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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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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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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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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DUMMY



23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내부의 가장 큰 적을 아군으로 만듦으로써 서서히 내부 결속을 다지는 마리아 테레지아.



과연 앞으로의 그녀에 운명은 어떻게 될지 살펴보겠습니다.






1. 프리드리히 2세의 답장너 침공




참 세상이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참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삼국지에서도 숙명의 라이벌로 꼽으면 조조와 유비. 주유와 제갈량 등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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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18세기 유럽에 가장 두각을 보인 인물 2명, 프리드리히 2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이 둘이 정말 시대에 타고 난 사람이며 그래서 라이벌이었고 또한 서로 위치도 바로 옆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가장 옆에 오스트리아 있었고, 가장 빨리 군사적 행동을 했다고 지난 펀에서 얘기했습니다.




그럼 왜 프리드리히 2세는 슐레지엔으로 침공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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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토 확장



- 지금 프로이센의 영토는 개간되지 않는 지역도 많고 경제 활성화도 낮은 곳이었습니다.



- 슐레지엔은 유럽에서도 석탄과 철의 유명한 생산지였고, 그 외에도 납, 주석, 구리등의 지하 자원이 풍부했으며, 상업 도시가 있어서 매우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2) 인구 증가



- 프로이센 인구는 220 만 명 → 약 300 만 명으로 전보단 많아졌습니다.



- 하지만 강대국 프랑스 인구에 1/8 밖에 안되는 수준이었습니다.



- 슐레지엔 지방의 인구만 해도 약 150 만명입니다.



- 프로테스탄트(신교) 들이 많이 상주하던 지역이라서 구교의 대표 세력이던 합스부르크 가문이기 때문에 지역 충성도가 비교적 약했습니다.



- 만약 프로이센이 이곳에 침입하면, 프로이센 편을 들겠다는 여론이 꽤 많았죠.






이렇게 슐레지엔의 내부 사정을 보고, 프리드리히 2세를 보면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기 국가 정책 운영때는 굉장히 평화스러운 무브를 풍겼지만,




실상 속내는 경제와 인구, 국방의 증가를 통해 국가를 키울려면 저 곳을 먹어야 겠다는 것을 이미 점찍고 있었다는 얘기죠.




프리드리히 2세가 군대를 이르킬 때, 단순히 군대로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와중에 외교도 같이 진행합니다.


( 전편에도 말했지만 유럽은 전쟁과 외교를 동시에 하기 때문에 서로 동 떨어진게 아니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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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쟁이 왕위 계승 전쟁인데, 그럼 왕위 계승 전쟁의 뜻은 뭘까요?




겉으론 왕위를 얻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 다들 속내는 " 이 지역에 땅은 나 줘! " 합니다.




물론 전에 협약 맺어 넣었지만..... " 그건 네 아버지때 얘기고, 이제 너가 됐으니 새로 계약 갱신해야지? " 라고 하는 얘들도 있는등




서로 " 어 " 다르고 " 아 " 다르지만, 결과적으론 자기 옆 동네에 이익이 되는 땅을 달라는 것이죠.




아무튼 이런 배경 속에서, 프리드리히 2세는 슐레지엔 지방에 있는 네 곳의 공작령을 요구합니다.




물론 그냥 무턱대고 달라는 것은 아니고 명분은 있었습니다. 명분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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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 호엔촐레른 가문 문양 ]


[ 우 : 호엔촐레른 성 ]





프리드리히 2세 가문은 『 호엔촐레른 』 이었습니다.




이 가문이 1573년 《 브리크 조약 》 을 통해, 슐레지엔 지방 중에 일부였던 브리크 공국을 상속받았습니다.




" 나는 이러쿵 저러쿵 해서(위의 이유) 슐레지엔 계승권이 있다. " 라고 주장합니다.




근데 1573년이면.... 거의 200 년 전의 얘기죠 ㅎㅎ




거기다가 마리아 테레지아에겐 더 기분 나쁜 소리를 합니다.




" 나는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 땅을 나에게 준다면, 매년 5백만 리블을 주겠다. "




" 또한 우리의 군대로 당신의 나라를 지켜주겠다. "




이렇게만 보면 오스트리아를 위해서 돈도 주고 싸워 주겠다니까, 나쁘지 않는 소리가 아닐 수 있냐라고 할 수 있지만, 다음 말에서 가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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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스카나 대공(남편, 프란츠 슈테판) 에게 안정된 제국을 바치겠습니다. "




결국 어째든 간에 프리드리히 2세는 살리카 법에 의해서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또한 프리드리히 2세는 야심이 컸던 만큼, 고작 슐레지엔의 공작령들만으론 만족할 인물은 아니였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저렇게 말하면, 마리아 테레지아가 무조건 거부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술책일 뿐이었죠.




