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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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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1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2.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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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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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DUMMY

시간을 조금 돌려.

물감으로 된 방에서 디르앤을 불러 페트라를 쓰러트리기 전.


- 저기... 이레님.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분명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이리로 불렀을텐데 한참이나 저를 방치해두는 이레를 향해 페트라가 물었다.

사실 한눈에 봐도 이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뭘 하냐 물은 것은 그녀의 행동이 워낙 뜬금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전날에 제사장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보고가 있었다.

당장 대책을 논의해도 부족할 마당에 이레는 뜬금없이 페트라 몸 속의 파편의 문제를 해결하겠답시고 그를 물감으로 된 방으로 데리고 왔다.

이후 페트라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이레는 벌써 한참동안 혼자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 저... 이레님?

- 휴우... 다 됐다.


이레가 열심히 놀리던 지팡이를 내려놓은 것은 페트라가 재차 물으려던 때였다.


- 어떻느냐?

- 예...?

- 이 그림. 네가 보기에는 어떻냐는 말이다. 나랑 똑같이 생긴 것 같아?


그녀가 페트라를 불러놓고 한참이나 그린 그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레 본인의 모습이었다.


- 아... 음. 예.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레는 뭘 당연한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냐면서 다시 그녀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천재 화가라 불리는 몸이다. 그런 내가 꽤나 공을 들인 것이니 당연히 똑같겠지.


단순히 평면 위에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공중에 물감을 그려 만들어낸 입체적인 그림이었다.


더군다나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뼈대부터 장기와 근육까지.

나름대로 인간의 육체를 정밀하게 묘사한 그림이었다.


- 그런데 갑자기 그걸 그리신 이유가 뭡니까?


페트라의 질문에 답한 건 이레가 아니라 그녀가 그린 그림이었다.


- 이걸 그린 이유는 대역이 필요해서다.

- 어... 어. 지금 그림이 말을...


이레와 꼭 같은 그림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은 정말 이레의 모습과 판박이라 눈앞에서 보지 않았다면 페트라는 지금 누가 그림이고 누가 이레인지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 물감을 내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의 응용이 그리 놀랄 일일까.


그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이레의 설명처럼.

본인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 낸 원리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좀 더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고 그린 그림을 좀 더 세밀하게 조종하는 것 뿐이다.


다만 그림을 세밀하게 그리는 만큼 들어가는 힘도 만만치 않았으며 그림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양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집중력을 요했다.

요컨대 많은 힘과 집중력을 들이는 데에 비해 그 결과물은 분신 하나를 움직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러모로 효용성이 크지 않아서 이레가 굳이 쓰지 않는 방식이었다.


- 그런데 이런 쓸모없어 보이는 기술도 쓰기 나름이거든.


며칠 전.


- 그러니까 텔제민 본대를 습격하고 다시 후퇴할 때 말이다. 내 감각에 이질적인 게 걸리더구나.


물감이라면 통로나 방은 물론 더 나아가 세상까지 만들 수 있는 그녀다.

물감 한 방울 한 방울이 그녀의 주관 아래 있다는 소리였다.


물감에 끼어든 이질적인 느낌에 그녀는 은밀히 사방을 살폈고 그녀는 곧바로 작은 돌멩이 크기의 까만 어둠을 발견했다.


- 보아하니 제사장 녀석들이 뭔가를 심어둔 것 같더구나. 능력으로 보면 아마... 그 자기 몸을 쪼개는 여자일 게야.


다른 수작이 있는가 싶었는데 조금 지켜본 결과 그저 가만히 주위에 머물기만 했다.


-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느냐?

- ... 정보. 입니다.

- 에잉... 재미없게 그걸 맞추는 게야? 쯧. 하여튼 그래. 바로 정보다. 저기 있는 돌멩이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우리 쪽에 몰래 숨어들어 이쪽의 정보를 빼내고 있을 게야.


곧바로 없앨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레는 알고.

저들은 모르는.


