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03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3.04 18:05
조회
7
추천
1
글자
12쪽

229. 재능

DUMMY

난데 없이 성사된 대련.

넓은 공터에 도착한 상단은 가운데에 넓은 공터를 두고 그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어이! 거기 더 뒤로! 뒤러 가라고! 조금 가까이에서 보려다가 아주 세상을 뜨는 수가 있으니까."


공터는 이제 막 성사된 따끈따끈한 대련의 무대로 쓰기 위해 비워둔 상태.

상단 직원들은 물론이고 용병들까지 바짝 말린 육포를 넣어 끓인 스튜를 한 그릇씩 들고 공터에 둘러 앉았다.


오늘의 대련.


한쪽은 젤로트.

별칭에 따르면 피로 온갖 것을 다하는 기사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유고.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굽니까?"

"기사라던데? 수행의 길을 걷고 있었다나봐."


수행의 길은 기사들이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고 다니는 여행을 일컬었다.

근래의 기사들은 잘 하지 않는 것이지만 사내들 사이에서는 나름 낭만이 있는 행동이었다.


"근데 왜 바다에 빠져있던 거래?"

"골락으로 가기 위해 구한 조각배가 난파됐다더라고."

"조각배? 조오~가악~배? 카일라를 건너는 데 조각배!"


조각배를 가지고 카일라 해를 건너려고 하다니 어지간히 미친 자라며 누군가는 혀를 찼고.


"으하하! 삐쩍 곯아서 기사가 맞긴 한가 싶었는데 요즘 보기 드물게 사나이 중에 사나이였구만!"


낭만을 좋아하는 자들은 환호했다.


"그래서 얼마나 강한데? 저 '피로 비를 내리는 기사'보다 강해?"

"아니 이 친구야. 지금부터 그걸 알아보겠다고 싸우는 거 아닌가."


유고라 불리며 무대에 등장한 이트나는 대련을 한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많이 허전한 상태였다.

이트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바다에 빠지면서 검도 같이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혹시 아무나 누구 검을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번 대련의 심판을 봐주기로 한 용병단의 단장이 선선히 제 검을 빌려주었다.


"괜찮은 검이네요."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용병단이라고 해도 단장정도 되면 마냥 맹탕은 아닌 모양인지 검 자체는 꽤 볼 만했다.

균형도 잘 맞춰져 있었고 철의 질도 아주 좋다 정도는 아니어도 이번 대련동안 부러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았다.


이트나가 하는 말에 젤로트가 속으로 비웃었다.


'마법사라면서 검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렇게 아는 척인지...'


"방금. 속으로 저 비웃으셨죠?"


뜨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던져온 이트나의 말에 그는 순간 표정을 무너뜨릴 뻔 했지만 오랜 연기로 다져진 노련미로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럴리가요."

"아니면 말고요."

"..."


젤로트의 생각과 다르게 이트나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괜히 아는 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분야를 연구하고 체득한 이트나의 머릿속에 검에 대한 지식 역시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검술과 히펠이라는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젤로트씨."


이트나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검에 선명한 히펠이 솟아났다.

어떻게 봐도 부정할 수 없는 히펠이었다.


"오오!"


구경꾼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뭐. 뭐야."


저게 왜 되는데?

마법사라며.


젤로트는 이트나가 든 검에 맺힌 히펠에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히펠이 꽤나 그럴듯 합니다만... 저희 기사가 갖는 차별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법사와 기사.

둘은 구분해 불리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둘을 구분하는게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곤 한다.

기사가 상급 기사가 되어 히펠의 특성을 발현하는 순간 마법사의 영역을 일부 기사가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위력과 힘의 형태에 한해서일뿐, 각자 힘을 운용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어떤 이견도 없다.

처음부터 외부의 환경을 조작하는 것이 마법이라면.

기사의 강화된 육체가 점점 확장되어 외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히펠이다.


그러니까 젤로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이트나가 아무리 마법으로 히펠을 흉내낸다고 한들 기사의 강인한 육체까지 흉내낼 수 없다는 말이었다.


"갑니다."


