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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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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491

작성
16.06.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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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나방과 불(8)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공주의 완전한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야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던 황금창 기사단은 생각보다 빨리 와서 토로스를 데려갔다. 놀로파의 사제도 함께였다. 죄인을 이송할 관리들이 사제와 함께 따로 대기중이었다는 것을 타니엘은 나중에야 알았다.

막상 당사자인 관리들도 타니엘보다 약간 빨리 알게 되었을 뿐이다. 영문도 모르고 공주의 명령에 따라 기다리고 있다가 만신창이가 된 죄인의 호송을 맡자 관리들은 뻣뻣하게 긴장해서 기사들의 빈축을 샀다.

플루투라 궁에서 달려온 황금창 기사단이 호위에 가세하자 공주는 그제야 우미트 궁을 떠났다. 메칼로는 그들과 함께 가지 않고 서향 기사단이 치료중인 곳으로 찾아왔다.

서향 기사단의 손해는 사망자 하나, 중상이 둘, 경상이 넷이었다. 잡은 상대의 악명이나 공에 비해 적은 피해였으나 서향 기사단의 정원을 생각하면 한 명의 사망도 뼈아픈 손실이었다.

“결혼했나?”

죽은 기사의 시신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메칼로가 물었다. 타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생모는 어릴 때 죽고 여자는 없는 걸로 알아.”

“가문에서는 좋아할 겁니다.”

타니엘의 말을 받아 기사 중 하나가 울컥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생모의 가문이 쇠락했어도 명색이 귀족이라 버릴 수도 없는 서자였는데 자식도 가족도 없이 죽어 준데다 공까지 있으니 그 집안만 좋은 일 났죠.”

메칼로는 언제 챙겼는지 모를 술병을 죽은 기사 위에 기울여 쏟았다. 안 그래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동료 기사들은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다가 사이좋게 한 대씩 맞고 나가떨어졌다.

“설명을 먼저 하라고, 메칼로.”

타니엘이 피곤한 얼굴로 충고하자 그제야 불친절한 왕자는 전사의 시신을 술로 배웅하는 것이 테리아식 경의라고 알려줬다. 그 설명이 마음에 안 든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맞은 데가 아파서 대들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저 놈은 바그랏트 산 맥주를 좋아한다’며 울먹였을 뿐이었다.

침울해 있는 기사들에게 래번은, 내일부터 수련 시간에 집합하지 않는 놈은 에밀리오에게 개인 특훈을 부탁하겠다고 위로했다. 가면 부관은 경상에 속했지만 일단 부상중이라서 기사들은 패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계획이 맞아떨어졌고, 칭찬받을 만한 성과를 냈으면서도 타니엘의 표정은 별로 안 좋았다.

“내기에서 진 게 그렇게 분한가? 의외로 승부에 집착하는 성격인 걸.”

메칼로가 말을 걸자 타니엘은 기분 나쁜 채로 얼굴까지 찡그렸다.

“무슨 소리지. 토로스를 잡은 건 우리야.”

“에밀리오겠지.”

“그런 식으로 남의 것을 가로채는 일은 해적이나 하는 짓 아닌가? 아차······ 실례. 내가 잊고 있었군. 자네는 테리아 인이었지?”

“테리아에서도 클라우스다. 가장 많은 머리를 베고, 가장 많은 여자를 약탈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술을 마시고, 가장 멀쩡하게 미치는 해적의 핏줄이지.”

그런 말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하고서 씩 웃는 메칼로를 타니엘은 김빠진 얼굴로 쳐다보다가 힘없이 웃었다.

메칼로에게 우기기는 했지만 에밀리오가 없었다면 분명 잡기 힘든 상대였다. 몇 명을 더 희생시켜야 했을지 몰랐다. 공주 일행이 본래의 경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도 메칼로의 지시였을 것이다.

모든 기사들을 한곳으로 모았을 때는 공주의 옆에 그가 있으니 만약의 경우라도 문제가 커지지 않는다는 계산이었다. 에밀리오가 서향 기사단을 따라가게 내버려 둔 걸 보면 메칼로도 반대편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기는 핑계였으니 아무래도 좋으나 타니엘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공주가 안전하고 용의자가 잡혀도 이 뒤가 더 문제였다.

토로스는 황금창 기사단의 비상시 대응절차를 알고 있었다. 공주가 피습당한 직후라 이 정보는 근위기사 중에서도 소수만이 알 테고 그 소수는 어떻게 생각해도 동부 귀족들뿐이다.

돌이켜보면 공주가 피습당한 것도 날씨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피습 당시에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당황해서 누구도 대놓고 지적하지 못했지만 신전행의 날짜를 정하는 쪽은 어디까지나 국왕의 측근이다. 그러나 국왕의 편인 그들 가운데 도대체 누가······.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공주를 노릴까.

토로스와 함께 있던 다른 자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기사에게 죽은 자도 있지만 싸우다 부상당한 다음 토로스에게 죽은 자도 둘이었다. 생포를 막은 것이다.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은 토로스뿐이었다. 왕궁 지하 감옥으로 데려갔을 테니 취조는 관리가 할 테고 십중팔구 국왕파다.

타니엘이 참관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상태였다. 섭정공이 몸을 낮추고 있는 지금 그의 친위기사 정도가 기세등등한 국왕파 귀족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는 없었다.

제대로 심문을 할지, 죄수가 실토한다고 해도 사실 그대로 들을 수 있을지조차 몰랐다. 우미트 궁에서의 일은 일반에 알리지 않고 처리되어서 상황을 보고받는 사람도 소수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토로스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해 서향 기사단의 활약 전체가 부정당할 수도 있었다. 섭정공과 서부 귀족들이 그렇게까지 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지만 타니엘의 의심이 맞다면 동부 귀족들도 필사적으로 일을 축소하려 들 것이다.

