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1. 꺼지지 않는 전쟁의 불씨
코투지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이 패배하면서, 결국 브레슬라우 협정으로 인해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이 완벽히 접수.
그리하여 제 1차 슐레지엔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끝나지 않았죠.
이것들 때문에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어려운게,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된 도화선이 제 1차 슐레지엔 전쟁이었고, 그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모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죠.
그저 슐레지엔 방면 전쟁과 프로이센 vs 오스트리아 대결만 끝난 것일 뿐.
아직 프랑스, 이탈리아등 전쟁하고 있는 전선은 아직도 차고 넘쳤습니다.
아무튼 1742년에 1차 슐레지엔 전쟁이 끝났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결코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분명 마리아 테레지아는 다시 한번 칼을 갈아서 복수를 할 것이다! " 라고 예상을 했죠.
그는 1744년까지 2년 동안 강력한 군사 훈련과 군대 재편성으로 하면서 다시 벌어질 제 2차 슐레지엔 전쟁까지 철저히 대비합니다.
특히 코투지츠 전투에서 기병이 많이 손실을 입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살아남은 기병들이 다음 기병 양성에서 있어서 엄청난 성과의 초석을 다집니다.
그래서 프로이센은 기병 역량을 증강, 안 그래도 강력했던 보병이었는데, 그간의 전쟁에 배운 실수와 경험을 토대로 전술 개량을 거치며 더더욱 강력해지면서
2년 후, 프로이센 군이 얼마나 급속 성장을 해서 강해지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2. 각 유럽의 전황과 이탈리아 전선.
[ 빨강 동그라미 : 플랑드르 ]
[ 녹색 : 알자스 로렌 ]
[ 분홍 : 밀라노 & 샤르데냐 왕국 ]
슐레지엔 전선이 끝나고, 전황의 시선을 서쪽 방면으로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한창 전장이 격화되고 있는 지역은 플랑드르, 알자스 로렌(독일 국경), 밀라노 & 샤르데냐 왕국(이탈리아).
총 3 곳으로 압축해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만 3 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얘기를 빼놓았는데 사실 스페인도 참전,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도 참전했고
각 세력들이 먹고 싶어하는 지역도 다 달랐습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플랑드르, 스페인은 북이탈리아,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경우에는 또 서로 각자 이익이 달라서 누군 오스트리아 편, 누군 프랑스편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죠.
참고로 참전했던 스페인은 프랑스 편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전쟁을 두고, 스페인과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서로 소모전만 지속되다보니 협상이 이루어집니다.
- 오스트리아 : 파르마, 피아첸차 소유
- 스페인 : 시칠리아, 나폴리 왕국 소유
으로 이렇게 대충 상황 정리에 나서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가 한창 다시 오스트리아를 치고 나가니, 스페인은 남 이탈리아를 넘어서, 북 이탈리아까지 점령하고자 야욕을 뻗칩니다.
그리하여, 1741년 스페인의 밀라노 침공이 시작되어 전격적으로 진격에 나섭니다.
마침 스페인과 남 이탈리아(나폴리) 얘기가 나와서, 왜 스페인이 집요하게 이탈리아를 노리는지 대해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스페인이 나폴리 공국을 지배하고 있었고, 지금 18세기에 당시 스페인 왕의 아들이 나폴리 왕국의 국왕(카를로스 3세)이였고,
스페인은 30년 전쟁 이전의 1571년(16세기) 레판토 해전때부터 이탈리아를 엄청나게 탐을 냈던 나라였습니다.
왜 저리 이탈리아를 못 먹어서 안달이었냐 하면은, 우선 무역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약점이 유럽 귀퉁에이 위치해 있어서, 유럽 국가나 시장등 관섭을 하려면 해로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근데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깨트리고, 세계 바다 패권을 장악된 이후에는 스페인은 해군이라면 정말 악몽인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점으로 돌아와서,
나폴리 왕국에 있던 카를로스 3세의 스페인 군대가 밀라노로 침공을 하는 동시에.