- 넌 여기 남을 게야. 그 다음부터 내 그림은 나가서 적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것이고.


적들이 미끼를 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


다시 현재.

이레 앞에는 몸이 조각조각 난 에텔크리시가 각자 거리를 둔 채로 매달려 있었다.

신체와 신체 사이를 잇기 위해 검은색의 기운이 흘러나오면.


카가각


나오는 족족 이레의 물감이 기운을 끊어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텔크리시는 이렇게 중간중간 발악을 하고 있었다.


"쿨럭... 그렇다면. 넌 네 동료들도 모르게 일을 꾸몄다는 거군."

"그렇지. 원래는 좀 더 안전한 상황에서 일을 벌일 생각이었지만..."


그림 밖으로 나간 가짜 이레는 우선 텔제민 부대에서 후퇴하려고 했다.

후퇴하는 중에 다른 별동대원들을 수색이라는 명목 하에 내보내 제사장의 습격을 유도하려 했다.

하지만 테노부스 그 자의 이유있는 고집이 그녀의 결심을 흔들리게 했고 하는 수 없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두 사람이 남는다면 너희 중 한 명은 무조건 우리를 노릴 것이라 생각했지. 텔제민 부대로 들어간 아이들은 이쪽의 통로가 끊겨도 충분히 몸을 빼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위험하다고는 해도 이 별동대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강자들이다.

테노부스는 미숙하기는 해도 빛의 히펠을 다루고 디르앤은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에게서 배운 정화의 불을 쓸 수 있다.

여기에 딜람의 성벽 마법까지 있으면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몸을 빼낼 수 있을 것이었다.


불안한 부분이라면 아직 경험이 부족한 딜람이 실수를 하는 경우지만 그것도 경험 많은 테노부스가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조금의 위험을 감수하면 제사장을 적어도 한 명은 죽일 수 있으니 감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 한 명이 꼬마 아이나 빼빼 마른 여자가 아니라 전혀 다른 제사장이라는 건 예상 외였지만."

"그래. 그것 말이야. 결국 이 작전이 성공하려면 너 혼자서 제사장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무려 사람 만오천 명을 먹은 에텔크리시다.

더군다나 상성이 맞는 아우레우스의 황금색 히펠도 빼앗았다.

그런 그가 지금 갈가리 찢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노인의 작전은 완벽한 셈이었다.


- 그리고 혹시나 하는 이야기지만. 만약 아저씨를 끌어들인 게 오르디나 이레가 만들어놓은 함정이라면...

- 함정? 그럴 수도 있는 건가?

- 아니 어디까지나 만약에 말이야. 함정이라면.

- 이라면?

- 절대로 그 사람이 만든 세상에는 들어가지 마. 죽을 거야.


비록 속아서 들어온 것이긴 하지만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스스로 걸어들어온 결과는 보는 바와 같았다.

처음부터 불리한 입장에서 시작된 전투는 시종일관 이레에게 유리하게 흘러갔고 에텔크리시의 공격은 단 한 번도 이레에게 닿지 못했다.


"... 몸이 좋지 않다는 것도 모두 연기였다는 말이군."


에텔이 이곳에 혼자 쳐들어온 이유.

다른 별동대원들이 없다는 것 외에도 페트라와 이레 두 사람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레는 저 혼자 제사장 한 명을 손쉽게 이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내가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거짓말이 아니야."

"설마 지금 만전이 아닌 상태로도 나 정도는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내가 너를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몸이 삐걱거린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도 움직이려고 하면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몸이 움직이는 것도, 원래라면 재현할 수 없는 마법을 재현하는 것도, 한계를 넘는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모두 그녀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내가 약해졌다고 이 마법이 약해지는 건 아니거든."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초대해줬기에 배울 수 있던 마법이었다.

이 마법을 다루는 데에 필요한 힘도 사실 이레가 아니라 이 마법의 주인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제 몸을 태워 불을 키울 때.

