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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조회수 :
11,005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4.01.19 23:37
조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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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210. 고고고 고집쟁이

DUMMY

물감으로 칠해진 공간에서 나온 이레는 곧바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세 사람이 들어가서 둘만 나오는 걸 본 테노부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페트라는 어떻게 된 겁니까?"

"음.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를 했고 차도가 있는지는 기다려 봐야 안다."


항상 확신에 가득차있던 이레가 영 자신감이 없는 답을 하자 테노부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만 그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겁니까?"

"파편이 자리잡은 영혼을 치료하기는 원래 어려운 일이다."


파편이란 것은 그 사람의 영혼과 이어져 있는 만큼 타인이 없애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파편이 밖으로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공격해 약화시킬 수 있지만 그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지간히 강하지 않고서야 파편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파편을 품고 있는 사람을 죽여서 파편을 없앤다?

그 조차도 어렵다.

사람의 몸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파편은 언제든 다른 사람의 몸으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타인이 파편을 없애는 것은 당사자에게 달렸다는 말이었다.

지금 이레가 페트라에게 한 일도 파편의 힘을 비롯한 페트라의 힘을 빼놓은 것 뿐이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

이레는 일부러 페트라를 한계까지 몰아넣은 것이다.

파편을 이기기 위한 그 시작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페트라에게 이런 거친 방법이라도 시도 할 수 있는 것은 속에 있는 파편이 고작 파편에 지나지 않아서 그렇지.'


넷처럼 속에 자리 잡은 것이 기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뭘 하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이 모조리 죽어버릴테니 말이다.


"하여튼 저 아이는 잠시 놔두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자꾸나. 그 전에 디르앤. 몸 상태는?"

"더워서 지친 거 말고는 딱히 힘이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디르앤 이후로 정찰을 나간 사람들은 언제 돌아오지?"


때마침 디르앤과 오번대 이후로 정찰을 나갔던 사번대와 딜람이 돌아왔다.


"상황은?"

"다른 건 그대로인데 눈이 더 늘었습니다."

"이제는 밤에 기습을 가하는 것도 어렵겠군."

"네."


정체불명의 눈이 생긴지 만 하루가 지났다.


지금까지 제사장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이전 전투에서 힘을 많이 써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파편으로 변하기 전까지의 페트라와 싸우며 많은 힘을 소모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잠잠했던 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느정도 힘을 회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사장이 행동에 나서고 하루라..."


그녀가 제사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들은 이전 연합전에서 그녀가 본 것들에 기초한 것이다.

그때 그녀가 보고 들은 제사장 중 몇 명은 죽었고 그나마 유명했던 제사장은 이곳에 없었다.

모두 그녀가 처음 보는 자들이란 소리였다.


처음 보는 자들인 만큼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었다.


"저들에게 시간을 주면 불리해지는 것은 우리다."


시간이 갈수록 힘을 회복할 텐데 마침 인간을 먹고 사는 저들에게 수만 명의 인간이 붙들려있다.


"어쩌면 지금도 먹히고 있을 수 있겠어. 아니면 이미 다 먹혔거나."


적 내부의 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느쪽이든 제사장이 등장한 순간 습격의 위험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이번 별동대를 꾸릴 때 제사장의 존재를 상정하기는 했지만 이미 이쪽의 전략이 어느정도 노출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위험할 것 같으니 텔제민 본대의 행군을 자유롭게 풀어둔다?

사실 이건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처음에 별동대를 꾸린 이유는 어디까지나 적의 발을 잠시 묶어두기 위함이었다.

하나는 나무뿔사슴단이 무사히 죽음의 숲으로 향할 때까지.

둘은 요엠가움 본대와 적과 마주하는 시기를 늦추기 위해.


'첫 번째 목적은 이 시점이 되었다면 이미 이룬 것이라 봐야하고... 남은 것은 요엠가움의 본대인데.'


그 문제도 지금 남아있는 별동대가 요엠가움에 합류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제사장을 상대할 사람이 없이 요엠가움이 텔제민과 맞붙는 것이 문제였지만 별동대에는 테노부스나 디르앤과 같이 제사장과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요엠가움과 합류하여 텔제민을 처리하고 죽음의 숲으로 간다면...'


용의 군을 맞이하기 전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긴 했다.

이레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서 요엠가움 쪽으로 합류한다. 알겠나?"


그녀가 내린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의외로 두 명이나 있었다.

처음은 떼르 딜람.


"그럼 넷은요?"

"음?"

"저희가 죽음의 숲으로 모이는 건 넷을 구하러 가기 위해서 아니었나요? 여기서 저희가 요엠가움의 본대로 가버리면 넷을 구하는 시기가 더 늦어지잖아요."


만약 흩어지게 된다면 각자 알아서 데클락 근처 죽음의 숲으로 모여라.