카를로스 3세의 큰 아들에 동생이던 필리포 1세가 프랑스를 거쳐서 사보이(샤르데냐 왕국 지역)로 공격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오스트리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오스트리아는 명장이었던 오토 페르디난트 트라운 백작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파견합니다.
[ 빨간 지역 : 샤르데냐 왕국(사보이 공국 + 샤르데냐 섬) ]
또한 샤르데냐 왕국과 동맹을 맺어 스페인 군과 대결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유럽 대륙 전황을 관망하고 있던 영국이 참전을 표명, 곧바로 영국 해군이 이탈리아 앞 바다를 장악하게 됩니다.
심지어 나폴리의 스페인 군대가 북상해야 하는데, 필리페 1세는 프랑스를 통해 가야 합니다.
이렇게 양 쪽에서 치고 올라오니 모양이 참 아름답죠(?)
그런데 영국 함대가 나폴리 해안에 등장하더니 해안가 지역에 마구잡이로 맹폭을 하는 바람에,
나폴리 군대가 비교적 길이 잘 닦여 있는 해안가 길에 위협을 받게 되면서 진격이 매우 더뎌지게 됩니다.
한편 프랑스는 30년 전쟁 이후, 스페인 왕위 찬탈 전쟁에서 같은 가문으로 엮이며 동맹 세력이 되었죠.
그래서 프랑스는 스페인을 돕기 위해, 통행권도 허용하고 병력 지원도 해줍니다.
하지만 프랑스 지원군이 샤르데냐 왕국의 군대가 방해하면서,
슐레지엔 방면 전황 이후,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 오스트리아 , 샤르데냐 왕국, 영국(사실상 함대만 지원)
- 프랑스 , 스페인(+나폴리)
이렇게 세력 구도가 형성 됩니다.
근데 가만 보면 영국이 굳이 참전할 까닭이 있을까?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영국 참전 이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에, 이 부분을 보충 설명해드리자면
우선 영국과 프랑스는 앙숙이지만, 영국과 스페인도 앙숙인 관계. 특히 지금 프랑스 - 스페인은 한 가문에 엮여 있었죠.
그런 앙숙이던 스페인이 이탈리아 패권을 장악하면 당연히 힘이 강해지니까, 못하게 막기 위한 술수였습니다.
[ 하노버 선제후국 ]
또한 영국의 왕은 조지 1세, 그는 하노버 출신인데, 하노버 선제후는 전통적으로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와 우호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1714년 이례로, 영국 & 하노버는 매우 밀접한 관계라서 거의 한 가족이나 다름 없었죠.
이렇게만 보면, 영국이 단지 유럽 대륙에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훼방을 놓는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진짜 문제는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 대륙의 북미와 남미에서 프랑스 / 스페인 / 영국. 총 3개의 나라가 경쟁하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해서, 신대륙 식민지에서 프랑스 , 스페인 vs 영국 싸우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와 스페인이 식민지로 지원 병력을 보낼 수 없게 하도록 영국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방해를 놓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영국이 참전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식민지 기득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 시점이 1741년에서 2년 전에 유명한 사건이 터집니다.
[ 젱킨스의 귀 전쟁으로 시작되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으로 해상 전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
1739년의 《 젱킨스의 귀 전쟁 》 이라고, 영국 vs 스페인의 해상 전쟁이 발발합니다.
왜 젱킨스의 귀 전쟁이라고 불렀냐면, 영국 상선의 선장이었던 젱킨스가 스페인 함대에게 나포되어 포로가 되는데,
이때 젱킨스의 귀가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외교 문제가 발생해서 양측의 설전이 오가다가, 결국 2년 전에 해상 전쟁이 터진 것이죠.
이것만 보더라도 영국은 해외 식민지 쟁탈에 있어서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던 나라였고,
그렇기 때문에 신대륙 식민지 패권에서 어떻게든 우위를 차지해야 했습니다.
제 1차 슐레지엔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격전의 전장중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격하게 타오르며, 프랑스와 스페인과의 전쟁이 펼쳐집니다.
과연 이탈리아 전선의 승패는 누가 승리할 지.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
-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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