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최근연재일 :
2021.07.21 13:31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2,302
추천수 :
76
글자수 :
400,998

작성
21.04.25 19:01
조회
69
추천
1
글자
15쪽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DUMMY



1. 실수의 프리드리히 2세






1.jpg



린츠로 공격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가 슐레지엔의 보급로를 끊어버리면서,




빌라 호라(백산)으로 퇴각, 오스트리아 군은 프로이센 군을 격멸시키기 위해, 코투지츠 전투가 벌어집니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오스트리아 군을 이끌고 있는, 마리아의 시동생 카를 공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카를 공작은 부대 인솔과 통제에 있어서 아주 능했던 지휘관입니다.




그래서 백산에 있는 프로이센 군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이동합니다.







5.jpg



당시 프로이센 군대는 프리드리히 2세가 직접 지휘하는 부대 + 데사우의 레오폴트 공작(프로이센 개혁 일임자)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 둘이 카를 공작이 이끄는 오스트리아가 바로 근접할 때 까지 전혀 들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5월 16일, 프리드리히 2세가 직접 적군을 발견합니다.




프리드리히 2세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발견했던지라 본인의 눈을 의심했고, 확신을 하기 위해서






6.jpg



인근 마을 교회 첨탑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직접 확인 사살을 하고서야 찐 오스트리아 였던 것을 깨닫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빨리 전투 준비와 공격을 할 수 밖에 없겠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근데 이때 프리드리히 2세가 실수를 저지릅니다.




보통 군대라는 것이 다 흩어져서 어느 지점의 전투지에 집결하는 방식입니다.




즉 20,000 명의 군대가 있더라도 한 지역에 2만 군대가 다 몰집한게 아니라 건너 건너 동네마다 병력들을 흩어져서 이동하는 방식이었죠.




프리드리히 2세는 지금 이동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부대의 이동을 잘못 판단합니다.




" 쟤들이 절로 가니까, 내가 저쪽으로 가야지! " 하며,




다른 방향으로 기동시키게 했는데, 상대방은 그쪽이 아니라, 저쪽에서 오는 것 처럼.




오히려 이런 잘못된 판단이 상황을 더욱 위험으로 몰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끈 부대 뒤에는 레오폴트 부대가 있었습니다.







7.jpg



뒤에 있던 레오폴트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합니다.




빨리 프리드리히 2세와 만나지 않으면 정말 큰일났다 싶었던지...




모든 식량이고 뭐고 다 버리고, 프리드리히 2세를 따라잡기 위해서 질주를 하게 되고,




프리드리히 2세도 다시 정신을 차려서, 다행히 무사히 두 부대가 합류합니다.




위에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서,




오스트리아 군은 몰래 이동에 성공.




프리드리히 2세는 뒤늦게 발견, 군대를 이동시켰으나 잘 못 판단.




레오폴트가 상황을 인지해서 달려왔고, 프리드리히 2세도 이제 깨닫고, 둘이 합류.




이렇게 상황이 요약됩니다.




레오폴트가 질주하는 바람에 식량을 놓고 왔고, 본래 집결지가 아닌 중간에서 둘이 집결 만났죠.




그때 레오폴트가 프리드리히 2세에게 전했던 전령의 얘기가 흥미롭습니다.




" 폐하, 제 부대가 식량을 놓고, 한끼도 먹지 못하고 달려오는 바람에, 다들 지쳐 있습니다. 부디 병사들에게 빵을 나눠주십시오! "




라고 했고, 프리드리히 2세와 만나자마자, 레오폴트 병사들에게 바로 빵을 나눠줬다고 하네요.




이런 실수를 보고서 생각이 드는게, 몰비츠의 실수를 잊었나?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런 실수를 다신 안하겠다는 것이고, 이건 또 다른 실수였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게 " 실수 자체를 안하겠다. " 가 아니라,




1번 실수는 안하지만 2번 실수를 저지르고, 다시 고쳐나가 3번 실수, 4번 실수.... 이렇게 하나씩 배워 고쳐나가 완벽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죠.




