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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유럽판 세계 대전, 유럽 7년 전쟁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4.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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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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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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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DUMMY




# 유럽 7년 전쟁의 자료 조사를 하면서 정말 많은 동명이인들이 나옵니다. #




# 모두가 다 전혀 다른 인물인데, 놀랍게도 이름이 죄다 똑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쪽 지방이 카를 1세라면, 저쪽 동네도 카를 1세. 아니면 카를 2세(낳은 자식이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라고 부르는등... #




# 진짜 기록에서 이 분들 이름 때문에 진짜 분류하는데 너무나도 어려웠다는 점.#




# 그로 인해서 소개하고 등장한 인물들이 제대로 올바르게 설명했다고는 저도 제대로 100% 확신할 수 없습니다. #




# 그래서 제가 말하고자 했던 인물이 틀릴 수 있음을 미리 염두해주셨으면 합니다. #









1.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등장







30년 전쟁이 거의 끝난 1640년대.





이 시기에 프로이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1.jpg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약소국 프로이센의 전력을 끌어 올린, 독일에 훌륭한 평가를 받는 군주. ]






요한 지기스문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20세의 나이로 프로이센 영지를 물려 받습니다.





이 사람의 명칭으로 프리드리히 3세였는데, 나중에 1세로 바뀌는 인물이죠.





20대의 빌헬름이 생각하기에 30년 전쟁이 본인과 프로이센에게 있어서 이익이 남지 않다는 것을 판단하고 전쟁을 빠질려고 합니다.





빌헬름이란 사람이 전쟁에 빠지기 위해 아주 극단적인 방법을 씁니다.







2.jpg



프로이센 군대를 완전 해산하고, 스웨덴한테도 똥배짱으로 " 칠테면 쳐! 난 무조건 눌러 앉아서 버티기만 할거야! " 라고 합니다.





스웨덴은 뤼첸 전투로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가 죽었고, 뇌르틀링겐 전투로 힘이 부쩍 줄어든 상황이었기에 저렇게 버티기로 일관된 적을 상대하기에는 무척 부담스러웠죠.





어차피 프로이센은 군대가 없으니 굳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적이 아니였기에 무시하기로 했고,







3.jpg

[ 베스트팔렌 조약 ]





그렇게 무사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면서 30년 전쟁이 끝납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빌헬름은 신성 로마 제국(합스부르크 가문)에게 협상을 합니다.





" 우리가 당신들에게 적대적이지만 않으면 독립해 줄 수 있지? " 하며 딜을 겁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이미 30년 전쟁으로 만신창이였던데다가 이미 사실상 독일 전 지역이 독립에 가까운 수준으로 분열됐던지라 제안을 수락합니다.





드디어 프로이센이 당당한 하나의 국가로 독립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직 프로이센이 갈 길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4.jpg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니 프로이센이 숙원, " 포메라니아 정복 " 을 어떻게 할까는 이제 부터 였죠.





당시 포메라니아는 동서로 나뉘어 스웨덴과 폴란드가 절반씩 통치중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우선 전란으로 상처를 입은 브란덴부르크에 인구를(80만 인구) 프로이센으로 이주시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합니다.





빌헬름은 프로이센 쪽에 아주 착실히 재건 사업을 펼쳤고, 때마침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 제 2차 북방 전쟁







5.jpg

[ 좌 : 스토레벨트 해엽을 건너는 스웨덴 군 ]



[ 우(빨간 동그라미) : 스토레벨트 해엽 ]






1655년 스웨덴 카를 10세가 제 2차 북방 전쟁(1655년 ~ 1660년) 을 일으켜,





스웨덴 vs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덴마크,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빌헬름은 이 전쟁을 기회로 보고, 전황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제 1차 북방 전쟁때는 폴란드에게 고전했던 스웨덴 군이었지만, 철치부심으로 준비한 스웨덴이 폴란드로 공격합니다.





폴란드는 스웨덴의 맹공에 전혀 맥을 못 추고 패전을 기록하였고, 빌헬름은 바로 스웨덴 편에 붙습니다.