그리고 전 세계 통 틀어서, " 우리 군대로 지켜주겠다. " 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안 먹은 사람이 없죠.




아무튼 프리드리히 2세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싫다는 답변을 듣기도 전에 바로 침공한 면모를 보면 명분을 위한 말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듭니다.







2.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프로이센 침공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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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왕위 계승 전쟁이 이제 막 수면 위로 드러난 시점에서, 프리드리히 2세의 침공은 굉장히 빨랐습니다.




비록 프로이센이 군대를 계속 모으면서 전쟁에 준비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는 군대가 없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프로이센은 전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군대 동원이 가능했던 나라였습니다.




지난 프로이센의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 강력한 중앙 집권화 』 때문에, 발 빠른 군대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살짝 거짓말을 첨가해서 말하면, 남들은 이제 막 전령을 보내서 군대 징집을 하려고 할 때, 프로이센은 이미 병력이 집결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모인 군대로 곧바로 치고 나가는데, 전 유럽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세상에 전국에 모인 군인을 이렇게 빨리 모아서, 저렇게 빨리 친다고?! " 하면서 다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정보 통제 능력이 정말로 탁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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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2세는 측근들에게 조차 전쟁 얘기를 안합니다.




왜 프로이센이 신속 동원을 아버지 세대부터 열심히 한 이유는 단순히 전쟁이 터졌을 때 빨리 모으려는 이유가 아니고,




재빠른 동원을 해야만 군대 누설이 안됩니다.




그래서 측근 장군들에게도 " 0월 0일 00시 까지 0000 에서 모여! " 라는 단편적인 정보만 하달합니다.




그러니 주변국이 이미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모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쟁 얘길 안하니까 저 군대가 전쟁 하는 군대인지 훈련하는 군대인지 모릅니다.




심지어 아버지대는 맨날 군대 동원해서 훈련만 시키니까 더욱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죠.




이게 얼마나 정보가 철저했는지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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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리드리히 2세 즉위를 축하기 위해, 베를린에 프랑스 대사였던 【 보보 후작 】 이 있었습니다.




유럽은 당연하지만 다들 사돈에 팔촌으로 엮여 있으니 즉위 하면 다들 저런 사절들이 오고, 또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군대들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봅니다.




사실 말이 대사, 사절로 표현하지만 실상은 합법적인 스파이입니다.




그런데 대사가 해당 국가가 군대 동원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얘기는 정말 큰일 나는 소리겠죠.




그런데 당시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병력이 모여서 나가니까,




보보 후작이 너무 놀랐으며,




" 저 군대가 프랑스로 가는 군대야? 훈련하러 가는 군대야? 딴 나라 치는 군대야? "




라며 전쟁의 낌새와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프리드리히 2세 혹은 측근 사람들에게 물어 볼 수 도 없는 요량입니다.




만약 그렇게 물어 봤다가....




" 프랑스 치러 가는 군대임 ㅎㅎ. 이제 알았으니 너부터 처리할게? "




본인이 적 입 속에 풍덩 빠진 꼴이라 죽을 수 도 있으니까, 말은 못하고 그냥 입만 다물고 전전긍긍 할 수 밖에 없었죠.




보보 후작의 입장에선 얼마나 섬뜩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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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리드리히 2세는 보보 후작한테 가서 이런 말을 합니다.




『 나는 당신들의 게임을 하러 가오. 내가 에이스를 잡으면 나누어 가집시다. 』




이 말을 남기고 베를린을 떠나는데, 이러니까 보보 후작은 더 헷갈립니다.




저 말을 남긴 이유가 지금 왕위 계승에 프랑스가 깊숙히 관여하고 있었죠.




저 말을 쉽게 해석해서 풀이하면.... " 너희가 가려운 곳을 내가 긁어주러 가는 거다. " 입니다.




그리고 더 뒷면에는 " 내가 오스트리아를 치면, 어차피 프랑스는 내 편을 들게 되어 있어! " 라는 확신을 갖고 한 말이기도 한 것이죠.


(근본적으로 프랑스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앙숙이기 때문)




고작 저 한마디 속에 담긴 프리드리히 2세의 유럽의 힘에 균형과 미래 전략까지 전부 함축시킨 점에서 정말 머리가 비상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전격적으로 슐레지엔 침공이 시작됩니다.







3. 프리드리히 2세의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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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11월. 프로이센 군대가 슐레지엔 국경을 침입합니다.




온 유럽이 프로이센의 군대 침공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이, 오스트리아도 몰랐기에 완전히 허가 찔린 상황.




당시 슐레지엔에 상주하고 있던 군대는 별로 없었기에 별다른 저항 없이 깔끔히 슐레지엔을 차지합니다.




