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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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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89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3.01.0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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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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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43. 대화가 필요해

DUMMY

하늘에 떠오른 큰빛은 그 빛을 세상 곳곳에 차별없이 내린다.

빛은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틈이 조금만 있어도 그 안을 비집고 들어가 기어코 그 안을 밝히고 만다.

누군가는 이 집요함에 위로를 받는다면 반대로 이에 학을 떼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이들은 보통 스스로를 꽁꽁 싸매 어둠 가운데 숨는다.


밤을 더 친숙하게 여기는 이들은 의외로 주변에서도 곧잘 찾아볼 수 있지만 대륙 자체가 밤을 선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거대한 대륙인 '한'에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바로 그 드문 대륙이 등장한다.


연합전이 벌어지는 승리의 벽을 넘고, 용이 나는 바다인 용해를 건너면 대륙 하나가 등장한다.


빛의 집요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보다 더한 집요함으로 하늘을 가린 곳.

대륙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나라인 곳의 이름은 바로 비르무트.


용이 다스리는 땅이다.


***


하늘에 짙게 깔린 먹구름은 큰빛이 쏟는 빛의 편린조차 통과시키지 않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저 먹구름 자체가 평범한 먹구름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비르무트 주민들에게는 이런 어둠이 곧 상식이고 일상이었다.

한대륙 사람들이 비르무트의 하늘을 봤으면 '지독하게 어둡고 두터운 먹구름이 낀 불길한 하늘'이라고 말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비르무트인들에게 평범한 하늘이란 이런 것이었다.


때에 맞춰 떠오르는 큰빛이 가려져 있으니 낮도 밤도 구분되어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물론 낮밤을 구분하는 의미가 없다고는 해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룬 만큼 그래도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때는 있는 법이다.


비르무트인들은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깨어있는 때를 밤이라 부르고 그들이 잠에 드는 때를 깊은 밤이라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깊은 밤이었다.


깊은 밤의 바다.

허름한 조각배가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소름끼치도록 잔잔한 바다를 뱃머리에 매단 횃불에 의지하여 느릿하게 나아가는 조각배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노를 젓는 여인과 어딘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앉아있는 사내.


비르무트인들은 큰빛을 보지 못해 모두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인은 다른 비르무트인들과 비교해도 유독 하얀 피부를 하고 있었다.


콰르릉


구름 사이로 수시로 터지는 번개가 내는 소리였다.

번개가 튀며 퍼져나온 빛에 여인의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드러났다.


여인은 뭇 남성들이 쉽사리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몸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옷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적은 천조각으로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노를 저을 뿐인데도 색정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길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놀라웠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에서는 여인을 향한 조금의 음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배에 탈 때부터, 아니 여인에게 배를 준비시킬 때부터 줄곧 언짢은 상태였다.


섬으로 향하는 내내 사내의 눈치를 보던 여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사내에게 물었다.


"우리 기만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네요?"

"쯧."


사내의 짜증어린 손짓에 검은 기운이 뻗어나가 여인의 입에 틀어박혔다.

여인의 입과 그 주변까지 통째로 으깬 검은 기운은 그대로 여인의 뒷통수를 뚫어버렸다.

여자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고통인지 환희인지 모를 눈이 된 여인은 손에 쥐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는 제 입에 틀어박힌 검은 기운을 부드럽게 쓸어 내리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하지마라."


여인의 행동에 사내는 질색을 하며 검은 기운을 거둬들였다.

보기 흉한 구멍이 남은 그녀의 얼굴은 검은 기운이 사라지자 곧바로 새살이 돋으며 본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하앙..."


입이 되돌아오기 무섭게 야릇한 신음을 내뱉는 여인은 사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장난은 그쯤하고 얼른 노나 저어라."


여인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사내를 올려다 보았다.


"우리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해요? 심지어 남자 몸으로 온 건 진짜 오랜만이야. 우리 한 번 해요. 응?"

