 참전해야 하며, 유럽과 식민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 한다! "




영국 국민이 이토록 전쟁 참가에 열망을 띈 이유가, 당시 영국의 부의 원천은 전 세계의 식민지였습니다.




아주 전 세계적으로 빨대를 꽂아서 단물을 쪽쪽 빨아 마시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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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피트. 제 1대 채텀 백작 ]





그래서 정계에서 가장 큰 두각을 나타냈던, 당시 영국의 국무 장관 【 윌리엄 피트 】 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 국지전으로 가면 우린 해결 할 수 없다. "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군이 지속적으로 식민지로 병력을 파견하기에, 영국은 모든 해군력을 총 동원 하더라도 이를 저지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윌리엄 피트는 2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1) 해상 차단.



2) 적극적인 유럽 전쟁 개입




두 가지를 활용해서 프랑스 본토를 공격하여 식민지 지원 병력을 사전에 차단시키자는 방안을 내죠.




이렇게 프랑스와 영국은 갈등이 계속 커져 가고 있었습니다.




얼추 서쪽 동네 이야기를 마쳤으니, 동쪽에 오스트리아로 시선을 돌려보죠.






4. 오스트리아 외교 대 격변







9.jpg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슐레지엔을 빼앗긴 후에 무진장 화가 나 있는 상태였죠.




심지어 마리아 테레지아가 얼마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냐면,




그녀가 키우던 개 이름을 프리드리히로 짓습니다.




또한 외교 문서를 보낼 때도 달랐는데,




보통 외교 문서는 상대 국에 대한 예의로 아무리 싫은 감정이 있더라도 점잖게 쓰는게 당연한 예의죠.




심지어 이때는 국가 간의 부분을 더 뛰어 넘어서 왕이 국가를 통치하는데,




유럽의 왕들은 서로 사돈에 팔촌 등등 어째든 다 엮어보면 결국 같은 집안 사람들으로




그들만의 리그라고 해야 할지.... 그들만의 종족이라고 할 지.... 아무튼 그들만의 세계가 있죠.




그래서 외교 문서도 국가와 국가의 개념 + 왕족과 왕족 + 같은 집안과 집안이라는




정말 국가, 출생, 신분이 다 엮이기에 유럽 외교 문서가 훨씬 더 복잡한 관계과 통상의 예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근데도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리드리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 그는 괴물이며 신앙심도, 정의감도 없는 적! 』



『 못 된 놈에 짐승! 』




정말 외교를 하는데 왕족이 했던 말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맹비난을 퍼붓습니다.




또한 일상에서도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로이센의 프 자만 나와도 우리로 따지면 강아지 욕은 기본 탑재하는 등.




그녀가 얼마나 프로이센에 대해 이를 바득 바득 갈고 있었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튼 그래도 화만 낸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죠.




마리아 테레지아는 설욕을 하기 위해 우선적 외교 관계 재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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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첼 안톤 폰 카우니츠리트베르크 ]





이때 【 카우니츠 】 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정말 기가 막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이게 왕위 계승 전쟁을 겪어 봤지만, 국제 전쟁이라서 각자 편도 많고 사방 팔방에서 전쟁이 터지는 등




아주 기운이 쏙 빠질 정도로 난잡했죠.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든 역전시킬려면, 외교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즉 한마디로 동맹을 많이 늘리자는 것이죠.




그랬더니 당시 카우니츠 나이가 38세로 상당히 젊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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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등 고위 관료들이 이런 외교 부분에서 회의를 하며 " 무슨 좋은 생각 없나? "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젊은 백작 카우니츠가 의견을 냅니다.




"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




엥?.... 근데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동맹 관계로 왕위 계승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던 적이며,




합스부르크 왕가와는 불공대천의 원수가 아니던가요?




그리고 카우니츠는 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12.jpg



『 무슨 수를 쓰든 간에 슐레지엔을 얻고 싶다면,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



『 대신 프랑스가 우리 말에 따라줄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 【 플랑드르 】 를 내줍시다. 』




이게 상식적으로 정말 이해가 안되는게,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먹는데 큰 도움을 줬던 나라인데, 플랑드르를 포기하면서 까지 프랑스와의 동맹???




이걸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불과 8년 전에 임진.정유재란에 열불나게 싸웠던 일본과 동맹을 맺으면서 동시에,




부산을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소리랑 하등히 다를게 없는 소리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 그쪽 동네와 우리 동네와 같냐!? "




라고 하실 수 있는데....




우선 너무 억측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단순히 비유 정도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하여간 아무튼 카우니츠가 이런 말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습니다.







13.jpg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1세는 열 받아서 자리에서 이탈하는 등.




관료들은 모두 하나 같이 카우니츠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카우니츠를 가리키며....




『 저 사람이 인물이다! 』




카우니츠의 의견을 들은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를 키우기로 결심,




" 네가 한번 해결해라. "




라며 외교 전권을 카우니츠에게 맡깁니다.







5. 카우니츠의 외교 전략





전 편에 제가 이 말을 비슷하게 했는지 기억이 가물한데,




외교는 절대 감정적으로, 히스테릭하게 해선 안됩니다.







10.jpg



그리고 카우니츠는 외교를 이런 생각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 내가 프랑스에 가려는데... 그렇다고 그냥 가는 것은 좀 그렇고.... "



" 프랑스를 자극할 만한 외교적 사건있으면 그 기회를 잡겠어. "




마치 해당 외교적 사건을 해결한다는 명분하에 프랑스를 꼬시려는 것이죠.




