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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04 22:09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11,105
추천수 :
684
글자수 :
1,309,674

작성
23.01.03 12:32
조회
62
추천
2
글자
12쪽

142. 빨간 머리 대현자

DUMMY

카밀로테는 큼지막한 눈송이가 쏟아져 내려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두껍게 깔린 날의 카밀로테는 간혹 하얀 눈에 신나서 까르르대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주로 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오늘의 카밀로테는 정적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카밀로테의 대광장.

아직 큰빛이 뜨지도 않은 꼭두새벽임에도 대광장은 시끄러웠다.

대광장에 쌓인 눈은 이미 깨끗이 치워져 있었으며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으아악! 이 똥멍청이들아! 미쳤어?"


괄괄하게 생긴 사내의 호통에 주변에서 발발거리던 마법사들이 한숨을 내쉬며 움직임을 멈췄다.

노발대발하는 고성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저놈 또 지랄이네.' 정도로 미적지근할 뿐 누구도 적극적으로 그의 분노의 이유를 살피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제 할 말을 내뱉었다.

그는 대광장 중앙에 위치한 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눈처럼 흰 순백색의 목재로 만들어진 무대였다.


"다시 만들어!"

"이번에는 또 뭔데!"


결국 괄괄한 사내만큼이나 괄괄하게 생긴 여인이 짜증을 내며 다가왔다.


"여기 흠집이 나있잖냐! 지금 우리 대현자님보고 이런 결점 투성이의 무대에서 즉위식을 치르라는 말이냐?"


오늘은 트리아트 넷이 대현자에 오르는 즉위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추위에 몸을 발발 떨면서 이 난리를 피우는 이유기도 했다.


원래 즉위식은 해를 넘기고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직 넷이 정식으로 졸업도 하지 않은 예비 졸업생 신분이라는 것도 문제였으며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자격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올릴 수는 없으니 즉위식 전까지의 기간 동안 충분한 훈련을 거쳐 넷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게 해야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랬던 여론이 한 번에 뒤바뀐 것은 며칠 전의 사건 때문이었다.

넷의 가문인 트리아트가 통째로 인질로 붙잡힌 사건.


표면적으로는 트리아트와 혁명단을 못마땅해하는 반혁명파 사람들이 권력 교체를 노리고 벌인 인질극이었지만 그 속을 깊이 파헤쳐보니 흑막이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혁명단 측에서 넷의 목에 목줄을 걸기 위해 벌인 일이었던 것이다.


반혁명파 자체가 혁명단 측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세력으로 겉으로는 혁명단을 견제하는 척 넷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서 더더욱 혁명단에 의지하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트리아트 가문을 인질로 잡은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결정적인 순간, 같은 혁명단에 속해있는 떼르 듀시아의 고백으로 넷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자리에서 혁명단과 넷의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넷은 전설이라고 불리는 오르디나 이레를 비롯한 대장들은 물론 괴상한 마법을 재현하는 혁명단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넷에게서 패배한 혁명단은 그대로 카밀로테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때의 전투를 통해 사람들은 넷이 실력도 실력이지만 잘못을 저지른 대상이 설령 그녀를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혁명단이라 해도, 심지어 그 안에 제 부모가 있다고 해도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공정한 사람이라는 것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뭘 더 망설일 게 있겠냐며 사람들은 넷의 즉위를 바랐고 이런 흐름으로 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무대가 마음에 안 든다며 성을 내는 이 남자는 이번 즉위식을 준비하는 데에 총 책임을 맡은 유스 가문의 사내로 그 역시 혁명단과의 전투에서 보인 넷의 활약상에 큰 감명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괄괄한 여인은 넷의 열성적인 지지자로 거듭난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살폈다.

그가 가리킨 무대에는 주의를 기울여 살펴도 몇 번을 다시 살펴야 보일 정도로 미세한 흠이 나있었다.

흠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흠이었다.

여인은 한숨을 쉬며 사내를 타이르듯 말했다.


