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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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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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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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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DUMMY




1.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1.JPG



엑셀라샤펠 조약으로 8년간의 전쟁이 끝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하지만 전 유럽을 뒤엎으며 싸웠던 대 전투에서 얻은 전과는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8년 간의 전쟁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체면과 망신을 철저히 구기며, 슐레지엔 영토를 상실한 마리아 테레지아.




많은 돈과 병력을 투자했으나 어떠한 영토도 얻지 못하고 손해만 본 프랑스 등.




모든 이들이 이 전쟁에서 독기만 남은 채 끝나며, 그렇게 8 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2.JPG



오스트리아는 지난 전쟁에서 외교 전략을 크게 바꿔, 예전에는 앙숙 프랑스에 대한 견제가 위주였다면....




反 프로이센 동맹 전선 【 오스트리아 - 폴란드 - 러시아 】 을 구축하여 프로이센을 철저히 압박합니다.




그리고 1754년 ~ 1756년에 영국과 프랑스간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치열한 쟁탈전이 다시금 발발하며 세상은 다시 전운에 감쌓이게 됩니다.




한편 프로이센도 곧 전쟁이 임박함을 감지.




지금 오스트리아를 주축으로 한 反 프로이센 동맹 전선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 작센 』 을 먼저 침공을 준비.




1756년에 전격적으로 프로이센이 작센을 침공합니다.




근데 왜 하필이면 프로이센이 작센을 먼저 공격하려 했을까요?







3.JPG



왜냐하면 작센을 점령하면 남쪽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단단한 방어선 구축이 가능한 동시에,




反 프로이센 동맹 전선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오스트리아가 군대를 작센을 구하기 위해 파견할 것이고,




이 군대를 격멸시킨다면?




오스트리아의 동맹이 무너질 것이며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 프리드리히 대왕이 판단한 것 같습니다.




또한 작센을 먼저 점령하고, 그곳을 프로이센에 내전 작전에 중심 거점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4.png

내선 작전의 대표적인 나라가 1차, 2차 세계 대전의 독일과 현대의 이스라엘이 대표적인데,




가장 최근 시간대로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에서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등이 동시에 처들어 오자,




내선 작전을 통해 먼저 시리아 격파, 기갑 차량으로 빠른 이동을 통해 이집트 혹은 요르단 격파등으로 내선에서 각개격파로 했던 것 처럼




프로이센도 " 내선 작전의 이점을 살리자! "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프로이센이 전쟁을 준비할 것이라곤 이미 주변국들이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단지 언제 처들어 오느냐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죠.




하지만 프로이센이 보여준 가장 큰 특징. 1) 신속 동원 , 2) 빠른 진격 이죠.




지금 첩보에서는 " 이제 곧 전쟁 임박! 병력 오는 중 ! " 하며 들려오며 이제 군대 집결하려는 와중에...




프로이센은 순식간에 작센을 처들어 간 것입니다.






5.jpg



프로이센이 얼마나 신속 동원이 가능했냐면 짧으면 3일, 길어야 6일 정도면 군대가 출격 준비가 완료될 정도라고 하네요.




진짜 이러니까 아무리 긴장 하더라도 항상 자기 기준으로 생각 하게 되죠.




" 야 내가 직접 병력 모아보니 아무리 짧아야 일주일이더라~ "




철저히 자기가 직접 몸소 해보고 깨닫는 경험이다 하더라도 그 경험의 정보가 반대로 오히려 자기 눈과 귀를 가려주는 가림막으로도 작용 된다는 것이죠.




아무튼 케셀스부르크 전투에서 얘기 했지만 작센은 그때 아작이 나고 그래서 8년 동안 프로이센 눈치를 보느라 방어 요새도 못 짓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프로이센 군대의 발목을 잡아 줄 요새나 이런 것이 전무하니, 작센 군대가 제대로 모이기도 전에 순식간에 작센 수도였던 드레스덴이 함락됩니다.




이게 단순히 역사적으로 글만 봐서 누구의 시선에서는 " 뭐야 그냥 프로이센 무서워서 순순히 준 것 아니냐? " 라고 오해 할 법 한 일입니다.