제가 지난 편에 언급했지만, 당시 베를린이 문화와 예술의 도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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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검열 폐지 등으로 계몽 군주, 지성의 군주라 불리던 프리드리히 2세가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켜서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많은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일제히 전쟁 반대를 성토합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전혀 신경도 안썼다고 하네요.




옛날에 프리드리히 2세의 변절이라고 해야 할지, 반전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종이 뒤집듯이 변한 그의 모습에 " 배신 " 이라고 까지 부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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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적에 의하면, 프리드리히 2세의 초상화 3개가 나열되어 있는데,




청년 시절의 문학 미소년 → 전쟁으로 인한 역변이 되어서, 전쟁 마지막에는 " 늙은 악마 " 라고 까지 표현하면서...




남 뒤통수 때리지 말고, 착하게 살자 라는 얘기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변한게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잘못 파악한 것이죠.







14.jpg



예를 들면, 음악을 즐긴다고 군인이 안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음악이라든지 그림, 문학 같은 것을 즐긴다고 군인이라던가 사람이 모두 심성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 편견 』 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히틀러도 젊은 시절에는 미술 전공으로 가려고 한 적도 있었고, 예술을 사랑했고, 심지어 채식주의자였죠.




근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아버지) 와 프리드리히 2세(아들)의 갈등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오해를 했던 것인데...




사람들이 그에 대해 2가지 오해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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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가 했던 교육 방침이 싫고, 군대 훈련을 안 받는다고 해서 군대 혐오자라고 생각.



2) 지난 편에서 언급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反 마키아벨리 책을 저술했는데, 이런 말을 남깁니다.



『 군주는 결코 지배하는 국가의 절대적 주인이 아니라,


국가의 제일의 공복에 불하다.


국민의 행복은 군주의 이익보다 중요하다. 』




프리드리히 2세가 저렇게 말하다 보니, 사람들이 보기에는 " WA! 우리 군주님은 전쟁을 싫어하는구나! " 라고 할 수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요즘 독재자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 내가 왕이야! 내가 독재자야! " 하는 사람 있나요?




다들 국민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 통치한다라고 변명에 가까운 소리 하죠.




제가 지난 편부터 계속 말하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정말 총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 역사의 방향은 절대주의다! " 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15.jpg



아버지의 경우에는 절대주의로 가기 위해서 군대 & 재정에만 힘을 썼죠.




프리드리히 2세는 민사의 부분. 즉 통치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군대식으로 통치할 순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법과 명분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군주가 " 어떤 명분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가? " 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말했던 『 국민의 이익이 중요하다. 』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과도 같은 말이죠.




단순히 군주가 남에게 비하를 당하거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전쟁하겠다는 것과 달리,




" 나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다. " 라는 말과는 근본적인 뿌리부터 다른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프리드리히 2세가 뛰어났다는 점일 겁니다.




그리고 제일 큰 오해가 군사 훈련을 싫어하고, 플루트를 불러서 군대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나중에 프리드리히 2세 일생을 보면 정말로 군사적 천재였던 사람입니다.




단순히 아버지의 교육과 군사 훈련이 싫다는 것은 부자간에 갈등이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서 현대로 따져서 비유하자면,






16.png



천재에게 같은 나이 학년 얘들과 같이 교실에 앉아두고 시험지 100 장 풀어라고 하면,




천재 입장에선 " 내가 왜 100 장 풀어요? " 라고 하겠죠. 왜냐하면 단 1장만 풀어도 나머지 99 장은 다 아니까요.




이런 점을 사람들이 잘못 간과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2세의 그릇을 잘 못 봤다는 것이죠.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이 아들이 보기에는 " 아니 이걸 왜 해. 안해도 다 알아! " 라고 속으론 그랬을 겁니다.




근데 워낙 아버지 성정이 불과도 같아서 저 말을 했을 수 도 있고, 안 했을 수 도 있지만 말이죠.




웃긴건 아버지는 전에도 말했지만 군인왕으로 전쟁에 한번도 참전 안 한 것과 달리.




프리드리히 2세가 저때는 군사 훈련을 싫어했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보면 직접 군대 훈련도 하고 전술 토의를 했던 것을 보면 아버지를 초월한 진짜 천재였습니다.




이게 바로 일반인이 보는 시각과 천재를 보는 시각에서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평을 받기 보단 나쁜 평이 받지만, 결과를 보면 큰 성과를 이룩한 것 말이죠.







2.jpg




프리드리히 2세을 살펴보고, 마리아 테레지아 입장을 보면 하필이면 저런 사람과 싸워야 한다는게... 참...




아무튼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을 접수하여 영토와 인구가 2배로 확장하게 되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과연 절대적 카리스마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인지.




아니면 슐레지엔을 재탈환할 것인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계속 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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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4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6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6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9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7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5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6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3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6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9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6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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