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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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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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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3
글자수 :
930,491

작성
16.06.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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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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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11쪽

나방과 불(3)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류드밀의 영주 가문 베쉬킴이라······. 바그랏트 사정까지 조사해야 할 줄은 몰랐는걸. 기사단장은 뭐래?”

“그쪽도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것 같았다. 부하를 바그랏트로 파견했고 보름 안에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시큰둥하게 보고하던 에밀리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장의 신분이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아르반에서 조사한다고 해봐야 상인들 이야기 정도겠지.”

“그거야 이름을 말한 이상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차피 묻는다고 솔직히 말할 거라면 애초에 비밀로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에밀리오의 질문인지 불평인지 알 수 없는 말에 메칼로가 씩 웃었다.

“뭐든 쉽게 얻으면 가치가 떨어지거든. 저쪽의 정보력도 알아볼 수 있고. 별 거 아닌 정보를 캐내려고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는 것도 구경하기 재밌지 않냐?”

마지막 이유가 가장 컸던 거라고 에밀리오는 생각했다.

그때 문밖에서 메칼로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나가 보낸 시종이었다.

“춤을 추러 간다고?”

에밀리오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메칼로는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고 시종을 따라갔다.

에밀리오의 반응은 딱히 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짝 붙어서 체력을 낭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에 춤은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다는 것이 테리아 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 점에서는 메칼로도 생각이 많이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테리아에서 춤출 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 춤이란 남자들만 추는 테리아 토박이들의 전통춤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하는 군무가 있을 뿐이었다. 클레타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사교용 춤을 소개했지만 별로 호응은 없었다.

“그런 걸 왜 해? 어차피 딱 붙어서 운동할 거면 그냥 방에 들어가 뒹구는 게 낫지.”가 사교용 춤에 대한 테리아 인들의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제이나와 함께 연주에 맞추어 춤을 배우던 메칼로는 그 생각을 조금 고쳤다.

남녀가 함께 하는 사교용 춤이란 무엇보다 호흡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을 위해서 때때로 숨결이 닿을 만큼 바짝 붙어야 하고 무엇보다 상대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되었다. 작은 근육의 움직임이나 균형의 이동만으로 상대방이 어떻게 얼마나 움직일지 미리 알아차려야 하며 거기에 맞춰 대응해야만 했다. 춤을 추기 위한 자세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은 채로 온 몸의 근육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전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은 흡사 비무와 같았다. 처음에는 가르치는 입장인 제이나가 리드했으나 스텝이 익숙해지자 메칼로는 슬슬 주도권을 빼앗으려고 들었다. 무기 대신 서로를 이용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가 손목을 꺾어 턴을 유도하면 제이나는 멋지게 한 바퀴 돈 다음 대담하게 바짝 붙어 다음 행동을 방해했다. 서로를 겨누어 노리듯 보폭을 맞추어 스텝을 밟다가도 메칼로가 제이나의 허리를 바짝 당기고 팔을 밀어 상체를 휘게 하면 그녀는 재빨리 다른 쪽 팔을 뻗어 그의 목에 체중을 실었다.

제이나는 매우 쉽게 스텝을 배우고 활용하는 메칼로에게 감탄했고 그는 어떤 변칙적인 리드에도 즉시 반응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제이나는 외모에 못지않게 관능적인 몸을 가지고 있었다.

어깨로부터 부풀어 오른 가슴 위쪽까지 훤히 드러난 드레스를 입어서 그의 본능적인 시선은 곧잘 목덜미와 쇄골 아래를 훑었다. 피부가 부드러우면서도 도톰하게 살이 올라, 만지면 탄력과 함께 폭신하게 잡히는 느낌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메칼로는 수도 없이 드레스 아래에 감추어졌을 그녀의 몸을 상상했다.

이따금 제이나의 등에 예의바르게 대고 있어야 할 메칼로의 손은 척추를 따라 미끄러졌다가 자세를 바꾸며 허벅지까지 내려가는 일도 있었다. 우연인 체하면서 몸 이곳저곳을 더듬는 손길에 제이나는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역시 일부러 고개를 기울여 그에게 향기로운 머리를 기대거나 스치듯이 가슴을 부비곤 했다. 그 유혹하는 듯한 몸짓에 메칼로가 테리아 인 치고 상당히 인내한 것은 멀찍이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제이나를 쓰러뜨렸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녀 역시 거부하지 않았을 터였다.

점점 피부에 열이 오르고 숨이 빨라지는 것은 춤을 추는 것이 체력을 소비하는 일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은 거의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마침내 메칼로가 입을 열자 제이나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가까운 곳에 방이 있어요.”

두 사람은 곧장 방으로 가서 문을 닫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홀에서 춤을 출 때처럼 주도권을 다투며 격렬한 사랑을 나눴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불꽃이 타오를 때마다 그들의 피부 위에는 할퀸 자국과 멍이 늘어났다. 결국 제이나가 웃음을 터뜨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우리는 내일도 만나서 연습해야 해요, 메칼로. 오늘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메칼로는 자신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에게 몰두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내일은 뭘 해도 좋지만 목은 물지 말아줬으면 해.”