"하아... 무대를 뜯어 고치는 것만 벌써 세 번째야. 마을에 있는 닝귀스란 닝귀스는 모조리 쓸 생각이야? 이게 한두푼 하는 목재도 아니고."

"그러면 처음부터 잘 만들던가!"

"이봐. 긴장이 되는 거야 이해하지만 너무 과해."


사내가 곧장 으르렁 거리려는 것을 여인이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며 막았다.


"보다시피 지금 할 일이 천지야. 가주님들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 앉을 특석도 마련 해야하고 가판대도 설치해줘야해. 저기 가판대 설치되는 거 기다리는 사람들 보여? 그게 설치 되어야 저들도 준비를 할 수 있단 말이야."

"그건 내 알 바가...!"

"무대만 완벽하면 네놈이 사랑해 마지 않는 대현자님의 즉위식이 제대로 치뤄질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에 사내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래도 무대에 난 흠집 아닌 흠집이 여전히 눈에 밟히는 지 그는 도통 무대에서 물러날 줄을 몰랐다.


"저! 저기! 이건 어디다가 둘까요?"


때마침 도착한 카밀로테 순환선에서 내린 앳된 사내아이 하나가 대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며칠 지나 해를 넘기면 유스 가문에서 수습 딱지를 뗄 신입이었다.

그는 카밀로테 순환선에서 10월 마을에서 미리 제작한 특석용 의자를 내려 대광장으로 옮기는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어째서인지 의욕이 충만한 신입은 제가 띄울 수 있는 수보다 조금 더 많은 의자를 띄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는 것이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너! 당장 그거 내려놔!"


무대에 신경이 쏠려있던 책임자는 신입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네? 네! 죄송합니다!"


책임자의 말을 도대체 어떤 의미로 알아 들은 것인지는 몰라도 신입은 허둥지둥 의자들을 가지고 무대로 다가왔다.


"야! 당장 내려 놓으라고!"

"죄송합니다!"


책임자가 소리를 지를수록 신입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니! 이 미친...!"

"죄... 죄송!"


무대에 다 와가던 신입은 책임자의 재촉에 그만 발이 엉켜 넘어지고 말았고.


쿠당탕


척봐도 비싸 보이는 의자가 하얗고 흠 없는 무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야! 이!"


괄괄한 사내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큰빛이 떠오르고 간밤에 차갑게 식었던 대지가 온기를 어느정도 머금을 무렵이 되었다.

여차저차 사고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넷의 즉위식을 위한 준비는 제때에 맞춰 무사히 끝이 났다.


강가에 들어선 가판대에서는 여러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오르디나의 악단이 한 쪽에 자리해 있었다.

특석에는 죽은 떼르 가주와 혁명단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투옥된 펠페림 가주를 제외한 모든 가주들이 자리해 있었다.


원래는 여섯 자리가 준비되어 있어야 할 정규군 대장의 자리에는 펠페림 유날, 육번대 대장만이 혼자 앉아 있었다.

다른 대장들의 부재에 대장을 잃은 치안군의 업무까지 그녀가 몰아서 맡은 바람에 그녀의 눈은 퀭하니 피곤에 절어있었다.


카밀로테 마법학교의 학교장 자리에는 교감이 대신해서 자리하고 있었다.


이전보다 주요 인사들의 수가 줄긴 했지만 그럼에도 대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서는 조금의 염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직 희망만이 가득했으며 설렘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꽃피고 있었다.


즉위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무대 위로 환한 빛이 어렸다.


사사로이 피어나던 대화 소리가 멎고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이도 어른들도.

일반인도 군인도.

열망에 휩싸인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빛이 멎으며 무대 위로 넷과 그녀를 위시한 호위군이, 마지막으로 듀시아가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맨 처음으로 백수정으로 된 보좌가 사방으로 환한 빛을 뿌리며 주변을 밝혔고 그 높디 높은 보좌에 트리아트 넷이 오연히 앉아있었다.

대현자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은빛의 망토를 두른 넷의 주변으로 호위군이 시립해 있었다.


호위군을 의미하는 흑갑과 적갈색 망토, 제다카까지.