아무튼 전투 전에 프로이센의 문제가 나오긴 했지만 다행히 두 지휘관이 상황을 잘 수습한 덕택에 큰 사고론 벌어지진 않았습니다.






2. 코투지츠 전투 1막 : 졌지만 잘 싸운 프로이센 기병






2.jpg

[ 코투지츠 전투, 1742년 5월 17일. ]





코투지츠에 붙은 양측의 군대의 규모는 상당히 컸습니다.





§ == 프로이센 병력 == §




- 28,000 명




§================§





§ == 오스트리아 병력 == §




- 23,000 ~ 30,000 명




§================§






프리드리히 2세는 다른 전략을 쓰기에는 이미 시간과 타이밍이 다 지나갔으니, " 전면전! " 을 생각해서 붙게 됩니다.




프로이센 우익 기병 대장으로 버든 브룩이 있었습니다.






3.jpg



버든 브룩에게 기병 돌격을 실시합니다.




버든 브룩 정면에 있던 오스트리아 부대도 기병이었죠.




기병 vs 기병끼리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지난 유럽史 전투에서 보면 기병이 보병을 작살내는 얘기가 많았는데,




이때는 진짜 프로이센의 기병 vs 오스트리아 기병의 진검 승부가 벌어진 것입니다.




전장 서쪽에서는 기병끼리의 난전이 벌어지는데,




오스트리아 군은 그 전까지 승세가 많이 올라서 사기가 많이 오른 상태였습니다.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프로이센 기병과의 싸움에서 거센 저항을 합니다.




왜 저항이라고 했냐면, 먼저 돌격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8.jpg



근데 놀라운 점은 강력한 오스트리아 기병과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 기병대가 나름 잘 싸웠다는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는 틈에, 슐레지엔에서 쉬고 있었죠.




이 쉬고 있는 시간에, 저번 몰비츠 전투에서 헝가리 기병에게 아작이 나고, 목숨까지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프로이센도 강력한 기병대가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간에 기병 강화 훈련에 집중 투자를 합니다.




아버지 빌헬름 1세가 돈이 없어서 등등 여러 현실적 이유가 있긴 했지만, 가장 큰 실수는 기병보다 보병 육성에 과잉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센이 기병 전력에 매우 뒤쳐졌는데, 실전에 투입하니 너무 약해서 거의 병풍 수준으로 아무 것도 못해버렸죠.




하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그 몇 개월의 짧은 시간에 기병을 맹훈련 시켜서, 몰비츠에서 박살이 났던 기병대가 코투지츠에서 서로 대등히 붙을 만큼 급성장을 시킵니다.




물론 당연히 기병 싸움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졌다 하더라도,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깜짝 놀랄 만큼 성장한 프로이센 기병이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강해진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죠.




한편 오스트리아 보병대는 레오폴트 부대를 격멸시키기 위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 군에 진격을 감행합니다.

4.jpg



프로이센 군의 위치를 보면 코투지츠 마을 방면에 군대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저 마을인 전부 목조 건물이었기에, 오스트리아 군이 화공을 합니다.




불과 연기등 때문에 프로이센 군이 못 견뎌서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전황이 프로이센에게 약간 불리해집니다.




또한 서쪽에선 대규모 기병 난전에서도 프로이센 기병이 밀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직 프로이센에게는 프리드리히 2세가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기병 예비대가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기병 예비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 우회해서 오스트리아 기병 뒤를 쳐라! "




그래서 오스트리아 군의 후방을 가로 질렀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 좌익 기병대가 완전히 격파됩니다!




여기서 부터 오스트리아 군이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오스트리아 기병 편대에 대해 얘기 드리면, 헝가리 기병 말고도, 보헤미아, 오스트리아등 여러 기병 부대가 섞여 있었습니다.




헝가리 기병은 지난 편에서도 계속 얘기 했지만, 정찰 / 약탈에는 특화됐는데 이런 대규모 난전같은 전투을 시키면 대부분 도망가거나 약탈하러 갑니다.





9.jpg



또한 17세기와 18세기 기병 난전 전투는 대부분 칼로 싸웠으며, 갑옷도 30년 전쟁의 무기편에서 흉갑만 착용하는 가벼운 방어구를 착용했습니다.




