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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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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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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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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DUMMY




1. 프로이센의 상비군





전 편에 언급했던 프로이센이 국방에 세금 80%를 투자하며, 강력한 군대 양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 편의 각종 개혁으로 인해 강해지는 것은 강해지는 것인데....




군대의 질도 중요하지만 숫자도 중요한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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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로이센 인구는 전 편에서 언급했지만 100만명 가량으로 인구가 적어도 너무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이 모은 병력 숫자가 꽤 많이 모였는데, 비결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상비군은 현대같은 상비군은 아니죠.




이제 막 상비군 제도가 태동하면서 병사들을 모집합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 과거 중세 시절에 기사단이다 뭐다하며 귀족의 전문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근세 시절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들을 국가의 군인으로 모집하려니, 귀족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들도 면제. 다만 장교 같은 경우에는 돈으로 팔아서 그들이 장교가 됩니다.




그럼 징집할 대상은 농민 밖에 없겠죠?




이런 것을 보며 사람은 《 월급도 적고, 위험은 크고, 입대 하면 고생길 천지 》 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죠.




거기다가 월급도 적게 주는 군대인데, 농민들 중에 그 정도 수입 조차 허덕거려서 들어온 사람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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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인식은 " 군인 = 아주 가난하고 빽 없는 자 " 라고 박힐 수 밖에 없고, 이런 사람들이 모였으니 당연히 질은 형편이 없을 게 뻔하죠.




심지어 프랑스 상비군이 용병보다 더 질이 낮다고까지 합니다.




그래도 용병들은 자신의 주가를 올릴려면 제대로 승리를 얻어야 돈을 뜯으니까 싸우는 케이스도 있어서 안 좋은 쪽으로도 가지만, 좋은 쪽으로도 가는데...




이쪽 상비군은 빽과 돈이 없는 사람들이 간다는 개념이 강하니, 주변 인식도 개차반. 군인 본인들 마인드도 개차반이었죠.







16.png



그런데 프로이센은 프랑스 처럼 병사를 뽑으면 군대 질도 떨어지고, 자기들은 가난한 나라인데, 농민을 뽑으면 농사은 누가 짓고, 세금은 누가 낼까요?




저런 문제 때문에 프로이센은 생각을 바꿉니다.




『 농민의 의무는 군대가 아니다, 그들은 일을 하여 세금을 내는 것이다. 』




『 농민들이 낸 세금으로 용병을 구입한다. 』




이때에 활용하는 용병들은 한타 치고 빠지는 월급 용병이 아니라, 상비군 개념의 용병입니다.




그냥 쉽게 말해 외국인으로 구성된 상비군이라고 하면 더 편하겠네요.







2. 기상천외한 상비군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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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이 모집한 용병(상비군)이 외국인이라곤 했지만 그들 모두 민족은 독일인(게르만) 이었습니다. 같은 민족이되 서로 나라가 달랐을 뿐이죠.




또한 상비군 병력 전체를 전부 외국인 용병으로 땜빵친 것은 아닙니다.




전체 병력에 2/3는 외국인 용병, 1/3은 프로이센인 으로 구성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자기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이 없으면 자칫 뒤집어 엎어버릴 위험도 크고, 본인 나라가 아니니 지킬 의욕도 별로 없으테니, 최소한의 자국인이 필요했습니다.




프로이센의 군대 모으는 방법도 참 독특했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참 기상천외합니다.




프로이센은 병사들을 모을 『 모병관 』 을 전 유럽에 파견합니다.




당시 프로이센이 악명이 높은 것은 체벌 뿐만 아니라, 모병관도 악랄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병관마다 채워야 하는 할달량 때문이었죠.




위에서 외국인 용병이니까, 용병을 억지로 데려오기 힘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 하실 수 있을 텐데...




프로이센 모병관은 진짜 할당량을 채울려고 속된 말로 별 짓을 다 했습니다.




거짓말, 사기는 기본이고 납치도 서슴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병사를 모으는(?) 방법을 소개해드리자면....




모병관이 마을 시골을 가만 지켜봅니다. 왜냐?




『 데리고 가도 아무도 안 찾을 놈이 어디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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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찾기 쉬운 장소는 술집입니다.




술 집에서 값을 못내는 사람이 있겠죠. 그를 대신에서 모병관이 대신 계산해주고 그를 말로 살~살~ 꼬득입니다.




