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7.15 18:00
연재수 :
259 회
조회수 :
11,969
추천수 :
697
글자수 :
1,391,524

작성
24.03.11 21:29
조회
14
추천
1
글자
13쪽

233. 선택

DUMMY

상단주가 지내는 막사.

그 안에는 데셀비아와 이트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탁상 위에 다기를 꺼내놓고 평온히 차를 우리고 있었다.


쪼르륵


잘 우려난 맑은 갈빛의 차가 주전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데셀이 즐겨 마시는 차라는데 향이 퍽 좋았다.


두 남자가 차를 음미하며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한참 차를 홀짝이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데셀이었다.


"지셨네요."

"..."




찻잔이 경쾌하게 내려앉는 소리에 맞춰 데셀이 빙긋 웃었다.


"자신만만하게 나서더니."

"..."

"형편없이 깨지셨어요."


쪼르륵


찻물의 색이 바뀐 것만 같은 것은 기분탓일까?

데셀은 어쩐지 차가 붉어진 느낌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웃으며 차를 홀짝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열이 뻗치는 것이었고 하도 열을 받다 보니 눈에 실핏줄이 터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하던 차가 붉어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미안합니다."


혼자 분을 삭이고 있으려니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이트나가 얌전히 사과를 건네왔다.


웬 떠돌이 기사와 함께 등장한 젤로트가 그 기사를 제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부탁을 해왔고.

스승의 자질을 시험해보겠다는 데셀의 말에.


- 저와 겨뤄 보시죠.


앞으로 나선 것이 바로 이트나였다.


조건은 간단했다.

이트나가 이기면 젤로트는 남겨두고 여자만 떠나고.

반대로 여자가 이기면 젤로트와 여자 둘 다 떠나고.


그랬는데 져버리고 만 것이다.


일이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아 젤로트가 떠나고 말았지만 어쨌든 당시 이트나가 최선을 다한 것은 옆에서 지켜본 데셀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젤로트가 가고 싶다는 것을 막을 방법?

데셀이 나서서 스승의 자질을 시험하겠다 했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그가 기사를 도대체 어떻게 시험한다는 말인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젤로트를 막기 위해서는 데셀이 억지를 부리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젤로트의 상태를 보면 그의 억지가 먹히지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젤로트가 스승으로 삼으려는 자를 누군가 나서서 꺾는 것이 유일하다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자 중에서 이트나만큼 강한 자는 없었으니 이트나가 나선 것이고.

데셀도 그걸 알았기에 이트나가 나설 때에 아무 말도 안 한 것이다.


선택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여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다는 것이다.

변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자신이 어릴 적부터 등을 맡겨온 호위 기사가 자신을 떠났다는 게 중요했다.


"하하... 하. 우리 젤로트가 딱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따라가다니."

"그래도 강하긴 하던데요. 많이 배워올 겁니다."

"많...이 배운다라... 그렇겠죠. 네. 아무렴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던 데셀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탁상 위 찻잔과 주전자가 어지러이 쓰러졌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어쩌실 거냐고요!"


목소리를 높여 화를 쏟아내는 데셀의 모습에 잘 대답하던 이트나가 돌연 입을 꾹 다물었다.


"저기요. 이트나님? 이트나님! 말씀을 좀 해보시란 말입니다!"

"예. 미안합니다. 저기 그. 미안한데 혹시 입 좀 잠깐 다물고 있어줄 수 있겠습니까?"

"... 예?"


발언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지금 성질을 부릴 사람은 이트나님이 아니라 저일 텐데요?"

"압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아서 말입니다."

"..."


이트나의 뻔뻔하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요구에 데셀은 그를 무시하고 계속 화를 낼까도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한 번 참기로 했다.


이트나란 사람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긴 해도 이유가 없는 일을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이유가 없이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카논이 선택한 남자가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일이 이 지경이 된 것도 이트나가 괜히 젤로트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였으니 말이다.

이트나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지만 데셀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처음부터 젤로트를 자극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닙니까? 왜 그러신 겁니까?"


그의 질문에 줄곧 허공을 보던 이트나가 비로소 그를 바라보았다.


"고민 중이에요."

"... 왜 젤로트를 자극한 것인지 그 이유를 고민 중이시라고요?"


뭐야.

이 인간.

진짜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거였어?


