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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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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5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2.2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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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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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DUMMY

- 펜던트 속 사내는 누굽니까?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이따금씩 그림을 꺼내서 한참동안 보시지 않습니까?

- 어머나. 그걸 봤어요?

- 혹시 비밀이었습니까?

- 아뇨. 뭐 그런건 아닌데...


말끝을 늘이며 얼굴을 붉히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줄곧 품고 있던 마음을 덮기로 했다.

연심이 허무하게 흩날렸다.


***


- 펜던트 속 사내는 누굽니까?

- 어머... 조심한다고 했는데 진짜 세상 사람들 다 봤나봐요.

- 저 말고 또 누가 물었습니까? 혹시 아까 전에...

- 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은 무슨 친형제 같아요. 하는 행동이 비슷한 것도 그렇고.

- ...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림 속 사내를 좋아하시는 겁니까?

- 치. 그렇게 캐묻는 건 실례에요.


혀를 빼꼼 내밀면서도 여자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는 것을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짓는 표정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당장이라도 펜던트 속 그림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


상단주가 머무는 방.

데셀비아와 젤로트가 한 쪽에 앉아있고 그 맞은편에는 유고가 앉아있었다.


유고, 그러니까 이트나 학교장은 기만에게서 막 도망친 상태였다.

그런데 도망치자마자 만난 사람들이 마침 엑살라니스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란다.


'조카님이 재현한 다인 공간 이동 마법은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듀시아는 그럴 능력이 되지 않지만 기만이라면 또 모른다.

공간 이동이 재현되는 과정에서 기만이 간섭한다면 그의 위치를 조종한다는 것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 한복판에 떨어진 자신에게 마침 꼭 필요한 사람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그저 행운이라고 봐야하는지.

혹은 기만의 함정이라고 봐야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물론 공간 이동 마법에 간섭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공간 이동 마법에 간섭할 시간이 있었다면 애초에 혁명단원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마법을 취소시키면 시켰지 굳이 함정을 파는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 일이 순전히 우연이라는 건데 어째서 지금 저 남자의 주변에는...'


생각이 이어지는 중에 한바탕 어질러졌던 방을 정리한 데셀이 입을 열었다.


"카논님께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유고님께서 카밀로테의 아이들을 구하는 일을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한 번 뵙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군요."

"유고라는 이름은 제게 너무 부담스러운 이름이라서요. 이트나라고 불러주시겠습니까?"


이트나의 반응이 예상 외였는지 잠시 멈칫한 데셀이 멋쩍게 웃었다.


"아하하. 알겠습니다. 이트나님."

"그나저나 저를 어떻게 알아 보신 걸까요? 제 얼굴이 알려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 그게 말이죠..."


쉽사리 답을 못하는 상대방을 보며 이트나는 품에서 외알안경을 꺼내들었다.

바닷물에 흠뻑 젖어있던 옷은 물론 갖가지 물건들은 이트나에 의해 순식간에 말라있었다.

물자국이 남은 안경을 대충 문질러 닦은 그는 안경을 썼다.


안경 자체는 쓰나마나 한 별 의미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경을 꺼낸다고 품을 한 번 훑음으로 그는 자신이 현재 쓸 수 있는 도구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은 별 게 없다는 것이었다.


기만과의 싸움에서 지팡이는 떨어트렸고, 품에 있던 여러 약이나 도구들도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멀쩡한 건 스코아마 하나 뿐이었다.


"크흠."


이트나는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젤로트라는 호위기사가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이쪽 손에 구해졌으면 감사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판에 지금 이트나는 명백히 이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옷에서 물기를 빼낼 때에도, 안경을 꺼내 쓸 때에도 이트나는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빈틈은 커녕 되려 몸 주변으로 은은하게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언제든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트나의 이런 행동이 영 마뜩잖았다.


"생색을 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 정도는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날선 말에 데셀이 펄쩍 뛰며 젤로트를 돌아봤다.


"쓰읍. 도대체 아까부터 왜 그래?"

"... 다짜고짜 상단주님의 목에 마법을 겨눈 잡니다."

"그야 우리들이 누구인지 모르셨으니 그렇지."

"그러면 반대로 묻겠습니다. 이제는 저희가 누구인지 잘 아실텐데 어째서 계속 그렇게 날선 기운을 흘리고 계시는 겁니까? 이.트.나.님?"

"어허. 다 사정이 있으시겠지. 우선 자초지정을 듣는 게 우선이니 좀 진정해라. 이것아."


데셀의 호통에 젤로트는 마지못해 손에 든 장병도를 내려놓았다.


"저희 기사가 무기를 내려놨으니 이트나님도 이제 경계를 푸시죠. 저희 모두 같은 것을 바라고 파편과 싸우는 자들 아닙니까?"


이렇게까지 나오니 이트나도 계속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기가 어려웠다.


"... 사과하죠. 미안합니다. 직전에 그리 좋지 못한 일을 겪어서요."

"네.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찹니다. 카밀로테 안에 계셔야 할 분이 어쩌다 이곳 카일라 해 한복판에 떨어져 계신건지 말입니다."


이트나는 짤막하게 바다에 빠지기 전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옛말의 아이가 기만에게 몸을 빼앗긴 것.

혁명단원들은 기만에게 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는 것.

다만 뿔뿔이 흩어져 현재 다른 이들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


그의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은 충격에 빠진 모양이었다.