6.jpg



빌헬름의 수작을 카를 10세가 모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전쟁에서 편이 많을 수록 좋은 법.





카를 10세는 빌헬름의 성의를 보이라는 명목으로 군대를 요청했고, 빌헬름은 제대로 성의를 보답하기 위해 무려 8,000 명의 군대를 파견합니다.





스웨덴과 프로이센의 군대에 마구 격파하며 전황이 폴란드에게 불리해집니다.







7.png

[ 러시아 차르국 ]





1차 부터, 2차 북방 전쟁에서도 스웨덴의 적수였던 러시아가 전폭적인 지원하며 개입하여, 폴란드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됩니다.





그러자 프로이센은 순식간에 폴란드 편에 붙습니다.





이때 프로이센이 폴란드에게 조건을 내거는데....





" 만약 우리가 참전하여 스웨덴 군을 몰아내면, 포메라니아 지역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합니다.





폴란드도 이제 막 반격을 했던 지라, 아직 스웨덴과의 전쟁에 힘이 버거웠기에 조건을 수락합니다.





이걸 보면서 역사를 보는 우리는 다소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물론 제가 전 편에서 작고 약했기에 신경을 안 썼다곤 해도 말이죠.






아무튼 이렇게 폴란드 편에 붙은 프로이센은 스웨덴 군을 몰아내자, 약속대로 포메라니아 지역을 받습니다.





그러면 프로이센의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겠죠?





하지만 세상은 마음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8.png



프랑스가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 것이죠.





프랑스는 항상 유럽에서 유력하고 큰 세력이 등장하는 것에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프랑스의 개입으로 인해 압력이 가해지자, 포메라니아는 다시 절반으로 쪼개어 스웨덴과 폴란드령으로 편입됩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제 2차 북방 전쟁에서 결과적으로 죽쒀서 개준 꼴이 되었긴 했지만 전혀 손해만 본 장사는 아니였습니다.





포메라니아의 영토 일부를 아주 조금은 받았고, 또한 1660년에 프로이센이 재차 다시 독립국으로 인정받았다는 것도 나름의 성과였습니다.





이렇게 프로이센은 차근 차근, 마치 벽돌 하나씩 쌓는 것 처럼 국제적 위상을 쌓게 됩니다.





북방 전쟁 이후, 계속 포메라니아에 대한 입맛을 다시고 있던 프로이센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3. 프랑스 - 네덜란드 전쟁







10.jpg

[ 프랑스 - 네덜란드 전쟁. 1672년 ~ 1678년. ]





1672년. 태양왕 루이 14세는 가장 강력한 국력을 지닌 프랑스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릴 만한 상대를 찾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찾은 목표가 바로 해상 왕국 네덜란드로 침공을 합니다.





왜 네덜란드 였냐면, 네덜란드가 해상 무역으로 아주 잘 나갔기 때문에 해상권 탈취와 자금, 국제 위상등 여러가지의 이유였죠.





하지만 이 모습을 그냥 지켜보지 못했던 세력이 있었으니...








11.png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견원지간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합스부르크 가문)이었죠.





당시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레오폴트 1세가 네덜란드를 지원합니다.






이때 프로이센은 신성 로마 제국 편에 붙어 지원합니다.





프로이센 지원의 밑바탕에는 브란덴부르크 영지가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이였고, 독립 인정에 대한 이유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무엇 보다 결정적인 것은 제 2차 북방 전쟁에서 보여준 프랑스의 개입 때문이었습니다.





빌헬름 1세는 결국 프랑스를 꺾지 않고서는 포메라니아 지역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죠.





프랑스는 프로이센이 적대적으로 나오자, 스웨덴과 동맹을 맺고, 스웨덴에게 프로이센 공격을 요청합니다.





스웨덴은 프랑스의 요청을 들어주어, 프로이센을 공격하는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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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군대가 강국 스웨덴 군대를 격파한 것이죠.





무려 혼자의 힘으로 말이죠!





아무래도 제 2차 북방 전쟁에서의 패전등. 이 시기쯤 되면서 스웨덴이 쇠락기에 접어들어서 생긴 결과겠죠.





