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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18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1.2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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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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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14. 눈을 떠라 눈을 떠라

DUMMY

레플루앙시.


겁이 많았던 여자에게 가장 불안한 것은 그녀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주위의 정보를 끌어 모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탈출할 수 있게 몸을 잘게 쪼개는 연습을 했다.


'몸의 일부라도 살아남는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불안을 끝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무수한 노력에도 좀처럼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돼. 부족해.'


불안이 극에 달한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바로 다음에 일어날 가까운 미래이긴 하지만.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를 선택하기로 했다.


***


디율 사번대 대장.

디넷 오번대 대장.

그리고 딜람까지.


칼리다비스를 상대하는 두 기사를 제외한 마법사 세 명을 상대하는 데에도 레플루앙시는 여유가 넘쳤다.


그녀가 여유가 넘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그녀에게 수많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수많은 미래 중 단번에 가장 완벽한 수를 선택할 수 있는 두뇌 회전 덕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칼리다비스는 그녀의 눈의 능력의 반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칼리다비스는 그의 강인하고 빠른 육체 능력에 의지해 그냥 그때그때 보이는 미래에 맞춰 움직일 뿐이니까.


본래 그녀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그녀와 같이 사용해야 했다.

그녀가 내딛는 발걸음의 방향에 따라 바뀌는 수많은 미래의 장면 중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경우를 단번에 뽑아내는 것이다.


그 결과.

세 마법사의 공격은 그녀에게 닿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 방해만 되는 꼴이 되었다.


"완전 저희를 갖고 놀고 있어요."

"..."


답답함을 느낀 사번대가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듯하자 오번대가 그를 막았다.


"답답하다고 뛰어들었다가 되려 당할 거예요."


이쪽의 행동을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은 전투에 있어서 큰 이점이었다.


'물론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 조금의 실수가 없는 것은 순수한 적의 실력이겠지만...'


사번대 대장, 그가 좀 전에 파고들려고 했던 허점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적이 일부러 열어 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저쪽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한다면 이쪽에서 파고들 부분이 더 늘어날텐데.

이미 밝힌 대로 저쪽은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인 모양이라 도통 틈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이대로 시간을 끌리는 것 역시 별동대에게 있어서 하등 좋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 오번대에게 제지당했던 사번대가 입을 열었다.


"디넷님. 이레님쪽의 사정을 모르지만 이미 많이 지친 상태셨습니다. 좀 무리를 하더라도 적의 수를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파고 들어 저 자를 제압할테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현재 세 사람 중 가장 빠른 사람이 사번대니 그가 접근하는 게 가장 나은 선택지기는 했다.


"딜람아. 보조해 주거라."

"네."


딜람의 성벽 마법은 꽤나 강력한 마법이다.

일단 성벽을 완성하기만 하면 그 안에 있는 적은 약해지고 또 동시에 아군은 강해지니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거나 그녀의 마법에 대해서 이미 아는 자들은 그녀가 얌전히 성벽을 쌓도록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투가 벌어지고 레플루앙시라는 제사장은 다른 공격은 놔두더라도 그녀가 성벽을 제대로 쌓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진작 인식하고 있던 딜람은 여러 방면으로 성벽 마법을 응용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했다.

그 첫 번째가 성벽을 조그맣게 만들어 자기의 몸 주변에 붙어 개인만 강해지게 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렇게 하면 움직이는 것이 영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두 번째 방법.

그건 그때 그때 필요한 곳에 벽돌을 둘러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성벽 마법에 한해서 디율은 넷이 운동마법을 쓰는 것만큼이나 벽돌을 자유자재로 제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부탁하마."


파아앙


공기가 터지며 디율의 몸이 솟구쳤다.


"절대 죽으시면 안돼요!"


그녀의 손짓을 따라 작아진 벽돌이 열을 맞춰 날아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날아간 벽돌이 날아가는 디율의 발 주변을 둘러쌓았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공기가 압축되었고.


파아아앙


디율의 몸이 가속하였다.

뒤로 물러나던 레플루앙시와의 거리가 대번에 좁혀졌다.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도달한 디율.


'단순히 손발로 구속하려고 해도 이 여자는 몸을 나눠서 도망칠 것이다.'


그렇다면 온 몸을 사방에서 한 번에 구속해야 했다.

어느새 벽돌은 레플루앙시와 디율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본래 성벽 마법은 경계가 명확하면 명확할 수록 효과가 강해지지만 이런 식으로 다소 애매하게 경계를 나눈다고 해도 이쪽과 저쪽이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구분만 되면 효과가 발동되기는 했다.


우우웅


미약하게나마 성벽이 빛을 내며 레플루를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레플루의 사방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녀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이극. 못 움직이겠네."


이미 오번대와 딜람에게서 시작된 마법이 저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는데도 레플루는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녀가 여유로웠던 이유가 곧바로 드러났다.


"몸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쩌억


그녀의 목 아래에서 시작된 균열이 그녀의 배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세로로 벌어진 그녀의 몸 속 여러 장기들 사이 한 가운데에 새까만 기운이 극한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뭘 숨길 수도 있다는 뜻이야."


이변을 눈치챈 딜람이 성벽을 움직여 디율을 보호했지만.


콰아아아앙


터져나온 기운에 얇은 성벽은 속절없이 바스라지고 말았다.


