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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7.15 18:00
연재수 :
259 회
조회수 :
11,952
추천수 :
697
글자수 :
1,391,524

작성
24.03.14 10:39
조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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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DUMMY

- 하악 하악... 겁나 세네 할망구.


바닥에 널부러진 이트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앞에 서있던 이레는 할망구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트나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 아악! 뭔 놈의 늙은이가 이렇게 힘이 세!

- 구십 대 청춘한테 계속 늙은이라고 할 게야?

- 악! 구십 대는 무슨. 백 살이 넘은지가 언젠...


따악


마지막 한 대는 정말 제대로 들어갔는지 이트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트나가 당하는 것을 낄낄 거리며 지켜보던 율레도 이트나가 기절하는 것을 보자 웃음기를 지우고 노인을 말렸다.


- 노인네. 살살 해요. 그러다 애 바보 되겠네.

- 후우... 하여간 너희 꼬마들은 말을 좀 조심할 필요가 있느니라.

-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 학교 교수로 보낼 거라면서요.


이레는 저 꼬맹이 성격에 퍽이나 애들을 가르칠 수 있겠다며 혀를 찼다.

때마침 이트나가 일어나 이레를 거들었다.


- 그래. 맞아. 내가 무슨 교수야. 난 혼자 일할 때 가장 능률이 잘 나온다니까!


고래고래 고함까지 지르는 이트나가 퍽 시끄러웠는지 이레는 그를 다시 한 번 기절 시켰다.

좀 조용해진 틈에 그녀는 율레에게 물었다.


- 이제 몇 년 안 있으면 옛말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지 않느냐.


마을에 있을 때야 아이의 부모도 있고 다른 단원들이 틈틈이 돌아가며 지킬 수 있었다고 하지만.


- 학교에서는 그게 어렵지 않느냐. 누군가는 들어가야 한다.

- 알죠. 그렇지만 저 녀석. 독사 내에서도 꽤나 끔찍한 짓을 하던 놈이란 거 아시잖아요?


이상한 약이나 도구를 만드는 것은 기본.

살아있는 사람의 배를 갈라 인간 몸의 장기들을 가지고 온갖 실험을 했다느니.

어떻게 하면 죽이지 않고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 고문법을 연구했다느니.


개인 연구실에서 일어난 일이라 따로 증거는 없었고 어디까지나 이트나 본인의 증언에 따른 말이었지만 아마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것이 율레의 생각이었다.


- 그런 녀석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네. 나는.

- 흥. 넌 뭐 아닌 것 처럼 이야기하는구나. 애기들 죽이던 네가 애를 살린 건 뭐라고 얘기하려고 그러는 게야.

- 아니... 그건 그거고.


우물거리며 얼버무리는 율레를 뒤로한 채 이레는 기절해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은 애티가 남아있는 남자의 정수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 과거를 망각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계속 얽매여 있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다.


여전히 기절한 척하고 있던 이트나는 정수리에 닿는 섬세한 손길에 몸을 움찔거렸다.


- 너의 손이 한때는 누군가를 죽였던 손이라면 이제는 그 손으로 누군가를 지켜보거라.

- ... 그러면 나도 저기 데려다 주는 겁니까?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말해서 웅웅대는 것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이레는 이트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저 빨간 머리 놈처럼 죽음의 숲 속에서 특별한 마법을 배우게 해주세요.'


독사에서 나와 혁명단에 들어오고 난 후에 주구장창 노래를 불러왔으니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 이센도 그렇고 하물며 율레 저 꼬마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데 말이야. 하여간 넌 귀여운 구석이 없는 아이야. 내가 이렇게 감동적인 말을 하는데 거기에 조건을 달고 싶으냐?

- 아. 뭐요.

- 쯧. 뭐 어차피 너도 슬슬 데려가려고 했다.

- 엥? 뭐야. 그냥 갈 수 있으면 나 교수 안 하렵니다.


따악


정수리에서 울려퍼지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던 교수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이트나는 기억한다.


자칫 힘 조절에 실수라도 하면 쉽게 깨지는 유리처럼 아이들은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무엇인가를 해체하고 죽이는 일에 익숙했던 그는 이제 아이들을 키우고 가꿔야 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에 죄책감이 그의 사지를 짓누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트나는 키우고 가꾸는 일에도 점점 익숙해져갔다.


어느날 그는 자신이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손에 감겨오는 감촉.

애써 힘 줘서 잡았지만 선택권이 자기에게 없음을 깨달은 자의 손.

단단히 이트나를 붙들었던 손에서는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트나가 손을 가볍게 떨쳐내기만 해도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데셀비아가 그를 붙드는 힘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혹시 젤로트가... 죽어야 하는 겁니까? 그 아이가 죽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겁니까?"


그럼에도 이트나는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데셀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간절함이 그를 멈춰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트나님께 젤로트를 구할 시간이 없다면. 제게 알려주십쇼. 제가 구하러 가겠습니다."


데셀비아는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를 것이다.

다만 그 역시 바보는 아닐테니 이트나가 한 말을 조합해보면 정황상 이트나가 젤로트를 포기하려고 한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이미 마음을 굳혔건만.'


머리로는 여기서 젤로트를 포기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트나는 여전히 데셀비아를 떨쳐내지 못하고 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데셀비아가 붙들기 전부터 그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나도 될 일을 굳이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 언질을 주었고.

더 나아가 데셀에게 말을 꺼내면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단서까지 꺼냈다.


'핑계라도 대고 싶었던 걸까.'


지금 자신이 내린 선택으로 찾아올 결과물에 대한 변명거리를 준비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데셀비아님."