어째거나 프로이센이 강국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상황은 급격히 바뀝니다.





스웨덴과 앙숙이었던 덴마크와 동맹을 맺어 스웨덴을 묶어두게 한 다음, 포메라니아를 침공 및 점령을 하게 됩니다.





자, 이렇게 끝나면 프로이센에게 해피엔딩이겠죠.





그러나 프로이센의 해피엔딩은 아직 멀었습니다.





또 프랑스가 나섭니다.







12.jpg



프랑스는 " 폴란드가 점령하고 있던 포메라니아는 몰라도, 스웨덴의 포메라니아는 포기해! " 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프랑스의 강력한 경고와 위협에 결국 프로이센은 다시 서 포메라니아를 반환하게 됩니다.










4.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30년 숙원을 성취







4.jpg



1640년대 부터 1678년까지. 빌헬름 1세의 포메라니아 탈환은 2차례의 기회와 실제로 점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방의 강대국(프랑스)에 의해 다 먹은 떡을 내뱉은 치욕적이고 억울했습니다.





그래도 빌헬름은 비록 다시 빼앗겼을 지언정,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 현명함으로 국가를 이끌었습니다.





만약 무조건 반대를 외쳐서 프랑스와 싸웠다면 아마 대패를 당했을 것입니다. 이때 프랑스는 아주 강력한 나라였으니까요.





빌헬름도 억울하고 분노는 느꼈겠지만 현명하게 최소한의 자신의 몫을 챙겼습니다.








13.jpg



비록 한번에 숙원을 쟁취하진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 꿈에 다가갔다는 것.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절묘한 외교 전략. 전쟁이란 혼란 속에서, 그리고 강력한 강대국 속에서 야금야금 얻어가는 수완이 훌륭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한 치의 땅도 뺏길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무수히 많고,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한번에 하려는 사람이 흔하고, 원래 내껏을 돌려 받는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죠.





그러나 더 현명한 것은 빌헬름처럼 비록 포기했을 지언정, 100%가 아닌 10%라도 만족하고, 만족에만 끝나지 않고 계속 10%... 15%씩 늘려가며 목적을 이룬 모습.





그가 어떤 생각과 판단했는지는 모르지만, 국제적 힘의 역학 관계를 파악을 잘했다는 것이 대단하네요.





브란덴부르크 지역쪽이 굉장히 외지 인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강대국 세력 사이의 중심(교차로) 였기에 절묘히 양다리를 잘 거친 모습!





나머지 서 포메라니아는 결혼 동맹을 통해 되찾아오면서 기나긴 숙원을 이룹니다.







1.jpg



그 때문인지 독일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 大 선제후 』 라고 칭하네요.











5. 프로이센의 두번째 과제, 부국강병!






하지만 땅을 되찾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죠.





나라를 지키고, 더 넓은 세계로 뛰어들기 위해 군대 양성에 집중 투자를 합니다.





프랑스는 돈이 있으니까 군대 양성이 쉽고, 1편 처럼 알아서 적당히 써! 라고 가능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와 달리, 프로이센은 너무나도 가난했습니다.







14.jpg



프로이센은 프랑스처럼 흥청망청 쓰는게 아니라, 아끼고 또 아껴며 악착같이 쥐어짭니다.





이 쥐어 짜는 걸 누가 할까요? 바로 국가가 합니다.





프랑스는 " 너 가서 마음대로 놀고 먹으면서, 할당량만 내놔 " 이지만...





프로이센은 " 한 푼이라도 빼먹으면 넌 진짜 죽어버린다! " 합니다.





이제 엄청난 머리 싸움이 시작됩니다.





프로이센이 관료를 뽑아야 하는데.... 누굴 관료로 뽑을까요?







15.jpg



프로이센 지역은 낙후되서 서유럽처럼 도시가 많지 않고, 농촌이 많은 농업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신분제가 여전히 강했죠.





