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11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1.31 20:19
조회
7
추천
1
글자
11쪽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DUMMY

증오와 분노, 그리고 슬픔.

제사장이 느끼고 있는 날 선 감정들이 형태를 이루는 족족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카가각

파가가각


"... 헉. 허억."


한바탕 쏟아진 공격을 힘겹게 막아낸 딜람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온몸에 자잘한 상처가 남아있었고 방금 전의 공격을 막다가 흘린 검날에 그녀의 옆구리를 허용하고 말았다.

사실 상처도 상처였지만 더 문제는 그녀에게 남은 힘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손이고 다리고 그녀의 뜻대로 움직이는 부위가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그녀가 마법탈진을 겪을 정도로 무리해서 마법을 재현하고 있음에도 여태 제사장이 만든 세상을 무너뜨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미 그녀 주위의 동료들은 한계를 넘은지 오래였다.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는 딜람이 일행 중 그나마 멀쩡한 편이었다.

현재 제사장이 만든 세상의 법칙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딜람의 성벽 마법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들이 딜람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했기에 겨우 이 정도로 다친 것이다.

다른 이들은 딜람과 같은 상처를 너댓 개씩은 더 갖고 있었다.


그나마도 치료 마법에 능통한 디넷 오번대 대장이 없었다면 진즉 무너졌을 전열이었고 이제는 그마저도 한계였다.


이 상황에 이르도록 딜람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딜람에 의해 구속에서 벗어나기도 했겠다, 힘을 합쳐 레플루앙시가 만든 세상을 부수려 했다.

하지만 디르앤의 백화도, 테노부스의 빛의 히펠도, 다른 이들의 모든 공격도 어둠으로 이뤄진 세상을 뚫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시적으로 길을 낼 수는 있었다.

문제는 뚫어낸 곳으로 탈출하려고 해도.


- 어딜 가게?


칼리다비스의 힘을 흡수하며 육체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한 레플루앙시가 그들을 막아섰고 시간이 끌리는 사이 애써 냈던 길이 다시 막히고 말았다.

딜람이 성벽의 범위를 넓혀보려고도 했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딜람은 성벽을 복원시키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자연스레 전투의 구도는 소모전으로 넘어갔다.


-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힘이 필요할 겁니다. 지구전으로 넘어가면 저희가 유리할 수도 있으니 버텨보죠.


디넷 오번대 대장의 희망 섞인 바람은 이제 막 오답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모든 이들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

그나마 여력이 남은 것은 딜람 한 명 뿐.


어차피 버티는 것 외에 다른 방법도 없었으니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디넷은 현 상황에 이른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 내가 어떻게든 이번 공격을 막을테니 딜람 너는 성벽으로 길을 내도록 하렴."

"하지만..."

"다들 정신 차리세요.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 죽을 거에요."


말로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해 기회를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말리려 뭐라 말하려 했지만.


"딜람은 성벽을 만들어 유지해야 하니 논외. 그렇다면 이 중에서 가장 위력이 약한 사람은 저예요. 하지만 방어막은 제가 가장 낫죠. 어느모로 보나 제가 남아 기회를 만드는 게 맞아요."


현 상황에 대해 반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설명으로 다른 이들을 침묵시켰다.

테노부스를 제외하면 말이다.


"아니. 그게 성공할 거 같았다면 내가 진즉 했을 거야."

"그게 무슨..."

"우리와 다르게 저 자는 지금이 전력이 아니란 말이지."


칼리다비스를 잃은 분노에 가득차 온힘을 다해 덤벼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냉정함을 유지하며 이쪽을 공략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법을 바꾸더라도 막아낼 것이야."


어느 정도 추측이긴 했지만 레플루앙시의 주먹을 받아본 테노부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가 세상을 움직여 공격하는 것과 더불어 직접 나서기까지 한다면 이쪽의 상황은 더 어려웠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막기만 하면 정말 답이 없어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패할 작전에 그대들의 목숨을 희생할 수도 없다."


그그극

카드득


테노부스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성벽 너머로 어둠이 응축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공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디넷이 내놓은 계획을 반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테노부스에게 마땅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앞으로 나선 것은 아돌 앙귀스, 텔제민의 첫 번째 검이었다.

그가 딜람에게 물었다.


"거기 이단. 아니. 마법사. 이번 공격 나 없이 막을 수 있겠나?"

"... 뭔가 방법이 생긴 것 같은데 못해도 해야죠."

"씩씩한 아이군. 내 아들과 잘 어울리겠어."


... 아드님이요?


"흥. 자네는 이제 막 여덟살 된 꼬맹이의 신붓감을 왜 벌써 찾고 있는 건가?"


... 여덟살이요?

여덟살이면 내가 아드님보다 여덟살이 더 많은데 말이죠.


"죄송하지만 우리 딜람은 이미 함께하기로 한 아이가 있습니다."


... 아버님은 또 왜 거기에 진심으로 대꾸하시는 거예요?

그나저나 '우리 딜람'이라니.

헤헤.


안그래도 팔다리에 힘이 없는데 하마터면 아저씨들의 시덥잖은 소리에 지팡이를 놓칠 뻔했다.


"옵니다!"


디넷 대장이 공격이 시작되는 것을 알렸고 그에 맞춰 각자 젖 먹던 힘을 다해 히펠과 마법을 쏟아냈다.


아돌의 빈자리를 채운다고 다른 이들이 분전하는 사이.