기만과 싸우기 전, 혁명단원에게 이레가 주구장창 했던 말이었다.

실제로 딜람과 세슈람은 넷과 듀시아를 구하러 가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이레가 답했다.


"딜람아. 아무래도 죽음의 숲으로 모이라고 한 이유를 착각한 것 같구나."


사실 넷과 기만의 싸움에 있어서 이레를 비롯한 혁명단원들이 꼭 필요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는 혁명단원들에게 함께 있어 주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또 설령 함께 있어주지 못해도 자신이 함께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하였다.

즉 넷이 기만을 이기는 데에 혁명단의 존재가 필수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기만이 등장할 때 도망칠 계획을 짠 것이고 말이다.


"우리가 없어도 넷은 결국 그 싸움을 이겨낼 것이다."

"..."

"죽음의 숲을 집결지로 정한 이유는 기만을 이긴 넷과 함께 전력을 집중시켜 절망이 이끌고 오는 군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죽여야 할 두 개의 거대한 파편.

죽음에게서 태어난 기만과 절망.

이 두 파편을 이겨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중 기만은 넷이 이길 거라는 옛말이 있으니.

즉 이레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절망이 이끌고 오는 군을 상대할 전력을 구축하는 것이 된다.


"알겠느냐?"


디르앤이나 다른 정규군 대장들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딜람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저만이라도 넷에게 보내주세요."

"지금 너 혼자서 기만을 상대하러 가겠다고? 네가 가서 뭘 할 수 있다고 거기를 간다는 말인게야?"

"... 몰라요."

"그냥 있어도 넷은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싫습니다. 전 넷에게 가야해요."

"... 이유를 들어보자꾸나. 나를 납득시켜 보거라."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님께서 넷과 함께 있어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혹 우리가 없어도 그분께서 함께 있으실 거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하지만 함께 있어달라고도 말씀하셨죠."

"..."


이레는 이마에 힘줄이 뽈록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제사장들이 넘어온 시점에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시에 상급자의 명에 불응하는 것은 즉결처분 대상이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레는 딜람의 요구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이레 역시 알고 있었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왜 넷과 함께 있어달라고 말한 것인지.

그만큼 그녀가 걷는 길은 고되고 외로운 길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레는 선택한 것이다.

넷이 혼자 기만을 이겨내는 동안 다른 혁명단원은 다른 준비를 하는.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딜람이 보이는 눈빛을 무시할 수 없었다.


"좋다. 네가 가겠다면 말리지 않으마. 단 조건이 있다."

"..."

"절대로 죽지 말거라."

"... 네!"


기어이 허락을 받아낸 딜람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하자 이번에는 이레의 결정에 불만을 표한 두 번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그래. 테노부스 그대는 뭐가 그리 불만인 거지?"

"저는 텔제민 사람들을 제사장의 손에서 구하고 싶습니다."


이레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


텔제민 본대가 멀지 않은 곳.

그곳에는 이레를 제외한 별동대원들이 모여있었다.


- 테노부스. 나와의 약속을 잊지 말거라. 처음 일곱 번까지다.


이레가 했던 말이었다.

별동대가 적진에 난입해 싸우는 것은 테노부스가 일곱 번의 히펠을 터트릴 때까지만이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 테노부스의 말에 반응하여 아돌 앙귀스, 첫 번째 검이 제사장을 등진다면 남아서 텔제민을 구하고 그렇지 않다면 미련 없이 몸을 빼내기로 말이다.


별동대는 난입하기 전에 각자 물감이 든 병을 확인 하였다.


- 이번에는 노란색이다. 일이 틀어지면 바로 탈출하거라.


페트라는 움직이지 못하기에 누군가 남아서 별동대가 탈출하면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물감을 막는 역할을 해야 했다.

페트라를 상대하고, 출구를 만들고 등등 이래저래 힘을 많이 쓴 이레가 남기로 한 것이다.


"모두 내 변덕에 맞춰줘 고맙다. 그럼 가자꾸나."


테노부스가 디스탕시온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다른 때처럼 적진 내부에서 등장할 수 없으니 남은 것은 정면돌파뿐이었다.


그의 검에 환한 빛무리가 맺히자 적진 주변으로 사방을 살피던 눈동자가 한 곳에 모여 장벽을 이뤘다.


""왔왔구구나나!""


샐쭉 눈웃음을 짓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저마다 내뱉는 소리에 귀가 아팠다.


테노부스의 신호와 함께 딜람이 쌓아놓은 성벽이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빛났다.

빛무리가 그 크기를 더욱 부풀림과 동시에.


후욱


테노부스가 있는 힘껏 검을 내질렀다.


빛무리가 빛살이 되어 모여있는 눈알의 장벽을 꿰뚫으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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