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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0,993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2.22 00:29
조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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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DUMMY

"저기 이 아이... 의식이 없는데 이거 괜찮은 겁니까?"

"넷. 애야. 정신 차리거라."

"아잇. 할머니 나와 봐요. 그렇게 해서 되겠어요? 언니! 언니! 일어나 봐요!"

"가주님도 에우랄도. 모두 그 아이에게서 떨어지시겠어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상태라 자칫 잘못하면 몸이 상할 수 있으니까요."

"겨우 한 달 잔 거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인 게야. 우리 카콜은 매년 두어달 씩은 잔다."

"장로님. 그건 곰이잖아요. 넷은 사람이고요. 그것도 한창 먹고 클 나이인데."


사방에서 떠드는 소리에 귓가가 윙윙 울리고 있었다.

지끈 거리는 머리에 넷은 힘겹게 눈을 떴다.


"콜록. 콜록."


여전히 목소리를 내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전보다는 좀 나아졌는지 빳빳하던 고개가 조금씩 돌아갔다.


"어 깼다! 언니 제 말 들려요?"

"쓰읍. 조용히 하고 나오렴."


한번씩 넷과 연이 닿았던 사람들이 부산을 떠는 사이 넷은 주변을 살폈다.

주변을 둘러본 결과 그녀가 현재 숲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어딘가 낯이 익는 숲이었다.


"여긴... 어디... 에요?"


쩍쩍 말라 비틀어진 입술을 떼어 간신히 질문을 던지자 카논이 그녀의 입에 조심스레 물을 조금 흘려 넣어주었다.


"거의 한 달을 잠에 들어있었으니 당장 움직이기는 힘들 거예요. 원래 상태를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테니 그때까지는 무리하지 말아요."


한 달이라니.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음 속에서인지 머리 속에서인지 기만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었다.


"잠깐. 만요."


그렇다면 그녀와 함께 있던 듀시아 역시 그녀처럼 오랫동안 잠들었다는 소리였다.


"..시아는... 듀시아는요?"

"듀시아씨도 일단 무사해요. 다만 넷씨와 다르게 소포르에 장기간 노출된 모양이라 좀 더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요.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요."


듀시아가 무사하다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넷을 본 카논이 말을 이어갔다.


"아까 질문에 답을 하자면 현재 저희가 있는 곳은 죽음의 숲이에요."

"... 하지만."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고요?"


넷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리니 카논이 설명해 주었다.


"성전에서 봤던 제사장이 한 말 기억나요? 그 제사장이 말한대로에요. 숲을 보호하던, 엑살라니스를 보호하던 마법이 사라졌어요."

"아..."


그렇다면 지금 넷이 느끼는 이질감이 설명이 되었다.

죽음의 숲에 있는 나무를 사람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숨을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람과 같았다.

나무는 물론 그 주변의 공기도 멈춰있어 나무 사이에 있으면 숨 쉬는 것도 어딘가 어색해지는 곳이 바로 죽음의 숲이었다.


그런데 지금 넷이 있는 숲에는 시간이 흐르고 생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 증거로 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나무 위에는 작은 동물들이 한 번씩 고개를 내밀곤 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넷은 불현듯 엑살라니스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일었다.


"그...러면. 콜록. 콜록. 엑살라니스... 는요?"


외부로 부터 지켜주던 마법을 없앤 것이 제사장이라면 그 안에 살던 사람들도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 제사장이라는 자, 척봐도 엄청 강해보이던데.

마을에 살던 그 무수한 '셋'들이 무사하긴 한 건가?


그녀의 표정을 읽었는지 카논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모두 무사하니까."


카논의 말에 옆에 있던 장로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연달아 하였다.


"크흠흠!"

"물론 장로님처럼 다친 사람들이 더러 있긴하지만요. 생명을 잃은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어요."


카논의 얼굴이 금방 수심으로 가득해졌다.


"분명. 모두 무사할 거예요."


