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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0,994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2.06 18:32
조회
7
추천
1
글자
11쪽

220. 손을 뻗는 이유

DUMMY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끌어내어 겨우겨우 레플루앙시를 꺾은 별동대원들.

딜람의 성벽 마법으로 레플루앙시를 붙잡은 그들은 숨 고를 틈이 없었다.

이레와 페트라 쪽에도 적이 쳐들어 갔기 때문이다.


이쪽도 레플루앙시가 만든 세상에 갇혀 죽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이레 쪽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도움 안되는 곰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 두 명 뿐이었다.

서둘러 도우러 가지 않으면 자칫 두 사람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서두른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어차피 아저씨가 우리보고 시간만 끌고 있으랬잖아!

- 야! 그 입. 그 입 좀! 그건 비밀이었잖아.


레플루와 칼리다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이레쪽에 간 것도 제사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씨앗이 된 칼리다비스까지 먹은 레플루앙시는 인간 중에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일곱 명을 압도할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세 명의 제사장과도 대등하게 싸우던 파편에 먹힌 페트라도 그녀에게 비교하면 한참 부족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힘의 총량만이 꼭 대원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요소는 아니었다.


정보의 부재.


칼리다를 먹은 레플루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몰라서.

칼리다가 작아지면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다못해 레플루가 칼리다를 무척이나 아낀다는 사실만 알았어도 전투의 방향이 달라졌을 것이다.


꼭 그 뿐만이 아니었다.

칼리다를 먹은 레플루가 주변의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알았다면 얌전히 그녀가 만든 세상에 갇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 저 여자가 내뿜던 기운을 보면 알아도 당했을 것 같긴 하지만.'


하여튼 알고 모르고는 전투에 있어 아주 큰 차이를 만든다.


세상의 일부를 빼앗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통제력은 그 '기만'보다 더 뛰어났던 레플루앙시다.

그런 그녀에게서 대원들이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

딜람이 알았기 때문이다.


기만과의 전투 중.

이레가 펼친 세상에 들어가자 움직임이 수월해졌다는 것을 경험했던 딜람이 성벽 마법으로 제때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을 확보했기 망정이지 그러지 못했다면 별동대원들은 모두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레 쪽으로 향한 제사장이 누구인지 몰라도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무작정 갔다가는 그들이 조금 전에 겪은 일을 또 다시 겪을 수도 있었다.


테노부스는 당장 튀어나가려는 디르앤을 붙든 이후 딜람에게 물었다.


"딜람. 그 속에 있는 제사장. 충분히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이냐?"

"네. 가능할 거 같아요."


손을 들어올릴 힘도 없는 그녀였지만 현재 그녀가 레플루앙시를 가두기 위해 만든 성벽만큼은 유지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레플루앙시가 반항할 힘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능력으로 힘을 많이 소모한 것 같아요."


지금도 핏발이 선 레플루가 성벽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워낙 미약한 것이라 위협도 되지 않았다.

당장 성벽 마법을 풀어도 이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계속 가두고 있는 것은 혹시라도 그녀가 자기 몸을 조각내어 도망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레플루앙시의 상태를 확인한 테노부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성벽 안에 손을 집어 넣어 발광하는 레플루앙시의 멱살을 움켜쥐어 들어올렸다.


"제사장. 허튼 짓 하지 말고 대답해라. 저쪽으로 넘어간 제사장의 능력이 무엇인지."

"컥. 커억... 죽일 거야."

"..."

"죽일 거야아아아!"


그녀의 손에 미약한 어둠이 일렁이더니 날붙이라 부르기도 창피한 형태를 이뤘다.

그녀는 무딘 날을 휘둘러 그대로 제 멱살을 틀어 쥔 테노부스의 손목을 베었다.




굳이 테노부스가 움직이지 않아도 맥없이 튕겨나갈 정도로 별볼일 없는 공격이었다.

이를 본 테노부스는 그대로 여자의 팔 한쪽을 베어냈다.


"끄아아악!"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짐이 아직까지 너를 살려두는 이유는 쓸모가 있어서다."


그에게 있어 지금 눈앞의 여자는 텔제민 병사 수만을 죽인 자였다.

서로 침략전을 벌이며 싸우던 사이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장 그의 옆에 서있는 아돌과 여기사가 보인 변화처럼.

그들 중 몇은 테노부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천금같은 기회를 눈앞의 제사장은 무참히 짓밟은 것이었다.

테노부스는 그녀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입을 열지 않겠다면 말하거라. 곧바로 죽여줄 테니."

"... 거야. 죽여..버릴..."


레플루앙시는 죽이겠다는 말만 되뇌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쯧. 시간을 낭비했군. 바로 움직이겠다."


테노부스는 기절한 레플루앙시를 그대로 마무리 하기 위해 검을 치켜 들었다.

그런 그를 막아선 것은 때마침 등장한 이레였다.


"잠깐. 죽이지 말거라."


갑작스러운 이레의 등장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이레님! 무사하셨군요."

"제사장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페트라! 페트라는요?"


