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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08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2.2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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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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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DUMMY

데셀비아 메레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시작은 유고님과의 만남에서부터 였습니다."


***


잔잔한 바다.

그 위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타고 바다를 가르는 대형선 한 척이 있었다.


커다란 배의 뱃머리에는 꽤나 화려한 선수상이 세워져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흉상은 치렁치렁하게 떨어져 내리는 윤기나는 머리칼 아래로 강직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리부리하니 화려한 인상의 남자의 정체는 다름아닌 대형선 '아르도'의 주인이자, 대형 상단인 '메레오 상단'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데셀비아 메레오.

별볼일 없던 소규모 상단에 불과했던 메레오 상단을 현 위치까지 끌고 온 천재 조선공이 바로 그였다.

자신의 얼굴을 흉상으로 걸어놓을 만큼 자기애가 넘쳐나는 자였고 실제로 이 정도의 거만을 떨어도 될 정도의 남자가 데셀비아였다.


무역 위주로 돌아가는 골락이기에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대형선의 보유 여부가 대형 상단이 될 자격을 나타낼 정도로 중요했다.

하지만 이미 대형선을 보유하고 있는 상단들은 경쟁자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조선술을 공유하지 않고 비밀에 부쳤다.


조각배를 만드는 것과 수십 명의 사람과 수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는 대형선을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대형선을 모방해 만드는 시도도 있었다.

눈대중으로 만들어진 배는 수평선을 넘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침몰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그 덕에 당시 대형선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시장의 눈에 들어 후원을 받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5년에 한 번, 각 도시마다 한 개의 상단을 선정해 지급했기에 일반 상단이 대형 상단이 되는 경우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 하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메레오 가문 출신의 한 청년이 척하니 대형선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다른 상단이 쓰던 배보다 한층 더 빠른 배를 만들어 낸 데셀비아가 유명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셀비아가 속한 메레오 상단은 최초의 무역 이후 빠르게 입지를 늘려가 기어코 대형 상단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고 고작 서른 살을 갓 넘긴 시점에 데셀비아는 아버지로부터 상단을 이어받아 메레오 상단의 주인이 되었다.


다시 지금.

데셀비아 메레오는 아르도 호를 이끌고 요엠가움으로 무역행을 떠나는 중이었다.


"출항 한 이후로 계속 술만 마시고 있지 않아요? 상단주란 사람이 저렇게 놀기나 하고."


아르도 호의 선원 중 젊은 선원이 투덜거리는 소리였다.


"또 저 선수상은 뭐 이리도 요란한지. 저렇게 화려하면 해적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인데 말이야."

"자네 혹시 아르도 호에는 처음인가?"

"... 그런데요?"

"그럼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가만히 입 다물고 있게. 잘못하면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으니."


상단주를 욕하는 선원 옆으로 나이 지긋한 선원이 들러붙어 그를 말렸다.


"뭐야. 욕 좀 했다고 푼돈 만지며 일하는 우리들 일감을 끊어요? 사내 새끼가 저렇게 쪼잔해서야."

"아니 일감이 끊기는 게 아니라 머리가... 에잉. 거참 난 모르네."


나이 지긋한 선원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노인이 떠난 자리에 누군가 다가와 대신 자리를 채웠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옆을 돌아보니 웬 기사 한 명이 서있었다.


아르도에 오른 것은 처음이어도 옆에 서있는 기사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상단주를 호위하는 호위기사였다.

그리고 아무리 눈치가 없는 그라고 해도 지금 호위기사가 화가 나있다는 것은 알았다.


"히끅!"

"상단주님께선 너같은 미천한 것들이 하는 이야기에 상관하지 않으시지만 나는 달라서."


기사는 손에 쥔 기다란 막대기를 휘둘러 선원의 목끝을 겨눴다.

기다란 막대기 끝에는 날선 도가 달려 있었다.

일반적인 창과는 다르게 벨 수 있는 날과 찌를 수 있는 창끝이 함께 달려 있는 장병도였다.


"저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그딴 말을 지껄인 것은 아닐테니... 죽고 싶은 모양이군. 맞나?"


선원은 제 목에 딱 달라붙은 날붙이에 대답은 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서슬이 시퍼런 기세에 선원은 그만 그 자리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기사가 그대로 선원의 목을 참하려 하는 순간.


"그만."


멀찍이 아르도 호의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쟤들이 보기에는 내가 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욕 좀 했다고 머리를 날려버리다가는 여기 선원들 다 죽는다. 너 키 잡는 법도 모르잖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애야. 내가 굉장히 굉장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 얼굴을 선수상으로 내거는 것도.

모두가 열심히 일할 때에 한가로이 갑판 위에 누워 햇빛을 쬐고 있는 것도.


"내가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란다. 알겠지?"


다음부터는 입을 조심하라며 보내주자 젊은 선원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기사는 본보기를 보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지 한숨을 폭 내쉬더니 데셀비아에게 다가갔다.


"상단주님."


선원들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데셀은 손에 든 독한 증류주를 놓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


"어."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저희 앞에 사람이 있습니다."


까맣게 칠한 안경을 쓰고 있던 데셀은 그게 뭐 대수냐며 말했다.


"아직도 메레오 상단을 모르는 해적도 있어? 젤로트 네가 대충 타일러서 쫓아내. 아까처럼 괜히 손에 피 묻히려고 하지 말고."


젤로트라 불린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해적이 아니라 사람이 있습니다."

"... 사람?"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얼굴을 항 흉상이 세워진 뱃머리로 가 망원경을 꺼내들었다.


"진짜 사람이 있네?"


젤로트의 말대로였다.

저 멀리 배의 경로 상에 웬 사람 한 명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수상한데 제가 먼저 가서 처리할까요?"