근데 제가 자료 조사를 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6.jpg



당시 작센 선제후이며 동시에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을 겸직했던 아우구스트 3세 였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작센쪽도 결코 어디 꿇릴 만한 세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센 군대를 모으기도 전에 먹혀버리니 어쩔 수 없이 아우구스트 3세가 튀었는데....




근데 왕비를 남겨 두고 혼자 빤스런을....;;;






7.jpg

[ 빨간 동그라미 : 피르나 요새 ]




아무튼 왕비를 남겨 둔 채 도망간 아우구스트 3세는 피르나 요새로 들어 가서 농성.




오스트리아는 즉각 아우구스트 3세를 구하기 위해 작센으로 출병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7년 전쟁이 시작됩니다.






2. 프리드리히 대왕의 작센 침공 작전





프로이센이 전격적으로 침공하면서 작센 수도를 먹으며 함락하긴 했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아주 전혀 부담 없이 깔끔히 점령할 것이라고 예상 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빨리 잔존 작센 군이 움직여서 재빨리 요새로 들어갔다는 변수가 발생됩니다.







8.jpg



그러자 프리드리히 대왕이 약간 계산 착오를 일으킨 것이,




" 어차피 피르나 요새에 들어간 작센 군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요새를 묶어둘 병력만 남기고 지원하러 오는 오스트리아 군대를 공격해야 겠다. "




라는 판단을 내립니다.




결국 프리드리히 대왕은 작센을 깔끔히 먹고,




모든 병력을 오스트리아와 상대해야 했지만 그것에 실패하며 일정 병력을 분산하여 오스트리아 군과 결판을 지어야 됐다는 것이죠.




아 제가 위에 생략한 얘기가 있는데, 프로이센이 작센을 먹으려는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지금도 작센에 가면, 수 많은 비옥한 농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때 작센에는 대농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수 조달에도 용이했던 지역입니다.




아무튼 그 외에도 여러가지 많은 이유가 있는데....







3.JPG



프리드리히 대왕의 꿈은 작센을 【 합병 】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프로이센 1년 예산이 약 500 만 ~ 600 만 달러(약 799 억 ~ 960 억 원)




만약 작센을 병합 한다면, 1년 예산 : 약 750 만 달러(약 1,200 억 원)




쉽게 말해서 30만 달러 정도 된다면, 지금 현재 가치로 약 48 억 원이 됩니다.




하여튼 그러니 작센을 병합하면 국가 수입이 약 20% 껑충 뛰어 오르니 탐이 낼 만한 것도 있었고.







9.JPG



지형 요충지로 보자면, 작센을 점령하면 보헤미아가 코 앞에 있죠.




즉 보헤이마가 코 앞이라는 뜻은 오스트리아의 측면 공격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오스트리아 입장에선 매우 골치 아픈 일이죠.




이러니까 작센이란 곳이 자금 확보 & 전략적 요충지이니까 이것 만큼 좋은 땅이 없었죠.




반대로 오스트리아 입장에도 절대로 프로이센에겐 빼앗길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처음에 작센을 침공 했을 때, 프로이센 병력이 약 60,000 명 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프로이센이 끌고 다녀봐야 평균 20,000 명 정도였는데




유럽 7년 전쟁에선 판이 더욱 커져서 단위가 달라집니다.







3. 로보지츠 전투 전초전







10.JPG



프리드리히 대왕은 피르나 요새에 병력을 남겨 두고 진격을 계속하여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를 점령합니다.

11.JPG



그 다음 일부 병력을 페르디난트 공에게 나눠 보헤미아로 보냅니다.




왜냐하면 보헤미아에서 겨울 숙영을 준비해서 보헤미아를 우회해서 돌아오는 오스트리아 군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프로이센 군은 60,000 명의 군대가 계속 쪼개지고 쪼개지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하여 1756년 9월 30일 이른 아침에 두 군대가 드디어 만나게 됩니다.






12.JPG



당시 전황은 안개가 쌓여 있었는데, 안개 속에서 프로이센 군의 선두 부대가 엘베강 계곡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때 프로이센의 정찰대를 보냈는데, 정찰대의 장교가 돌아와서 보고하길,




" 오스트리아 군은 이미 진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



" 우리와 맞붙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




라고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보고를 들은 프리드리히 대왕. 그의 특징이 있죠.