특히 기병 난전에서 이기는 방법은 " 상대방을 말에 떨어 트리는 것 " 입니다.




서로 칼을 부딪쳤다가 반동으로 떨어지든, 갑옷이 아닌 부위를 찔리든, 갑옷에 힘껏 공격해서 밀쳐내든, 말을 찌르든.




낙마를 시키게 되면 부상을 입거나 등 수단 상관 없이 말과 사람을 떨어트리면 기병으로써의 역할을 끝나게 됩니다.




지금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기병 싸움에서, 프로이센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비록 전투에서 졌지만, 상당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점.




그 뿐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는 기병 의전도가 높기 때문에, 양측 기병들끼리 소모하게 되면 불리해지는 것은 오스트리아 군이며,




오스트리아는 전체 전황도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 코투지츠에서 프로이센 보병 측면을 공격해서 흔들어줘야 했는데, 기병 난전에 시간을 소모하는 바람에 보병 전투에서 개입을 못한 것도 매우 컸습니다.




전체적으로 싸움은 졌으되, 오스트리아 기병 전술 성과를 완벽히 막은 프로이센 기병으로 매우 졌잘싸인 셈입니다.






3. 코투지츠 전투 2막 : 차가운 이성의 프리드리히 2세






4.jpg



이제 전황의 모든 신경에 중심은 코투지츠 마을의 보병 vs 보병 싸움으로 넘어갔습니다.




오스트리아 군은 빨리 서쪽의 아군 기병이 난전을 헤쳐나와 동쪽 전선을 참전시키기 위해 상황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프리드리히 2세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10.jpg



그는 포병대를 몰래 언덕으로 올라가 배치한 다음에, 오스트리아 보병대에 사격을 개시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때 18세기는 전열 보병의 라인 배틀 시대죠.




근데 라인이 너무 길다보니, 전선도 덩달아 같이 길어져서, 우익과 좌익 상황을 잘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카를 공작도 이때 큰 착각에 빠집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서쪽은 기병끼리 대 난전으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며, 동쪽은 마을이 불타고 연기가 뽕뽕 피어오르니 정신이 없겠죠.




그래서 카를 공작이 레오폴트 부대 쪽으로 집중 공격을 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레오폴드 병력은 프로이센 군의 전체 병력에 1/3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나머지 2/3은 프리드리 2세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오스트리아 모든 보병대는 1/3 밖에 없는 레오폴트에게 총 공격을 하게 한 것이죠!




당연히 숫적에서 레오폴트 부대가 부족하니, 전선이 뒤로 밀리기 시작하자,







11.jpg



카를 공작은 " 드디어 이겼다! " 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면서 " 더! 더! 더! 밀어붙쳐! " 하면서 자기가 이겼다는 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주변 지형을 잊고 맙니다.




그때 프리드리히 2세는 언덕에 포병대를 배치해서 사격했는데,




이게 정말 힘든 것이 17세기에 포들이 경량화를 했다 하더라도, 그 무거운 대포를 평지도 아니고, 언덕을 들고 나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죠.




또한 포만 가져오는게 아니라, 포탄, 거리 측량 기구등등 모든 물자를 수레에 가져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프로이센은 수레 끄는 연습도 참 많이 했고, 맹훈련의 결과가 실전에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프로이센에 군에 대해 칭찬을 하자면,




곧바로 대포를 설치해서 단기간에 드넓은 전황에 아군과 전황을 구별해 집중 포격을 했다는 것도 프로이센의 군대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엿볼 수 있는 대목.







5.jpg



그리고 프리드리히 2세는 아직까지 직접 군대 지휘를 못해봤고, 또 그 실수로 인해 몰비츠 꼴이 나와서, 지휘권이 레오폴트을 주면서 자기는 2선으로 물러났죠.




그런데 1선에 있던 레오폴트가 밀리자, 프리드리히 2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보병대를 전부 투입시키면서




추가 병력 + 포병 공격등으로 강력한 공세로 밀어붙치자, 이때 오스트리아 보병대가 완전히 멘탈이 터져서 아주 무질서하게 후퇴합니다.