이런 상황이어서, 다음 날이 되어도 토로스 생포의 공로를 세운 서향 기사단에게는 치하의 말 한 마디 전해주는 사람이 없고 왕궁은 괴괴하니 무거운 분위기였다. 엘킨 사하크가 돌아온 것은 그런 때였다.

보름 안에 돌아오라고 명령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던 타니엘이어서, 명령을 내린지 11일 만에 돌아온 부하를 보자 생각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바그랏트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인맥 동원해서 학자나 여행가나 문장 관리자 같은 사람들 만나면서 열하루를 보내다 온 거냐?”

“국경까지는 갔었지 말입니다!”

타니엘의 말에 엘킨이 당당하게 항변했다. 그리고 급격히 쪼그라든 목소리로 덧붙였다.

“만날 사람이 마침 바그랏트 국경 근처에서 조사중이라기에······.”

마침 기분도 안 좋았던 타니엘은 발로 직접 뛰라고 보냈더니 남의 말이나 듣고 온 엘킨을 구둣발로 어루만져 주려다 이놈은 참 잘했어요 하고 칭찬해 줘야 잘하는 놈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국경씩이나 가서 누구를 만나고 왔는데?”

“테우타 경입니다.”

“누군지 몰라.”

자랑스럽게 대답했던 엘킨은 타니엘의 대꾸에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모르세요? 테우타 메수드! 아르반 문장의 역사, 신들의 그림자놀이, 테우타식 개정판 아르반 문장 편람 지으신 분인데!”

테우타가 누군지는 몰라도 엘킨이 주워섬긴 제목은 모두 며칠 전 아네타 신전의 장서실에서 본 책들이라 타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은 자료 수집은 남에게 맡기고 정서만 해서 책을 쓰는 다른 학자들과 달라요. 직접 자기 발로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만 쓰는 분이란 말입니다.”

내가 시킨 게 바로 그거 아니냐고 타니엘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몇 년 전부터 아르반을 떠나 바그랏트를 떠돌고 있었다고 한다. 수년 동안 조사한 자료를 모아 최근에 저술 작업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찾았더니 아르반과 바그랏트의 국경 가까운 마을에 별장을 구해놓고 지내는 중이었다.

테우타 경이 좋아한다는 어린 사슴고기 훈제와 올드레인 산 홍차를 한 짐 싣고 방문하자 귀빈 대접을 해서 하루 동안 잘 놀다 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화제가 둘이 놀면서 나누었던 대화로 옮겨가자 타니엘의 표정은 점점 단단해졌다. 둔하다고 할 엘킨도 한참 떠들다 말고 “제가 무슨 실수라도······?”하고 물었을 정도였다.

타니엘은 엘킨에게 테우타와 나눴던 이야기를 상세히 서면으로 정리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잠시 왕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거기에서 옷을 갈아입고 단장을 새로이 한 다음 다시 왕궁으로 갔다.

이번에는 기사단 건물이 아니라 섭정공의 집무실이었다. 타니엘이 찾아가 독대를 요구하자 패트로스 바그랏트는 별말 없이 사람들을 내보냈다.

타니엘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성장(盛裝)을 하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녀들의 노고가 눈에 보일 정도의 단장을 하고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향을 풍겼다. 그 모습을 훑어본 패트로스가 타니엘을 가까이 불렀다.

타니엘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엘킨에게 들은 내용을 보고했다. 거기에 그동안 쌓인 정보와 그것을 통해 타니엘이 내린 결론까지 이야기하는 동안 섭정공은 질문하거나 대답하는 일 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마침내 타니엘이 할 말을 끝내고 입을 다물었다.

“시간을 들인 만큼 생각은 충분히 했겠지?”

머리가 복잡할 때, 깊은 생각을 해야 할 때 시녀들의 손에 몸을 맡기고 치장하는 그의 습관을 패트로스는 알고 있었다. 타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를 받는 동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젖히고 있던 패트로스는 타니엘의 고갯짓을 보고 등을 꼿꼿이 세웠다. 성인 남성의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패트로스 바그랏트의 체구였으나, 똑바른 자세로 앉아 이쪽을 쳐다보자 책상 건너편에 작은 산이 불쑥 솟아난 기분이 들어 타니엘은 몸이 무거워졌다.

섭정공의 동글동글한 눈이 가늘어진 눈매 안에서 서늘하게 반질거렸다.

웃고 있을 때의 그는 범상하기 그지없었다. 정말로 에듀아드 코스탄딘과 형제인가 의심할 정도다. 옷만 바꿔 입으면 노점상이나 마부나 농부라도 믿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저 남자가 웃는 것을 그만두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겨누어 노리면, 그때는 달랐다.

그는 으르렁거리지 않는 맹수이며, 그늘 밑을 거니는 포식자였다. 입을 벌리면 반드시 목을 물고 만다. 타니엘은 필경 송곳니가 가지런히 돋아있을 그의 입을 노려보았다.

맹수는 그 두려운 입을 열기 전에 손을 먼저 움직였다. 섭정공의 인장반지가 책상 위를 굴렀다. 카드 테이블에서 돈이라도 걸듯이 그는 반지를 빼서 타니엘에게 내놓은 것이다.

“카드를 잡게, 타니엘 경."


작가의말

17시간 58분의 지각쯤이야....................................죄송합니다. ㅜ.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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