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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10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2.19 21:31
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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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22. 기억 넷

DUMMY

과거 인류의 배신자라 낙인 찍힌 트리아트 셋.

실상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용을 죽였던 마법사.

용과 함께 목숨을 잃고 무덤에 묻힌 셋이 다시 살아났고 동시에 그의 몸에서 무지개가 터져나왔다.


"단 한 번도. 너를 떠난 적 없어."


우우우웅


그에게서 뻗어나온 무지개 빛이 눈이 부시게 그녀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니... 돌아와."


말을 하고 있는 건 듀시아였지만 어째서인지 기억에 불과한 트리아트 셋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돌아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듀시아가 힘없이 쓰러졌다.

여러 번의 공간이동으로 지친 것이다.

한두 번 쓰기에도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데 쉬지도 않고 수백 번을 남발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그가 데려다 준 '과거'에서 뻗어나온 무지개는 여전히 선명히 넷에게 닿아있었다.


넷이 살아온 삶의 기억들.

아픔과 슬픔으로만 가득하다고 믿었던 과거였는데 지금와서 다시 보니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다.

몰랐을 때도 힘겨웠던 과거가 알고보니 더한 악의로 가득했다는 것도 알았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원래라면 꺾여도 진작 꺾였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또한.


고통뿐이라 생각한 과거의 순간들 속에 한 줄기씩 무지개가 걸려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우웅


진동하는 무지개는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너를 지키고 있었어.'


넷을 낳은 그녀의 부모가.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했을 넷을 살린 치안군이.

암습으로 위기에 처한 넷을 구한 노인이.

혼자인 그녀에게 친구를 만들어준 교수가.

그녀에게 다가와준 친구가.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녀를 보호했던 사람들이 그녀를 보호할 수 있도록 무지개를 보낸 자, 트리아트 셋.

그가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 그래서 뭐."


넷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몸을 덮고 있는 무지개를 뜯어냈다.

무지개 몇 줄기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트리아트 셋이든.

그에게서 뻗어나온 무지개든.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이거였다.


"당신이 나를 지금까지 지켰다고? 왜 그랬는데? 결국 그것도 다 내게 바라는 게 있어서 그런 거였잖아!"


내 몸을 차지하고 약해진 기만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면.

그래서 지킨 것이라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대한 건데.


"당신이 구해준 목숨이니 얌전히 내놓아라 뭐 이런거야?"


왜 기대하게 만든 건데.


"이럴 거면 날 구하지 말지 그랬어.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죽게 두지 그랬어."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아프지 않았을 텐데.


넷은 희뿌옇게 번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손을 옴짝 쥐어도 보았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그래. 참 나쁜 녀석이네."


그녀의 뒤로 손길이 느껴졌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를 낼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차라리 기대하지마.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하는 거야."


손길은 은근히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 줄게. 거기라면 실망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이렇게 눈물 흘릴 일도 없을 거야."


... 응.

차라리 혼자가 나을 거 같아.


기만의 손이 이끄는 대로 넷이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넷은 쓰러진 듀시아도 두고 이대로 떠나려 했지만.


우우우웅


그녀에게 닿아있는 무지개가 그녀를 붙들었다.


"그런 건 이제 그만 떨쳐내 버려."


기만의 말에 따라 그녀를 붙드는 무지개 줄기 중 하나를 잡아 뜯어냈다.

무지개는 의외로 너무나 쉽게 떨어져 나갔다.

넷은 몸을 비틀어 아직 몸에 남아있는 무지개를 마저 다 뜯어냈다.



투둑


"그렇지. 잘했어."


이제 됐어.

다 끝난 거야.

기만의 속삭임에 이끌려 발걸음을 내딛던 넷은 그녀를 당기는 미약한 저항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다 뜯어 냈다고 생각했던 무지개 중 한 줄기가 아직 남아있었다.


"이건..."


듀시아가 데려다 준 '과거' 중 마지막으로 봤던 기억이었다.