굳이 힘주어 다시 한 번 덧붙인 뒷말은 상황을 설명해주기 보다는 카논의 바람에 가까워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카논이 먼저 주제를 바꾸는 바람에 물어 볼 때를 놓치고 말았다.


"아. 넷씨의 부모님도 무사해요."

"...! 엄마. 아빠가요?"


엄마랑 아빠는 그럼 공간 이동 마법으로 엑살라니스에 떨어진 걸까?

그럼 다른 혁명단원들은?

공간 이동 마법으로 흩어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묻고 싶은 말들이 산더미처럼 불어났지만 질문 시간이 더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일이 묻고 답하는 것이 퍽 답답했는지 펠페림의 가주가 카논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상황 설명도 좋지만 처리할 일부터 하지. 일단 넌 저것들부터 좀 보내거라. 시끄러워서 원."

"저것이 아니라 '땅고래'요."


가주가 가리킨 곳에는 생전 처음보는 물고기 다섯 마리가 있었다.

땅고래라 불린 생명체는 마치 물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땅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땅고래 주위로 일정 범위의 땅이 액체가 되고 땅고래가 그곳을 벗어나면 다시 딱딱하게 굳는 듯했다.


꺄룩

꺄루룩


뭐가 그렇게 시끄러운지 보니 땅고래 다섯 마리 중 한 마리 혼자 배를 까뒤집고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마치 죽은 친구를 두고 슬퍼하는 모양인 것 같았다.

이를 본 육번대 대장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설마 저희를 구하려다가 죽은 겁니까...?"


육번대의 말이 마냥 헛소리가 아닌 것이 배를 까뒤집은 땅고래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에 불과하지만 땅고래가 보여준 숭고한 희생에 코가 시큰해지는 육번대였다.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낸 그녀가 나름의 위로를 건네기 위해 땅고래들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희가..."


까륵


"까륵?"


육번대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배를 까뒤집고 있던 한 마리가 몸을 다시 휙 돌리더니 멀쩡하게 헤엄치기 시작했고 그걸 본 다른 땅고래들도 지느러미를 모아 배를 부여잡고 까르륵 웃기 시작했다.

웃으면서 은근슬쩍 육번대 대장을 쳐다보는 것이 마치 이걸 속냐며 비웃는 것도 같았다.


카논은 어이없어 하는 육번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원래 장난이 심한 아이들이에요. 그래도 저희를 위해서 데클락 꼭대기까지 열심히 헤엄친 건 사실이니까 좀 봐줘요."

"아니. 하지만 지금 저게... 하. 예. 알겠습니다."


사실상 이번 넷과 듀시아를 구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저 땅고래들이었다.

땅 속을 헤엄치며 사는 저들은 땅 속 깊은 곳에서 무리 지어 사는 종이다.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한 번씩 땅의 표면까지 헤엄쳐 올라왔다 내려가는 습성이 있는데 카논은 이를 보고 땅고래가 성년식을 치르는 것이라 말했다.


헤엄쳐 도달한 표면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후에 무리 내에서 그만큼 더 많은 인정을 받는다고 하니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데클락 정상까지 헤엄친 저 다섯 마리는 나중에 무리로 돌아가면 우두머리 취급을 받을 것이었다.

다만 땅 속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땅고래가 활동할 수 있도록 땅을 액체로 바꾸는 데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땅고래가 데클락같은 높은 산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땅고래들이 원래라면 하지 않을 일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무리한 성년식을 치른 이유는 어디까지나 카논의 부탁 때문이었다.

물론 순수한 부탁은 아니고 나름대로 주고받는 것이 있는 계약에 가까웠기에 카논 역시 제대로 셈을 치러야 했다.


쩌적

쩌저적


그녀는 설탕을 녹인 물을 차갑게 얼려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 다섯 덩이를 만들었다.

달디 단 얼음 덩이를 하나씩 땅고래들에게 건네자 이제껏 울던 소리보다 더 크게 울어젖히기 시작했다.


까르륵!

까륵!


