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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19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1.30 17:51
조회
6
추천
1
글자
11쪽

216. 예기치 못한 상실

DUMMY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수명이 다해 떠나는 이를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고 하지만 상실이라는 것이 꼭 이렇게 순리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상실.

흔해져서는 안 될 비극이지만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이런 상실이 흔하다 못해 넘쳐나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연 재해가 일어나면 그러했고 전장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년 내내 예기치 못한 상실이 벌어지는 곳이 있었다.


용이 다스리는 나라, 비르무트.


하늘에 떠오르는 솔이 비추는 빛이 조금도 닿지 않는 나라.

규범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고 자연스레 거리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런 나라에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났고 갓 태어난 아이가 거리에 넘쳐나는 악의에서 살아남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 누나가 지켜줄게.


어린 소녀에게는 동생이 있었다.

일단 이 끔찍한 곳에서 어느 정도 자랐다는 점에서 소녀가 평범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 안돼! 제발요! 제 동생을 죽이지 마요!


소녀가 감당하지 못할 악인은 무수히 많았다.


- 내가 그 아이를 살려줄게.


구원이라고 할지.

구원을 가장한 더 깊은 절망이라고 할지.


- 제 동생을... 살려주신다고요?

- 그래.


죽은 동생에 이어 자신까지 노리던 악인들에게서 피해 몇날 며칠을 도망치던 소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난데없이 등장한 사내가 소녀가 품에 안고 있던 죽은 동생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자 동생의 시체가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사내의 손 위에는 새까만 씨앗이 놓여있었다.


- 이건...

- 씨앗이다. 여기서 네 동생이 태어날 거야.

- 정...말요?


... 파삭

파사삭


- 으아아앙


사내의 말대로 죽었던 동생이 다시 살아났다.


- 네 동생이 자라기 위해서는 영양분이 많이 필요하단다.

- 영...양분이요?

- 그러려면 누나인 네 역할이 중요하겠지? 지금껏 수많은 어른들에게서 도망칠 정도로 똑똑한 아이니 아마도 넌 할 수 있을 거야.

- 하지만 저는 약한데요...

- 항상 생각을 멈추지 말렴. 주변을 살피고, 계획을 세워. 항상 다른 이들보다 몇 수 앞을 생각하는 거야.

- ... 네.


사내가 꼬물 거리는 아이를 소녀에게 건네고 있는 중 때마침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 어머. 기만님. 오늘은 남자의 몸으로 오셨네요?

- 하... 왜 또 네가 오는 거야.

- 그야 전 기만님을 사랑? 하니까요.


발가벗고 있다시피 한 여자에게 끌려가던 사내는 소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 만약 네 동생이 다시 씨앗이 된다면 그때는 다시 살아나지 못할테니 주의하도록 하렴.


이후 수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소녀는 성장했지만 그녀의 동생은 달랐다.

영양분을 섭취해 좀 자라는가 싶으면 힘을 쓸 일이 생겼고 힘을 쓰면 쓸수록 몸이 어려졌다.


머리가 좋았던 소녀는 이내 동생이 씨앗이 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동생이 다시 씨앗이 된다면 그날 사내가 처음 씨앗에 불어넣은 기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기운이 축적되어 있을 것이었다.

이를테면 기운의 집약체.


그날 사내는.

아니.

기만은 소녀의 동생을 살린 것이 아니라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하나 만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레플루앙시였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 ... 누나가 지켜줄게.


그게 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동생이 그녀 곁에만 있어준다면 이보다 더한 괴물이라고 해도 상관 없었다.


***


- 기만님. 저 두 아이... 아이랑 저것. 키우시게요?

- 그래.

- 제 후배가 들어오는 건 좋은데 아이야 그렇다 쳐도... 저것은 써먹기에 좀 애매하지 않아요?

- 뭘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키우는 건 저 아이 하나 뿐이다.

- ... 아하?

- 저걸 먹게 되면 아마 꽤나 쓸만한 녀석이 태어날 거다.


***


"모두... 죽여버릴 거야."


레플루앙시가 씨앗이 된 칼리다비스를 집어삼켰다.


꿀꺽


칼리다비스를 흡수하고 나타난 변화는 극적이었다.

레플루의 말랐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퍼석퍼석하던 머릿결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백화에 불타 사라져 비어있던 눈동자도 되돌아 와 있었다.


모든 변화를 마친 레플루앙시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처럼 눈을 까맣게 물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쓰읍."


그녀는 가만히 숨결을 내뱉을 뿐이었다.


"후우."


내쉬는 숨에는 까만 기운이 어려있었다.

호흡에서 비롯한 어둠은 그대로 사라지는 대신 한 곳으로 뭉치더니 막을 펼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


이번에는 좀 더 길게.

그녀가 내쉬는 숨에 사방으로 막이 더 늘어났다.


성벽 마법을 다루는 딜람은 지금 제사장이 만드는 것이 완성되게 두면 안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니.

굳이 딜람이 아니어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제사장이 내쉬는 숨결의 범위 안에 있는 그들의 몸이 전부 꼼짝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레플루앙시의 호흡에 섞인 안개처럼 생긴 어둠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각자의 마법과 히펠로 어둠을 걷어내려고 했지만 좀처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디르앤이 피워 올리는 백화가 어둠에 저항하고 있었지만 백화가 어둠을 태우는 속도보다 레플루앙시가 어둠을 뱉어내는 속도가 더 빨랐다.


레플루앙시가 만들어낸 막은 결국 서로 이어져 그녀를 중심으로 사람 수백 명 쯤은 수용할 수 있는 구체를 이뤘다.