그게 어떤 추악한 바람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이 비합리적인 판단의 기저에 무엇이 있든 이트나가 해야할 일은 당장 젤로트를 구하러 가는 것이었다.


"젤로트님이 따라간 사람의 정체는 제사장일 겁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죠. 들어보셨을 겁니다. 유스티티엔이라고."

"유스... 티티엔이라면. 이전 연합전은 물론 그 전 연합전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네. 맞습니다. 벌써 삼백 년이 넘게 살고 있는 원로 중의 원로에요."


한 번 검을 맞대보고 깨달았다.

이트나 혼자서는 유스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이트나 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젤로트님을 제사장에게서 빼내오는 데에는 데셀비아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하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요. 둘 모두 구할 겁니다."


시간이 없다며 데셀비아를 잡아 일으키는 이트나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메레오 상단에서 떨어져 나온 젤로트와 베루스비숨이 도착한 곳은 젤로트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이곳은."

"맞다. 네가 그 기사에게 진 곳이다."


죽음의 숲 인근의 공터.

이곳에서 그는 이트나에게 다시 한 번 덤볐고 패배했었다.

왜 굳이 흑역사로 가득한 곳으로 자신을 이끌고 왔는지 젤로트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스승으로 삼았으니 잠자코 따라보기로 했다.


"방금 내가 보여준 검은 잘 보았나?"

"... 네."

"어땠지?"


어땠냐니.

젤로트는 눈앞의 여자가 보여준 대련을 다시 떠올려봤다.

본인 스스로는 나름 날붙이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보여준 무위는 그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그것이었다.

그녀가 펼친 검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중에도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어떤 말로 표현해도 그녀의 검술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굳이 조악한 자신의 말로 표현하자면.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감상평이 나쁘지 않았는지 베루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아름답지. 다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보는 것과 네가 보는 것은 다를 거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마 그녀는 자신이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네가 본 아름다움이 내가 추구하는 검과 아주 동떨어진 것은 또 아니지."


이해하지는 못해도 아름답다 여긴 것은 베루의 검술을 본 그의 온 감각과 정신이 무의식적으로나마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의식과 무의식의 간극을 줄이도록 하지."


의외로 여자는 착실히 스승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건 그녀가 꽤나 훌륭한 스승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검을 천천히 내리그을 테니 보아라."


이미 수만 번 수십만 번 반복한 동작이었다.

일반인이 보면 하품이 나올정도로 천천히 내려오는 검을 젤로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스걱


마침내 그녀가 검을 끝까지 내리긋자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났다.


"검의 의의는 베는 것에 있다. 그리고 벤다는 것은 벤다는 행위의 대상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벤다는 동작, 찌른다는 동작. 모두 연습이 필요한 동작들이지.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효율적으로 몸의 힘을 전달해야할 것이고 또 휘두르는 중에 검로가 흔들리면 안될 것이고.

그 밖에도 여러 중요한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베기 위함이다. 그러니 네가 벨 대상에 대한 인식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


그녀의 앞으로 우윳빛 히펠이 떠올랐다.

동그랗게 빚어진 경단같은 모양이었다.


"자. 여기서 넌 어디를 벨 것이지?"

"...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이번에는 경단 모양의 히펠을 크게 확대시켰다.

히펠이 집채만하게 커졌다.

이 정도로 크게 확대되니 젤로트는 히펠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시 봐라. 여기서 넌 어디를 벨 건가?"

"...!"


젤로트는 경단을 이루는 히펠의 내부가 생각보다 고르지 않게 뭉쳐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히펠의 밀도가 낮은 곳이 있었다.


"그래. 그곳을 베면 된다."


쉬이익


여자의 검이 히펠 중 약한 곳을 지나가자 히펠이 허무하리만큼 쉽게 갈라져버렸다.


'아니 그냥 갈라진 게 끝이 아니야.'


히펠이라는 역할을 더 수행하지 못하겠는지 잘린 히펠은 허공에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세상 모든 만물은 각자 내뿜는 기운이 있다. 기운, 기, 히펠, 어떻게 불러도 상관 없다. 중요한 건 그 기운 사이에도 상대적으로 약한 곳이 있고 강한 곳이 있다는 거다."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검을 들어 이번에는 다른 곳을 겨눴다.


"다른 것이 검로가 아니다. 이게 검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면 이런 것도 가능해지지."


방향은 눈에 거치는 것이 없는 지평선.

히펠을 늘린 그녀가 크게 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검이 하늘과 땅을 잇듯이 떨어져 내렸다.

하늘에서 이어진 상처는 지평선을 넘어 끝내 그녀의 검끝까지 닿아 있었다.


"길을 볼 수 있다면 보잘 것 없는 검 한 자루로 히펠도, 마법도, 더 나아가 세상도 벨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검 한 자루로 세상을 베었다는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었다.

그녀가 히펠을 아주 길게 늘려서 하늘에 닿고 지평선 너머까지 닿은 것이 아니다.

검 끝이 벌린 균열이 그녀가 말한 소위 검의 길을 타고 뻗어나가 저 끝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낱 점에 불과한 인간이 끝없이 뻗어나가는 선을 그은 셈이다.

이건 한계를 뛰어넘는 해방이었으며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첫 발이었다.


그녀의 검에는.

베루스비숨의 검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과 함께 젤로트는 다리가 풀려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름. 다워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어느새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감격에 겨운 눈물이 다 마르기 전이었다.


"세상도 벨 수 있다면 왜 저 숲에 깔린 마법은 베지 못하시는 건지요?"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깝죽대는 목소리였다.


"숲도 못 베면서 세상을 벨 수 있다니... 그거 망상증 아닐까요?"


이트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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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240. 도망쳐 24.04.08 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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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14 1 12쪽
»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15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4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1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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