"그러게 어쩌다 저기서 혼자 저러고 있는 거지?"


바다 한복판, 특히나 지금 메레오 상단이 지나고 있는 이 항로는 노련한 뱃사람도 긴장할 만큼 위험한 항로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나는 바다, 카일라 해의 중심에 위치한 소용돌이 때문이다.


카일라 해 중심에는 멈추지 않는 소용돌이가 있고 이로 인해 카일라 해 일대의 해류 역시 소용돌이가 있는 중심을 향해 흐른다.

항로를 잘못 잡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해류에서 빠져나올 때를 놓치면 그대로 소용돌이에 잡아 먹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카일라 해를 안전하게 지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항해술이 필수다.

그런 전문 인력을 데리고 카일래 해를 지난다는 것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고 십중팔구 무역을 위해서다.

무역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었을 텐데 난파를 당했다고 하기에 남자 주변이 너무 깔끔했다.


"혼자 파도에 떠밀려 왔다고 하기에는 또 너무 상태가 멀쩡하단 말이지."


모종의 이유로 일행에게 버림을 당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상태를 보면 빠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짦은 시간에 데셀비아의 시야에서 벗어날 정도로 빠른 배는 적어도 그가 알기로는 없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혹시 마법산가?"


데셀의 말에 젤로트는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냐며 물었다.


"마법사들은 카밀로테 안에만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여기에 있겠습니까?"

"그야 뭐. 이단일 수도 있고. 하여튼 그건 구해주고 확인하면 될 일이니 우선 구해주자."

"괜찮겠습니까?"


어깨를 으쓱인 데셀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혼잔데 뭐. 여차하면 네가 지켜주겠지."

"저보다 강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독한 술을 병째로 들어 목에 들이부으려던 데셀은 그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푸하하! 너보다 강한 사람이 세상에 뭐 얼마나 있다고 그래? 무려 예비 히펠렌스님께서."

"아직 제가 히펠렌스인건 아니지 않습니까?"

"네가 아니면 누가 또 초월을 통과하겠냐?"


젤로트는 메레오 가문을 섬기는 기사였다.

단순히 돈을 주고 산 용병 그 이상의 관계였다.

젤로트가 기사가 되도록 후원한 것이 바로 데셀비아였기 때문이다.


어느모로 봐도 평범한 그에게 몸을 쓰는 데에 재능이 있었고 그는 서른이 좀 안되는 나이에 상급 기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젤로트를 보고 천재라고 불렀다.


상급 기사가 되어 히펠의 특성이 발현된지도 벌써 일년.

그는 어쩐지 그 너머의 경지로 넘어갈 수 있는 단서를 붙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데셀은 곧바로 요엠가움의 인맥을 이용해 히펠렌스를 뽑는 자리인 초월에 젤로트의 이름을 올렸다.


좀 성급한 것 아니냐는 말에 데셀은 어차피 곧 있으면 연합전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한동안 초월은 없을 거라는 점을 밝혔다.


- 이렇게 이름을 올려놓으면 연합전이 끝나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 바로 초월을 치를 수 있을 거야. 그때쯤이면 뭐 너도 초월자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한 후겠지.


그의 주인은 늘 이런 식이었다.


"초월에서 떨어지기만 해. 바로 내쫒아버릴 테니까. 내 호위기사가 되려면 히펠렌스 정도는 되어야지."


데셀이 으름장을 놓고 있는 사이 아르도 호는 천천히 바다에 빠진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선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남자를 바다에서 끌어냈다.


젊은 선원을 말리던 나이 지긋한 선원이 데셀에게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저기... 상단주님. 말씀하신대로 남자를 구해왔습니다."

"어. 고마워."


홀짝이던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그는 갑판에서 일어나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젤로트가 그의 뒤를 따랐다.


"어디 한 번 얼굴이나 볼까나~. 음흠흠."


남자는 푹 젖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선원들이 덮을 모포를 둘러주었고 몸을 따뜻하게 하라며 싸구려 럼을 건넸다.

데셀이 다가오자 아래로 푹 처박고 있던 사내의 고개가 들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데셀의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몸이 그래서야 제대로 말도 못 할테니 따뜻한 곳에 들어가 몸 좀 녹이면서 이야기 합시다. 젤로트. 이 사람 데리고 내 방으로 먼저 좀 가."

"... 네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누군줄 알고 방에 들이냐며 잔소리를 하려던 젤로트도 곧 순순히 데셀의 말을 따랐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데셀비아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따뜻한 수프와 따뜻한 음료가 들려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죠."

"... 감사합니다."


추위에 발발 떠는 사내를 보며 데셀이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연기가 일품이시네."


데셀이 가져온 음식을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가던 사내의 손이 우뚝 멈췄다.


"물의 기둥을 세우는 자라면 물 때문에 추위를 타지 않을 거 아니에요?"


촤라락


순식간에 수프와 음료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데셀의 목을 겨누었고.


우우웅


수프 옆에 놓여 있던 숟가락은 어느새 히펠에 둘러져 사내의 목에 닿아있었다.


"우리 기사 반응이 괜찮죠?"


사내의 살기에 반응한 젤로트가 숟가락을 뺏어 들었던 것이다.

사내는 제 목에 닿은 히펠에 슬쩍 피가 흐르는 것도 아랑곳 않고 데셀에게 물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우선 두 사람 다 진정 좀 합시다. 젤로트 너도 이분이 누구신지 알잖아. 그 숟가락 내려."


지금까지 느물거리던 말투는 온데간데 없어진 데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유고님. 제 이름은 데셀비아 메레오. 엑살라니스에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일개 상인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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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9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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