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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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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3.0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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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DUMMY

두 기사의 대련은 열화와 같은 환호와 함께 마무리 되었다.

구경꾼들 중 용병을 제외하면 모두 상단의 식솔들이었기에 상단주의 호위기사가 졌다는 사실은 큰 화젯거리로 남아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말이 없던 젤로트는 더욱 말이 없어졌고 한층 더 불편해진 분위기 속에서 상행이 계속되었다.

솔이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막사를 치고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데셀과 함께 막사를 쓰게 된 이트나였다.

원래는 이 막사를 젤로트까지 함께 썼을 테지만 기분이 쳐진 호위 기사는 굳이 주변 경계를 돌겠다며 막사에서 나간 후였다.


"도대체 왜 그러신겁니까?"


데셀비아는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띄지 않아야 할 사람이 굳이굳이 눈에 띌 행동을 한 것도 그렇고.

비록 그 상처가 깊지는 않아도 서로 다칠 정도로 대련을 한 것도 그렇고.

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이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거였다.


"도대체 왜 젤로트의 기를 그렇게 꺾으신 겁니까?"


그러나 데셀의 물음에도 이트나는 묵묵부답이었다.


"저희가 뭘 잘못한 것이라도 있는 겁니까? 말씀을 해주셔야 고치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아무리 이트나가 기만과 싸우는 혁명단원이라고 한들 이런 식으로 이유도 없이 자기 사람을 괴롭히는 걸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답을 듣겠단 생각에 데셀이 재차 묻고 나서야 이트나가 입을 열었다.


"젤로트씨가 최근 히펠렌스가 될 단서를 얻었다고 하셨죠?"


다만 첫마디가 주제와는 상관 없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젤로트와 관련된 질문이니 데셀은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그 단서가 무엇인지 이야기 하던가요?"

"... 아니요.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젤로트가 한 말에 따르면 같은 히펠이라도 자신의 상태에 따라 히펠을 뽑아내기 더 쉬울 때가 있다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더 자신을 갈고 닦으면 다음 경지로, 초월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거 같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어떤 상태인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게 혹시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겁니까?"

"..."

"저기... 이트나님?"


어느새 이트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


'검은색의 기운.'


이트나는 데셀비아에게서 구해진 날, 배 위에서 본 기운이 파편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기운을 봤을 때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은 상단주와 그의 호위기사.


'두 사람 뿐이었으니 둘 중 한 명에게서 흘러나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상단주를 의심했다.

그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그의 그림자가 조금씩 떨렸기 때문이다.

그림자라는 것이 어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상이다보니 파편과 연관이 있는 자가 상단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가 그림자와 관련된 능력을 각성한 시기가 대형선의 도면을 알게 된 시기와 겹친다고 했지.'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이상한 능력을 얻었다.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몰랐던 지식을 얻었다.


현실에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트나에게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혁명단원들에게 마법을 가르쳐준 방법 역시 이런 식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개입은 파편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는 것을 이트나가 옆에서 지켜본 것이 아니니 결국 데셀비아에게 개입한 존재가 전자인지 후자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그가 갑자기 얻은 능력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를 생각하면 그림자 능력은 파편이 아니라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께서 주셨다고 보는 것이 맞다.'


데셀비아가 죽음의 숲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엑살라니스에 들어오게 된 것은 그가 대형선을 완성해 요엠가움으로 첫 번째 상행을 나왔을 때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엑살라니스는 데셀비아에게서 필요한 물품을 지원받고 있었다.


엑살라니스 안에서 어느정도 자급자족이 가능했지만 아무래도 땅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한계가 명확했다.

데셀비아를 통해 들여온 물건들은 엑살라니스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상단주가 아니라면. 남은 것은 한 명.'


데셀비아의 호위기사 젤로트다.


'처음부터 젤로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뭐... 당연한 사실이었지.'


딴에는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티가 좀 나야지 말이야.'


처음에는 독사, 다음에는 혁명단.

무려 두 개의 비밀 조직을 거치며 살아온 그다.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예민하게 관찰하며 살다보니 이제는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데에 꽤나 익숙한 그였다.


젤로트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카논.'


처음에는 몰랐지만 데셀비아와 이야기하다보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데셀이 카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자가 젤로트라는 것이다.


- 저희 둘이서 꽤 좋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우리 눈치없는 호위기사가 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방해만 받지 않았어도 카논님 옆이 이트나님이 아니라 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 카논님의 생일을 맞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옮기는 중에 젤로트가 발을 헛디뎌 저를 덮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넘어지면서 하필 선물이 깨져서... 비싼 반지였는데.


카논님이... 그런데 젤로트가...

카논님을... 그런데 젤로트가...


이야기의 구성이 다 이런 식이었다.

아무리 호위기사라고 해도 상단주와 이렇게까지 붙어다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만약 젤로트가 카논님을 좋아했다면 설명이 된다.'


데셀이 카논님과 이어지지 않도록 훼방을 놓은 것도.

자신을 만나자마자 그렇게 싫은 기색을 내비친 것도.

모두 말이다.


유일하게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 카논님이 이트나님께 마음을 전하도록 젤로트가 용기를 많이 준 모양이더라고요.


젤로트 스스로가 잘 되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이트나를 이어주려고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연적으로 상단주를 삼느냐 아니며 전혀 모르는 사람을 삼느냐. 이것을 따져보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선택은 아니니까.'