프랑스는 왕이 귀족을 잘 찍어누를 수 있었던 것이, 도시가 성장하면서 왠만한 부르주아가 귀족보다 잘 사니까 매관매직이 단순히 부정부패가 아니라,





왕이 왜 매관매직 하냐면, 돈주고 관직을 팔면 부르주아가 귀족보다 돈이 많으니까 부르주아가 관직을 사서, 귀족들을 잡아 먹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귀족들을 관리하는데 현명한 방법인 셈이죠.





그런데 프로이센은 그럴 부르주아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돈 있는 사람들은 시골 지주 『 융커(Junker) 』 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시와 교류하면서 성장은 하지만, 결국은 시골 지주였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프로이센이 가난하니 돈이 없는데... 그럼 누굴 관료로 뽑을까요?







16.png



평민(농민)으로 뽑기에는 지주와 농민 관계가 강하기 때문에, 지주들이 집단 반발이 일어나죠.





그럼 융커를 관리로 뽑아서, 세금을 거둬라고 한다면?





이 융커가 다른 지역에 갔다간, 그 지역 융커와 마찰로 세금은 고사하고 반발이 터질 것이고....





자기 지역에 세금을 뜯어라고 하면 같은 지역민들끼리 짝짝꿍해서 횡령할 가능성도 높죠.





그럼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까요?





빌헬름은 예상 밖으로, 융커와 같은 지역으로 관리로 내려보냅니다.





그러면서 융커와 다 아는 사이의 지주들은 면세시킵니다.







17.jpg



....??? 이렇게 되면 결국 어떻게 해서 횡령해서 실패하는 게 아닌가요??





근데 놀랍게도 망할 것 같은데....





세상 역학 관계가 재미있는게, 지주를 면세시키고 같은 출신의 융커가 오니까 함부로 세금을 뜯질 못합니다.





딱 그 사람의 할당량만 세금을 뜯습니다. 왜냐하면 사촌의 팔촌에 친구의 친구가 다 아니까요.





이렇게 관리하니까 반발은 줄어들고 세금은 꼬박꼬박 잘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주에게 면세를 주는 것 처럼, 있는 놈에게 혜택을 주면 부정같아 보이죠.





그런데 지주들에게 면세를 줘서, 자기들끼리 세금 횡령을 못시키게 막습니다.





왜냐? 어차피 지주는 면세니까, 융커가 세금 할당량만큼 지역 농민에게 세금을 걷어서 가져옵니다.





만약 지주에게도 세금을 걷게 했다면, 지주는 농민에게 자기 세금 + 농민 세금 + 지주들이 더 먹을 몫으로 뜯어갔겠죠.




이러면 농민은 지주에게 받칠 돈 + 국가 세금까지 전부 짊어지는 악습으로 돌아오지만,





차라리 면세 시켜서 농민 세금만 받으니까, 훨씬 농민이 부담하는 세금이 줄어들게 되죠.







18.jpg



이 방식으로 인해 프랑스는 세금 2/3이 개인 주머니로 횡령하는데...





프로이센은 거의 100%에 가까운 세금이 국가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관료, 재정 상비군 들을 만드며, 또한 이 지역은 대 귀족처럼 강한 귀족은 없습니다.





또한 부르주아도 없습니다. 오직 중소 지주 같은 『 지방 융커 』 밖에 없습니다.





융커들도 잘나가는 사람 없이, 다 사정이 비슷한 굉장한 균일성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관리하기가 더 쉽다는 것이죠.





프랑스는 댜앙성이지만, 프로이센은 일관성.





이걸 잘 이용만 하면, 강력한 행정력이 생기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죠.





프로이센은 내부 행정력을 다지며 차근 차근 성장의 디딤돌을 쌓게 됩니다.










드디어 오랜 숙원이던 포메라니아를 점령 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부국강병을 위해 움직입니다.