그리고 마침 카우니츠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14.JPG



프로이센 옆에 하노버 공국이 있었는데, 하노버는 영국이 가진 유일한 유럽 대륙의 공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위 계승 전쟁 할 때도 영국이 하노버를 통해서 계속 지원하고 그랬죠.




그래서 영국은 유럽 대륙에 떨렁 자기 영토(하노버)가 있는 것이 무척이나 걱정했기에, 강국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습니다.




참 이것도 기묘하죠?




영국이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 동맹(+프로이센)을 상대로 전쟁을 했던 나라인데 말이죠.




아무튼 영국은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어, 프로이센으로 하여금 하노버를 보호 하도록 합니다.




반대로 프로이센은 하노버 보호를 대가로 유럽 전쟁이 다시 벌어지면,




영국은 당장 식민지 전쟁으로 육군을 파견할 여력이 부족하기에,




대신에 재정 지원 + 하노버의 군대로 지원 하여 프로이센을 돕기로 하여, 전격적으로 영국 - 프로이센 동맹이 체결됩니다.




정말 왕위 계승 전쟁과는 몰라 볼 정도로 판이 커지고 세력 동맹이 역전하는 것을 확 느껴집니다.




이제 카우니츠는 이 소식을 들고 프랑스로 갑니다.




그가 프랑스에 도착하고 나서 누굴 만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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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 에티엔 프랑수아 드 슈아죌 】 이라는 유명 인사를 만나는데,




그는 훗날 외무 대신 및 전쟁 대신으로 될 정도로, 지금에서도 아주 실세 중에 실세였던 사람입니다.




카우니츠가 그를 만나러 방문했는데, 슈아죌은 30분을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사실 이건 외교적 결래이지만, 카우니츠는 꾹 참고 기다립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 슈와죌과 카우니츠가 드디어 만납니다.




슈와죌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아 능청스럽게 카우니츠에게 " 정말 미남이시군요! " 라고 말을 건넵니다.




30분이나 사람을 기다려 놓고 한마디 사과 없이 능청스럽게 대하면, 보통 같으면 버럭 화 내고 나갈 법 하지만...







10.jpg



카우니츠도 같이 능글하게 대꾸하며 맞장구로...




" 지난 번에 프리드리히 한테 뒤통수 맞으신 적 있죠? "



" 근데 제가 한 정보를 입수했는데.... 영국이랑 프로이센이랑 손을 잡았던데요? "



" 이렇게 되면 프랑스는 뒤통수를 두번이나 맞은 건가요? ㅋㅋㅋㅋ "




사실 슈와죌도 이 정보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카우니츠는 계속 신경을 긁으면서 자극합니다.




카우니츠가 계속 아픈 상처를 긁자, 슈와죌도 결국 표정 관리가 안되서, 자리를 파토낼까 생각할 찰라!




카우니츠가 한 가지 딜을 건넵니다.




" 프리드리히. 그냥 냅둘 겁니까? "




그러자 슈와죌이 답하길,




" 우리도 벼르고 있소. "




그러자 카우니츠가 말하길,




" 그럼 우린 서로 목적이 일치 합니다. "




라고 하며, 불공대천의 원수였던 프랑스 - 오스트리아 동맹이 결성됩니다!




이야... 참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16.jpg



30년 전쟁부터, 오스만의 빈 침공에서 종교가 달랐음에도 신성 로마 제국이 싫어서 오스만 편을 붙은 프랑스가....




이렇게 극적으로 서로 동맹이 된다니... 참 놀랄 일이네요.




물론 이 동맹이 공식적으로 맺는 것은 나중 일인데,




당시에는 이게 누설 되면 안되니까,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며 비공식적으로 암묵적으로 동맹 의사를 주고 건넨 것이겠죠.




아무튼 유럽은 항상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특히 발상 자체에 있어서 동양과는 정말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많네요.





근데 어떻게 보면 또 간단한 이야기로, 공통의 적 + 나의 이득 = 정답 이라는 당연하고 이해가 가는데...




이게 국가간의 긴 흐름과 역사. 전쟁과 감정에서 보면 결코 쉽지 않고,




그래서 동양도 보시면 한중일이 모두가 서로가 싫어 하는게 바로 그것이죠.




또한 이런 유럽의 판단은 5년 후. 10년 후에 또 결국 달라지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것에 유럽 외교는 참 오묘하네요.




위에 동맹을 이야기 나와서, 좀 더 말씀드리면






17.jpg



특히 유럽 전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동맹입니다.




유럽에서의 외교 = 계약 입니다.




단 계약을 안 지켰을 때에는 신뢰가 떨어지고 악감정이 생기는 등 문제가 발생하여 다음 계약(외교)를 할 때 굉장히 힘들어지죠.




아무튼 동맹이란 단어를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 의리가 포함된 것이 동맹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좀 있을 겁니다.




근데 유럽은 동맹을 계약 관계로 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몇 년 간 동업하자~ 협력하자~ 는 것이죠.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네가 저쪽으로 가든 말든 상관 말자는,




단순히 이득으로 맺어진 관계일 뿐이죠.




지금 카우니츠도 " 우린 영원히 함께! " 가 아니라, " 프리드리히 같이 칠래? " 해서 맺어진 동맹.




그래서 불공대천의 원수든 아니든.




외교는 절대 감정적으로 해선 안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들인 것이죠.








작가의말



한 동안 바쁜 일이 있어서 자주 올리진 못할 것 같습니다.



언제 업로드 될 지는 잘 모르겠네요.



시간이 나는 대로 쓰고는 있지만 일주일에 얼마나 업로드 할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단 없이 계속 연재는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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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21.07.20 25 2 15쪽
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4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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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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