"하... 마지막이다. 정말로 죽여버리기 전에 노를 저어라."

"흥. 어차피 그 몸으로는 날 죽일 수도 없잖아요?"


여인은 사내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사내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내의 몸에서 솟아오른 검은 힘이 다시 여인을 덮쳤다.



끼기긱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검은 힘은 여인에게 조금의 해도 입히지 못했다.


"프라바... 다른 제사장도 많은데 하필이면 네년이 나와서..."


기만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을 감았다.

제사장 프라바르도.

광신도들을 이끄는 제사장 중에 정상인은 없지만 이 여자는 기만인 저에게도 기어오를 정도로 정신이 회까닥 한 여자였다.


프라바의 말대로 현재 기만은 겨우 제사장에게도 해를 가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상태였다.

처음에 프라바의 머리를 뚫은 것도 그녀가 일부러 제 몸을 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기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만이 이토록 약한 이유는 제 의식만 비르무트에 불러온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들어가는 힘이 급격히 증가하는 공간 이동 마법으로 넘어오기에는 부담이었고 더군다나 함부로 카밀로테를 비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보통은 제사장들이 갖고 있는 마법석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오늘만큼은 기만이 직접 와야했다.

의식만을 이동하면 그나마 드는 힘이 적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컨대 현재 기만은 프라바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고 이 미친년에게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결국 기만은 프라바와 한참을 몸을 섞고 나서야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르무트에서 배를 타고 조금만 가면 나오는 섬의 이름은 내프혼.

비르무트인들에게 알려진 바로는 용이 거하는 섬이었다.

기만이 오늘 여기까지 친히 온 것은 바로 이 용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기만님! 오늘 좋았어요! 전 죽고 싶지 않으니까 먼저 가요!"


프라바는 배는 버려두고 훌쩍 날아서 섬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쯧. 눈치만 빨라서."


일어나려면 아직 1년 가까운 시간이 남은 그를 여기서 깨운다면 주변에 있는 생명체들이 무사할리가 없었다.

프라바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기만이 용을 깨우기 전에 도망친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프라바는 연합전을 벌써 세 번이나 치른 이였다.


기만은 배에서 내리지 않고 들쭉날쭉한 검은 산으로 가득한 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약하기 그지없는 힘이지만 검은색의 기운이 진동하자 내프혼의 표면이 꿈틀거렸다.

검은 산의 표면을 뒤덮고 있던 검은색의 액체가 모여들어 조금씩 형체를 이루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 형상을 이뤘다.


키야아아악


검은 액체가 모여 만들어진 형상은 바로 아룡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들은 아룡을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건 아룡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찌꺼기.

이보다 아룡을 정확히 설명하는 단어는 없으리라.


아룡은 용의 시체가 만들어내는 찌꺼기다.

정확히 말하면 용의 시체를 뒤집어쓴 저 멍청한 녀석이 용의 시체에 남은 힘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생겨난 잔여물.

그것이 용의 생전 의지를 이어받아 아룡의 형태를 이룬 것이다.


겨우 시체에 남은 힘 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멍청한 녀석 답지만 반대로 용이란 존재가 갖고 있던 힘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얼마나 엄청나면 이미 죽은 용의 시체가 인간을 죽이겠다는 의지를 끊임 없이 아룡이라는 형태로 재현하겠는가?


캬악

캬오오

캬아아악


섬 전반을 뒤덮고 있던 검은 액체가 모여 만든 아룡만 일천을 가볍게 넘었다.


기만의 손짓에 일천이 넘는 아룡들이 비르무트를 향해 날아갔다.


"아... 지금 저리로 가면 프라바 그 년에게 다 먹히려나?"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기만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신경을 껐다.

아룡 천 마리나 천 마리를 먹고 그만큼 강해진 제사장이나.