장병도를 늘어뜨린 채, 히펠로 강화된 다리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내리찍었다.


쿠웅


목소리만 남긴 채 사라진 젤로트는 어느새 이트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육체가 약한 마법사에게 굳이 장병도를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젤로트의 생각이었다.

그는 장병도를 들지 않은 주먹을 들어 이트나의 비어있는 안면을 향해 내뻗었다.


'이대로 저 재수없는 자의 코뼈를...'


터억


"... 터억?"


젤로트의 주먹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맥없이 막혔다.

그냥 막힌 것도 아니고 이트나의 손에 잡혀서 막혔다.


"이게 젤로트씨의 전력입니까?"


아니 이게 왜 잡혀?

젤로트의 두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당연히 전력은 아니었다.

이트나가 깝죽댄 것을 생각하면 당장 그를 장병도로 두 동강을 내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래저래 엮인 게 많은 자인만큼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의 힘만 줘서 때린 것이다.


그래.

힘을 빼긴 했다.

아니 아무리 힘을 뺐다고 해도 그렇지.


'겨우 마법사가 따라 잡을 수 있는 움직임은 아니었을텐데?'


히펠로 육체를 강화시키지도 않은 몸이지 않은가.

움직임을 예상해서 피했다고 하면 또 모를까 지금 이트나는 그의 주먹을 잡고 있었다.


"이게 전력이라면 실망인데요? 피로 빨래를 하는 기사라고 불리시는 분이 이렇게 약해서야..."


젤로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우선 확실히 하고 넘어갈 게 있는데 피로 빨래를 하는 기사란 이명은 결단코 없다.

전력?

지금 그는 자신의 힘의 십분의 일도 쓰고 있지 않았다.


이건 명백히 도발이다.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푸흡. 진짜에요? 이게? 전력?"


느물거리는 이트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아드득


"그럴. 리가요."


우우우웅


이트나에게 잡힌 그의 손에 히펠이 흘러나왔다.


"죽어도 원망하지 마십쇼."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빼낸 그는 히펠을 두른 채 다시 한 번 이트나를 향해 휘둘렀다.

안면에 위치한 손을 향해.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힘의 여파로 주변으로 먼지 구름이 일었다.


고작 주먹질 한 번이었지만 사람들을 놀래키기에는 충분했다.

일반인들의 입이 쩍하고 벌어진 것은 물론, 그래도 칼로 밥 벌어먹고 산다는 용병들도 이 정도의 위력은 처음 본 것인지 표정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무슨 대형선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나네."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간의 침묵.

먼지 구름이 걷히자 드러난 것은 젤로트의 주먹을 다시 한 번 멀쩡하게 막아낸 이트나의 모습이었다.


"와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에 이트나가 검을 들어 이리저리 휘적이며 화답하였다.

환호 소리가 더 커졌다.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와 다르게 주먹이 잡힌 젤로트는 그야말로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진작 알았다.

다만 지금 그에게 있어서 어떻게 저 재수없는 마법사가 기사인 자신과 같은 힘을 내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겨우 마법사 한 놈을 힘으로 이기지 못한다니.


- 괜찮겠어요? 나를 상대하기에는 젤로트씨. 많이 부족하잖아요?


대련 직전 이트나가 했던 말이 귀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아 이가 뿌드득 갈렸다.

초조함과 열등감.

그 감정의 끝에서 젤로트는 장병도 끝에 제 히펠을 담아냈다.


기다란 막대기 끝에 달린 매끄러운 날붙이와 다르게 그의 히펠은 삐쭉빼쭉하니 성긴 톱날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장병도는 피처럼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젤로트의 장병도가 지척에 있는 이트나를 향해 횡으로 날아갔다.


카각


이트나의 검이 당연하다는 듯이 가로 막았다.

다만 젤로트는 이전처럼 당황하는 대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실수하신 겁니다."


까득


성긴 톱날이 이트나의 검을 물고 놔주지 않았다.

이대로 힘을 빼 검을 놓을지 아니면 힘을 주고 버틸지.

언뜻 보면 다음 움직임을 두 가지 경우로 제한하기 위한 행동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속임이다.


