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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조회수 :
1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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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0,491

작성
16.06.08 08:15
조회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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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10쪽

태풍의 이름(4)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에밀리오가 오고 나서 타니엘이 한 첫 번째 작업은 알센 백작을 찾아가 하소연을 한 것이었다. 황금창 기사단의 테리아 출신 신참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서향 기사단 주위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기사들이 겁먹고 있다는 엄살이었다.

일마즈 조에서 벌어진 일은 알센 백작 역시 뒤늦게 보고를 받았다. 부상자가 일곱 명이나 나왔지만 다친 쪽에서 잘한 것도 없고, 가뜩이나 소년은 그노스 백작의 추천으로 들어온 참이라 알센 백작도 처리에 고심하고 있었다.

사건을 조용히 무마해서 그노스 백작에게 빚을 지우는 대신 부하들의 원성을 사는 결말이 그로서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타니엘의 하소연을 듣자 최선을 넘어서 최고의 설계가 그려졌다.

알센 백작은 평소에 좀처럼 볼 수 없는 부드러운 태도로 타니엘을 구슬렸다. 어린 나이에 단순히 가문이 좋아서 섭정공의 친위기사단을 맡은 젊은 기사를 설득하는 일은 그에게 쉬웠다.

그 테리아 인 소년은 시비를 걸어 싸우는 목적밖에 모르는 들개 같은 위인이다. 그러나 서향 기사단은 명예를 아는 훌륭한 기사들이 아닌가. 소년의 시비에 도발당하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결론은 서향 기사단이 알아서 참으라는 내용을 길고 교묘하게 돌려 말한 다음 타니엘로부터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알센 백작은 골칫덩이가 서향 기사단을 노리는 동안 황금창 기사단은 조용해지겠다는 생각으로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노스 백작에게도 부하들에게도 생색낼 수 있는 결말이었던 것이다.

황금창 기사단의 지휘관에게 그런 식으로 허락을 맡은 타니엘은 그 뒤로 거리낌 없이 에밀리오를 뒤에 달고 돌아다녔다.

그것은 겉에서 보기에 묘한 상황이었다. 그노스 백작 휘하인 테리아 인 용병이 섭정공 휘하의 기사단장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에 대해 그노스 백작도 섭정공도 아무 내색 없는 것이 사람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물론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 둘이 내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노스 백작은 소문을 들은 즉시 메칼로를 호출했다. 에밀리오의 일을 질문 받은 메칼로는 서향 기사단을 감시할 목적으로 보낸 첩자라고 대꾸했다.

메칼로가 수도 경비대에게 붙잡히던 날 그곳에 타니엘 일리스가 먼저 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았던 그노스 백작은 서향 기사단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보고 없이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는 주의를 줬을 뿐이다.

반면 섭정공은 며칠이나 흐른 뒤에, 타니엘이 용무가 생겨 들렀을 때 그로부터 가볍게 보고를 받았다. 보고하는 타니엘은 대수롭지 않게 에밀리오에 대해 말했고 섭정공은 소년보다 다른 동료들에 대해 궁금해 했다.

거기에 대해 타니엘이 뭔가를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서향 기사단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섭정공과 그 사이에도 정보를 공유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근에 알아낸 몇 가지 사실을 추가해서 보고했다.

“바실의 아들들이라는 거리의 무법자 세력을 조사하던 중, 그들이 포고스 백작 가에 속한 저택에서 절도를 시도한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포고스 가에서는 없어진 물건이 없다고 합니다만······.”

타니엘은 빙긋 웃으며 말꼬리를 흐렸다가 단언하듯 이었다.

“저는 그 날 포고스 가에서는 별로 비싸지 않고 하나쯤 없어져도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가문의 전용 편지지 같은 것 말입니다.”

메칼로가 그욘 백작에게 잡혔던 그 날 내민 편지는 분명 가짜다. 타니엘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 확신을 근거로 편지지로부터 역추적해서 나온 것이 바실의 아들들이었다. 필체라면 흉내 낼 재주가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거기까지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찾기만 하면 메칼로가 속임수를 썼다는 확실한 증인이었다.

메칼로의 속임수, 그리고 거기에 동조한 포고스 백작 부인. 두 사람을 동시에 얽어맬 수 있는 증거다.

편지에 대한 타니엘의 의견까지 들은 섭정공은 근래에 별로 보인 적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웃는 얼굴이 된 것이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해주다니 드문 일이군. 바라는 것이 있나?”

타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오 드라고미르와 메칼로를, 서향 기사단으로 데려올 생각입니다.”

“나를 대역무도한 자로 매도하는 소문의 중심에 있으며 자신의 정체와 목적을 속이는 자들을 말인가?”

“약속하셨으니까요. 서향 기사단으로 내 사람을 모으는 것을 최대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들은 제가 데려갈 마지막 두 명입니다. 사태가 어떻게 흐르더라도 두 사람의 목숨을 보장해 주십시오. 바라는 것은 그 정도입니다.”

“대가는 알고 있겠지?”

그렇게 묻는 섭정공의 얼굴에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남아있었다. 타니엘이 즐거운 듯 웃었다.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라도 제 밑에 쓸 만한 자들을 채워둬야 하는 겁니다. 그때를 위해 저를 후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왕제 전하.”

“그렇지.”

섭정공 패트로스 바그랏트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왕제 전하로 불릴 일은 거의 없었다. 그의 형이 왕이 되기 전에 그는 코스탄딘의 성을 버리고 바그랏트가 되었다. 여공작의 남편이 되자 대공의 배우자에게 주어지는 영지 명이 그 옆에 붙었을 뿐이다.

