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0,998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1.24 17:59
조회
7
추천
1
글자
12쪽

213. 함정

DUMMY


타닥


모닥불 속 바짝 마른 가지가 몸을 비틀며 내는 소리였다.

필사적으로 불똥을 흩뿌리는 것이 밤을 걷어내려 퍽 열심이었다.


"뭘 그리 애를 쓰는 게냐."


이제는 쉬어도 될 거 같은데.

저 스스로를 더 불태운다고 더 밝아지는 것도 아닌데.

이미 장작에 옮겨붙은 불이 환한데도 마른 가지는 도무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마는..."


마지막까지 제 몸을 불태우는 마른 가지를 보며 이레가 떠올린 것은 우습게도 오르디나 이레 본인이었다.


햇수로 치면 일백년 하고도 스무해 조금 못되는 시간.

그 긴 시간을 그녀는 참 열심히도 달려왔다.

파편에게 몸이 먹힌 그녀의 친구도 하는 결혼을 그녀는 하지 않아서 남들 다 있는 자식도 없었다.


기만과 절망 두 파편이 짜놓은 이 거대한 연극 무대를 끝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녀는 정말이지 제 몸을 불태우며 살았다.


아직까지도 그녀 마음 속의 불꽃은 남 못지 않게 뜨거웠지만 문제라 한다면 이제는 시간이 흘러도 너무 많이 흘렀다는 점이다.

카밀로테에서 백살을 넘기는 사람을 보는 것이 드문데 그보다 스무해 가까이를 더 살았으니 말이다.

그나마 여태 그녀가 다른 이들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마법을 다루며 덩달아 강인해진 육체 덕이었지만 이제 그조차도 한계였다.


그 증거로 그녀의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 거리며 말을 도통 듣지 않았다.

지금도 페트라를 차지한 파편과 조금 싸웠다고 잘린 다리는 욱신거리고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기만을 상대한다고 펼쳤던 물감으로 된 세상이 기만에 의해 대번에 찢겨 사라진 이후로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에휴... 어디 조용한 곳에서 차나 마시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데 말이야."


어째 신경써야 할 꼬마들이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겨우 겨우 율레와 이트나 그 천방지축 꼬마 녀석들을 사람 답게 만들어놨더니 난이도가 훌쩍 뛰어 넷을 비롯한 4인방을 챙겨야 하지.

하다하다 이제는 크기는 다 컸는데 정신 머리는 아직도 꼬마에 머물러 있는 페트라가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거기에 영원히 꼬마로 살다가 죽으려는지 통 철이 들지 않는 녀석도 있었다.


"... 나 원 참."


역대 꼬마들을 헤아리고 있자니 진짜배기 꼬마가 떠오르는 것이.


"진짜 갈 때가 된 건가..."


오르디나 이센 부대장.

하는 짓이 영 불안해 눈에서 한시도 떼어놓지 않으려 그녀 바로 아래인 부대장 자리에 세워둔 꼬마 중에 꼬마.

지금 그 꼬마가 퍽 보고 싶은 것을 보니 정말 죽을 때가 가까워진 게 아닌가 싶은 이레였다.


저벅


모닥불을 보며 이어지던 상념을 깨뜨린 것은 누군가 낸 걸음 소리였다.


"혼자 좋은 시간 보내는데 미안합니다만.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구부정한 어깨.

두꺼운 안경.

왜소한 체격의 중년 사내.

에텔크리시였다.


"이 야밤에 그것도 사람이 통 지나다니지 않는 숲 속에 어쩌다 들어온 것인지... 길을 잃은 게야?"

"아하하. 그냥 좀 찾는 사람이 있어서."

"호오... 꽤나 중요한 사람인가 보구나."

"뭐 그런 셈이죠."

"그런데 여태 찾지 못한 것이야? 저런 딱하기는."


이레는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다리가 없다보니 일어나는 것이 더뎠다.


"아이고야. 나이도 나이지만 다리가 없으니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단 말이야."

"어쩌다 그리 되신 겁니까?"

"있다. 아주 고약한 녀석이 내 다리를 가져갔어."

"저런 누구인지는 몰라도..."