상단주라는 직책에 걸맞게 데셀은 충격에 빠진 중에도 이번 일의 여파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엑살라니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만이 옛말의 아이의 몸을 빼앗았다면 죽음의 숲을 통과할 수도 있는 겁니까?"


만약 통과할 수 있다면 엑살라니스는 기만이 가장 먼저 없앨 곳이었다.


"흐음..."


데셀의 질문에 고민하는 척을 하며 이트나는 두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트나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이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하는 일이 엑살라니스에 보급품을 옮기는 일이라고 하니 엑살라니스의 주민들과 연이 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둘의 얼굴에 근심이 스쳐가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좀 대답을 해보십쇼! 엑살라니스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래.

우선 젤로트.

상단주의 호위기사.


그는 왜 화를 내고 있는 걸까?


이트나는 두 사람의 궁금증을 바로 해소시켜 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이야기를 빙빙 돌렸다.


"두 분은 죽음의 숲이 외부의 침입을 막는 원리가 무엇이지 아시나요?"

"어떻게 되었냐니까 지금 그게 무슨 한가로운 말입니까?"


역시나 젤로트는 곧바로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데셀은 과연 노련한 상인이라고 할지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데셀이 답했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마법의 공격을 당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허락한 것은 그 사람의 육체일까요? 아니면 영혼일까요?"

"... 영혼인가 보군요."

"네.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둘 다지만요."


요컨대 넷의 몸을 차지했다고 해도 기만의 영혼이 그 육체 안에 있는 이상 기만이 죽음의 숲에 들어올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엑살라니스는 안전하다는 말이군요."

"... 네. 엑살라니스는 무사합니다."


조금 더 떠보고 싶었지만 무작정 이야기를 끈다면 저들도 눈치를 챌 것이기에 이트나는 이쯤하기로 했다.


"그럼 저희 역시 저희의 임무를 완수 할 수 있겠군요."

"보급품을 나른다고 하셨죠? 비밀리에 진행될 거 같은데 두 분의 힘으로만 하시는 겁니까?"


데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야 해서 다른 사람을 쓰지도, 마차를 끌 수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보급품을 몰래 빼내는 방법이라는 건 별 게 없단다.

그저 열심히 두 발로 옮기는 것.


"아시다시피 카일라 해 중심에 위치한 소용돌이로 요엠가움까지의 항로는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러 항로를 길게 잡는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쪽이 시간도 돈도 덜 들기 때문이다.


카일라 해의 해류는 요엠가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렇기에 해류를 무시하고 요엠가움까지 최단거리로 가려고 한다면 바람과 해류를 거슬러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하기에는 마법석을 무식하게 때려 부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반면에 해류를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류를 타고 가다가 적절한 순간마다 한번씩 요엠가움쪽으로 빠져나오기만 한다면 이동하는 거리는 더 멀어지지만 더 빠르게 더 적은 돈으로 요엠가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저희가 도착하는 곳이 바로 데클락 근처입니다. 표면상 무역이 이뤄지는 곳은 데클락에서 가장 가까운 영지 유바르입니다."


일곱 수호수 중 거북의 영지로 거북은 미지의 위험인 죽음의 숲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박지에서 유바르까지 저희는 죽음의 숲을 따라 갑니다."

"설마..."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죽음의 숲을 따라 가는 기간 동안 밤이 되면 두 사람은 엑살라니스에 가져갈 보급품을 옮기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굉장히 단순하고 고된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하네요. 여러 날 나눠서 옮긴다면 들킬 위험도 적어질테니까요."

"네 맞습니다."

"힘든 일을 하고 계셨네요."

"하하하. 그래도 몇 년 하니까 적응이 되긴 하더라고요."


가만히 듣고 있던 젤로트가 말했다.


"근 삼 년은 다르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지. 혁명단의 작전이 연합전 쯤에 시행된다고 결정된 후로 저희가 날아야 하는 보급품의 양이 많아졌거든요."


덕분에 평소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한다는 데셀은 너스레를 떨다 말고 갑자기 호위 기사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실 여기 젤로트는 꽤나 뛰어난 기사여서요. 제가 드는 짐보다 훨씬 많은 짐을 듭니다."


자기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데셀의 말에 젤로트가 겸손히 말했다.


"상단주님 그만 띄우십쇼.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사람입니다."

"에이! 자신감을 가지라니까? 이 친구가 천재인 게 상급 기사가 된지 이제 일 년 좀 넘었는데 벌써 초월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지 뭡니까?"


데셀의 말에 이트나는 순수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초월자, 즉 히펠렌스는 카밀로테로 따지면 정규군의 대장 정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사들이 기운에 접근하는 방식은 마법사와는 아예 다르기에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마법사처럼 오래 연마한다고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사가 더 상위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필요한 건 일종의 각성이다.

정신적인 각성을 통해 그가 다루는 히펠의 근간이 되는 의지가 더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문제는 그 근간이 되는 의지가 무엇인지 깨닫기가 의외로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급 기사에 오른지 겨우 일 년만에 더 상위의 경지로 나아갈 단서를 잡았다는 건 꽤나 대단한 일이었다.


"대단하군요."

"그쵸?"


데셀은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이트나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이트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이트나가 답했다.


"그러면... 이번 상행에 제가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저 역시 엑살라니스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오! 그럼 저희 짐도 나눠 들어주시는 겁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빙긋 웃는 와중에도 이트나의 눈은 방 안에 엷게 흐르는 기운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낱처럼 가는 검은 기운이 방 안에 흐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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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1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8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2 1 12쪽
»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1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1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10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9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8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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