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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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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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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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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DUMMY



1. 유럽판 왕좌의 게임




카를 6세가 사망하자, 그를 위한 애도하는 시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 부터 " 이제 내가 합스부르크 적통이야~ " 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흑심을 내비치기 시작합니다.







1.png

[ 카를 알브레히트(카를 7세), 바이에른의 선제후 ]





상속권을 주장하는 인물 중에, 바이에른 선제후의 카를 알브레이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호칭은 카를 7세였죠.




근데 이름이 참 묘하죠? 묘하게 카를 6세 다음이라고 하는 것 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상하게 카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나오는 것도, 사람 구별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이게 유럽식으로 카를이지, 영어 서적에는 이걸 영어로 번역해서 찰스라고 하기도 하는데




영국 내전에서 봤지만 영국 왕은 찰스 1세 찰스 2세도 나오는 등. 원문 서적으로 사람 이름 나올 때 마다 전부 교차검증 할 정도로 이름이 참 복잡합니다.




대표적 이름이 카를 찰스 샤를....




이야기가 잠깐 빗겨갔는데, 원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직위는 선출로 투표로 임명되는게 원칙이었죠.







2.jpg



그 이유를 들먹이며 카를 7세는 마리아 테레지아를 겨냥하며 한 소리를 합니다.




당시 마리아 테레지아는 23세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가 있었죠.




" 너에게는 부당한 자리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직위를 투표로 선출한다면 원래는 내가 되어야 해! "



" 20대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통치 능력은 없다. "




카를 7세는 공공연하게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리를 두고 상당히 불편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를 7세만 이런 얘기를 한 게 아니고, 뭐 왠만한 영주들도 다 같이 똑같은 얘길 했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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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에스파냐, 작센, 바이마른 등등, 아마 제 생각에 저런 주장을 안 한 사람을 찾는게 나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사방에서 왕위를 노렸습니다.




카를 7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작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통한 족보 얘기도 참 재미있는 대목중에 하나입니다.




" 나의 5대 조모가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의 후손이다. "




하면서 위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격하하는 말과 곁들어서 합스부르크 연방국들 분열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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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재미있게도, 카를 7세가 연방국 분열을 통해서...




" 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카를 7세가 적통이니까, 내가 당신에게 투표 해야 겠네? "




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훨씬 더 냉혹하고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 음... 쟤가 저런 소리하는 것을 보니..... 나도 황제가 될 수 있겠네? "




라고 자기들이 김치국을 드리킹하며 라이벌로 부상시키도록 만든 것이죠.




아직 왕위 계승이 이제 막 시작된 단계니까, 일단 다들 말로서 서로 왈가왈부 하면서 일을 진행시키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군사적 조치를 취한 사람이 바로 프리드리히 2세였던 것입니다.







2. 강력한 동맹 세력의 분열





유럽 대륙의 강대국은 《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에스파냐 》 입니다.




그러나 30년 전쟁의 시기, 신성 로마 제국과 에스파냐는 한 가문에 얽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30년 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이 30년 전쟁에서 거의 분열되다시피 쪼개지며 약화가 된 시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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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 프랑스의 루이 14세 ]


[ 중앙 :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 ]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에스파냐 왕위 찬탈 전쟁을 일으켜, 손자였던 펠리페 5세가 에스파냐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결국 신성 로마 제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 세력이었던 서쪽의 에스파냐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졌습니다.




이렇게 되니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한 편으로 묶어지면 유럽의 최강국으로 되겠죠.




루이 14세가 서거, 18세기의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루이 15세였는데, 이 사람도 어떻게 따지고 들면 합스부르크 가문 계승권이 있는 사람입니다.




루이 15세를 토대로 족보 사다리 타기를 하게 되면, 전 유럽 땅은 어떻게 보면 프랑스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오히려 모든 유럽 국가들의 공분을 사게 될테니, 이러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루이 15세가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루이 15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위 요구를 거절, 뒤에서 카를 7세를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독일 세력에서 탑 3 중에 하나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나라가 바이에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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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루이 15세는 이런 판단을 세웁니다.




" 저 놈을 허수아비로 내세워서, 나는 뒤에서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겠다. "




라면서, 카를 7세에게 프랑스 관직까지 하사합니다.




결국 합스부르크의 가장 강력한 동맹 세력이었던 에스파냐가 사라졌으니,




이 공백을 이용해서 뜯어 먹으면 잭팟은 합스부르크는 내 것. 설령 아니더라도 어느 땅은 먹겠지! 라는 판단이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유럽 국가들이 왕위 쟁탈에 뛰어들게 되죠.








