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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7.15 18:00
연재수 :
259 회
조회수 :
11,948
추천수 :
697
글자수 :
1,391,524

작성
24.03.10 18:00
조회
11
추천
1
글자
12쪽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DUMMY

날이 밝고 다시 상행에 오른 메레오 상단.


데셀비아는 으레 그렇듯 술병을 손에 쥐고 마차 지붕에 퍼질러져 있었다.

술을 퍼마시며 노래를 흥얼대는 데셀을 보며 신입이 말했다.


"어쩐지 오늘은 좀 더 짜증이 많은 거 같은데 말이죠."


신입이 눈치챘다는 것은 다른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상단주가 평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연차가 좀 되는 선임들이 모두 목소리를 죽여 신입을 조용히 시켰다.


"알면 닥쳐라. 그러다 죽는다."


저희를 죽일 그 기사 새끼가 없는데 상단주가 저희를 어떻게 죽입니까?

신입은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신입이 살아온 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 모두를 합쳐도 이보다 나은 선택이 없을 정도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래. 닥쳐. 죽여버린다."


어느새 상단주가 신입의 뒤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손에는 술, 한 손에는 단도를 들고 있었다.

척하니 신입의 어깨에 팔을 두른 상단주는 신입의 주위로 위협적으로 단도를 휘적이며 말했다.


"야. 내가 요엠가움 최고의 상인이란 거 알고 있지?"

"... 네. 넵!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나를 지키는 호위 기사도 최고여야 하지 않겠어?"

"그... 렇죠?"

"그렇죠? 지금 나한테 되물은 거냐?"

"아닙니다! 맞습니다! 최고여야 합니다."

"그래. 그런데 이 호위 기사란 새끼가 알고 보니 개 허접 잡것이었지 뭐야!"


후웅

후웅


데셀이 휘두르는 단도가 눈 바로 앞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잔뜩 겁먹은 신입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데셀의 말을 따라 할 뿐이었다.


"허접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래! 이 새끼야! 말이 좀 통하네."


어디 호위 기사란 녀석이 떠돌이 기사보다 약하냐며 투덜거리던 데셀은 설렁설렁 뒤를 향해 외쳤다.


"아! 우리 강하신 떠돌이 기사님을 욕하던 것은 아닙니다!"


이트나는 몰래 한숨을 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까지 상단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제야 전날 새벽에 있었던 굉음과 빛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깨달았다.


'대련 중에 떠돌이 기사에게 깨진 젤로트가 간밤에 설욕전을 벌였으나 처참히 깨지고 말았구나.'


그렇다면 지금 상단주가 하는 말도.

상단주 곁에 호위 기사가 없는 것도 모두 이해가 납득이 가는 일이었다.


"그래도 말이야! 기사란 새끼가 그렇게 끈기가 없어서! 겨우 두 번 졌다고! 꼬리를 만 개처럼 도망치다니!"


데셀이 하는 욕지거리가 얼마나 타당한지는 차치하더라도 호위 기사란 자가 대련에서 몇 번 졌다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상행에 나서고 점심 때가 다 되어가는 데도 호위 기사란 자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으니 말이다.


"이 쓸모없는 개새끼 같으니라고. 엉? 그러냐 안 그러냐!"


아무리 단도가 눈앞을 날아다니고 있어도 상급 기사를 욕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것도 그 기사란 자가 피로 어쩌고저쩌고 하는 기사라면 더더욱 말이다.

신입이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거리고 있으니 데셀이 다그치며 다시 물었다.


"그래 안 그래?"

"마... 맞습니다."

"그래! 자 날 따라해라. 젤로트는 꼬리를 만 개새끼다!"

"예... 예?"

"팍 씨! 안 해?"

"아! 아닙니다!"


한층 더 가까워진 단도에 신입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데셀의 말을 따라했다.


"제...젤로트는 꼬리를 만 개. 개새끼다!"

"..."

"..."


어.

음.

싸늘하다.


눈을 뜨기도 전에 신입은 자신이 굉장히 큰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맞닥뜨린 큰 곤경이 목소리를 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어떤 개새끼라고?"


하...

분명 아까까지 없었는데.

사람이 인기척 좀 내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


파들파들 떨리는 눈을 간신히 열고 보니 신입의 눈앞으로 어느새 꼬리를 만 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그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하는 사이 문제의 원인께서 쏙 하고 문제에서 빠져나갔다.


"아니. 이 친구야. 우리 호위기사가 아무리 늦었다고 하지만 개새끼라니... 말이 심하네."


상단주의 뻔뻔한 모습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 했지만 이 중에서 절대적인 약자가 본인임을 절절이 경험하고 있는 신입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그런 말이었다.


"저 자가 한 말을 못 들은 건가? 저 자는 방금 너보고 꼬리를 만 개새끼라 그랬다. 기사는 히펠로 오감을 강화시키는 것을 습관화 하는 것이 좋다."


낯선 목소리임을 제쳐두고도 누가 이렇게 눈치 없는 말을 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그런 발언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낯선 목소리에게 쏠렸다.

시선의 끝에 자리한 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것도 여리여리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검과 천갑을 두른 여인말이다.


"저분은 누구시지?"


데셀의 물음에 젤로트가 여인을 소개하였다.


"이분의 존함은 베루스비숨. 유고님처럼 수련의 길을 걷고 계신 기사십니다."

"베루라 불러라."


듣자하니 프로토케 변방에서 온 기사라고.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이트나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얀 피부는 프로토케에서도 찾기 힘들텐데 꽤나 위에서 오셨나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이 유독 솔의 빛이 들지 않는 곳이다보니. 그러는 그쪽도 나와 같은 나라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그래. 노랗군."

