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01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1.22 18:06
조회
7
추천
1
글자
11쪽

211. 진짜 나다운 게 뭔데

DUMMY

""꺄꺄꺄아아아악악악""


끔찍한 비명을 토해내며 무수한 눈알들이 타들어갔다.

테노부스의 찌르기 한 번에 눈알이 모여 만든 장벽은 허무하리만큼 쉽게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궁


미리 입을 맞춰둔 대로 테노부스의 공격에 맞춰 다른 이들 역시 공세에 나섰다.

딜람에게서 벼락 줄기가.

디르앤에게서는 하얀 불꽃이.

사번대와 오번대 대장에게서는 회오리가 나와 그들 앞에 있는 적진을 초토화 시켰다.


감시를 하고 있던 눈알을 태우고 임시로 세워둔 목책을 무너뜨렸다.

목책 주변으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까지 쓰러뜨린 것을 확인한 테노부스가 말했다.


"말했듯이 돌입 이후에는 최소한의 교전만 한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목적은 설득이니 말이다."

""네.""

"그럼 단번에 치고 들어가겠다."


별동대원들의 몸이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그들의 뒤로 딜람의 성벽 벽돌이 일렬로 무지개 빛을 내며 따라붙었다.


기습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테노부스와 별동대원들의 한 방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었을까?


적진 내부로 돌입한 별동대원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주변을 살핀 사번대가 말했다.


"너무 간단하게 들어왔습니다. 수상한 게 아무래도 함정인 것 같네요."


그의 말대로 적이 습격을 가하면 그에 걸맞는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들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사번대의 말에 대원들이 무기를 다잡았다.

적진을 쭈욱 훑은 테노부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단순히 함정이라기에는 이상하구나."


사번대 대장의 말대로 별동대가 함정에 빠진 것이라면 이 함정을 만든 적은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공격할 수 있는 만반의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 주변으로 병사들이 없다."


히펠을 자잘하게 나눠 사방으로 흩어보았지만 그의 히펠에 잡히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혹시 자신이 히펠을 다루는 감각에 문제라도 생겼나 싶었던 테노부스는 가장 가까운 막사로 가 입구를 들췄다.


"차라리 내 감각이 이상해진 것이 나았을 것을..."


그의 히펠이 전해준 정보는 과연 정확했다.

막사 안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대신 군데군데 혈흔이 남아있었을 뿐.


병사들이 머물고 있어야 할 막사 몇 채를 더 뒤적거린 테노부스는 처음 막사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유형의 혈흔을 찾아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가 가진 히펠을 최대한 넓게 퍼뜨려 텔제민 본대를 살폈다.


"..."


오래지 않아 그의 얼굴에는 지금껏 없던 감정이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쿠우웅


때마침 지독한 적막을 깨며 누군가 별동대 앞에 내려왔다.

별동대원들이 이미 한 번 싸웠던 적.

제사장이었다.


"왔네. 영웅왕의 재래. 기사의 정점. 테노부스 알랑케 요엠가움. 그리고 혁명단들까지."


까맣게 물든 눈에 삐쩍 마른 여자, 레플루앙시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아! 누나! 그냥 누나 혼자 상대하면 안돼? 난 그냥 집에 있고 싶다고!"


상당히 삐뚤어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칼리다비스였다.

그는 레플루앙시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칼리다비스의 모습은 이전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꽤나 차이가 있었다.

본래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이전 전투에서 갓난 아기가 되었었다.

갓난 아기가 된 그를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진 레플루앙시가 조종했었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그가 누나라 부르는 레플루앙시보다 더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는 그런 모습.


"저 아저씨 졸라 세잖아. 그리고 저기 저 아줌마도! 졸라 뜨거운 불 가지고 다닌다고."

"아이 참. 칼리다. 좀 가만히 있어봐."

"아 졸라 싫어. 나 저 사람들 보기 싫다고!"


이전보다 나이가 더 든 모양이었는데 어째 하는 짓은 여전히 애였다.


난데없는 촌극이었지만 이를 보며 웃는 별동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웃음은 커녕 대원들의 표정 역시 테노부스의 표정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역겨움.

분노.

그리고 죄책감.


바스러져라 입을 맞다물고 있던 테노부스가 입을 열어 물었다.


"병사들은 어떻게 한 거지?"


하지만 두 제사장은 그의 질문에 대답은 커녕 여전히 아웅다웅하고만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테노부스가 발을 굴렀다.




순식간에 그들 앞에 도달한 테노부스가 빛나는 검을 횡으로 그었다.


"으악!"


레플루는 제 팔에 매달려 떼를 쓰던 칼리다를 거칠게 뒤로 빼내는 동시에 제 몸 역시 뒤로 빼냈다.


번쩍


두 제사장은 여유롭게 검로에서 벗어나는 듯했지만 검로를 따라 흔적을 남긴 테노부스의 히펠이 폭발하며 수백 수천 가닥의 빛살을 쏟아내 둘을 덮쳤다.


레플루는 수많은 빛살이 몸을 꿰뚫기 전에 칼리다 뒤로 몸을 피했다.

그 덕에 칼리다의 몸에만 날카로운 빛살 가닥들이 틀어박히고 말았다.


"앗 따거! 아! 아야!"


빛살 가닥들에 몸이 뭉텅뭉텅 터져나가긴 했지만 칼리다는 제 몸 뒤에 몸을 숨긴 레플루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감싸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 진짜 졸라 아프네."