" 지금 당신, 돈도 못벌고 있지? 우리한테 오면 돈은 기본이고 옷도 주는데 한 번 올래? "



" 오... 진짜? ok 콜! "




이렇게 그 사람들 데려가서 군복을 입히고... " 이제 넌 자랑스러운 프로이센 군인이다. " 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이건 그나마 인도적인(???) 방법입니다.




더 심할 때는 술 집에서 술을 잔뜩 찌든 사람이 밖으로 나가면 몰래 뒤에 뒤통수를 때려서 병영으로 데려갑니다.




보쌈당한 사람은 눈 떠보니 병영이었다고, 기절할 때 미리 계약서에 지장 찍혀서 빼박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슬픈 얘기가....







3. 프로이센 추노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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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막장 짓을 서슴치 않고 동의하든 안하든 억지로 병사들을 모으니까 당연히 탈영이 속출 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프로이센판 "추노 부대 " 가 등장합니다.




방금 위에서 얘기했던 모집이 진짜 무식한 짓인데, 지금 유럽은 상비군 제도를 처음 만들던 시기입니다.




근데 이런 방식은 프로이센만 했던 것은 아니고 프랑스도 다 이런 짓을 했고, 동시에 탈영병도 많으니까 이것에 골치를 썩였습니다.




그나마 그래도 프랑스는 자국민들을 대다수로 이런 짓을 했지.... 프로이센은 외국 용병 2/3 을 이런 식으로 했던 것이 더 문제였죠.




추가로 외국인 용병에 대해서 더 얘기하자면, 외국인이며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2/3 비중을 둘 수 밖에 없는 이유는 《 군대 경험 O 》 이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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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외국인 용병들이 사실 프랑스나 다른 유럽에서 탈영해서 안 잡힐려고 동쪽으로 도망 온 케이스입니다.




그럼 총 정리해보죠.




각 국에 하층민들이 모병 → 못 견디고 탈영 → 돈은 못 벌고 맴 돌고 있다가 프로이센에 모병.




이렇게 나열하니, 프로이센에 오는 병사들은 저질 중에서도 최악의 케이스들만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보고 생각하니, 가장 최악의 질로 구성된 2/3 외국인 용병 상비군이 잘 유지 될 지 조차 의심이 갑니다.




그래서 프로이센은 한쪽에선 처벌(이라 쓰고 팬다)을 하고,




다른 쪽에선 살살 달래는.... 것은 어림도 없죠. 애초에 그게 안되는 얘들이 모였으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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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군대라는 것이 하루라도 주둔하면, 참호와 진지를 파서 만드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기본이 주변 지역 정찰은 필수. 이걸 안하거나 제대로 못해서 말아먹은 전투가 한 두 번이 아니죠.




프로이센도 " 이건 기본이야! " 하면서 하는데... 사실 진짜 속내는 따로 있습니다.




주변 정찰을 철저히 해라 → 탈영병 추격 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탈영병이 도망가봤자 주변 지형을 모르니까, 갈 곳은 뻔한 것이죠.




그래서 프로이센 추노꾼의 탈영 검거율(?)이 진짜 말도 안될 정도로 높았다고 합니다.








4. 프로이센 상비군의 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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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이 인구도 적고 세금도 적은데, 그나마 그 적은 세금도 이것 저것 투자합니다.




그런데 상비군(외국인 용병)을 1년 내내 둬서 월급을 꼬박 지급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었죠.




이걸 해결하기 위해, 상비군들에게 휴가를 줍니다. 그리고 그 휴가는 당연히 무급이죠.




이렇게 휴가줘서 풀어 놓으면, 다 도망가기 딱 좋을 것 같지만 이미 다년간 숙련된 조교, 추노꾼이 상시 대기중이라서 탈영은 불가능했습니다.




상비군에게 준 휴가로 인해서, 실제로 군 복무 기간은 딸랑 4개월. 일부만 경비병으로 장기 근무로 대체합니다.




이걸 보면 상비군이라고...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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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휴가로 나가는 병사들에겐 이런 말을 합니다.





『 나가서 직업을 가져라, 하지만 제대로 된 직업은 안된다. 』





『 특히 농부는 절대로 하지마라 』





라고 했습니다. 왜 농부를 하지 말라고 했냐면 1년 내내 해야 했고, 또 중간에 부대에 뭔 일 나면 추노꾼이 다시 잡아가니까요.





이런 일이 많았던 것인지, 프로이센에서는 군인을 잘 취업을 안해줬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만약 목장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군대 복귀해야 하면 당장 일 손이 필요한데 소중한 노동력이 사라지니까요.





