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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20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1.29 18:51
조회
6
추천
1
글자
11쪽

215.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DUMMY

아돌 앙귀스.

그는 태어나 검을 손에 쥘 수 있게 된 순간부터 평생 검을 휘둘러 왔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죽기 위해서 온 것이었는데 말이지."


이왕 죽을 것이라면 검을 휘두르다 죽자고 생각하고 왔을 뿐이다.

그를 보좌하는 동시에 두 번째 검을 맡고 있는 캐롤이 따라온 것도 그를 혼자 죽게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요컨대 두 사람 다 죽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그의 두 눈에 전장이 담긴 순간.

그의 마음 속에는 다시금 생에 대한 소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일개 인간이 세상을 짓누르는 두터운 밤을 베겠다는 그 허황된 꿈을 꾸던 자들이 싸우는 모습.

히펠렌스라 칭송받으며 인간을 초월한 초월자라 불리던 자신이 감히 검끝을 들이밀 생각도 못할 정도로 강한 그들을 테노부스의 일행들은 맞서 싸우고 있었다.


비록 조금 밀리는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버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히펠을 두르고 압도적인 어둠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본래는 저들이 싸우는 틈을 봐 제사장에게 한 방 먹여줄 생각으로 왔는데...'


아무래도 저들의 처절한 전투에 마음이 바뀐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덮쳐오는 절망에 함께 침몰하고 있던 캐롤이 그보다 한발 먼저 튀어나갔다.

점점 빨라지며 나아간 그녀는 이단 무리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오래지 않아 다른 제사장과 싸우던 나무뿔사슴단의 기사가 위기에 빠지는 것이 보였다.


'우선 구한다.'


이용하면 이용했지 협력할 마음은 쥐꼬리만큼도 없었던 그가 기사를 구하기 위해 검을 들어올렸다.

변화를 인지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파직


"...!"


본래 벼락의 특성을 가지고 있던 그의 히펠.

벼락의 힘 역시 강했지만 최강의 논하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부족하다 느낀 그는 정점에 이르기 위해 히펠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 가장 강한 존재는 다름 아닌 용.

강해지기 위해 강한 존재를 모방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그를 증명하듯 마법사들의 전투 지팡이가 뿜어내는 정의의 숨결 역시 용이 내뿜는 숨결과 닮아있었으니 말이다.


아돌 역시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끝에 초고열의 붉은 광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어느새 그의 히펠이 본래의 특성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극적인 변화가 어쩌다 일어나게 되었는지 고민하기 보다는 있는 힘껏 검을 내찔렀다.


평생 갈고 닦아 온 찌르기.

목표로 삼은 것은 절대 놓치지 않는 정밀한 찌르기와 함께 벼락 줄기가 뻗어나갔고.

나무뿔 사슴단의 기사가 죽기 전에 구해낼 수 있었다.


***


"짜증나."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칼리다비스가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한 번에 수만 명의 사람을 먹고 강해진 그라고 해도 디르앤의 백화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어둠을 태운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깃든 불꽃인만큼 커다란 파편에게서 비롯한 제사장들에게는 상극이었다.


물론 테노부스의 히펠인 빛의 검 역시 어둠을 베겠다는 의지가 깃들긴 했지만 고작 인간 수준에서의 의지였다.

다만 디르앤의 히펠은 좀 달랐다.

감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지라고 하기에는 불꽃에 깃든 힘은 강렬했다.


그래서 전투가 시작된 이래 디르앤의 백화만큼은 피했던 것이다.

직전의 공격에서 그가 백화에 입을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디르앤을 죽이려고 했던 것도 결국 그녀의 공격이 가장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는데.


치직


"뜨거워."


결국 백화에 피해는 입을대로 다 입고 디르앤도 죽이지 못했다.


마침 그 실패의 이유가 전장에 내려왔다.


"살아 있었군. 뻔뻔하게도."


드물게도 날 선 테노부스의 인사에 아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추악한 자인지. 죽어나간 백성들의 복수는 커녕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당장 죽어도 상관 없지만.

그래서 죽으려 이 자리를 찾은 것이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

"지금은 죽을 수 없다. 당신이 말한 그 빛이 드리우는 때를 이 두눈으로 봐야겠다."


꺼져가는 불처럼 위태롭기 그지 없던 마음.

마음이 무너져 죽어가던 아돌은 그가 좀 전에 본 빛의 편린에 마음의 불꽃이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거 못해."


아돌의 이야기를 들은 칼리다비스가 조소를 보내왔다.


"왜냐면 여기서 모두 죽을 거거든."


힘을 쓰기 위해 비록 아이가 되었지만 그의 영혼에 각인된 빛에 대한 적의는 그대로였다.


백화에 여기저기 녹아내린 피부의 꼬마 아이.

언뜻 보기만 해도 공포와 혐오감이 차오르는 모습의 칼리다비스가 손끝에 어둠의 힘을 끌어모았다.


공격의 전조에 아돌이 히펠을 다시 끄집어냈다.


"밥이면 밥처럼 있어."


그 모습을 본 칼리다가 다른 손으로 그의 히펠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파직

파지직


아돌의 히펠은 멀쩡히 그의 검 위에 깃들어 있었다.

예상 외의 결과에 칼리다의 눈이 커지긴 했지만 그 히펠이 미미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가 상대하던 기사가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까만 광선과 벼락 줄기가 맞부딪쳤고 칼리다의 예상대로 그의 광선이 벼락 줄기를 뚫어냈다.


"흐읍!"


단 한 걸음에 아돌의 앞에 다다른 칼리다가 주먹을 휘둘렀다.