찰팍


난데 없이 들리는 물 튀는 소리에 한눈 팔던 에텔은 반사적으로 노인을 찾았지만 그녀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져있었다.


"!"


동시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에텔은 다급히 앞으로 몸을 굴렸다.




간신히 치명상은 피했지만 등이 따끔거리는 것이 살짝 베인 모양이었다.


"아야야. 이거 꽤 아픈데?"


그가 조금 전까지 있던 곳에 나타난 이레는 언제 만들어 낸 것인지 주변으로 물줄기를 두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팡이 끝에는 날카로운 날 모양의 물이.

비어있던 다리에는 물로 이뤄진 다리가 생겨있었다.


"흠. 생긴 것과 다르게 몸을 놀리는 데에 영 젬병은 아니구나."

"그쪽이야 말로 다리가 없다더니 꽤나 근사한 다리를 가지고 있네."

"끌끌. 왜 탐이라도 나는 게야?"


찰팍


물로 된 다리를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녀의 몸이 땅으로 꺼졌다.

사라진 그녀가 재차 나타난 곳은 에텔의 등 뒤였다.

다만 이번에는 사방에서 뻗은 물줄기가 그의 몸을 꿰뚫으려 했다.


"성질 참 급하네. 싸우려고 온 거긴 한데."


콰직

콰지직


그가 방어막처럼 펼친 히펠이 물줄기를 상쇄시켰다.

연속해서 공격이 들어오기 전에 에텔이 역으로 공격을 가하며 이레와의 거리를 벌렸다.


"잠깐.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렇게 공격하는 거지? 우리 초면 아닌가?"

"그걸 꼭 들어야 알겠느냐. 적이겠지. 방금 그 힘을 보니 아무래도 제사장인 것 같고."

"호오... 어떻게 알았지?"


이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주변으로 설치한 함정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오려면 이미 이야기를 해둔 아군이거나. 아군이 아니라면 상당한 실력자여야 한다."


그런데 척봐도 아군이 아니거니와.


"페트라 그 꼬마가 말해준 특징과 일치하더구나. 이름이... 에텔크리시랬나?"

"내가 만날 때쯤에는 반쯤 미쳐날뛰던 상태라 얼굴을 기억 못할 줄 알았는데 또 그런 것도 아닌가 보네.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야. 하하하."


에텔크리시가 웃으며 감춰뒀던 힘을 뽑아냈다.

넘실거리는 황금색의 히펠.


"이 히펠의 원래 주인이 물욕이 상당했던 모양이야. 자신이 모은 재물에 따라 강해지는 히펠이라니."


히펠을 사용하는 사람이 가지는 의지에 따라 그 특성 역시 천차만별인 것이 히펠이다.

간혹 이런 식으로 특성이 전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에텔이 사용하고 있는 히펠의 주인은 다름아닌 아우레우스 시장이었다.


상인들의 나라라 불리는 골락.

그 골락을 이루는 다섯 개의 도시.

아우레우스는 무려 한 도시의 시장을 맡고 있는만큼 축적한 부가 엄청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히펠의 양으로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던 이유는 그녀가 쌓은 부와 그녀의 히펠이 갖는 특성이 맞물려서 이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야. 탐욕으로 따지면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다른 이의 모든 것을 빼앗는 자.

타인의 육체에 관한 제어는 물론 심지어 다른 이의 히펠까지 빼앗는 자.


당장 그는 골락의 다섯 도시 중 가장 부유한 도시의 시장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가 태어난 비르무트에도 어마어마한 재물을 쌓아두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웅


막대한 양의 금화가 쏟아지듯 황금색의 히펠이 순식간에 불어나 일대의 공간을 점거했다.


기세의 변화를 눈치챈 이레는 서둘러 페트라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연결되는 물감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끄그그극


불어난 히펠은 그 아래에 깔린 것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레는 물줄기를 쏘아내 자신과 그 아래 물감으로 된 통로까지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보자. 노란색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별동대원들이 몸을 빼낼 때 쓸 통로는 에텔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 어떻게 알고 있는 게야?"


적이 별동대의 작전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은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대원들이 자리를 비운 때를 맞춰 습격한 것도.

탈출용 물감의 색이 노란색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레가 궁금한 것은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였다.