다시 살아난 트리아트 셋, 그에게서 터져나온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그녀를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지개는 넷이 가장 먼저 뜯었던 무지개였다.


"..."


잠시 저를 붙드는 무지개를 지켜본 넷은 다시금 손을 털어 무지개를 털어냈다.

확실히 떨어져 나간 것을 확인한 넷이 다시 기만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우우웅


어느새 무지개는 다시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저기... 이게 계속 안 떨어지는데?"


결국 넷은 저를 끌고 가고 있는 기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것 좀 끊어줄래?"

"... 그냥 무시하고 가자. 내가 데려다 주는 곳에 가면 자연스레 끊어질 거야."

"그치만."


기만의 말대로 무시하려고 해도 그녀를 붙들고 있는 마지막 무지개가 붙드는 힘 때문에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랑 가기 싫어? 혹시 미련이 남은 거야?"

"아니! 나도 가고 싶은데 이것 때문에 못 가겠다고."

"그럼 끊어내!"

"나도 끊고 싶어! 그런데 안된다니까!"


짜증이 난 넷이 바락 소리를 지르며 무지개를 쭈욱 잡아당겼지만 끊어내기는 커녕 되려 무지개가 흘러나오는 쪽으로 끌려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엎어진 그녀는 저를 붙들고 있는 빛줄기를 보았다.

처음에는 그녀 손가락 정도의 두께에 불과했던 무지개였는데 지금은 어느새 그녀의 팔뚝만큼 두꺼워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만이 넷에게 말했다.


"넷. 당장 이리로 와."

"아니 그게 아니라."


우우웅


그 사이에 무지개 줄기는 더 두꺼워졌다.


"도대체 왜? 필요에 따라 너를 쓰다가 실패하니까 바로 너를 버려 버린 잔인한 자야."

"내가 원해서 이러는 게..."

"아니면 당장 오라고!"


콰아아아아앙


갑작스레 화를 내는 기만의 몸에서 새까만 어둠이 터져나왔다.

기만이 쏟아내는 어둠은 언제나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짙고 끈적했지만 지금 쏟아내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카가가가각


기만의 몸에서 비롯한 어둠은 이윽고 주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배경을 이루던 기억이 사라져갔고 그 자리에 암흑이 대신 들어찼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막대한 기운이 만들어낸 참혹한 광경 앞에서 넷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만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혁명단원들이 느꼈을 감정이 이러했을까?


닿기만 하면 그게 무엇이든 집어 삼키고, 부수고, 찢어발겨 결국 먼지로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어둠이 넷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었다.


주변을 모조리 집어삼킨 힘이 이번에는 넷을 덮쳐왔다.

커다란 힘의 파도 앞에 서있자니 넷은 자신이 저기 작은 먼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할 생각도 못하고 제자리에 굳은 넷은 이내 기만이 쏟아 낸 어둠에 휩쓸렸다.


'뭐야. 이대로 죽는... 건가?'


그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아프지 않네.'


주변의 풍경이 하도 살벌하게 깎여 나가기에 엄청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프지 않았다.


'아니... 하나도. 안 아픈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눈을 슬쩍 떠보니 그녀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무지개가 좀 더, 아니 좀 많이 두꺼워져 있었다.

우뚝 솟아 오른 무지개는 망망대해와 같은 어둠에 잠기지 않고 튀어나와 있었다.

더 이상 줄기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넓어진 무지개는 차라리 섬이라고 불러야 했다.


넷은 그 섬 위에 서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신을 잃은 듀시아 역시 무지개 위에 있었다.


콰아아아앙


높이 솟은 어둠이 다시 한 번 섬을 거칠게 뒤덮었지만 섬에서 뻗어나온 줄기에 묶여있는 넷은 휩쓸려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부술 것만 같았던 어둠은 의외로 무지개 위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넷."


그녀를 부른 것은 그 사이에 정신을 차린 듀시아였다.


