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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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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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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0,491

작성
16.07.0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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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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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
10쪽

난전(5)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하코브가 아르반을 떠나기 전에 찾았던 사람과 그가 떠난 후 발견된 시체의 이야기를 듣고, 제이나는 하코브의 행적을 조사하고 종이 뭉치를 찾아낸 사람이 메칼로나 다섯 명의 부하들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챘다. 우미트 궁에서 일어났던 일도 알고 있었으므로 메칼로에게 또 다른 일행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 관해 캐묻기 시작했다.

메칼로는 모든 질문에 대답했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술술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제이나가 “우미트 궁에 함께 갔던 사람들은 누구냐”고 물으면 메칼로는 “죽을 자리 찾아 남의 나라까지 오는 얼간이들”이라고 대답하고 “일행이 모두 몇 명이냐”고 물으면 “서향 기사단보다는 많다”고 대꾸하는 식이었다.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고 화낼 법도 했지만 제이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메칼로는 묻는 건 뭐든 대답해주겠다고 했을 뿐이다. 거짓말을 하든 말을 돌리든 대답은 대답이었다. 오히려 따져 물으면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어 확정지을 뿐이고, 그러면 아예 딴소리를 해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돌려 말할 뿐 힌트는 주고 있는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연달아 질문하면서 교묘하게 화제를 바꿔 지금껏 궁금했던 것들을 이리저리 탐색했다. 결국 메칼로가 끝없는 질문에 싫증내는 기색을 보였다.

“밤새 물을 생각인가?”

“오, 그럴 생각이었죠. 당신이 버틸 수만 있다면요.”

제이나가 웃으며 대꾸하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다음 질문을 했다.

“내가 벗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벗겨줄래요?”

그녀는 물러서야 할 때와 남자 다루는 법을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참을 수 없이 관능적으로 보이는지를 잘 알았다. 메칼로는 지난 밤 우미트 궁에서 스텔리안을 구하느라 거의 못 잔 것도 잊어버렸다.

“그 질문은 마음에 드는 걸.”

그로부터 두 사람 모두 지쳐서 잠들 때까지, 제이나는 메칼로의 마음에 드는 질문만을 했고 모든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들었다.

두 사람이 질문과 대답을 즐기는 동안, 그곳에서 역마로 이틀거리인 도시 자벨에 에밀리오가 도착했다. 이틀을 내리 달려 말도 소년도 지쳐 있었다. 늦은 밤이었으므로 인적은 없고 불빛도 드문드문 보였다.

쉴 곳을 찾아야 하지만 지리도 모르는 낯선 곳인데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에밀리오는 여관이 눈에 띄길 바라며 도로를 따라 천천히 말을 몰았다. 조용한 밤거리에 말발굽 소리만 울렸다.

가끔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올 뿐 고적한 밤이었다. 지쳐서 멍하니 말을 몰다보니 어느새 도시의 동쪽 끝이었다. 큰길만 따라 이동했으니 여관이 보였을 리 없다. 에밀리오는 말을 세워놓고 좀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볼지 이 도시의 영주를 찾아가야 할지 망설였다.

타니엘에게 받아낸 통행증서는 서향 기사단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영주의 저택으로 찾아가면 귀빈까지는 아니어도 손님 대접은 받을 수 있다. 웬만한 여관보다는 그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고민하고 있는데 멀리서 들리던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같은 개는 아니었다. 짖는 소리에 놀란 다른 집 개가 컹컹 따라 짖고, 그 소리를 들은 또 다른 개가 짖는 식이었다. 전염병이 도는 것처럼 개 짖는 소리가 번졌다. 번지면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에밀리오는 고민하던 것을 잊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타고 있던 말이 콧김을 내뿜으며 앞발로 바닥을 긁었다. 개 짖는 소리에 놀랄 만큼 예민한 성격은 아니었으니 뭔가 다른 이유로 긴장한 것이다. 에밀리오는 천천히 말을 몰았다.

말은 귀를 팔락거리면서도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달이 있다지만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은 시커멓게 그늘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를 따라 말을 몰던 에밀리오는 어두운 골목 입구에 닿자 고삐를 당겼다.

개 짖는 소리가 골목 바로 안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그 소리가 실체를 가진 것처럼, 골목 안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에밀리오보다 말이 먼저 반응했다. 말이 갑작스럽게 앞발을 들고 몸을 비틀자 그 서슬에 에밀리오가 안장에서 튕겨나갔다. 보통은 바닥에 나뒹굴어 어딘가 부러졌을 테지만 소년은 땅에 몸이 닿자 한 바퀴 구른 다음 재빨리 일어났다.

몸을 일으킨 에밀리오의 손에는 어느새 칼집에서 빠져나온 검이 잡혀 번득였다. 소년의 앞에서 말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골목에서 나온 그림자가 길을 가로질러 반대편 골목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에밀리오는 그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이쪽을 공격할 의사도 없어 보이는 자를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쫓아가기엔 몸도 피곤하고 본인의 일도 바빴다.

그러나 바닥에 길게 누워있는 말을 보자 에밀리오의 표정이 사납게 굳었다. 어디 다친 것 같지도 않고 공격당한 낌새도 없었는데 말은 누워서 사지를 떨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꽤 부려먹기는 했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몸을 뒤채며 눈을 뒤집는 모습이 괴로워 보였다.

‘맞거나 찔린 흔적은 없는데······.’

게다가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림자는 골목에서 튀어나오자 앞을 가로막은 말을 피해가느라 잠시 지체했을 뿐이다. 달려가던 뒷모습을 생각하면 손에 뭔가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말의 몸을 더듬어 확인하던 에밀리오가 문득 눈썹을 찌푸렸다.