모든 공격을 혼자 받아낸 칼리다의 몸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회복되어 원상태로 돌아왔다.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두 제사장의 촌극을 끝낸 테노부스가 다시 물었다.


"이제 말하거라. 병사들을 모두 어떻게 했는지."

"아니. 어떻게 할 거야 누나. 저 아저씨 완전 빡쳤나본데..."

"말하지 못할까!"


콰아앙


난폭하게 터져나온 테노부스의 히펠이 주변을 사정없이 어그러뜨리고 있었다.


"그... 아저씨. 답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지 않아?"

"..."

"이미 알고 있잖아."


칼리다의 말대로였다.


사람을 양분 삼아 성장하는 제사장.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수만 명의 텔제민 병사들.

어린 아이가 앳되긴 해도 청년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갑작스런 성장을 이룬 제사장.


테노부스는, 이 자리에 있는 별동대원들은 이 자리에 없는 병사들이 어디로 간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 왜 저들을 구하겠다는 게야? 현재 텔제민은 아군이 아니라 적이다.

- 하지만 이레님께서는 제가 그 '적'을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을 때 잘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건 우리가 자비를 베풀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허락한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너무 위험해.

- 그날... 그날 제가 그에게 살 수 있다 말했습니다.


백 년에 한 번씩 우리를 덮쳐오는 죽음은 사실 죽음이 아니라고.

그저 죽음을 가장한 절망일 뿐이라고.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이 나에게 있다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몰아내는 솔이 기어코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 삶을 뒤덮은 흑암을 몰아낼 빛이 이미 우리에게는 있다고.


- 용이 보이는 무한한 힘 앞에 절망한 자에게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 ...

- 아마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시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가서 말한다 해도 듣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본 빛을 저들이 보기를 원합니다.


수만 명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공격 당하면 아무리 히펠렌스라 하더라도 위험할 줄 알면서도 테노부스가 고집을 부린 것은.

그날 자신의 말에 눈빛이 떨렸던 아돌 앙귀스가, 더 나아가 텔제민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는 것을 함께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던 위험은 이미 제사장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이후였다.

수만 명의 생명이 이미 버려진 후였다.


으득


테노부스는 짓씹은 입술 사이로 가까스로 질문을 내뱉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주위를 어그러뜨리며 난동을 피우던 히펠의 움직임이 멎었다.

심상치 않은 느낀 칼리다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너희들은...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냐?"


움직임이 멎은 히펠이 한 곳으로, 테노부스가 그러쥔 대검 디스탕시온을 향해 모여들었다.

디스탕시온, 과거 영웅왕이 다뤘던 대검에 막대한 양의 히펠이 담기자 검날이 진동했고.


곧이어.

마치 검날이 테노부스의 히펠이 된 것처럼.

혹은 그의 히펠이 디스탕시온의 검날이 된 것처럼.

조금의 이질감 없이 하나로 융화된 디스탕시온은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해졌고 그 존재감은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졌다.


영웅왕 알랑케 요엠가움과 함께 용의 비늘을 베어냈던 검.

그 과거의 영광이 테노부스의 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짐의 손에 소멸될 것이다."

"난 아니야! 진짜야 아저씨! 난 별로 안 먹었어! 이 누나가 제일 많이 먹었...!"


테노부스의 선언에 칼리다비스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경험한 것처럼 강력한 테노부스의 의지에 죽음을 앞서 경험한 칼리다는 자신의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그의 뒤에 있던 레플루가 다급히 말했다.


"칼리다. 살고 싶으면 싸워야 해."

"어려지기 싫은데. 졸라 짜증나."

"이번에는 사정이 낫잖아."

"지금 모습 되게 마음에 드는데. 다시 꼬맹이가 되어야 하잖아."


투덜거리면서도 사춘기 소년은 잠자코 제 몸을 어린 남자 아이의 크기로 줄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한쪽 눈에 레플루앙시의 눈이 박혔다.


후욱


그 과정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로 늘어난 빛의 히펠이 어느새 칼리다비스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칼리다는 그 히펠을 향해 그대로 박치기를 했다.


카가가각


"히히. 강한 놈이다! 강한 놈!"


그 단단하다는 용의 비늘을 벴다는 디스탕시온이 겨우 남자아이의 이마에 막히고 말았다.

그것도 본래 성능을 다 끌어낸 상태의 디스탕시온을 말이다.


그러나 분노로 가득한 테노부스에게 이러한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눈앞의 제사장들의 죽음 말고는 없었다.


검을 몸 쪽으로 끌어당긴 테노부스가 다시금 검을 내지르자 검날이 수백 개의 잔상을 남기며 칼리다에게 쏘아졌다.

어려진 칼리다는 누나가 준 눈으로 이미 본 그 장면을 기억하며 손을 놀렸고 그대로 수백 개의 잔상을 모조리 쳐냈다.


"히히! 아저씨! 사실 하나 말해줄 게 있어!"



카각


계속해서 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테노부스를 향해 칼리다비스가 악동의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말이야."


타다닥


가볍게 내달린 칼리다가 도착한 곳은 테노부스의 앞.


"사실 내가 다 먹었어."


칼리다가 장난스레 뻗는 주먹이 테노부스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24.01.09 33 0 -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4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9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8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8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