"돌아왔구나."

"... 돌아왔다니. 그런 적 없어."


무지개가 멋대로 붙들고 있어서 못 간 거지.

결코 돌아가겠다 마음 먹은 적은 없었다.


"쑥스러워 하는 모습도 귀엽네."

"아 진짜! 아니라고. 난 이 무지개가 진짜 싫어."

"그럼 왜 그렇게 꼭 붙잡고 있는 건데?"

"..."


뭘까?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혹시 아까 내가 한 말이 잘 안들렸나?

아까 기만도 그렇고 듀시아도 그렇고.


"이건! 내가 붙들고 있던 게 아니라."

"네가 잡은 거야. 왜냐하면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께서는 우리가 손을 잡을 수 있게 언제든 손을 뻗고 계시지만 결국 잡는 것은 우리거든."


그의 말을 들은 넷이 귀를 빨갛게 물들였다.


혹시나.

그러니까 정말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그녀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시작은 듀시아였다.


듀시아 얘는 왜 남들 다 떠났을 때에 이곳에 남아서 나를 찾고 있나.

그것도 있는 힘 없는 힘 끌어다 쓰면서.

그 강한 기만을 상대하면서.

상처 투성이가 되면서.

그토록 나를 찾고 있나?


어쩌면 듀시아의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니지 않을까?


다음은 듀시아가 보여준 기억들.

정확히 말하면 그 기억들에서 찾을 수 있던 무지개 줄기들이었다.


수백 줄기의 무지개가 이어지도록 사람들을 보내고 또 보내고.

그렇게 애를 쓰며 나를 지킨 것은 단순히 버림패로 쓰기 위해서만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그런 생각들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결단코 혹시 모르니 잠깐 '무지개씨'의 이야기 좀 들어볼까 하는 마음을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아니.

솔직히 말해서 조금 하기는 했던 것도 같다.


'나를 조금이라도 아낀다면 내 손을 붙들어주면 안될까요?'


생각해보면 무지개가 다시 들러 붙었던 것도 이 생각을 하고 난 이후였던 것 같다.


잠시 뜸을 들이던 듀시아가 입을 열었다.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많이 힘들었어."


사랑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다른 존재에게 먹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드는 불안과 두려움에 듀시아는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아마 이보다 더 힘든 순간이 오면 어쩌면 난 마음이 꺾여 너를 떠날 지도 몰라."

"... 뭐라고?"

"하지만. 트리아트 셋님은 달라."


어떤 순간에도.

그 어떤 어려움에도.


"네가 이분을 찾는 한, 이분 역시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지금처럼 말이야."


주변에서 덮쳐오는 어둠에도 자신이 꼿꼿이 서있다는 것을 깨달은 넷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자라났다.


'아마도 이 쓸데 없이 화려하고 난리인 무지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아끼고 있는 것 같아.'


그녀가 이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던 다른 줄기들이 그녀의 주위를 휘돌며 그녀 곁에 머물기 시작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그 중 한 줄기가 그녀의 귓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넷이 태어난 과거에서 흘러나온 무지개였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껏 들리지 않던 무엇인가가 그녀의 귀에 들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태어난 날의 무지개는 잔잔히 읊조리듯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다른 무지개들이 합세해 점점 더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빛무리가 부르는 노래는 사랑의 고백이었다.

기쁨의 환호였으며.

즐거움으로 가득한 축제였다.


넷이 딛고 서있던 무지개의 섬은 자라고 또 자라더니 어느새 우주가 되어있었다.

그녀의 세상이 된 무지개의 빛무리 안에는 한 톨의 어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듀시아."


넷은 아직까지 엎어져 있는 듀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나가자."

"... 응!"


***


잠에 빠진 것처럼 미동도 않던 넷의 몸에서 큰 빛이 터져나왔다.

환하게 터져나오는 빛과 함께 넷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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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1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 222. 기억 넷 24.02.19 10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9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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