"아니요. 이유야 있죠. 그 이유를 포함해서 지금 제 머릿속의 내용을 데셀님... 데셀비아 메레오님과 나눌지 말지 고민 중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못 미더워서 그러신 거라면..."

"아니요. 못 미더워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말끝을 늘이던 이트나가 꺼낸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 말을 데셀님께 꺼낸다면... 시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시기를 놓친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을 살릴 시기요."

"그게 무슨..."

"자칫 잘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


떠돌이 여기사에게 진 후 막사에 모인 이트나와 데셀비아.

이트나가 이래저래 데셀의 기분에 맞춰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직전에 여기사와 치른 대련이었다.


대련에 임한 것 자체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도 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트나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기사가 육체를 강화하는 법이나.

히펠을 다루는 법이나.

검을 다루는 법이나.

하나같이 이론적으로는 이미 공부해 알고 있었다.


여기에 그의 특별한 눈이 더해져 기사가 히펠이라는 것을 운용하는 방법을 보니.


우우웅


금방 따라 할 수 있었다.


히펠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의지가 현실에 이뤄지는 구조라면 마법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상급 기사의 상징이라는 히펠 특성의 발현?

그건 더 쉬웠다.


단순히 물 마법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특성을 발현시킨 것이다.


이트나가 젤로트를 꺾은 것은 마법을 써서 이기거나 다른 속임수를 쓴 것이 아니었다.

고작 잠깐 검을 든 이트나가 오랜 시간 기사로서 살아온 젤로트보다 뛰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훌쩍 쌓아올린 자신감은 베루스비숨이라는 기사의 손에 단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 그쪽의 실력은 이미 보았다만 내게는 무리다.


언뜻 오만해 보이는 발언이었지만 실제로 그녀의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허세도 없었다.

그저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대련 중에 그녀가 꺼낸 것은 겨우 검을 살짝 덮을 정도의 우윳빛 히펠 조금.

히펠을 늘리거나 뿌리거나 키우는 등의 기술은 일절 없었다.

그저 히펠을 두른 검을 들어 저에게 다가오는 공격을 벨 뿐이었다.


이트나가 검으로 만든 수백의 물줄기가 베였다.

한 줄기.

한 줄기.

또 한 줄기.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녀가 휘두르는 검의 검로는 단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그 부드러운 움직임에 사람들은 그녀가 한 순간 춤을 추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 내가 무리라고 하지 않았나.


물줄기와 함께 그녀에게 파고든 이트나에게 나직이 들려오는 말이었다.


후웅


이후 이트나의 귓가에 들린 것이라고는 그녀가 휘두른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세상을 아득한 고요 속으로 떨어뜨리는, 섬뜩하리만큼 깔끔한 일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트나가 빌린 용병단 단장의 검은 두 동강이 나있었으며.

그의 목으로 엷은 상처가 한 줄기 나있었다.

얕게 베인 상처에서는 피가 슬쩍 비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으로 대련은 끝이었다.


이것으로 다섯 번.

이트나가 베루스비숨이라 불린 기사와의 대련을 다시 그려본 횟수였다.


'그녀의 검.'


이트나가 본 그녀의 검은 마치 완벽에 다다른 것 같았다.

단순히 검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벤 자신의 히펠들은 모조리 단칼에 갈렸다.

자신의 히펠이 결코 약한 것이 아님에도 그랬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몇 번을 떠올려보고서야 깨달은 것인데 그녀는 이트나의 히펠 중 가장 취약한 곳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히펠이든 마법이든 결국 작은 빛의 결정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녀는 그 결정들이 상대적으로 덜 몰린 곳을 찾아내 베었다는 것이다.


'이건 불가능하다.'


이트나 정도나 되니 그녀가 벌인 기행을 눈치챈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은 꿈도 못 꿀 일을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여기까지 다다르자 이트나는 여기사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깨달았다.


기술의 극의에 다다른 자.

검으로 가장 강한 제사장에 오른 자.


'유스티티엔.'


이것이 여기사의 진짜 정체이리라.


줄곧 그를 괴롭히던 불길함.

이트나는 불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제사장이 정체를 숨기고 이곳에 온 이유.

그가 갑자기 제자를 들인 이유.

모든 게 의문이었지만 이트나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다.


'그 눈이라면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눈치 챘을 텐데.'


기만이 가장 거슬려하는 존재 중 한 명.

혁명단원.

그게 바로 이트나다.