땅고래가 좋아하는 두 개가 바로 단 것과 차가운 얼음이라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는 간식을 먹으니 퍽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겨우 저런 걸로 데클락 정상까지 헤엄치다니 완전 사기 계약 아닙니까?"


육번대 대장이 웅얼거리는 소리에 카논이 웃으며 답했다.


"설마 이번 한 번으로 끝내려고요. 저는 매달 이걸 저 아이들에게 주기로 했답니다."

"... 그 말은 저 애들이 달에 한 번 꼴로 땅 위로 올라와야 한다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 그 먼 길을 올라와서 저것만 먹고 다시 내려간다고요?"

"음. 그래도 되지만 굳이 올라왔으니 이것저것 좀 놀다 들어가면 좋겠죠?"

"논다고요?"

"네. 데클락 정상까지 누가 먼저 올라가나 시합한 것처럼. 다른 놀 거리가 있겠죠. 뭐."


아 뭐야.

난 또 내가 착각한 줄 알았네.

맞았네.

사기.


육번대는 카논과 약속을 할 때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기 계약으로 이뤄진 동물의 노동력 착취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펠페림 가주가 말했다.


"그럼 다시 이동하지. 언제 적들이 따라 붙을지 모르니 말이야. 넷. 자세한 건 도착한 후에 알려주마."


넷과 듀시아를 챙긴 이들은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 오래 이동하지 않아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지 가주가 지팡이를 들더니 일정한 박자로 땅을 찍었다.


"..."


미리 약속한 대로 신호를 보내고 회답을 기다렸지만 어째서인지 답은 오지 않았다.

원래대로면 아무리 늦어도 벌써 반응이 왔어야 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고쳐쥐며 전투를 준비했다.


펠페림 가주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에우랄. 정찰."


고개를 끄덕인 에우랄이 그녀와 똑같이 생긴 신기루를 만들어 앞으로 보냈다.

신기루는 그 자체에 질량이 없는 말 그대로 신기루에 불과해 사물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대신 에우랄은 정신 마법을 응용해 자신과 신기루 사이에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는 신기루를 통해 주변의 상황을 살피려는 것이었다.

참고로 성전에서 제사장과 기만을 속인 것도 에우랄의 신기루였다.


에우랄이 보냈던 정찰은 오래지 않아 무사히 돌아왔다.

알아낸 것이라고는 앞에 있어야 할 엑살라니스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전투의 흔적은 없고... 대신 이동한 흔적만 있어요."


약속과 다르게 이동했다는 것은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피치 못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어느쪽이든 기별도 없이 움직였다는 건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펠페림 가주가 말했다.


"내가 선두. 넷과 듀시아는 에우랄이 들고 중앙에 선다. 다날 좌측, 카논 우측, 후방은 맡기겠습니다 장로님."


모두 한껏 긴장한 상태로 한발 내딛었다.


엑살라니스 쪽에서 설치해 뒀던 경계막을 넘어가자 과연 그녀의 말대로 단체로 머물렀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에우랄의 보고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아군을 발견해 그쪽으로 합류한다. 라고 써있는데 말이지?"


바닥에는 서로 맞춘 암어로 된 흔적이 남아있었다는 것이었다.


"아! 죄송해요. 그게 긴장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못 봤어요..."

"하아... 긴장해서 못 봤... 다고. 그래. 다음부터는 이런 일은 없도록 해야한다."


에우랄은 능력은 출중하나 아직 어려서 그런지 실수가 종종 있었다.


"어쨌거나 이동하지."


펠페림 가주는 이후로 먼저 떠난 자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이동했고 그 끝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엑살라니스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물론 먼저 죽음의 숲으로 떠났던 사슴의 일행과 이후에 합류한 별동대까지 모여있었다.


"넷! 듀시아!"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넷과 듀시아를 본 세슈람과 딜람이 동시에 달려나가 두 사람을 끌어 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듀시아 이 자식 머리 대. 밀어 버리게."


정말이지 오래간만의 재회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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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7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8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8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7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8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7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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