또한 번듯한 직업을 가질 만한 인재였다면 애시당초 프로이센 군인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요즘 말로 말하면 알바 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특히 해안가, 부둣가에서 짐 나르기 등으로 알바를 많이 했습니다.











5. 유럽 강군으로 성장한 프로이센 군대





이렇게 보면 뭔가 비루해 보일 것 같지만, 그래도 프로이센이 강력한 훈련과 개혁으로 머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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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 와 더불어 『 프로이센 』 이 유럽 4대 강군이 됩니다.




빌헬름 1세가 초기 재임 때는 약 38,000 명의 군대를 보유했었지만,




1740년에 그가 사망 할 때는 무려 80,000 명의 군대를 보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1715년에 아주 일부 지역에는 여전히 스웨덴 군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몰아내면서 모든 포메라니아 영토를 흭득합니다.




처음 브란덴부르크부터 시작해서 보면, 지금 프로이센은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제가 군사 개혁에 집중하느라 사회, 경제 개혁은 안 했는데,




초창기의 17세기 시기에는 브란덴부르크 인구가 80만이라고 했는데, 이때 시기에는 220만까지 인구가 증가합니다.




비록 프랑스와는 여전히 비교가 불가능 하지만, 독일 입장에선 지금 워낙 나라들이 쪼개져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지역하면은 작센과 바이에른으로 30년 전쟁때 가장 격전지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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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동그라미 : 작센 ]


[ 파란 동그라미 : 바이에른 ]






근데 프로이센 > 작센, 바이에른 이라고 할 정도로 아주 큰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군인은 8만 명으로, 당시 인구에 4.4%였는데, 100명 중에 5명은 군인인 셈입니다.




반대로 프랑스는 군인이 1%를 넘은 적이 아마 거의 없었을 겁니다.(찾으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 요소가 있다면 상비군 중에 2/3이 외국인 용병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제가 특별히 토막 유럽史의 용병 편을 연재했을 정도로... 용병에 대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죠.




게다가 억지로 끌고 오고, 뭐만 하면 뚜드려 패고, 밖에 나가서 일은 일용직 알바만 하고...




이런 불안한 요소가 있다곤 해도, 프로이센에게 고려해야할 2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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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력한 규율 훈련



2) 전쟁에서 계속 승승장구 할 때.




2)에 대해서 좀 더 언급하면, 왜 전쟁에 승리 할 때 마다, 위의 불안 요소가 사라지는 걸 까요?




왜냐하면 전쟁에서 이기면 이길 수록, 병사들의 사기 증진도 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




『 병사들이 이기는 방법을 터득 』 , 『 강한 결속력 』 이 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점령지에 대한 어느정도의 약탈까지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죠.








6. 불리한 국가 위치는 반대로 훌륭한 학습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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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개혁을 하는 프로이센이 전부 창작으로 했기 보다는.. 이건 어느정도 국가 위치로 인해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말했지만 프로이센이 강대국사이에 껴 있으니까 성장하기가 매우 힘들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바로 먹히기 좋은 땅이죠.




악조건이 있긴 있지만, 반대로 그런 위치에 장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강국들이 쓰는 전술을 직접 몸소 체험하고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켜 볼 수 있다는 것.




프로이센이 30년 전쟁, 북방 전쟁 등등에서 네덜란드와 스웨덴에 정말 많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스웨덴은 포메라니아에 주둔도 했고, 프로이센 영지에서 싸우기도 했는데, 특히나 그땐 스웨덴이 가장 최전성기 시절에 함께 같이 싸우기도, 적으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적들의 훌륭한 전술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그들의 장점을 흡수하는 좋은 학습의 터였죠.









7. 프로이센식 사관 학교





30년 전쟁 편에서 제가 언급했을텐데, 네덜란드의 마우리츠 개혁.




《 용병도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 교육만 잘 시키면.》




또한 제가 30년 전쟁 편에서 얘길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 사관 학교 』 도 만듭니다.




네덜란드도 프로이센 상황과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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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쟁(네덜란드 독립 전쟁) ]


[ 프랑스 - 네덜란드 전쟁 ]





30년 전쟁 편에서 네덜란드가 신성 로마 제국과 에스파냐 왕국과 싸우고, 심지어 나중에는 프랑스와도 전쟁을 했죠.




강국들이랑 투닥거리며 싸우니까, 단순히 용병만으론 싸우기에는 한계를 느낍니다.




그래서 군대의 질을 높히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사병과 장교. 모두의 퀄리티를 함께 높혀야 한다는 것을 지난 거대한 전쟁에서 배웁니다.