어느쪽이든 연합전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만은 내프혼을 뒤덮고 있던 검은 액체를 걷어낸 이후 다시 한 번 검은 기운을 진동시키며 말했다.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라. 머저리야."


기만의 말에 하늘에서 시도때도 없이 터져대던 번개가 멎었다.


구구구구궁


그와 동시에 섬이 떨리기 시작했다.

잠잠하던 파도가 출렁거리기 시작했고 내프혼에 솟아있던 검은 산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내프혼의 중심에서 터져나온 용암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아... 하여간 잠 좀 깨웠다고 짜증을 있는대로 부리고. 네가 애냐?"


기만은 움직이는 섬을 향해 말했다.

그래.

섬이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산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용의 몸의 일부였다.


이윽고 주변을 초토화 시키던 용의 움직임이 멈췄다.

몸을 일으킨 용이 자신을 깨운 이를 찾았다.

작게나마 자신과 같은 힘이 느껴지는 곳을 보니 그곳에는 웬 사내 한 명이 서 있었다.


"기만... 네놈이냐?"


용이 입을 열자 주변으로 소용돌이가 일었다.

용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재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래. 오래간만이군."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용은 제 몸을 이리저리 점검해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알고 있다."

"..."


만약 제 잠을 깨운 이가 기만이 아닌 다른 존재였다면 용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죽였을 것이지만 기만이라면 이야기는 들어볼 가치가 있었다.

물론 이야기를 다 들은 이후에는 죽여버리겠지만.


용이 물었다.


"인형 놀이나 하고 있어야 할 네가 여기까지 오다니. 드디어 마음이 바뀐 것이냐?"

"인형놀이라니... 멍청한 놈이 할 법한 말이군"

"흥. 네가 하는 게 인형 놀이가 아니면 무엇이지?"


용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대현자'라는 자리에 올라 마법사들을, 인간을 제 뜻대로 통제하는 현 상황.

사람들은 대현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으니 인형이나 다름 없다고 봐도 무관했다.

다만 이걸 놀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기에 할 법한 말이었다.

기만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용이 말했다.


"이 몸이 제대로 된 숨결 한 번만 내뿜으면 대현자고 기사고 상관없이 인간들의 나라 전부가 세상에서 지워질텐데 그런 나에게 네 녀석의 장단에 맞추라고 하니 그게 놀이지 무엇이냐."


용의 말에 기만이 비뚜름하게 웃었다.


"크크큭. 용 행세를 하더니 진짜 네가 용이라도 된 줄 아나보지?"

"흥. 내가 용이 아니라면 누가 용이지?"

"넌 용이 아니다. 머저리야. 애초에 용의 시체를 네게 건네준 자가 나라는 것을 잊었나보지?"


기만의 말에 용이 입을 다물었다.


"넌 그저 용의 시체에 의지해 죽음을 가장하고 다니는 머저리일 뿐이다."


오만한 눈을 하던 용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왜 그래? 너무 맞는 말이라 기분이 안좋나?"

"그만 하지."

"흥. 왜. 네 원래 이름도 까먹었어?"

"그만 하라고 이 몸께서 말했다."


용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넌 용이 아니다. 너의 이름은 절망. 나와 함께 용에게서 태어난 파편 쪼가리 일뿐이다."


콰아아아앙


기만의 앞으로 거대한 꼬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에 맞춰 해일이 일었다.

기만은 용의 꼬리질에 하늘 높이 치솟았지만 곧 검은 기운을 이용해 몸을 띄워 올렸다.


"진정해라. 내가 여기 너와 싸우려 온 줄 아는 것이야?"

"신경을 건드린 것은 네가 먼저였다!"

"그래. 사과할테니. 이제 좀 진정해라."

"..."


용, 정확히 말하면 용의 모습을 한 절망은 간신히 화를 억누를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이 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만 덕분이었다.


"진정했으니 이제 말 해봐라."


용에게서 비롯한 파편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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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6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7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8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8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7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8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9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8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7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9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8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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