섭정공으로 아르반에 돌아왔을 때도 비슷했다. 아르반의 귀족들은 그가 에듀아드 코스탄딘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조차 꺼림칙하게 여겼다. 그 사실을 들먹이는 것만으로도 어린 왕자에게 위험이 닥칠 것처럼 반응했다.

패트로스의 세력이 점점 불어나고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생기자 그 태도는 조금씩 사라졌지만 그와 같은 생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타니엘처럼 스스럼없이 왕제 전하라고 호칭하는 사람은 만나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서부 귀족들처럼 패트로스를 왕위에 올리고 싶어 안달 난 것도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서부 귀족들과 같은 마음일 수도 있다. 어떻게 알겠는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젊은이는 여전히 훌륭한 도박꾼이었다.

패트로스는 고갯짓으로 거래 내용을 인정했다. 타니엘이 만족한 표정으로 그에게 절했다. 이제 그만 가겠다는 뜻이지만 굽힌 허리를 펴기도 전에 패트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쌍아궁의 기간이 끝나기까지는 아흐레가 남았나?”

질문처럼 말했지만 질문은 아니다. 타니엘은 절하며 허리를 숙인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핏 특별한 구석은 없어 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패트로스 바그랏트는 형인 에듀아드와 닮지 않았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였지만 풍성한 갈색 머리와 혈색 좋고 밝은 피부를 가진 형과 달리 패트로스는 검은 머리에 가무잡잡한 피부인데다 체구도 별로 크지 않았다.

작은 얼굴 위에서 동글동글한 눈을 굴리고 하관이 빨아 얼핏 생쥐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런 얼굴이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웃고 있으면 경계심이 있더라도 흐트러질 정도로 쉽게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정색을 하고 있으면······.

타니엘은 제 쪽을 빤히 향한 패트로스의 갈색눈 안에서 번득이는 것을 봤다. 그가 갑자기 날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이번 신전행에 걱정이라도······?”

그가 되묻듯 대답했다. 국왕인 로우벤은 아누쉬의 신자로, 매년 태어난 달에 제물을 바치기 위해 신전으로 행차했다. 쌍아궁의 기간이 아흐레 남았다는 것은 국왕이 신전에 제물을 바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남았다는 의미였다.

아누쉬는 알마스트를 감싸듯이 휘도는 큰 강이자 그 강을 다스리는 여신의 이름이기도 했다. 강의 여신은 자신의 영역 가까이에서 백성을 선택했고 금기를 어기지 않는 동안 그 품안에서의 안전을 보장했다. 그러므로 아누쉬의 신자는 아누쉬 강에서 위험을 당하지 않는다.

국왕의 입장에서는 보잘것없는 축복일 수도 있었다. 근처에 사는 평민 아이들처럼 아누쉬 강에서 멱이라도 감으면 모를까, 왕궁을 거의 나갈 일이 없는 국왕이니 강에서 위험에 처할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신전으로 행차해 제물을 바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누쉬는 알마스트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크고 깊은 강이었다. 사람들은 국왕이 그 강을 다스리는 여신의 신자인 것을 상징적이라고 느꼈다. 여러 귀족들과 함께 신전으로 향하는 국왕의 장대한 행렬은 꽤나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왕궁을 나와 수도를 가로지른 다음 강가에 자리 잡은 신전으로 가서 제물을 바치고 다시 같은 길을 되짚어 돌아온다. 그것은 한나절에 걸쳐 수도의 백성에게 보이는 공연과도 비슷했다.

“걱정은 그노스 백작이 하겠지. 예식에 익숙한 상급 기사들이 여러 명 다쳤다고 하니······.”

반질거리는 눈동자를 빙그르르 굴리며 섭정공이 말했다.

“수도는 소문으로 뒤숭숭하고, 근위 기사단에는 이방인들이 돌아다니고, 어린 왕은 성년이 되기 전 마지막 제물을 바치러 가는군. 시기가 좋다.”

패트로스의 마지막 말이 으스스하게 들렸다. 타니엘이 그를 쳐다보자 반질거리는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그 누군가가 당신은 아니겠지?’

타니엘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작가의말

아침에 글을 올렸군요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것은 지각입니다. 어제 올렸어야 했던 글이라구..... 지각의 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ㅜ.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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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58 혼운
    작성일
    16.06.08 10:34
    No. 1

    오늘도재미있게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6.08 17:21
    No. 2

    혼운님 어서오세욤. 오늘도 감사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6.06.20 09:49
    No. 3

    신의 힘이 확실하게 인지되고 사용되는 사회에서 과연 이런 끌리쉐에 가까운 정통 궁정암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신의 힘, 간단히 초능력으로 발언의 진위여부도 가릴 수 있으며 강력한 힘을 현현시키기도 하는 이 세계에 신정일치화 된 정부가 없는 걸까요?

    이번 편을 보며 왠지 조금 의아해진 부분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6.21 00:00
    No. 4

    엇, 이 시점에서 그 질문이 나오면.....역시 설정 푸는 게 너무 늦었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체크..... ㅜ.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밝은스텔라
    작성일
    16.07.09 13:33
    No. 5

    그런데 에밀리오 같은 성격이 조직에 있으면 참 여럿 괴롭...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7.19 21:08
    No. 6

    성격 나쁜데 뒷배경까지 좋으니 더 괴롭.....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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