"디율님!"

"아버님!"


레플루앙시가 쏘아낸 공격에 휩쓸린 디율은.


쿠우웅


의외로 두 마법사의 앞에 떨어져내렸다.

먼지구름을 뚫고 튀어나온 그의 곁에는 못 보던 여자가 서있었다.


"뭐지...?"


레플루앙시도 여자의 등장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의아한 얼굴이었다.


"쿨럭. 쿨럭. 저는 위대한 아돌 앙귀스 왕자 저하를 모시는 기사. 캐롤 칼카넴이라고 합니다."

"텔제민의 기사라고요?"

"네. 부족하지만 두 번째 검이란 직위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쪽이 왜 저희를 돕는 거죠?"

"텔제민의 사람들이 모두 저들에게 먹혔습니다. 이건 그러니까..."


이끄는 위치에 선 자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

혹은.

자기 위로에 불과한 몸부림이었다.


***


레플루앙시는 갑자기 난입한 자를 보고 머릿속이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분명 그녀가 봤던 미래에서 남자 마법사는 그녀의 일격에 목숨을 잃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저기서 멀쩡히 살아있었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할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심지어 저 캐롤이라는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칼리다 쪽에는 아돌이 끼어든 상황이었다.


'여자는 몰라도 남자쪽은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텐데.'


압도적인 절망감에 아돌이라는 어리석은 남자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이 무너져 내렸었다.

분노, 복수와 같은 욕망은 커녕 자책할 정도의 기운도 없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남자.

아득한 절망 속에 선 남자.


그녀의 경험상 아돌처럼 영혼이 무너진 자는 그녀가 굳이 손대지 않아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지금 아돌 앙귀스는 검을 들고 이곳에 서있었다.

상정하지 않은 상황.


"미래가..."


갑작스레 끼어든 변수에 레플루의 눈에 떠오르는 장면들이 혼란스럽게 얽혔다.

몰려오는 두통에 레플루가 얼굴을 찡그렸다.


"크윽!"


한 번에 많은 힘을 흡수했기에 그녀는 이번 전투에서 미래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지만 본래 미래를 보는 건 엄청난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여유로워 보였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많은 힘을 쏟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끼며 그녀가 그렸던 미래를 다시 고쳐야 했다.


"짜증나네. 벌레같은 것들이..."


레플루앙시가 주춤하는 사이 자신을 두 번째 검이라 소개한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제 히펠은 빨라집니다."


중앙 막사에서 사용한 히펠이 전장에 오기까지 가속하였고 그 결과 어둠이 디율을 덮치기 전에 그를 구할 수 있던 것이다.


간단히 제 소개를 마친 캐롤이 히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 주위로 빙글빙글 돌던 히펠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더군요."


어느새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빨라진 그녀의 히펠이 레플루앙시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녀의 말대로 레플루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고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이야 히펠을 쓸 수라도 있지 저쪽에서 마음 먹으면 단순히 통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이상 히펠 자체를 뽑아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제가 왕자 저하께 듣기로 여러분들께서는 제사장들 상대로도 히펠을... 힘을 쓸 수 있다고 하던데요. 제게 그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디넷이나 딜람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방법이라는 게 단순히 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힘의 근원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알고 그 근원이 되는 존재를 인지하고 믿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냥 말로 듣는다고 막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혁명단과 비교적 오랜 시간을 보내며 간접적으로 트리아트 셋이 누구인지 경험한 디넷 오번대 대장도 파편의 힘에서 벗어난 게 최근인데 아무거도 경험하지 않는 캐롤이 가능할 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보여준다면 모를까.


두 사람이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에 디율 사번대 대장이 캐롤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트리아트 셋이라는 마법사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힘을 줍니다."

"흠. 용을 풀어놓은 저주받은 마법사가요?"

"아니요. 그분께서는 용을 죽인 분입니다."

"저하께서 하셨던 말이 트리아트 셋이란 자를 말했던 것이군요."


적에게서 풀려나 구출된 아돌 저하가 그녀에게 지나가는 말로 했던 말이었다.


- 이미 용이 죽었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나?

- 네? 누가 죽일 방법을 알아낸 건가요?

- ... 아니. 이미 용은 죽었고 다른 존재가 용의 흉내를 낸다고 하면 말이다.

- 글쎄요 뭐 의미가 있나요? 진짜 용이 아니라고 해도 저희는 용을 이길 수 없는데요?


그런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해보죠."


여기 서서 제사장들과 싸우는 자들을 보니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이 있었다.


의문.

허탈함.

후회.

동경.


여기서 설령 저 칠흑과도 같은 어둠과 싸우는 법을 배운다고 해도 그녀가 지켰어야 할 구만이천칠백십사 명의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 넣었다는 죄책감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싸우는 법을 배워 살아 남는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죽은 백성들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녀는 살 수 있다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어둠과 싸워 이길 수 있다면 이후에 그녀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그녀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죽어 마땅한 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시 한 번 살아보겠습니다."


맹세가.

결연한 다짐이 그녀가 꽉 쥔 주먹 사이로 피가 되어 흘렀다.


"그분께서 부디 절망 뿐인 세상 속에서 나약한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면 좋겠네요."


캐롤의 검끝에 히펠이 유독 빛을 내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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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8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1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8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2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1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7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1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10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9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8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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