"수련의 길을 나서고 타서 그렇습니다."

"그런가? 난 잘 타지 않는 체질이다."


두 사람은 한창 서로의 피부색을 가지고 질문을 이어갔다.

베루스비숨과 유고, 두 사람 모두 요엠가움이나 텔제민이라고 할 수 없는 피부색을 하고 있으니 기사들의 나라 중에서 남은 것은 프로토케 뿐이다.

그런데 그 마저도 전형적인 프로토케인과는 사뭇 달랐으니 이런 말이 오가는 것이었다.


"그런 자세한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해도 될 거 같으니 잠시 넘어가죠. 그래서 젤로트. 이분과 함께 온 이유가?"


데셀이 잠시 엇나간 화제를 되돌려놓으며 물었다.


"제가 베루님께 이번 여정 동안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가르침을 청했다고? 네가?"

"예. 감사하게도 베루님께서 허락해주셨습니다."


데셀은 갑작스레 끼어든 인물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도대체 뭘 믿고 출신도 불명확한 자를 상행에 동행시키는 것인지.

이 기사의 뭘 안다고 가르침을 청한 것인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이번 상행동안 내 호위를 서야하는 네가 언제 훈련할 짬이 난다고?"

"하루 여정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배울 겁니다."

"밤에는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잠이라도 자나보지?"


이 질문의 속뜻은.

밤에 엑살라니스까지 짐을 옮기는 일은 어쩌고 훈련을 하냐는 말이었으며.


"뭐 제가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호위를 섰다고... 그리고 호위라면 유고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짐 옮기는 일은 나 빼고 둘이서 하라는 말이었다.


"..."


아무래도 삐져도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할 말을 잃은 데셀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베루가 입을 열었다.


"나로 인해 잡음이 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해서 끼어들 용의는 없다. 어디까지나 난 저 기사가 안타까워 제안을 했을 뿐이니."


그녀가 젤로트를 만나게 된 상황은 요약하자면 이랬다.

마을의 유일한 숙소에 빈 방이 없어 야영을 하게 된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소란에 잠에서 깼고.

상황을 파악하고자 현장에 도착하니 웬 기사 두 명이 싸우고 있는 것을 목도했더랬다.


"당장은 약할지 몰라도 가능성이 무한한 기사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베루는 말을 하면서도 은근히 이트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기사에게 왜 그리 박하게 구냐며 질책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트나에게야 할 말이 많았지만 그는 이번 일에 대해서 해명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다행히도 데셀이 이 흐름을 끊어냈다.


"잠깐... 모두 잠깐 조용히 좀."


그의 짜증어린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섭섭하다고 한들 이번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수 년간 함께 한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숨기는 엑살라니스의 주민들?

데셀비아 역시 섭섭하다.

하지만 섭섭함과 별개로 그는 이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합전을 앞두고 있을 마지막 보급.

이번 보급으로 인해 연합전에서 죽을 사람이 살 수도 있다는 그런 책임감 말이다.


외부인을 함부로 끌어들였다가 자칫 일이 꼬이기라도 하면 그 여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상단주로서 베루스비숨님의 동행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데셀은 중요한 이번 여정에 젤로트가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이를 표현할 정신이 없었다.

우선은 이 여자를 상행에서 제외하는 게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베루 역시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지 선선히 물러났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내가..."


이대로 일이 잘 마무리 되는 듯했지만 문제는 그녀가 아니었다.


"아니요. 제가 빠지겠습니다."


젤로트의 말이었다.


"... 뭐라고?"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번 상행에 한해 잠시 호위직을 내려놓고 훈련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


젤로트가 이리도 강하게 제뜻을 주장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항상 데셀의 뜻에 맞춰 움직이던 아이가 이렇게 고집을 부릴 정도면 이트나와의 대련이 퍽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마법사와의 대련에서 그 어느 쪽으로도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으니...'


데셀로서는 상황을 이 지경까지 이끈 이트나가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집으로 젤로트를 붙들어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최소한의 검증은 필요했다.


"젤로트를 호위로 둔 주인으로서 그 스승을 자처하는 자의 실력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자신을 향하는 상단주의 시선에 베루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그 답은 상단주가 아닌 다른 자에게서 나왔다.


"저와 겨뤄 보시죠."


이트나였다.


"그쪽을 이기면 동행을 허락해주는 것인가?"

"아니요. 젤로트씨가 이번 상행에서 제외되는 거죠."

"그래. 알겠다."

"그리고 반대로 제가 이긴다면 그쪽은 두말 없이 여기를 떠나세요. 젤로트씨는 제가 잘 가르칠테니."


서로 합의를 마친 두 사람을 중심으로 또 다시 넓은 무대가 마련되었다.


"염치 없지만 검 좀 빌리겠습니다."


용병단의 단장에게서 검을 빌린 이트나가 히펠을 꺼냈다.

새파란 히펠이었다.


그 맞은편에서 여인 역시 검을 뽑았다.

누가 봐도 평범하기 그지 없는 검이었다.


용병단 단장의 검에 비하면야 한참 달리는 검.


평범한 철검을 뽑았을 뿐인데 여인의 기세가 단번에 뒤바뀌었다.

정갈히 갈무리 된 기세가 이리도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쪽의 실력은 이미 보았다만."


여인, 베루스비숨은 그녀의 기세처럼 더 없이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내게는 무리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루리라는 선언이라고 하기에는 확신에 가득찬 말.

그것은 차라리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서술에 가까웠다.


흔들림 없는 확고한 선언과 함께 그녀의 검 위로 선명한 히펠이 드리웠다.


찬찬히 우윳빛을 띄는 히펠이 솟아났다.


"그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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