이래서 네덜란드가 사관 학교를 설립하지만, 실패합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네덜란드의 사관 학교를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시킵니다.




제가 프로이센이 처벌로 병사들을 다스렸다곤 하지만... 그래도 구타만으론 군기를 잡을 순 없습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하느냐면, 『 우수한 장교 』 와 『 하사관 』 필요해야 한다는 것을 포인트로 삼습니다.




그럼 이들이 말하는 우수한 장교란 뭘까요?




군대 교육을 잘 받은 장교? 아니면 신념이 강한 장교? 왕에 대한 충성심?(요건 프랑스가 적합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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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을 바라봤을 때 " 우수한 장교 = 국가에 대한 사명감 " 입니다.




근데 이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아직 이땐 신분제니까 귀족 계급에 대한 사명감과 얽혀야 합니다.




프로이센은 자기 국내 실정과 맞게 마개조시켜서 이렇게 했지만, 반대로 프랑스는 안됩니다.




프랑스는 " 나는 왕! , 나는 귀족! " 하면서 따로 노는 동네이니까요.




프로이센은 귀족 계급의 사명감을 국가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근데 처음 프로이센이 사관 학교를 설립할 때, 많은 유럽 국가들이 비웃습니다.




특히 프랑스, 스페인이 제일조시켜서 이렇게 했지만, 반대로 프랑스는 안됩니다.




프랑스는 " 나는 왕! , 나는 귀족! " 하면서 따로 노는 동네이니까요.




프로이센은 귀족 계급의 사명감을 국가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근데 처음 프로이센이 사관 학교를 설립할 때, 많은 유럽 국가들이 비웃습니다.




특히 프랑스, 스페인이 제일 하찮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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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걸 아주 알토란 같이 써먹은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는 바로 영국이었죠.




영국이 가장 먼저 프로이센식 사관학교 시스템을 낼름 먹어서 도입합니다.








8. 기상천외한 장교 모집

그러나 이걸 아주 알토란 같이 써먹은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는 바로 영국이었죠.




영국이 가장 먼저 프로이센식 사관학교 시스템을 낼름 먹어서 도입합니다.








8. 기상천외한 장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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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은 융커(지주 겸, 귀족) 계급을 뽑아서 사관 학교로 보냅니다.




농민은 병사, 융커는 장교로 되도록 한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보면 지금 유럽에서 가장 늦게 까지 신분제 남아 있어서...




오래된 신분제와 부정적 이미지들에서 재활용을 했던 것입니다.




이 지주들이 마인드는 200년 전이나 있던 것으로, 프랑스는 이미 14세기에 사라진 중세 시대의 지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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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프로이센에 쫙 깔려 있는데, 오히려 이걸 활용시켜서, 신분제를 적절히 활용해서 특별히 지주들만 장교로 시켜주는 차별성을 더해줬던 것이죠.




그래서 프로이센은 『 융커 집안에 한 명은 무조건 장교 』 로 만들게 합니다.




이걸 보면 또 프랑스와 갈리는 부분이 있네요.




태양왕 루이 14세는 《 짐은 곧 국가다. 》 라고 했지만, 프로이센은 《 너희가 국가다. 》




물론 프로이센의 장교 만드는 방식도 처음엔 잘 될리가 없죠. 뭐가 좋다고 장교로 가서 죽을 확률이 높게 전쟁터로 가나요?




그래서 빌헬름 1세는 특단의 조치로 『 납치 』 를 합니다.




농민들을 납치는 그래도 이해는 되는데.... 융커를 납치???




이게 어떻게 가능했고, 이걸로 진짜 프로이센이 원한 그림이 만들었을지가 의문인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이걸 해냅니다.




그는 납치 할때 조건을 둡니다.




" 가능하면 어린 자식을 데려와서 훈련시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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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병들을 보내서, 몰래 한 명을 휙 가져갑니다.




이러면 지주들이 열받아서 왕이랑 전쟁 할 것 같은데...




제가 전에도 얘기 했지만 대 귀족이 없고 서로 다 고만 고만해서 대전쟁을 벌일 만한 여력은 없었죠.




아무튼 이렇게 납치한 뒤, 왕이 편지를 보내서 " 댁에 자식 내가 잘 키울게. 걱정마 " 이렇게 했답니다.








글이 길어서 다음 편에서 프로이센의 사관 학교 제도에 대해 더 알아보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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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4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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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5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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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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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9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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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6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3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5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3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5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3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8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4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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