갑작스러운 그림자의 등장을 빼고 단순히 말의 상태만을 보면 심각한 병이라도 걸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밀리오는 벌떡 일어나 그림자가 나타났던 방향, 개 짖는 소리가 번져왔던 골목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두웠으나 소년의 걸음은 늦춰지지 않았다. 방향은 처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던 쪽이었다.

에밀리오가 지나갈 때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개들이 발소리에 깨어나 컹컹 짖어댔다. 그 소리가 소년보다 먼저 달려갔다.

‘있다.’

어둠 속을 잠시 헤맨 끝에, 소년은 마침내 찾았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가 에밀리오의 냄새를 맡았는지 한층 격렬해졌다. 그 개가 갇힌 벽 바깥쪽에 기대어 앉은 남자가 있었다.

얼핏 보면 취해서 잠든 것 같았으나 다가가자 술 냄새는 없었다. 대신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생선 비린내 같기도 하고 피 냄새 같기도 하며 거기에 고기 썩는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시체라도 발견했나 싶었으나 남자는 약하게나마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쉬었다. 에밀리오가 가까이 가자 남자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달빛에 드러난 얼굴을 보고 에밀리오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남자의 얼굴 반쪽은 수포와 붉은 열상으로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눈알이 탁해지고 찢어진 상처에서 피와 고름이 섞여 흘렀다. 그러나 나머지 반쪽은 땀이 돋아나 번들거릴 뿐이다. 그 반쪽의 얼굴을 에밀리오는 알아보았다.

알마스트의 포고스 가 저택에서 프리다와 함께 있던 세 기사 중 하나였다.

“아김 구르겐?”

그의 이름을 기억해낸 에밀리오가 남자를 부르자 멀쩡한 쪽 얼굴에서 아직 빛이 남은 푸른 눈동자가 움직였다.

“메칼로의 동료 에밀리오 드라고미르다.”

빨리 기억해내도록 이름을 밝혔으나 아김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에밀리오를 보았다. 그리고 입을 벌렸으나 말 대신 썩은내가 진동하는 숨만 내쉬었다. 그와 함께 멀쩡한 쪽의 눈도 빛을 잃어갔다.

그로부터 무슨 말을 듣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에밀리오가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아김의 손이 그의 외투를 꽉 움켜잡았다.

“호오······ 으우······.”

다시 한 번 필사적인 숨을 토해내더니, 아김 구르겐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그가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에밀리오는 아직 외투에 달라붙어 있는 손을 떼어냈다.

개 짖는 소리가 한층 더 요란해졌다. 에밀리오는 말 위에서 고민할 때와 비슷한 표정으로 한 번 더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피곤에 절어 까칠해진 얼굴 위에 귀찮은 기색이 떠올랐다.

“알 게 뭐야.”

소년은 중얼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김 구르겐의 시체는 새벽까지 그 자리에 있다가 빵을 배달하던 소년에게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연락을 받은 영주의 병사들이 놀로파의 사제와 함께 시체를 수거했다. 시신의 흉한 모습에 전염병으로 의심을 받았지만 놀로파의 사제는 고개를 저었다.

질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놀로파의 사제는 아김의 시신이 세다의 신자가 내린 저주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진단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세다는 명부의 여왕이었다. 그녀의 신자들은 죽음과 질병을 퍼뜨렸다. 그런 이유로 세다는 마치 마신처럼 신전도 없고 숭배되지 않았다. 세다의 신자로 태어나도 가호를 유지하기 위해 금기를 지키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런 세다의 신자가 누군가에게 병을 옮겼고 그 결과 한 남자가 길가에서 죽어갔다는 결론이었다.

아김은 행려병자의 시신으로 취급받을 뻔했으나 그 전에 일행이 찾아와 화장되는 것은 면했다. 찾아온 사람들은 프리다의 명령으로 스켄델을 떠나 아김을 뒤쫓아 온 팔 카자크와 부하들이었다.

그들이 자벨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끔찍한 몰골로 죽은 아김과 부하들이었다. 모두 죽었으니 그들이 뒤쫓던 사람에 대해 보고할 수가 없었다. 누구였는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무도 몰랐다.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들을 죽인 자가 세다의 신자라는 것뿐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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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6.07.04 08:16
    No. 1

    세다의 신자 금기가 나왔으니 이때 금기에 대해서 같이 언급하는건 어떨까 싶네요. 그게 나중에 기억하기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7.04 23:44
    No. 2

    앗, 의견 감사합니다. ^^/ 세다의 금기는....타이밍을 노리고 있어요.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8 혼운
    작성일
    16.07.04 08:58
    No. 3

    오늘도재미있게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7.04 23:45
    No. 4

    오늘도 감사합니다. 비 때문에 온세상이 눅눅한데 메칼로 댓글창은 산뜻하고 따뜻해서 좋아요. ( ◕ ‿‿ ◕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나비처럼
    작성일
    16.07.04 10:47
    No. 5

    보이지 않지만 치열하게 전개중인데...
    읽는 사람은 미궁인... 더더 얽히고 마침내 꼬여랏.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7.04 23:46
    No. 6

    이제 슬슬 풀려야 할 때입니닼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6.07.04 11:24
    No. 7

    에밀리오 이 쿨시크한 녀석.... 왜 저런데서 죽었는지 궁금해하란 말이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7.04 23:46
    No. 8

    에밀리오란 남자 이런 남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6.07.04 14:01
    No. 9

    마음에 드는 질문과 명확한 대답. 정말 멋진 베드씬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7.04 23:46
    No. 10

    ㅎㅎㅎㅎㅎ 모처럼 15금이니까 좀 길게 써볼까 싶기도 했지만요, 얘네 커플로 15금은 무리였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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