『 난 네 말을 못 믿는다. 』




그러면서 직접 본인이 확인 사살을 하러 갑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또 다른 습관으로 항상 보고를 들었을 때,




" 오 그래? 그럼 이렇게 작전 짤까? "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료만 보면 왕이 뭐이리 의심병이 많아?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앞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보았지만, 전령 혹은 정찰대의 전달 소식에 대한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직접 망원경으로 보고서 판단을 내렸던 것이죠.




전장 사료나 이런 것을 보며 착각하는게 당시 사람들이 전투를 하는 지형에 대한 지형을 전부 다 안다고 망각하시는 분이 좀 있습니다.




근데 지도가 부실하고 하다보니 전장의 지리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1/50000의 지도가지고 봐도 잘 모릅니다.




아무리 못해도 1/5000 혹은 1/2500의 지도로 아주 정확히 낱낱이 되어 있는 것이어야 그나마 전장에서 즉석에서 보고 판단을 내릴 수 있죠.






13.jpg



그러니까 지휘관이 무조건 전장을 둘러 봐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전장은 안개가 자욱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정보 신뢰성은 낮고, 안개가 있으니 프리드리히 대왕이 못 믿었죠.







4. 로보지츠 전투 1막 : 프로이센의 상황





다음 날, 10월 1일.




프로이센 군대가 계곡을 따라 평원 쪽으로 이동합니다.




여기 지형이 조금 독특합니다.




양쪽에 능선이라고 해야 할지, 언덕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작은 산이라고 해야 할지....




이게 유럽 지역이 우리가 표현하는 말이랑 좀 안 맞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산과 계곡의 정의가 좀 다소 틀리다는 것을 염두 하셨으면 합니다.







14.JPG



아무튼 왼쪽에는 로보셰 언덕, 오른쪽에는 호모르카 산 이 있었습니다.



(제가 언덕, 산이라고 했는데 저도 그냥 임의로 붙어서 얘기했음 밝힙니다.)




양쪽 산을 넘으면 중앙 평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프로이센에게는 언덕을 넘어 평원으로 진입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이때 양측이 붙은 병력 숫자는...





§ == 프로이센 병력 == §



- 보병 : 18,000 명


- 기병 : 10,500 명


- 대포 : 97 문


- 총 병력 : 28,500 명



§================§





§ == 오스트리아 병력 == §



- 보병(정규군 + 비정규군) : 26,500 명


- 기병 : 7,500 명


- 대포 : 94 문


- 총 병력 : 34,000 명



§================§




이때 오스트리아 군대는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잔뜩 깨진 후, 대포를 엄청 보강했으며,




로보셰 언덕은 화산 지형이라 포격의 아주 최적지였습니다.




근데 여기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아주 중요한 착오를 저지릅니다.




" 우리가 왔으면, 알아서 도망치겠지 ㅎㅎ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보여준 전술의 천재적인 모습과 대왕의 칭호를 얻은 사람이 하는 생각이라곤 믿기 힘든 판단을 내립니다.




이게 사람이 진짜 무서운게 아무리 천재적인 인간이라 할 지라도,




무려 8년 동안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군이 매번 박살나니까 프리드리히 대왕도 진짜 허세 of 허세로 잔뜩 오스트리아 군을 낮게 보아서 그런 듯 싶습니다.




아무튼 지금 프로이센 선발대 vs 오스트리아 군 주력이 부딪치는데,




프로이센 군은 오스트리아 주력을 보고선...




" 도망치려고 후미를 지키는 후발대겠지 ㅎㅎ "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군은 보병을 깔아 놓고, 양쪽 언덕에 대포를 배치하여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았죠.




거기다가 프로이센이 아무리 강해도, 병력이 적은데




보통 강군이라 해도 쪽수 머리빨에서 나오는 근본적인 자신감이 다르죠.




그러니 머리수가 적은 부대는 정말 신중에 신중을 다하는데...




지금 프로이센이 병력의 열세에도 덤비는 이유는 적이 【 후발대 】 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참 이런 것을 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근데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무식이란 말에 어폐가 있지만....