고작 오십 명 남짓한 수에 불과하지만 완전 무장한 호위군이 내뿜는 기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맹렬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 사이로 홀로 듀시아가 서있었다.


"카밀로테의 마법사들이여!"


넷의 등장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이납솔의 가주가 큰 소리로 외쳤다.


"새로운 대현자님께 무궁한 영광을!"


그가 선창하며 무릎을 꿇자.


""무궁한 영광을!""


이납솔 가주를 따라 다른 모든 마법사들 역시 무릎을 꿇으며 넷 앞에 부복하였다.


"제 혼을 담아 만든 천년목 지팡이 입니다."


이납솔 가주는 품에 조심스레 안고 있던 지팡이를 들고 가 넷에게 바쳤다.


대현자를 의미하는 천년목 지팡이.

이납솔의 가주가 혼을 담아 만들었다는 지팡이의 모양새는 꽤나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넷의 발치에서 어깨까지 오는 길이의 지팡이는 평범한 지팡이보다 그 길이가 긴 편이었다.

지팡이는 크게 가운데를 기점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랫부분은 매끄럽게 깎여 한 손으로 잡기 편한 두께였다면 윗부분은 그보다 더 두꺼워 한손으로 잡기에는 어려운 두께였다.


윗부분은 꼭 뭉툭한 칼날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얇은 칼날 모양의 몸체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날 모양의 목재 장식품이 덧대어 붙어있었다.

날 모양 장식품은 화려한 무늬를 띄고 있었고 속은 비어 있었다.


"칼... 입니까?"


모양은 퍽 특이했지만 뭔가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일단 천년목 지팡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팡이에서 샘솟는 파란 빛망울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팡이를 잡아서 쓰려면 무조건 아랫부분을 잡아야 했는데 윗부분의 길이가 꽤나 길어서 마법을 쓰기 위해 휘두르다 보면 손에 무리가 갈 것 같았다.


넷이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자 이납솔 가주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빛의 검을 써보시겠습니까?"


그의 요구에 넷이 보좌에서 일어나 천년목 지팡이의 손잡이에 해당하는 부분을 잡았다.

그녀가 빛의 검을 쓰기 시작하자 천년목 지팡이에서 변화가 생겼다.


날 모양의 장식품에 새파란 빛망울이 어리기 시작하더니 몸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날 모양의 장식품은 허공에서 파란 빛망울로 몸체에 연결되어 마치 칼의 날밑처럼 벌어졌다.

이윽고 천년목 지팡이가 십자 모양이 되자 날밑 위로 환하게 빛나는 빛으로 된 검날이 솟아났다.


십자 모양의 지팡이와 그 위로 솟은 검날이 합해지니 그 자체로 거대한 빛의 검이 되었다.


"이건..."

"네. 맞습니다. 한없이 빛나는 검으로 대현자님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어둠을 베고 나아가시라는 의미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멋지네요."


넷의 만족한 얼굴을 확인한 이납솔 가주는 다시 제 자리로 물러갔다.

빛의 검을 든 넷이 입을 열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맹세하겠습니다."


조용히 읊조리듯 말하는 그녀의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저희 마법사를 위협하는 적이 들이닥친다면 그 앞에는 제가 있을 것입니다."


희망찬 미래를 약조하는 그녀의 선언에 서서히 열기가 고조되었다.


"마법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난다면 그 앞에는 제가 있을 것입니다."


고조된 열기는.


"저를 믿고 따르세요. 그 앞에는 오직 마법사의 영광만이 함께 할 겁니다."


침묵을 깨뜨리고 나와 열광이라는 형태로 퍼져나갔다.


새로운 대현자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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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246. 포기를 모르는 남자 24.05.04 7 1 12쪽
245 245. 신념 24.04.30 8 1 13쪽
244 244. 이랬다가 저랬다가 24.04.25 9 1 10쪽
243 243. 대위 카밀로테 24.04.20 8 1 13쪽
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9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9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7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10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8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8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11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9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8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1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7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8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8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8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2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1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2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8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9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4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11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9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10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10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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