저마다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한순간 소란이 일자 이레가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모두 조용히 하거라. 제사장은 죽었고 난 멀쩡하니 말이다. 그보다 나보다 페트라를 먼저 챙긴 건 디르앤이겠지?"


따악


"아얏!"


이레는 디르앤의 뒤통수까지 때리고 나서야 검을 들고 있는 테노부스에게 걸어갔다.


"검을 내려 놓거라."

"안 됩니다. 이 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을 죽인 자입니다."

"그래서?"

"그러니 살려둘 수 없습니..."


따악


"커억!"


말을 하다 뒷통수를 맞은 테노부스가 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꾸라졌다.


"혹시 테노부스 이 아이가 전투 중에 평정을 잃은 게야?"


이레는 쓰러진 테노부스를 두고 다른 대원들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대원들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있자니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아이들을 이끌라고 보냈더니 네가 흥분하면 어쩌자는 게야."

"...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허망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좀 더 빨리 왔다면. 제가 좀 더 결심이 빨랐다면 살았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얼굴을 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테노부스의 머리 위로 이레의 손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래. 지금 자네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게야."


살리지 못해 슬프고.

늦은 결심에 후회가 되고.

결국 못난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단지 화풀이를 하겠다고 검을 휘둘러서는 안되지 않겠나. 자네의 마음이 분노에 휘둘리게 둬서는 안되는 게야."

"..."

"그리고 애야. 내가 좀 더 서두르지 못해 미안하구나."


테노부스가 느낄 감정을 이레가 모르지 않았다.

살면서 숱하게 경험한 것들이었다.

만약 그녀가 트리아트 셋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녀의 오랜 벗이자 사랑하던 자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연합전에서 죽어나간 그녀의 동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좀 더 서둘렀다면 구할 수 있었을 것을... 네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말았어."


이레의 입장에서 할 말은 있었다.

아군이 될 지 확실치도 않은 자들보다 확실한 아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설령 구하려 한다고 해도 제사장들이 이런 식으로 무차별적으로 병사들을 학살할 것이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런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순수한 열의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지는 경험 말이다.


그녀는 삐걱 거리는 몸을 굽혀 테노부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이야. 네가 이것만큼은 명심하면 좋겠구나. 우리가 뻗는 손이 땅 끝에 닿지 못하는 법이야."


전지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은 인간이 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고작 제 팔이 닿는 영역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숱한 노력을 기울어야 진심을 전할까 말까 한 수준이다.


"하지만 네가 손을 뻗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아돌과 캐롤이 서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 역시 테노부스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비통함에 얼룩진 얼굴이었다.

다만 그들은 테노부스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았다.

테노부스처럼 눈물을 흘릴 자격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돌이 테노부스에게 말했다.


"난... 어리석은 선택을 해 내 수많은 백성을 사지로 밀어 넣은 사람이다."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다가 제사장이란 자들을 부대에 끌어들였고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타협을 했다가 전부를 잃고 말았다.


"나에게 삶을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그럼에도 난 살 생각이다."


그가 칼 끝으로 빚어낸 빛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살라고.

살아서 칼 끝에 담은 빛을 계속 발하라고 말이다.


"네가 나에게 보인 빛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빛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캐롤이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그만 질질 짜고 일어나기나 해라. 앞으로 상대해야할 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은 것 아닌가?"


아돌의 도발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테노부스는 한참이나 눈물을 더 흘렸다.

다만 그가 흘리는 눈물에 마냥 슬픔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


수다쟁이 왕이 울보 왕이 된 후.


"아돌이라고 했지?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이레의 물음에 아돌이 답했다.


"나는... 전 텔제민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곳에 남은 백성들을 지킬 생각입니다."


이레가 최종 결전지를 죽음의 숲 인근으로 잡은 상황이다.

별 다른 일이 없다면 용의 군세는 승리의 벽에서 죽음의 숲까지 쭈욱 밀고 들어올 테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 중 일부가 방향을 틀어 텔제민으로 빠진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괜찮겠는가? 병사를 모두 잃고 돌아가는 이상 면책은 어려워 보이는데."


아무리 유명무실한 왕이라고 해도 왕은 왕이다.

군을 전멸시키고 혼자 살아돌아간다면 아무리 왕자라고 해도 처벌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었다.


"설득해야겠죠."

"그래. 부디 살아남길 바라겠네. 아. 그리고."


이레는 아돌의 손등에 물감을 찍었다.

손등에 닿은 물감이 피부 아래로 스며들어 자리를 잡았다.


"단순한 신호만 가능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신호가 닿는 물감이다."

"이건..."

"이 물감이 빛을 냈을 때. 자네가 무사하고 자네 백성들도 무사하다면."

"도우러 오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아돌은 그녀의 부탁에 쓰게 미소를 지었다.


"별로 안되긴 해도 국왕전하를 호위할 정도의 병력이 있습니다. 정 안 된다면 저 혼자라도 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구나. 꼭 살아남거라."


마지막 인사를 나눈 아돌 앙귀스는 중앙 막사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텔제민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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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7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8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8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7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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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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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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