이트나는 과연 머리가 돌아가는 자인지 검을 쥔 손을 제외하고 남은 팔 다리로 그를 공격하려 들었다.

다만 이 움직임 역시 젤로트의 예상 범위 내라는 것은 이트나는 몰랐을 것이다.


날아드는 이트나의 주먹을 막기 위해 젤로트가 제 주먹에 두른 히펠에는 장병도와 마찬가지로 톱날이 나있었다.


콰아앙


상급 기사와 그와 비슷한 수준의 힘의 격돌로 다시 한 번 굉음이 일어났고 결과 역시 이전과 그리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 누구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점까지는 똑같았지만 차이가 있는 곳이라면 미세하게 이트나의 주먹에 상처가 났다는 것이었다.


"... 재밌네요."


이전까지 웃던 낯짝은 어디가고 이트나는 얼굴을 바짝 굳힌 상태였다.


주르륵


겨우 피부가 조금 까진 것에 지나지 않은데 상처에 비해 흐르는 피의 양이 너무 많았다.

상처를 본 젤로트는 확신에 찼는지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카각

까드득


두 사람의 히펠이 맞부딪힐 때마다 이트나의 히펠이 한 번식 깨져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히펠이 깨진 틈으로 여지 없이 젤로트의 히펠이 날아들었고.


스걱


그때마다 이트나의 피부에 상처가 생겼다.


"... 피가 멎지 않네요."


이트나가 젤로트와 거리를 벌린 것은 상처가 세 개가 넘어가면서 부터였다.


"그게 젤로트씨의 특성인가보죠?"


그의 질문에 젤로트는 굳이 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어느정도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출혈을 늘리기 위해 단순히 상처를 헤집는 것은 아니고. 굳이 말하면 피 자체를 억지로 뽑아내는 느낌이네요."


내색은 안 했지만 젤로트는 속으로 놀라는 중이었다.

고작 세 번 베인 것으로 자신의 특성을 정확히 집어낸 것이니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예상은 했는데 확인 좀 한다고 애먼 상처만 더 냈네요."

"지금 그 말은 일부러 당해줬다는 말입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허세를 부리는 점이 놀라웠지만 젤로트는 더 이상 그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몇 번 이트나의 히펠과 맞댄 결과 분명 마법사가 꺼낸 히펠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단단했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젤로트의 히펠에 부서지지 않았던가.


만약 허세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내 히펠에 상처를 입은 후다.'


그의 예상대로 젤로트의 히펠은 피를 조종하는 특성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처를 통해 스며들어간 히펠이 닿은 피에 한해서이지만 한 번 상처를 파고든 히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가 멈추기 전까지는 꼼짝 없이 피를 잃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제 그만 패배를 인정하시죠. 더 하면 죽으실 겁니다."

"아니요. 좀 더 하죠. 저도 이제 슬슬 적응이 된 참이라."

"... 적응?"


빙긋 웃는 이트나.

그의 검에 어린 푸른 히펠이 점점 형태를 바꾸더니 물이 되었다.

물이 된 히펠이 그의 주변으로 방울져 떠올랐다.


"아무래도 전 베는 것보다 찌르는 걸 더 좋아하나 봅니다."


이트나가 검을 들어 멀리 떨어진 젤로트를 향해 내지르자 그의 주변의 물방울들이 동시에 젤로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수백 자루의 검이 동시에 찌르는 듯 했다.


"크윽!"


젤로트가 장병도를 크게 휘두르며 저를 향해 날아오는 물방울을 쳐내려고 했지만 물방울은 젤로트의 히펠을 관통하여 이내 젤로트에게 닿았다.

자신의 무기가 히펠과 함께 망가졌다는 것을 깨달은 젤로트는 몸을 틀어 물방울을 피했지만 모두 피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하..."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헤아린 젤로트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처의 위치는 그가 이트나의 몸에 냈던 상처와 꼭 같은 곳에 나있었다.


스릉


"제 승리인 거 같죠?"


물방울들이 훑고 간 순간에 맞춰 파고든 이트나의 검이 젤로트를 겨누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24.01.09 33 0 -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8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