12.png



오스트리아 보병대가 무너지는 것을 본, 프로이센 장교들은 프리드리히 2세에게 간언을 합니다.




" 빨리 기병대를 보내서 추격 , 섬멸을 해야합니다! "




그런데 프리드리히 2세는 장교들의 말을 거절합니다.




" 지금 우리 기병대의 손실도 무척 크다. 지금 더 밀고 나갔다간 오히려 패배할 확률이 높다.



차라리 이 정도의 승리를 보고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낫다. "




라고 하며, 여기서 전투가 마무리 됩니다.




프리드리히 2세의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 중에,






13.jpg



지금 그의 최종 목표는 어째거나 슐레지인 확보가 제일 우선입니다.




단순히 오는 적을 밀어내는 것까지만 하면, 외교로 협약을 맺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섬멸전으로 가게 되면, 상대방이 복수심에 타올라서 오히려 더 큰 화근으로 돌아 올 수 있기에.




그냥 놔준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도 있고, 저는 이 의견에 상당히 공감하는 편입니다.


(물론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7년 전쟁을 하면서 계속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14.jpg



많은 군사 학자들이 프리드리히 대왕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중에 하나가 『 장군은 눈 앞의 전투 』 만 봅니다.




세계 전쟁사에 기본 철칙, 적이 도망치면? 섬멸! 이게 당연하죠.




근데 프리드리히 2세는 『 왕 』 입니다. 그는 당장 전투만 보는게 아니라, 그 미래 전략과 외교까지.




전략 속에 전술이 있어서, 【 어떤 목적으로 전투를 할 것인가? 】 를 보게 됩니다.




이 전투의 끝은 어디에서 끝내고, 앞으로의 전황과 외교를 해당 전투를 통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바로 이것들을 항상 생각해서, 전략적 승리를 추구.




전략적 승리를 위해서는 때론 전술을 포기할 수 도 있고, 때론 이길 수도 & 질 수도,




아니면 대등히 싸우든가, 섬멸전을 하든가. 이 모든 종합적인 상황을 판단해서 이끌어 나갔기에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대왕(The Great) 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근데 이런 좋은 평가는 당연히 독일쪽에서의 평가입니다.




대척점에 섰던 프랑스 평가는 딱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 합니다.




『 마키아벨리 』






4. 코투지츠 전투 결과







1.jpg



- 프로이센 군 : 4,800 명의 사상자(대부분 기병)



- 오스트리아 군 : 6,400 명의 사상자, 대포 18문 상실, 12,000 명의 포로




오스트리아 군이 거의 25,000 명 가량 정도 있었으니까, 사실상 전멸한 셈이었습니다.







15.jpg



거의 비슷한 시점에, 프랑스의 알자스 로렌 지방 방면 전투에서, 프랑스의 노장, 드보로이가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합니다.




이 시기의 마리아 테레지아 일기를 보면, 한창 주가가 쭉쭉 올라가고 있었는데 두 전투에서의 패배로 인해 밤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리아 테레지아에겐 매우 속이 쓰린 현실이 다가옵니다.







16.png



프리드리히 2세가 확전을 멈추는 것을 대가로,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의 《 브레슬라우 협정 》 맺습니다.




브레슬라우 협정으로 인해, 『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에게 양도하여 휴전한다. 』 되면서,




제 1차 슐레지엔 전쟁은 마무리가 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유럽 7년 전쟁 완결 소감 +2 21.07.21 39 0 -
공지 빠른 업로드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21.06.21 10 0 -
54 유럽 7년 전쟁 에필로그(完) 21.07.21 39 1 20쪽
53 유럽 7년 전쟁 종전(1763년) 21.07.20 24 2 15쪽
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3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1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6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7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3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5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3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6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7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1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29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1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3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8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4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28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29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19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7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7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1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2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0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3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3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3 1 16쪽
26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完) 21.05.12 24 1 24쪽
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4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2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8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48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1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29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7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29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6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4 1 9쪽
»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0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5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4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2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0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3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7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7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2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4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1 0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4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2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6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3 4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