유스티티엔 역시 이를 알았음에도 그를 살려둔 것이다.

즉, 제사장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혁명단원을 살려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것을 전제로 삼고 생각을 뻗어나가면 자연스레 유스티티엔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먼저 최우선으로 제거해야할 혁명단원을 살려두었으며.

다음으로는 혁명단원 옆에 있는 기사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젤로트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 강한 제사장이 굳이 약하디 약한 기사의 손을 빌릴 일이 뭐가 있을까?


제사장은 할 수 없지만 젤로트는 할 수 있는 것.


'엑살라니스.'


이것뿐이었다.


데셀과 젤로트, 이트나가 죽음의 숲에 드나든다는 정보가 누출된 순간은 아마 젤로트와 이트나가 죽음의 숲에서 빠져나온 직후 벌였던 대련에서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나누던 대화를 들었을 수도 있고, 꼭 듣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숲 인근에서 얼쩡대고 있는 혁명단원을 본다면 자연스레 죽음의 숲 속 엑살라니스를 떠올렸을 것이다.


'제사장의 목적이 죽음의 숲이라면.'


제사장이 젤로트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제사장이 억지로 젤로트를 차지할 수는 없다.

영혼을 차지하는 순간 젤로트 역시 죽음의 숲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파편을 키워 젤로트를 차지하게 만드는 방법 역시 불가.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젤로트가 자발적으로 배신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제사장이 어떤 방식으로 젤로트를 꾀어넘기려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젤로트의 상태를 생각하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이트나는 파편의 개입 여부를 파악하겠다고 젤로트의 성질을 긁은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지만 이건 이미 지난 일.

중요한 것은 엑살라니스를 지키는 것이었다.


'뭐가 되었든 젤로트가 죽음의 숲에 들어가는 것만 막으면 된다.'


제사장에게 설득당한 젤로트보다 이트나가 먼저 엑살라니스에 도착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느때보다 시기가 중요했다.


***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니 자세히 설명해 주십쇼."


그늘이 드리워진 이트나의 얼굴처럼 데셀의 얼굴에도 어느새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민하는 듯한 기색의 이트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역시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젤로트가 따라간 사람이 유스티티엔이라는 역사적인 제사장이다.

이 사실을 밝히는 순간 눈앞의 남자는 젤로트를 구하러 갈 것이다.


그 강하다는 제사장에게서 젤로트를 구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더라도 지금도 제사장은 젤로트를 설득 중일 텐데 젤로트가 설득에 넘어가기 전에 그에게 갈 수 있는 지도 의문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트나가 먼저 죽음의 숲으로 달려가 젤로트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 데셀에게 이 사실을 말해 시간이 끌리는 것보다야.


'젤로트를 희생... 하더라도. 엑살라니스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트나는 마음을 굳혔다.


"설명은 제가 다녀온 후에 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당장 떠나려는 순간 데셀의 손이 그를 막았다.

그는 제 손을 붙드는 데셀을 곧장 떨쳐내려고 했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말에 차마 데셀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혹시 젤로트가... 죽어야 하는 겁니까? 그 아이가 죽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겁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50화 묘사 추가 안내 24.05.31 11 0 -
공지 연재 공지 24.01.09 47 0 -
259 259. 바다에서 살아남기 24.07.15 4 1 14쪽
258 258. 사랑꾼 24.07.11 8 1 15쪽
257 257. 무지개 24.07.03 10 1 14쪽
256 256.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마력은 24.07.01 11 1 13쪽
255 255. 이게 왜 돼 24.06.26 11 1 13쪽
254 254. 가망 24.06.21 9 1 15쪽
253 253. 산 넘어 산 일 넘어 일 24.06.18 10 1 14쪽
252 252.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24.06.14 10 1 14쪽
251 251. 으누어 24.06.05 13 1 16쪽
250 250. 격 24.05.30 16 1 14쪽
249 249. 짜릿해 늘 새로워 24.05.21 10 1 13쪽
248 248. 꺾이지 않는 신념 24.05.18 11 1 14쪽
247 247. 하나를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24.05.16 13 1 13쪽
246 246. 포기를 모르는 남자 24.05.04 17 1 12쪽
245 245. 신념 24.04.30 16 1 13쪽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1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14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15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14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15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14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16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14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18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14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15 1 13쪽
» 233. 선택 24.03.11 15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12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