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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조회수 :
130,702
추천수 :
5,473
글자수 :
930,491

작성
16.06.2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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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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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1쪽

나방과 불(7)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우미트 궁은 현재 행궁으로, 손님을 위한 숙소와 주방, 연회장을 제외하면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숙소나 주방과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불빛이라고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뿐이었다. 그나마도 양쪽이 모두 막힌 복도에 들어서자 사라져버렸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밀초가 곳곳에 준비되어 있지만 그런 것을 들고 다닐 상황이 아니었다.

기사들은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었던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겉옷 안에 껴입은 두꺼운 가죽조끼가 드러났다. 소리를 내는 것은 모두 떼어서 던져버리고 무기를 든 채 어둠 속을 빠른 걸음으로 전진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장소 특유의 텁텁한 냄새가 예민해진 코를 간질였다. 그들의 앞은 어둡고 고요했다. 자신의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 길이 한참 계속되었다. 계속될수록 타니엘은 초조해졌다.

이 길은 비상시 공주가 대피하기로 된 경로였다. 지난 번 피습으로 단단히 혼이 난 황금창 기사단은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즉시 공주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다음 전력이 충분히 보충된 상태에서 플루투라 궁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한 길이니만큼 도중에 몸을 숨길 곳이나 습격을 받을 만한 장소도 없었다. 있다면 가끔 길이 나뉘는 곳뿐이다.

그것을 고려해 사람들을 분산시켰으니 습격 받는다고 해도 가까운 곳에 있는 기사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고요한 밤이면 기침만 해도 복도 끝까지 쩌렁쩌렁 울릴 터였다.

하지만 피신용 방이 나타나도록 앞에서는 아무 낌새도 없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둘이다. 애초에 이곳에 놈들이 없었거나······.

“잡아!”

누군가의 목쉰 소리가 울렸다. 타니엘과 기사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연달아 울렸다. 벽을 뚫고 몇 번이나 반사되며 울린 소리였다.

“왼쪽!”

타니엘의 말과 동시에 그들은 걸음을 돌이켜 달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갈라진 복도에서 반대편으로 꺾어들자 소리가 한층 명료해졌다. 욕설과 신음, 몸과 몸이 부딪치고 딱딱한 뭔가 부서져 뒹구는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달려가자 후원으로 통하는 입구 주변에 기사들과 낯선 자들이 뒤섞여 쓰러져 있었다.

“한 명 놓쳤습니다.”

문설주에 기대어 앉아있던 래번이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달빛에 비친 무표정한 얼굴이 창백했다. 허리에서 흐른 피가 엉덩이 아래에 질척하게 고여 있었다.

“펠룸브, 남아!”

한 사람만을 남기고 기사들은 후원으로 뛰어나갔다. 국정실 뒤편에서 이어지는 후원에는 잘 깎인 잔디밭 뒤로 장미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저쪽이다!”

기사 중 하나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외쳤다. 얼핏 보기에도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그런데 달빛에 보이는 뒷모습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 아니, 낯익은 것은 옷이다.

“경비대원 복장이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타니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뛰어! 놓치지 마!”

성문은 모두 수도 경비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성벽도 마찬가지다. 놓치면 그들과 섞인다. 경비대 안에 그를 돕는 사람이 있다면 말할 나위 없고, 없다고 해도 경비대원들이 방심한 사이에 빠져나가는 것은 쉽다.

기사들은 필사적으로 뒤쫓았다. 그러나 화원은 넓고 장미덩굴은 울창했다. 미로처럼 벽을 이루며 웃자란 장미나무 뒤편으로 몸을 숨기자 달빛만으로는 찾아낼 길이 없었다.

“포위해!”

숨었을 법한 곳을 얼추 짐작하여 둘러쌌지만 포위하기에는 숫자가 적어 기사들은 넓게 흩어지는 결과만 낳았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적이 벼락처럼 기습해서 한 명을 쓰러뜨렸다.

“으악!”

비명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도로 몸을 숨긴 후였다. 타니엘이 이를 으득 갈고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장미정원이다. 벽처럼 이어진 장미나무는 뛰어넘기에 너무 높고 가시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없었다.

몇 걸음이면 되는 거리를 돌아가는 동안 전혀 다른 곳에서 쇳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운 곳에 있던 기사가 동료를 도우려고 달려갔지만 역시 장미나무의 벽을 돌아서 가려니 늦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쓰러진 동료밖에 없었다.

후퇴하라고 명령해야 했다. 타니엘은 망설였다. 곧 흩어졌던 나머지 인원이 온다. 그리고 시간을 조금만 더 끌 수 있으면 이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황금창 기사단이나 테리아 인들이 와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타니엘은 당연히 여기에 있어야 할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거지?

그리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정원 한가운데에서 달빛이 번득였다.

째앵 - !

서늘한 쇳소리가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두 자루의 검이 서로를 노리듯 겨누며 하얗게 빛났다.

이번에는 숨지 못한 적이 달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들 모두 그의 얼굴 왼편에 새겨진 흉터를 보았다.

“가까이 오는 놈은 죽인다.”

장미가시처럼 뾰족한 목소리로 에밀리오가 경고했다. 다가가는 타니엘에게 들으라는 소리였다. 경고를 듣고도 타니엘이 한 걸음 더 옮기자 에밀리오의 고개가 돌아갔다. 적을 앞에 두고 태연히 시선을 옮기는 소년은 ‘지난번에 죽을 뻔했던 건 너 아니냐’고 물으면 정말로 죽일 기세였다.