외부와 내부의 명확한 경계가 생기자 내부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빛이 사라졌다.

빛의 자리에는 대신 어둠이 들어섰고 빛을 통해 형상을 드러내던 모든 것들은 어둠을 통해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 색을 잃고 그림자가 되었다.


다음으로는 땅이 어둠에 물들었다.

땅에 고여있던 물은 끈적이는 어둠이 되었고 어둠을 빨아들인 나무와 들풀은 바싹 마르며 생명을 잃어갔다.


마침내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들자 레플루앙시가 내뱉던 숨결을 멈췄다.

볼에 흐르는 피눈물을 닦아낸 그녀가 말했다.


"저것들을 죽여."


그녀의 말에 응답하듯 어둠에 물든 세상이 기사와 마법사를 향해 덤벼들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저항다운 저항도 못해보고 죽을 위기에 처한 순간.


빛이 일며 방어막이 생겨났다.


챙그랑


단번에 깨져나가는 방어막 안에서 지금까지 잠잠하던 마법과 히펠이 터져나왔다.

인간을 적대하는 세상이 펼쳐오는 맹렬한 공격은 마법과 히펠 마저 찢어버렸다.

주춤했던 기세도 잠시, 다시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듯 했지만 이번에 어둠을 막은 것은 두터운 성벽이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마법사와 기사는 어느새 한 곳에 모여 형형색색의 성벽 안에 서 있있었다.


***


마법사와 기사 모두 저들을 붙드는 어둠에 저항하고 있던 순간.

딜람만이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법칙이 바뀌는 느낌.

마치 주위 모든 환경이 저를 적대하는 느낌.

그녀가 이미 한 번 겪어본 느낌이었다.


기만이 넷의 몸을 통해 진정한 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때의 감각이 딱 지금과 비슷했다.


문제는 법칙을 비틀고 간섭하는 강도가 오히려 기만에 비해 더 강하다는 점이었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딜람은 이 부분이 의문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야...?'


용에게서 비롯한 가장 큰 파편인 기만과 절망.

그리고 눈앞의 제사장이라는 존재는 그 기만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다.


'아무리 많은 인간을 먹었다고 해서 수천년을 지내온 파편을 능가할 힘을 얻을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조건부라고 한다면.

마치 자신이 성벽을 쌓아 경계를 나누면 그 안에서 꽤나 강력한 마법을 재현할 수 있는 것처럼.

특별한 조건에 한해서라면 제사장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조건이라는 것은 아마 그녀가 펼친 경계 내부에 한해서 일 것이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제사장은 이 특별한 공간에 한해서 절대적인 권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딜람은 마침 이런 능력을 이미 겪어본 적이 있었다.

신이라도 된 것처럼 세상을 제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

바로 오르디나 이레 일번대 대장님의 능력이 이것과 같았다.


물감으로 만든 세상에서 신과 같은 능력을 행사하는 이레 대장님과 지금 레플루앙시가 보이는 능력은 유사한 점이 많았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제사장이 펼친 경계를 벗어나는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수는 이 일대 안에서 자신들의 의지를 행하기 수월한 경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마침 딜람에게는 이레정도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마법이 있었고 말이다.


딜람의 주변에 떠있는 작은 크기의 벽돌이 빛을 내기 시작하자 그녀를 붙들고 있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결 움직임이 수월해진 순간이었다.

저만의 세상을 모두 완성한 것인지 어둠이 물든 세상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제발 늦지 마라.'


그녀는 약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작은 크기의 벽돌을 사방으로 늘려 성벽 마법이 적용되는 범위를 늘렸다.

범위가 늘어나는 만큼 제사장의 능력에 저항하는 힘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 조금의 차이로도 다른 동료들의 행동에 여유가 생겼다.


"모두 모이세요!"


성벽 마법을 늘리면서도 한 쪽으로는 방어막을 재현하고 있던 딜람이 외쳤다.

그녀의 말에 따라 동료들이 그녀 주위로 뭉쳤고 퍼졌던 성벽 역시 다시 범위를 좁히며 성벽 마법의 위력을 높여갔다.


마침내 모두 모인 순간 딜람은 작은 벽돌의 크기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고 약식이 아닌 제대로 된 성벽이 지어졌다.


"고맙다."

"잘했구나."

"덕분에 살았다."


저마다 감사 인사를 하며 각자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제일 먼저 딜람의 방어막이.


챙그랑


다음으로 동료들의 마법과 히펠이.


콰직


마지막으로 성벽까지.


카가가각


제사장의 공격은 딜람의 성벽까지 닿고나서야 그 움직임을 멈췄다.


"이건... 좋지 않네요."


겨우 한 번의 공격을 막기 위해 별동대원들과 후에 합류한 아돌과 캐롤의 히펠까지 동원해야 했다.

그렇다고 레플루앙시가 이번 공격에 모든 힘을 실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 증거로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을 본 레플루앙시는 기분이 나쁜듯 미간을 슬쩍 찌푸리고 말 뿐이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모든 변수를 이해하는 것으로 모자라 미래를 읽어내려고 했던 여자.

변수 투성이인 미래를 온전히 읽어낼 수 없었기에 끝내 동생을 잃은 여자.

그래서 결국 제 뜻대로 할 수 있도록 세상의 일부를 빼앗은 여자.


"... 뭐해?"


그녀가 입을 열자 다시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른 죽여."


레플루앙시가 빼앗은 세상이 무수한 칼날이 되어 적을 겨눴고 이내.


콰가가가가각


어둠의 칼날이 폭우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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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8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1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8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2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1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7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1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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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8 1 11쪽
»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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