칼리다의 주먹에 맞춰 아돌의 칼끝이 향했다.


쩌어엉


아돌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카각


날아간 아돌을 따라가 공격을 이어가려던 칼리다를 테노부스가 때맞춰 막아 섰다.

잠시 생긴 틈.

백화가 칼리다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아! 진짜 짜증나네!"


이를 악문 칼리다는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주먹이 가벼워졌군."

"몸놀림도 느려졌어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을 애먹게 하던 까만 눈동자가 원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래도 백화를 억지로 돌파하며 받은 피해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이가 없군. 저게 약해진 거라고?"


칼리다의 공격에 뒤로 날아갔던 아돌이 다시 일어서며 하는 말이었다.

단 한 번의 충돌로 그의 애검이 부러졌다.

히펠을 쓸 수 있기에 몸을 강화시킬 수 있고 그 덕에 그의 팔이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충격의 여파에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칼리다의 공격을 막은 것도 보고 막은 것이 아니었다.

저 꼬마가 발을 내딛는 것을 본 순간 온힘을 다해 그의 얼굴쪽을 향해 검을 찔렀을 뿐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그가 본 꼬마의 공격 경로가 꽤나 단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약해진 거라니.


"내가 막을테니 그 사이에 공격해라."


테노부스 역시 싸우면서 힘을 많이 빼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칼리다비스가 지금껏 그들의 우위에 설 수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를 보는 눈의 도움 때문이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과 압도적인 육체능력이 더해지니 힘을 흘리기도, 반대로 공격을 성공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눈이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육체능력이 압도적이라 해도 그걸 상쇄시킬 정도의 기술과 경험이 그에게는 있었다.


"흡."


숨을 크게 쉰 그가 앞으로 칼리다비스에게 뛰어들었다.


"이게!"


콰아앙


칼리다가 저를 향해 달려오는 테노부스에게 주먹을 내뻗자 테노부스가 옆으로 몸을 틀었다.

광선의 여파가 만들어낸 공기의 흐름까지 이용한 그의 몸이 훌쩍 칼리다에게 가까워졌다.

이를 본 칼리다가 재차 주먹을 내질렀지만 그때마다 일부는 검으로 흘려내고 또 일부는 피하며 칼리다를 붙들어뒀다.


오래지 않아 후끈한 열기가 사방에서 느껴졌다.


화르륵


디르앤의 새하얀 불꽃이 사방에서 칼리다를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백화의 해일이 다가오는 것을 본 칼리다가 다소 무리를 하며 테노부스를 밀어냈다.


스걱


그 틈에 테노부스가 칼리다의 손 하나를 가져갔다.


"이익!"


잘린 손에 신경을 쓸 틈도 없이 칼리다는 유일한 퇴로인 하늘로 튀어 오르려 했으나.


- 저 꼬마가 탈출할 수 있는 곳을 최대한 줄여라.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지.


콰아아아앙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벼락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어떻게 해서든 막겠다는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니었는지 오래 된 고목과 같이 두꺼운 벼락이었다.


"...!"


칼리다가 아돌이 쏘아낸 벼락 줄기를 뚫는 것보다 해일이 도달한 것이 먼저였다.


"끄아아악!"


끔직한 비명과 함께 칼리다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이 죽을 것을 깨달은 칼리다비스는 힘을 더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득

우드득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팔다리가 조금씩 짧아지고 더 통통해졌다.

몸의 크기가 줄어들어 이윽고 아장아장 걸을 정도의 아이의 모습이 되자 동시에 그의 기운이 한 층 더 강력해졌다.


"으아아앙!"


아기가 되어 제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짜증을 부리는 아이처럼 울자.


콰아아아아앙


거센 폭풍과 함께 백화가 흩어져 사라졌다.

폭풍의 여파는 불꽃을 없애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온 일대로 퍼져나갔다.

가장 근처에 있던 세 명의 기사뿐 아니라 레플루앙시와 그녀를 상대하던 마법사들까지 폭풍에 휩쓸릴 정도였다.


폭풍이 멎고 등장한 것은 화상으로 온 몸이 늘어붙은 아기의 모습이었다.

백화를 막긴했지만 타격을 받은 상태.

끔찍한 몰골의 아기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 거야."


힘을 내기 위해 어려지기는 했지만 이걸로도 부족했다.

이를 판단한 것은 이성이 아닌 본능.


"주겨... 버릴 거야!"


한층 더 그의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 안돼!"


새로 등장한 캐롤까지 네 명을 상대하던 레플루앙시가 기겁을 하며 칼리다에게 날아왔다.


우드득


몸이 더 작아지고 이윽고 태아의 모습이 된 칼리다비스.

곂치고 곂친 새까만 어둠이 끈적한 액체처럼 태아의 주변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상을 입었던 태아의 피부는 액체에 닿자 다시금 매끈해졌다.


"안돼! 돌아와 칼리다!"


온몸을 덮던 끈적한 어둠은 이윽고 점점 딱딱하게 굳더니.


으득

으드득


칼리다의 몸을 사정없이 짓누르기 시작했다.


"안돼! 안돼!"


레플루앙시는 칼리다를 덮은 까만 액체를 벗겨내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 없었다.

그렇게 뼈와 살이 으깨지는 소리가 이어지고 남은 것은 하나의 씨앗이었다.


감히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의 정수를 담아놓은 것처럼 새까만 씨앗.


이를 본 레플루앙시의 하나뿐인 눈에 피눈물이 흘렀다.


"모두... 죽여버릴 거야."


그녀는 조심스레 쥔 씨앗을 입으로 가져가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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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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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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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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