3. 카를 6세의 절묘한 사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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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마리아 테레지아를 사실상 무시당하며 왕위 쟁탈을 위해 암약이 이루어져 있는 시기.




그녀는 당시에 네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왕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아이를 임신했다면, 당연히 남편이 있었을 텐데, 과연 카를 6세는 사위를 누구로 뽑았을까요?




카를 6세는 사위 문제로 정말로 많이 골치가 아파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금 사방 천지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을 먹겠다고 달려드니까, 사위가 될 만한 인물을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의 사람을 남편으로 들이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카를 6세의 고민 끝에 정말로 절묘한(?) 사위를 얻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힘 없고 빽 없는 사람을 사위로 삼으면 당연히 아무런 도움이 안되겠죠?




그렇다면 너무 쌘 사위를 얻으면? 오히려 가문이 잡아 먹힐 수 도 있는 것입니다.




너무 쌔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는 그 중간에 있는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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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로트링겐의 프란츠 슈테판 공작이었습니다.




이 분이 지난 유럽史 을 더듬어 주는 사람인데, 30년 전쟁에서 팔츠의 프리드리히 5세가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5세의 부인은 영국 내전의 찰스 1세에 누나였던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그의 아들은 영국 내전의 왕당파 지휘관으로 활약했던 루퍼트 왕자.




여기서 루퍼트의 형, 카를 루드비히가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 내전에서 동생과 다른 의회파 세력이었고, 나중에 고향이었던 팔츠로 돌아옵니다.




카를 루드비히의 딸, 엘라자베스 샤를로트는 루이 14세의 동생이었던 오를레앙 공과 결혼합니다.




이 두 사람의 아들이 바로 프란츠 슈테판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이 됩니다.




후.... 참 복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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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유럽史 연재해서 한번은 봤던 인물들이지만 이렇게 종합해서 다시 보니까 어질어질 하네요.




아무튼 이 놈에 팔츠 집안이 이상하게 군대는 없는데, 영국 왕실을 끼고 있어서 유럽 역사에 활약을 합니다.




또한 팔츠 족보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카를 루드비히의 여동생 조피의 아들이 영국의 왕 조지 1세였습니다.




팔츠 집안을 가만 들여다보니, 프랑스의 오를레앙 공, 영국의 조지 1세,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까지.




진짜 문어발처럼 사방 팔방에 다리를 걸쳐놓는 것을 보니....




참 이래서 유럽이 사돈에 팔촌은 다 같은 집안이라는게 나올 수 밖에 없네요.




뭐 아무튼 30년 전쟁때 알거지가 된 팔츠 가문이 결국 지금에 와서는 혼인을 통해서 다시 가문을 성장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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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카를 6세의 눈에 보기에는...




" 딱히 군사력은 없어서 우리 가문을 먹을 힘도 안되지만, 남을 막을 힘도 딱히 도움은 되지 않지만, 프랑스와 영국등 유력 세력과의 얽혀있다. 그러니 우리도 껴서 이걸 적절히 활용하자. "




라고 해서 카를 6세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는 그 중간에 있던 팔츠의 프란츠 슈테판을 낙점하게 된 것이었죠.






4. 마리아 테레지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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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마리에 테레지아. 이 분에 대해 자세히 한번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첫 여성 군주, 마리아 테레지아.




그녀의 이명은 『 여제 』 혹은 『 위대한 여제 』 라고 불립니다.




당시 2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마리아 테레지아.




위에 젊었을 적에 초상화를 보시면 굉장히 미인입니다.




단순히 초상화를 그릴 때, 미화한 것이 아니라 당대 정말로 미인이라 소문났던 여성이었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 합스부르크 가문에 유전의 저주(주걱턱)가 없는 게르만 계통의 미인이다 "



" 합스부르크 가문의 우성 유전자는 이 분을 위해 준비했다. "




라고 극찬을 합니다.




외모 뿐만 아니라 4개 외국어에도 아주 능통해서 유창하게 말할 정도의 실력이었습니다.




카를 6세 입장에선 자신의 딸이 충분히 군주로 점 찍은 것은, 여성임에도 핸티캡을 이겨낼 만한 강직한 성격과 우수한 능력이 있으니까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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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리아 테레지아도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서 외교전에도 아주 유리하게 이용했다고도 합니다.




너무 외모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 같아서 다시 얘기 드리지만 정말로 대단했던 인물입니다.