과연 프로이센은 어떤 식으로 불사조와 같은 성장을 하게 될 지.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유럽 7년 전쟁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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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희망이 없는 프로이센 21.07.19 34 2 13쪽
51 프리드리히 대왕, 절망을 느끼다. 쿠너스도르프 전투 21.07.18 22 1 30쪽
50 프랑스의 재 침공, 민덴 전투(1759년 8월 1일) 21.07.17 28 2 25쪽
49 프리드리히 대왕의 최악에 위기, 호크키르히 전투 21.07.15 28 2 28쪽
48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完) 21.07.13 25 2 22쪽
47 프로이센의 사생결단. 조른도르프 전투(1) 21.07.10 27 2 16쪽
46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라. 조른도프르 전투 개막 21.07.06 25 2 24쪽
45 1758년의 유럽. 앞 날이 캄캄한 프로이센. 21.07.04 38 2 15쪽
44 슐레지엔 리턴매치. 로이텐 전투 21.07.02 29 2 20쪽
43 17년만에 벌어진 슐레지엔 리턴매치. 21.07.01 22 2 19쪽
42 오스트리아의 숙원. 슐레지엔 공세 21.06.30 31 2 18쪽
41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完) 21.06.28 22 2 16쪽
40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2) 21.06.27 24 2 14쪽
39 불리한 전황을 뒤집어라! 로스바흐 전투(1) 21.06.26 19 2 20쪽
38 스웨덴의 포메라니아 침공과 베를린 기습 공격 21.06.21 25 1 19쪽
37 反 프로이센 동맹의 공세.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 21.06.16 30 1 10쪽
36 프로이센의 숨통을 조여라. 하스텐벡 전투 21.06.15 31 1 14쪽
35 콜린 전투(2),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4 20 1 13쪽
34 콜린 전투(1),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21.06.11 29 1 16쪽
33 노장들의 무덤. 프라하 전투 21.06.02 28 1 22쪽
32 공공의 적, 프로이센의 선택 21.06.01 24 1 15쪽
31 18세기의 군복과 오스트리아 재정 개혁 21.05.31 23 1 20쪽
30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2) 21.05.25 21 1 21쪽
29 유럽 7년 전쟁의 각 국의 전력(1) 21.05.23 26 1 11쪽
28 유럽을 뒤흔든 세 자매의 활약. 유럽 외교 혁명. 21.05.19 25 1 10쪽
27 8년 간의 유럽 상황과 유럽의 외교 관계 21.05.17 25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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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유럽 7년 전쟁의 시작, 로보지츠 전투(1) 21.05.11 26 1 16쪽
24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 그리고 유럽 7년 전쟁 개전! 21.05.10 24 1 14쪽
23 프로이센 반격의 공세, 케셀스도르프 전투 21.05.09 29 1 10쪽
22 프로이센의 집념과 군기, 조르(수어) 전투 21.05.07 50 1 19쪽
21 무적 프리드리히 2세의 신화 시작,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 21.05.03 33 2 20쪽
20 플랑드르 전선의 격돌, 퐁트누아 전투 21.05.02 31 1 13쪽
19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2) 21.04.30 29 1 16쪽
18 프랑스의 大 오스트리아 침공 21.04.28 30 2 10쪽
17 국본 군 창설과 데팅겐 전투 21.04.27 38 1 16쪽
16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이탈리아 전선 21.04.26 46 1 9쪽
15 오스트리아 vs 프로이센, 코투지츠(코츠지츠) 전투 21.04.25 71 1 15쪽
14 정글 같은 유럽 외교 21.04.23 107 1 9쪽
13 진격의 프랑스 21.04.22 4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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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제 1차 슐레지엔 전투 21.04.20 32 1 11쪽
10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슐레지엔 침공 21.04.19 46 1 15쪽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기와 마리아 테레지아 21.04.16 38 0 14쪽
8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서막 21.04.16 38 1 13쪽
7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막장 가정사 21.04.14 43 1 16쪽
6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 21.04.13 45 1 14쪽
5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2) 21.04.12 43 1 17쪽
4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프로이센의 개혁(1) 21.04.11 66 2 13쪽
»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뛰어난 국가 경영 +2 21.04.10 104 3 14쪽
2 강대국 사이에 약소국이 성장하는 방법, 프로이센의 난제. 21.04.09 199 3 8쪽
1 17세기 이후의 유럽과 절대 왕정의 시작 21.04.08 366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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