“당신도 내 가슴 위쪽으로는 멍이 안 들게 해줘요. 이건 화장으로도 가리기 힘들어요.”

두 사람은 각자의 피해를 확인한 다음 전장에서 철수했다. 제이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를 배웅했다. 그녀는 메칼로의 시선이 꽤 힘들게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즐겼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과 열락의 기억이 아픔을 잊게 했다.

메칼로를 배웅할 때 모습 그대로 벌거벗은 채 늘어져서, 그녀는 밀려오는 곤핍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이대로라면 죽은 듯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 피부에 찬 공기가 스치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손이 먼저 움직였다. 베개 밑에 감춰져 있던 단검이 그녀 위 허공을 베었다. 옷자락이 팔락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침대 옆으로 피했다.

“네가 배운 것은 암살자의 검이 아닐 텐데? 제이나 카타르.”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상대에게 공격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당신의 임무가 내 자는 모습을 염탐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호셉.”

몸을 가릴 생각은 하지 않고 단검을 겨누는 그녀에게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는 시종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기사의 숙소로 메칼로를 데리러 갔던 그 남자였다.

그가 물러서자 제이나는 옷을 하나씩 껴입으며 물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그노스 백작님께 보고하러 갈 텐데 무슨 일이에요?”

“내일 백작의 일정이 바뀌었다. 내게 대신 보고하면 된다.”

제이나는 백작의 부하이면서도 묘하게 그에게 불손한 남자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백작의 명령을 수행할 때의 그는 무조건적이랄 정도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가 없는 곳에서 백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불손한 것을 넘어 가끔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비칠 때도 있었다.

물론 이 남자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지만.

“메칼로의 정체는 아직 오리무중이에요. 그가 말한 이름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어요. 좀 더 테리아 상황에 정통한 사람이 필요해요. 이번에 만난 남자는 시원찮았어요. 그리고 당신의, 그가 메칼로의 각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아무래도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이나의 말에 남자, 호셉은 별다른 기색도 없이 이유를 물었다.

“메칼로의 각인자는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잖아요. 그런 능력이 있다면 굳이 할 필요 없는 행동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어요. 그것을 의식적이라고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치밀해요. 그렇게까지 할까 싶은 정도로 자연스러운 걸요.”

홀에서 춤을 배울 때 메칼로가 몸을 만지던 것을 생각하자 제이나는 쾌락으로 달아올랐던 몸이 천천히 식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확실히 정욕의 손길이 아니었다. 그가 만지던 곳을 하나씩 돌이켜보면 분명했다.

숨겨진 무기를 찾고 몸에 붙은 근육 정도를 확인하는 손이었다. 방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지친 몸을 쉴 때마다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길은 애정이 아니다. 그녀의 몸에서 굳은살과 보이지 않는 흉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배울 필요가 없는 탐색의 기술이다.

제이나의 설명을 들은 호셉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판단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다음 번 보고는 백작에게 직접 하도록. 그리고 적당히 즐겨라.”

경멸 어린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호셉이 말했다. 제이나는 댁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병자처럼 누렇게 뜬 피부에 어떤 신의 가호도 받지 않는 몸은 왜소하기 그지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셉은 그녀를 긴장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몸놀림으로 보아 훈련을 받은 것은 분명했다. 기사의 훈련은 아니었다. 그러나 행동거지에 기품이 있고 말도 생각도 귀족에 가까웠다. 어떤 자인지 가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제이나는 그와 문제를 일으키기 싫었다.

말없는 그녀의 태도에 만족했는지 호셉은 조용히 나갔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소리는 없었다.

그녀의 판단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몰라도 어쨌든 호셉은 제이나의 의견을 반영해서 며칠 뒤 새로운 정보처를 알려주었다.

이번에 소개받은 남자는 클레타 인이었다. 클레타의 수도에 거주하는 상인으로 테리아에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클레타의 수도는 대륙 각국의 사람들이 뒤섞여 끓는 스튜 냄비 같은 곳이었다. 거기에는 테리아 인들도 많았고 남자는 그들을 잘 알았다.

그는 상인이었지만 주로 귀족들을 상대해서인지 세련된 예절과 우아한 행동거지를 갖추고 있었다. 클레타 인 특유의 낭만적인 면도 강해서, 주선자가 제이나를 고급 창녀라고 소개했는데도 숙녀를 대하듯 깍듯했다. 제이나에게 섣불리 치근대지도 않았다. 그녀와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메칼로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것 같더니 이윽고 배려가 섞인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생각에 그 남자는 거짓말을 한 것 같군요. 클라우스 가문에는 확실히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이 아르반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지금쯤 테리아 변방의 어딘가에 갇혀 있겠지요.”

“갇혀요? 어째서죠?”

제이나의 물음에 남자는 동정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헬리온 클라우스가 그렇게 했으니까요. 그 무서운 남자가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미치광이 왕은 자신의 적과 형제만 죽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직 왕자였을 때, 가엾은 아내와 아들까지 죽이려고 했지요.”


작가의말

내일 분량은 아마 일요일에 올라올 것 같습니다. 몇주째 계속 토요일에 스케줄이 잡히네요.

내일 틈틈이 써두었다가 일요일에 시간 나는 대로 정서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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