더 밝게 타오르기 위해 나뭇가지의 몸을 탐해 기어코 나뭇가지를 재로 바꾸어 놓는 것이 세상이라면.

모든 마법에 능한 자, 트리아트 셋은 달랐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죽지 않게, 사라지지 않게 모든 마법에 능한 자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덕분에 난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싸울 수 있는 게야."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이군. 항상 그렇게 빌붙어서 살면 불안하지 않나? 그 자가 언제 힘을 끊을지 알 수 없잖아? 내가 내 힘으로 이룬 나의 것만이 나를 지킬 수 있는 거다."

"그래. 그게 제사장인 너와 나의 차이인 것이겠지."


키이이이잉


대화를 이어가던 에텔의 입에서 돌연 고열의 구체가 몰려들더니 그대로 이레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앙.. 카가가가각


그러나 그의 공격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레의 세상에 막히고 말았다.


"하아... 하아..."


에텔크리시가 마지막 힘을 쏟아냈지만 현 상황을 끝내 뒤집지는 못했다.

슬슬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은 에텔의 머리가 체념한듯 눈을 감았다.


"... 이제 끝인 모양이야. 더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아."

"그래. 그럼 잘 가거라."


이레가 지팡이를 들어 위에서 아래로 주욱 내리긋자.

사방에서 물감들이 칼날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방 안에 흩어져 있던 에텔크리시의 육체 조각들이 이레가 뿌린 칼날의 비에 이리저리 꿰뚫렸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까만 연기와 함께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가 이내 멀리 사라져갔다.


다른 이들의 것을 탐내 빼앗는 것으로 모자라 결국 수많은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으며 살아온 에텔크리시.

그가 빼앗은 부는 물론 수많은 히펠 중 그 무엇도 그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


에텔크리시를 죽이고 밖으로 나온 이레는 여태 별동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에텔크리시가 끊어놨던 노란 물감으로 된 통로를 서둘러 다시 연결시켰다.

다행히도 여러 통로 중 하나가 남아있었다.


병에 들어있을 때는 통로의 출구가 좁은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모든 출구가 부숴지고 하나만 남았다는 것은 대원들이 물감을 병 밖으로 꺼냈다가 모종의 이유로 파괴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병채로 사라졌거나.


어느쪽이든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기에 이레는 서둘러 페트라가 머물고 있는 물감을 띄워 올려 그것과 함께 통로를 넘어가려 했지만.


터엉


통로는 막혀있는 상태였다.

마치 본래 그녀의 것이었던 물감을 다른 사람이 빼앗은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통로의 출구 역할을 하는 물감을 되찾기 위해 힘을 흘려 넣었다.

점점 통제권을 되찾기 시작하며 그녀의 눈으로 출구 너머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별동대원들이 까만 세상 안에서 레플루앙시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모두 그녀의 예상과는 어긋나는 것들이었다.

에텔크리시가 쳐들어왔을 때부터 대원들이 제사장 두 명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명도 아니고 한 명에게 대원 전체가 고전하고 있었다.


또한 이번 작전 중 가장 예측할 수 없던 변수인 텔제민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레의 솔직한 심정으로 텔제민 사람들에게 테노부스의 설득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적으로 상정했던 것이고 구하러 간다는 테노부스에게도 일곱 번의 공격이라는 제한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두 명이 대원들과 함께 제사장과 싸우고 있었다.


"서둘러야겠군."


그녀의 눈에 들어온 대원들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적 제사장의 힘이 꽤나 강한지 그녀를 공격하기는 커녕 막아내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서둘러 출구에 대한 통제권을 찾으려고 할 때였다.


"응?"


아돌이라 불리던 텔제민의 왕자의 몸에서 익숙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겠구만."


그녀는 그대로 통로에 앉아 차를 내리기 시작했다.


호로록


다른 이들이 고생하는 중에 마시는 차는 썩 괜찮은 맛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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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7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8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8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7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8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8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7 1 11쪽
»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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