본래 딜람이 보호받던 곳으로 가 자리를 잡은 아돌이 검을 제 몸쪽으로 끌어 당겼다.


지금까지 그가 쭉 보여온 그의 상징과도 같은 검로.

찌르기로 이어지기 바로 전의 자세였다.


완전체가 된 레플루앙시를 상대하면서 아돌은 계속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레플루앙시의 뱃속으로 들어간 그 남자 꼬맹이를 묶어두기 위해 거의 모든 힘을 꺼내 썼던 그였다.

이후에 벌어진 전투부터는 사실상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바득바득 끌어다 쓴 셈이다.


애초에 죽으려 왔던 곳이었다.

마음이 바뀌어 살아보고자 했지만 현재 저 무식하게 강한 제사장을 상대하는 데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살아돌아가기는 힘들어 보였고.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에게 찬란한 소망의 빛을 보여준 별동대원들만큼은 살려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 악착같이 힘을 끌어다 썼다.


'그런데 내 힘이 빠지면 빠질수록 더 힘이 나는 느낌이다.'


처음 이 감각을 느꼈을 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물론 그의 육체는 너덜너덜 해지고 지금도 검의 무게가 천근만근인 것처럼 무거웠다.

다만 그의 몸 속을 휘돌고 있는 히펠만큼은 달랐다.


분명 자신의 몸 속에 있던 기운이 아닌.

하지만 그럼에도 마치 원래 제것인양 조금의 불편함도 없는 기운.


진작 쓰러졌어야 할 그가 지금까지 서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기운 때문이었다.


출처 불명의 기운이 그가 검을 들 수 있도록 두 팔에 힘을 주었다.

검을 단단히 붙들 수 있도록 양 손에 힘을 주었다.

몸이 흔들리지 않게 버틸 수 있도록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끌어당긴 검 끝으로 히펠이 모였다.


그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히펠은 저 스스로 모이고 압축되어 점을 이루고 있었다.


"... 하핫."


아돌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지르기 전에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선보일 찌르기가 그가 평생에 이룩한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을.

감히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을.


후욱


마침내 그가 내지른 검이 어둠에 잠식당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갔다.


검 끝에서 시작한 벼락이 조용히 세계 너머 하늘까지 선을 그렸다.

얇은 선은 곧이어 어둠으로 물든 세계는 물론 하늘에 깔린 밤까지 주욱 찢어 둘로 나누었다.


뇌명이 울린 것은 그 직후였다.


"...!"


솔이 떠오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모르는지 아돌의 히펠은 무서운 기세로 어둠을 물리치고 있었다.

이대로 레플루앙시의 세상을 부술 것 같았던 그의 히펠이었지만.


"안돼애애애!"


레플루앙시가 짙은 어둠을 양손에 두르고 직접 벼락을 막으러 나섰다.


쿠구구구구궁


현재 이들의 전력을 냉정히 파악하던 레플루였지만 지금 아돌의 찌르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벼락에 휩쓸려 레플루앙시가 뒤로 날아갔다.


"이이익!"


날아가는 것도 잠시.

레플루앙시가 힘을 더 끌어내자 이내 거침 없이 뻗어나가던 벼락이 주춤 거리더니 곧 레플루앙시와 서로 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아돌이 굳이 신호를 보낼 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가 만든 길 위로 별동대원들이 달리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그녀가 더 많은 힘을 쏟으면 쏟을 수록 주변 그녀의 세상이 그 크기를 줄이고 있었다.


콰각


대신 그만큼 더 강력해진 힘으로 그녀가 벼락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악!"


이대로면 아돌이 애써 낸 길이 끊길 참이었다.

반면에 별동대원들이 레플루앙시에게 닿기에는 아직 거리가 남은 상황.


쐐애액


무엇인가 별동대원들 옆을 스쳐지나가는 듯 싶더니.


"...!"


어느새 레플루앙시의 코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캐롤이었다.


누구보다 아돌을 오래 지켜온 그녀였다.

그가 검을 내지르기 전부터 그가 길을 낼 것을 안 캐롤 역시 이를 악물고 최후의 최후까지 힘을 쥐어짜 히펠을 끌어낸 것이다.


그 결과.


"늦지 않았습니다."


캐롤의 검이 벼락을 밀어내던 레플루앙시의 두 손을 튕겨냈다.

다시금 벼락에 휩쓸려 주춤거린 레플루는 곧바로 중심을 잡으며 캐롤을 쳐냈다.


캐롤이 만들어 낸 짧은 틈.


다행히 테노부스에게 그 정도 틈이라면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가 휘두른 디스탕시온이 레플루의 두 눈을 베어냈다.


"끄아아아악!"


별동대원의 공격에 레플루가 처음으로 상처를 입은 순간이었다.


항상 모든 것을 보고 판단했던 그녀에게 두 눈이 한순간이나마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의 평정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테노부스에 이어 백화가 날아들었고 마법사들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그 결과 레플루앙시의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이대로는 위험해.'


위기감을 느낀 레플루앙시가 선택한 것은 잠시 도망치는 것이었다.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판단을 마친 그녀가 몸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어디 가게요."


레플루앙시 주변으로 성벽이 둘러져 있었다.


딜람의 손짓에 성벽이 완전한 구체가 되어 레플루앙시를 완전히 가두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24.01.09 33 0 -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1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10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9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8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