자신이 모시는 상단주와 경쟁을 하느니 상관 없는 사람과 경쟁을 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이트나는 누가 파편과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누가 누구를 좋아하네 아니네를 따지는 이유가 있었다.


기사가 상위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이 다루는 히펠의 근간이 되는 의지를 알아내야 한다.

젤로트가 상급 기사가 된지 겨우 일 년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히펠의 근간을 이루는 의지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 젤로트씨는 처음부터 천재였습니까?

- 음... 원래도 재능이 있었지만 실력이 부쩍 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 그건 언제부터입니까?

- 글쎄요... 아마 삼 년쯤 되었나? 정확하게는 모르겠네요.


이트나는 젤로트가 근간으로 두고있는 의지가 어쩌면 자신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카논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굳이 눈에 띄는 짓을 하면서까지 젤로트의 성질을 긁은 것이다.

그게 카논에 대한 사랑때문이든 자신에 대한 분노 때문이든.

자신과 대련을 하게 된다면 그가 히펠을 쓰는 데에 주로 작용하는 의지 역시 자극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감정이 격렬해지면 의지도 덩달아 강해지지만 동시에 통제력은 약해진다.

만약 젤로트가 파편과 연관이 있다면 분명 자신과의 대련 중에 꼬리를 드러내리라.


'하지만 그 역시 실패였지.'


대련 결과 그는 파편의 힘과 비스무리한 그 어떤 기운도 내뿜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는 다시 원점이다.


지금까지의 검증만으로는 사실 확답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중간중간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며 본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완벽히 해내기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되도록이면 죽음의 숲에 도착하기 전에 일을 해결하고 싶었는데...'


만약 기만이 관여했다면, 그래서 기만의 힘을 빌린 자라면 어차피 죽음의 숲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었다.

기만 역시 이를 알테니 죽음의 숲에 들어가기 전에 일을 벌일 것이고 말이다.

이 상태라면 기만이 일을 벌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처를 하는 수동적인 방법 외에는 마땅한 대처가 없었다.


처음 두 사람을 만났을 때 굳이 죽음의 숲에 통과할 자격을 설명한 것도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지만.'


꼭 기만이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하기 한다.

마음 속의 파편이 자라서 그 힘의 일부가 흘러나왔을 가능성도 존재하니까.

이런 경우라면 상단주나 젤로트 두 사람 다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쓴뿌리를 키울만한 동기는 충분했다.


젤로트가 카논을 여전히 좋아하는 것은 명백했고.

상단주도 이제는 다 포기했다고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딱딱 자를 수 있던가?

알게 모르게 곪은 마음이 자랐을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이런 경우라면 기만이 직접 수작질을 부린 것이 아니기에 파편이 등장할 가능성은 더 떨어졌다.


'결국에는 내가 두 사람을 집중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이트나는 이불을 목 언저리까지 바짝 끌어올렸다.


"..."


밖으로 나간 젤로트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 옆에서 시끄럽게 굴던 데셀비아는 어느새 잠에 들어 있었다.


고요함 가운데에 코에 스며드는 공기가 서늘했다.

생각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그의 폐부를 기분 나쁘게 훑고 지나갔다.

문득 그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하... 다들 무사한 건지."


어쩐지 그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날 배에서 본 그 까만 기운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을 위험으로 몰고 갈 것만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


상행에 나서고 사흘 차.

마을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유바르까지의 여정 중에 있는 다섯 개의 마을 중 첫 번째였으며 동시에 죽음의 숲에 인접한 곳에 이르렀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날 저녁 상단은 마을에 도착한 기념으로 술판을 벌였다.


"크아! 좋구만!"


숙소 내 식당에서는 여기저기 만족스러운 감탄사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여기 주인장 솜씨가 제일 좋다니까?"


상단에서 연차가 좀 되는 자였다.

그는 신입으로 들어온 선원을 붙들고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상단이 통째로 숙소를 빌린 터라 그의 행동에 불쾌함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멀찍이 따로 자리를 잡은 젤로트만 살짝 얼굴을 찌푸렸을 뿐이었다.

젤로트는 상단주와 이트나를 양 옆에 두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딸랑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통에 시끄러운 식당 안으로 청명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여긴 꽤나 시끄럽군."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여자였다.

그것도 꽤나 아름다운 여자.


우선 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머리 색도 피부도 요엠가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금발에 하얀 피부를 하고 있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그녀는 떠돌이가 쓸법한 가죽 포대를 둘러 매고 있었다.

그리고 몸에는 가죽을 말려 만든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옆에는 검 한자루를 차고 있었다.


용병이나 떠돌이 기사쯤이나 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바쁘게 술을 나르고 있는 숙소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하룻밤 묵고 싶은데."

"그게 오늘은 다 찼는데 말입죠."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는 주인의 표정에 귀찮음이 어려있었다.

보면 모르냐는 말이었다.

주인을 따라 주변을 살핀 여자는 까딱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바쁜데 실례했군. 그럼."


정체불명의 여자가 나가자 시끌벅적한 술판이 재개되었다.


***


한바탕 술을 마시고 모두가 잠든 밤.

데셀비아와 젤로트 그리고 이트나, 세 사람은 각자 물건을 들고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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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1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8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10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9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8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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