흉터의 남자 토로스와는 이미 대결해 본 적이 있다. 타니엘도 혼자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걸음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에밀리오는 돕겠다고 가면 정말로 공격할 녀석이었다.

“다친 데는 다 나았나?”

뒷걸음으로 물러나며 타니엘이 물었다. 분명 자존심이 상해서 화낼 거라고 생각했으나, 측면만 살짝 보이는 에밀리오의 광대가 조금 올라갔다.

‘웃어?’

“상관없다.”

소년이 대답하는 순간에 토로스가 먼저 움직였다. 에밀리오는 그것을 본 뒤에야 반응했지만 행동은 훨씬 빨랐다. 에밀리오가 토로스의 칼을 피하고 엇갈리듯 스쳐서 그의 뒤편에 번득 나타났다. 그리고 뒤를 잡았지만 공격하지 않은 채로 토로스가 돌아설 때까지 기다렸다. 에밀리오를 향해 돌아선 토로스의 턱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예의 지킬 필요 없다고 했거든.”

에밀리오가 나직이 말했다. 차가운 희열이 들끓는 목소리였다.

‘뭐······?’

그 말에 타니엘의 머릿속으로 에밀리오를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다리 밑에서 네 명의 부랑배들을 쓰러뜨린 다음 기진해서 쓰러지던 에밀리오는 그런 말을 했었다.

- 예의······지키고 있으니까······걱정······

그때는 제정신이 아닌 채로 중얼거리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는 말은, 그러니까 그때까지도 뭔가를 금지하거나 선을 넘지 않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을 무시하겠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뭔가를 생각해볼 틈도 없이 이번에는 에밀리오가 먼저 움직였다.

“허엇······!”

멀찍이서 지켜보던 기사들 사이에서 두려움에 가까운 탄성이 터졌다. 소년이 공격을 시작했으나, 그것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어두워서만은 아니다.

전후좌우로 베거나 찌르는 에밀리오의 칼은 움직일 때마다 달빛을 반사해 번쩍거렸다. 그 하얀 반사광이 까만 허공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그것에 에밀리오의 모습이 가려질 정도였다.

소년의 몸에 맞추어 만들어진 검이라고 가벼운 것은 아니다.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무게는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반사광의 궤적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검의 공격속도에 맞춰 몸의 근육이 반응하는 것도 세라의 권능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어쩌면 흉터의 남자, 토로스인지도 모른다.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에밀리오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한쪽은 어지러울 정도로 몰아붙이고 다른 쪽은 그것을 방어하면서 주변의 장미나무들이 칼바람에 쓸려나갔다. 칼과 칼의 맞부딪치는 소리는 비명처럼 밤하늘을 울렸다.

까앙 - !

이어지던 금속성이 단 한 번 크게 울렸다. 기사들은 토로스의 두꺼운 검이 반 토막이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토로스의 상체가 뒤로 크게 젖혀져 있었다. 아니었다면 검과 함께 그의 목도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젖힌 몸의 균형을 잡기도 전에 에밀리오의 칼이 다시 한 번 그의 몸을 찔렀다.

챙 - !

에밀리오의 검이 아래서부터 올려친 타니엘의 칼에 튕겼다. 튕겨나다 말고 번득 돌아온 검이 타니엘의 목을 겨누었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소년의 눈길이 칼날을 따라 흘렀다. 타니엘은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는 손을 꽉 쥐었다.

두 사람의 옆에서 기울어졌던 토로스의 몸이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이 자를 죽이면 막대한 정보를 잃는다. 지금까지 너와 동료들이 한 일도 모두 허사다. 메칼로가 뭐라고 할 것 같아?”

이 말을 알아들을 이성이 남아있는가 걱정될 정도로 격앙되었던 소년의 눈에 초점이 잡혔다. 에밀리오는 아래턱을 움찔거리며 칼 든 팔을 늘어뜨렸다. 타니엘도 토로스도 죽여 버리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소년은 이를 악물고 천천히 물러섰다.

쓰러진 토로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이 부러진 것과 함께 그의 몸도 부서져버린 것 같았다. 타니엘은 발로 토로스의 칼을 차서 멀리 날려버리고서야 그의 가까이 갔다.

‘윽······.’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신음을 그는 목안에서 삼켰다.

토로스가 에밀리오의 공격을 방어했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그의 온 몸은 수많은 칼집으로 붉은 살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혈관을 교묘하게 피해, 표피 아래 진피와 피하지방까지만 베어낸 것이었다. 수없이 상처가 났는데도 출혈은 적었다.

쓰러진 토로스가 부들거리며 몸을 떨었다. 손발을 꿈틀거렸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관절 부분의 상처 때문이다. 사지가 연결된 네 곳만 칼자국이 깊었다. 근육까지 끊어버린 것이다.

결코 싸웠다고 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냥 고문이었다.

다가와서 본 다른 기사들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타니엘과 에밀리오를 번갈아 보았다.

“황금창 기사단에 연락해. 놀로파의 사제도 부르고.”

타니엘의 명령에 기사 하나가 뛰어갔다. 에밀리오는 기분 잡친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보다가 천천히 정원을 떠났다. 아무도 소년을 붙잡지 않았다.

“단장님이 저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미친 것 같은 이 꼴을 다시 보는 건 못할 짓입니다. 또 같은 일이 생기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기사 하나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타니엘은 멀어지는 에밀리오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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