착각으로 인해 용감해졌다가 올바른 표현이겠죠.








4-1. 로보지츠 전투 1막 : 오스트리아 상황




또한 프로이센은 이곳 지형이 낯설었지만, 오스트리아 군은 전에 과거에 기동 훈련을 한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오스트리아 군은 히든 카드, 비정규군 부대가 있었습니다.




비정규군 부대라고 생각하면 정규 군대가 아니라 안 좋은 부대로 생각하실 수 있는데,




단지 그냥 이름을 비정규군 부대라고 명시됐을 뿐입니다.








15.JPG



이들을 그랜져라고 하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유격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부대입니다.




당시 능선 앞의 평야는 유럽에서 드물게 옥수수 밭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옥수수 줄기가 길고 크다보니 사람이 안보이니, 그랜져가 숨어서 매복 중이었습니다.







16.JPG



또한 몰렌바흐 하천이 있었는데 뒤쪽이 움푹 파여져 있어서 잘 안보이는 지형이라, 상당수 병력을 숨겨놓습니다.




오스트리아 군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각 지형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로보지츠 전투 2막 : 강력해진 오스트리아 군





프로이센 군도 오스트리아 군과 붙기 위해서 생각을 하는데,




먼저 로보셰 언덕이 됐던지 호모르카 산이 됐던지 간에, 한쪽의 언덕 위에 대포를 설치하려고 계획합니다.




당시 프로이센도 상당 수의 중포를 많이 가져왔는데, 심지어 12파운드, 24 파운드까지 끌고 왔습니다.







17.JPG



그리고 프로이센 군의 입장에선 다행스럽게 호모르카 산 쪽에 대포 배치에 성공합니다.




이제 프로이센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최강의 보병 부대가 출격이 시작됩니다.




이때는 정찰병의 보고를 통해 오스트리아 주력 부대란 것을 알았지만,




주력이든 뭐든 상관 없이 박살내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며 공격을 하게 됩니다.




이것만 봐도 프로이센 군이 오스트리아 군을 얼마나 낮게 평가하는지 엿 볼 수 있네요.




근데.... 바로 여기서 큰 사단이 나버리게 됩니다!







18.JPG



로보셰 언덕에 배치했던 오스트리아 포병이 아주 정확한 포격으로 맹폭을 가해 오자, 프로이센 군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죠!




이때 전쟁은 적이 오는 통로를 예측해서 화력망을 갖춰 놓으면, 적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로보셰 언덕이 정말 미끼 아닌, 미끼가 된 것입니다.




로보셰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그랜져라고 크로아티아의 경무장 보병대를 매복 시켜서




프로이센 군을 언덕 위로 올라오도록 유인 및 언덕에 포대를 배치해서 쏴갈기며 미끼 및 화력망을 형성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군에 대해 더 설명드릴게 있어서 말씀 드리자면,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난 다음, 오스트리아가 얼마나 복수를 위해 이를 바득 갈았냐면,







19.JPG



리히텐슈타인의 조셉 웬델(Josef Wenzel) 이라는 왕자가 있었는데,





이분이 포병 전술을 배웠던 사람인지라, 오스트리아 군에 합류해서 약 7 년 동안 오스트리아 포병 전술을 개혁하고 맹 훈련을 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준이 잔뜩 올라간 오스트리아 포병이 프로이센 보병을 향해 사격하여 프로이센 보병을 갈려버린 것이죠.







그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형편 없이 보여줬던 오스트리아 군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해진 오스트리아와 그에 맞서 갈려나간 프로이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오스트리아 군에 맞서, 프로이센은 과연 이대로 힘 없이 밀려날 지.



아니면 프리드리히 대왕이 또 한번의 반전을 꿈 꿀지.



로보지츠 전투 2편에서 계속 됩니다.






작가의말

사실 7년 전쟁이 벌어진 과정에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외교 혁명, 미노르카 섬 해전등 다양한 일이 터집니다.



특히 작센 침공 때 영국이 만류하는 등 여러 물 밑 작업들과 얘기가 많지만



과감히 그런 부분 생략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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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21.07.20 25 2 15쪽
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4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8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3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6 1 24쪽
»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2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8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2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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