한바탕 힘을 써 숲의 일대를 엉망으로 만든 에텔은 빙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레의 근처에서 꼬물거리며 조약돌 크기의 덩어리가 날아왔다.


"우리 아가씨가 여기서 다 듣고 있었거든."

"... 아가씨라면 그 빼빼 마른 여자를 말하는가 보구나."

"그래. 워낙 걱정이 많은 아가씨라 만일에 대비해 제 몸을 쪼개 놓거든."


그걸로 주위 정보도 수집하고 여차하면 도망치기도 하고.


"혹시 여기로 숨어들 때 내 물감을 통해서 들어온 게야?"

"정답!"


별동대의 사정을 파악해두고 가장 적절한 때에 기습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저기서 내 동료들이 그쪽 부하들을 상대하는 동안 난 여기서 약해진 페트라라는 녀석을 죽이고 덩달아 그쪽... 혁명단의 수장이라지? 그쪽까지 죽이는 거지."


약해진 사람 둘을 죽이고 다시 레플루가 있는 쪽으로 합류해 가세한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자. 말해주고 싶은 건 다 말했으니 이제 싸우자고."

"... 아주 음흉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구만."


황금색의 히펠이 날뛰며 이레를 향해 날아들었다.


***


한편 텔제민의 본대.


주변에 자리잡고 있던 수천 개의 막사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진지 오래였다.


혼자 6만 명정도 잡아먹은 칼리다는 테노부스와 디르앤이 상대하고 있었다.

이미 힘을 많이 소모한 테노부스였지만 디르앤의 히펠인 정화의 불꽃이 어둠을 상대로 꽤나 강했기에 그나마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화르륵


새하얀 불길이 칼리다를 향해 뻗어갔다.


"진짜 짜증나는 불이지만... 피하면 그만이라니까?"


본인의 육체의 능력도 엄청난데 거기에 레플루앙시가 준 미래를 보는 눈까지 있으니 디르앤의 공격은 좀처럼 칼리다에게 닿지 못했다.


칼리다가 백화를 피해 디르앤에게 파고 들었지만 그 자리에는 이미 테노부스의 검격이 날아오고 있었다.

예측에 가까운 공격.

디르앤이 넓은 범위의 공격으로 경로를 제한하면 칼리다가 파고들 곳을 테노부스가 맡는 식이었다.


"이것도 안 통한다니까!"


물론 이 정도의 공격은 눈의 능력을 빌릴 필요도 없이 칼리다 본인의 육체 능력만으로도 가뿐히 피할 수 있었다.


"하아아압! 필살 발차기!"


테노부스의 검격을 피한 칼리다는 발에 모인 어둠의 기운을 뿜어냈다.

그러나 이 또한 예상했다는 듯이 까만 힘이 향하는 곳으로 백화가 모여들었다.

잠시 힘 겨루기가 이뤄지나 싶었지만 결국 그 결과는 무승부.


"이대로는 안되는 데요."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현재로는 마땅한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렇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저 칼리다비스라는 제사장의 움직임이 단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두 사람은 진작 무너졌을 것이다.


"옵니다!"


힘 싸움에서 동수를 이룬 것이 영 짜증이 났는지 칼리다가 입술을 빼쭉 내밀더니 디르앤을 향해 직진하였다.

이번에도 백화를 둘러 칼리다를 막으려 했지만.


"흐아아아아!"


칼리다는 그녀의 히펠을 피하는 대신 몸으로 뚫고 그대로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

"죽어! 이 짜증나는 아줌마야!"


생각 외의 행동에 테노부스의 반응이 늦었고 몸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결국 디르앤의 코앞까지 다다른 칼리다는 주먹에 뭉친 새까만 힘을 쏘아냈다.


"큭."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격이 그녀를 덮치는 순간이었다.


번쩍


빛이 일어남과 동시에 짜릿한 기운이 디르앤을 밀어냈다.

그 덕에 디르앤은 칼리다의 공격에서 피할 수 있었다.


콰릉


한발 늦게 천둥이 울었다.


"... 당신은."


벼락으로 디르앤을 위기에서 구한 이는 다름 아닌 텔제민의 첫 번째 검.

아돌 앙귀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24.01.09 32 0 -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7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8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