아마 제가 아는 모든 여성 군주들 중에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가장 최고라고 중에 한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초석을 닦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대단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위기와 고난, 환경은 지금의 마리아 테레지아와는 다르기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위기 해결등에 판단에서 보면, 갸날픈 외모와 달리 대단한 담력을 지닌 소유자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전쟁의 결정을 스스로 하였고, 전쟁 군권을 사령관에게 주는 타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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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이 굉장한 위기의 상황이었죠.




이때 합스부르크 가문의 국내 상황은 여기 저기 떨어진 월경지가 많은 수십 개의 연방으로 이루어진 세력권이었습니다.




외적들이 처들어 오면, 딱 봐도 서로 이권을 위해 분열되어 배신하기 좋은 상황이죠.




마리아 테레지아는 먼저 지금의 모래알 같은 조직력을 뭉치기 위해, 즉위 하자마자, 연방국의 충성 서약을 다시 받도록 합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군대중에 가장 잘 싸우는 군대가 기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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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강력한 기병하면은 폴란드 후사르와 헝가리의 마자르 기병이있죠.




마자르 족은 정통 몽골계 유목 민족으로, 12세의 재앙이라 불리는 몽골 제국에게 얻어 터진 경험이 있었는데요.




전쟁 통에서 몽골식 기병 전술을 습득해서 강력한 기병으로 성장하는데....






13.jpg



지금의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연방국인데, 얘들이 합스부르크에 반대하는 세력이었습니다.




헝가리를 자기 땅을 소유하는데만도 약 200년이 들었을 만큼, 아주 억척스러운 나라였으니 말 다한 셈이죠.




그나마 헝가리가 그래도 합스부르크에 붙은 이유는 오스만 제국이 싫어서, 차악으로 붙어있다는 정도의 개념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도대체 마리아 테레지아가 어떻게 했는지는 당시 사람이 아니니까 알 수는 없습니다만...







14.jpg



헝가리 귀족들도 처음에 충성 서약을 위해 갈 떼는, " 나이도 어린 여자가 뭘 알겠어? " 하면서 만약 얘기하며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하면, 반기를 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니, 그녀에게서 우러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꼈고,




일부 귀족은 너무나도 감동 받아서, " 우리의 여왕으로 모시겠다 " 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정말 인상 깊습니다.(이게 진짜 흘린건지 아니면 좀 과정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헝가리 귀족들이 왜 감명 깊게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헝가리 인들을 차별했는데, 특히나 200년 동안 반항했으니 오죽 더 했을 겁니다.




자기를 모시는 군주를 만날려면 줄을 서야 하는데 이때 서열로 줄 순위가 결정됩니다.







15.jpg



그런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런 것 없이, 앞으로 오도록 조치도 했고, 함께 식사도 했다고 합니다.




근데 이렇게 하면 오히려 반대 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제 네가 약해지니까 나한테 굽실거리네? 이거 꼴받네? "




라고 하기 딱 좋은 상황이죠.




그러나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걸 역전시켜 버립니다.




『 나는 군주가 아닌, 어머니가 되겠노라.(고작 나이 23세....) 』




그간 보여준 행동과 강렬한 카리스마. 그리고 이 멋진 한마디에 200년 동안 반항했던 헝가리가 순식간에 최대 지지국으로 돌변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유창하게 했던 외국어 중에 라틴어가 있는데, 라틴어는 당시 헝가리의 공용어였고, 라틴어는 성경 언어였기 때문에, 그 말 자체가 서약 언어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헝가리 귀족들을 감동시킬 때, 제 생각에는 라틴어로 해줘서 그 감정을 배로 만들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단순히 카리스마만 내비치던 것이 아니라, 거래도 충분히 합당하게 제안 했다고 하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다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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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





그녀에 대해 살짝 곁가지로 더 언급하자면 마리아 테레지아가 낳은 딸 중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로 시집을 보낼 때 신신당부를 합니다.




" 진정한 여왕의 권위는 장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




" 네가 입는 검은 색 옷 하나를 입고 있어도, 너의 기품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




라고 훌륭한 자식 교육을 했고, 딸도 상당히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물론 프랑스 혁명 정부에 의해 참수되는 안타까운 결말과 루머들이 있지만요.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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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5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3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21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6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9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4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6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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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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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1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3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30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2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7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1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몰비츠 전투 21.04.21 35 1 22쪽
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7 1 15쪽
»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9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9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4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3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6 2 13쪽
3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4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9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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